MEMORIZE RAW novel - Chapter 348
00347 선택은, 바바라 =========================================================================
‘홀 플레인’이라는 세상에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거기에는 수많은 요소와 변수가 있겠지만, 나는 ‘마법사’의 숫자가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홀 플레인에서 목숨은 단 하나. 그런 만큼 원거리에서 강력한 화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법사들은 전쟁에서 1순위로 각광받는 클래스이다.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때 얼마나 더 강한 화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그리고 쏟아져 들어오는 마법들을 얼마나 잘 방어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상황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다면 그 전쟁은 거진 70%이상 이겼다고 봐도 좋은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역할이 바로 시크릿과 레어 클래스이고.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봐도 여태껏 벌어진 전쟁의 양상은 거의 비슷비슷했다.
근접 계열들은 마법사들을 보호하고, 마법사들은 적의 진영을 향해 양껏 공격 마법을 퍼붓는다.
그렇다면 보호를 제외한 근접 계열들이 나서는 때는 언제가 있을까?
그것은 어느 정도 승리에 대한 확신이 들거나, 재빠른 추격이 필요할 때가 비로소 근접 계열들이 직접적으로 나서는 때이다….
*
저번에 단합 회 사건 이후로 아기 유니콘은 한동안 삐뚤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백한결의 품에 안겨있는 아기 유니콘의 모습은, 근래와는 사뭇 다른 불안한 모습이었다. 클랜원들 사이로 감도는 눅눅한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는지, 덩달아 불안해하는 눈빛을 뿌리는 중이었다.
“뀨!”
이윽고 정문 앞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얌전히 백한결에게 들려있던 아기 유니콘은 버둥버둥 품에서 빠져 나와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에 나는 잠깐 걸음을 멈췄고 천천히 한 쪽 무릎을 굽혔다. 저번에 내가 말도 없이 사라졌을 때는 밥도 먹지 않았다고 하니, 이번엔 떠나기 전 확실히 말해둘 필요성을 느꼈다.
“아가야. 이번에는 조금 오랫동안 헤어져 있어야 할 것 같구나.”
“뀨….”
“저번에 너를 빼먹었던 건 정말 미안하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깜빡 잊은 거였어. 정말로.”
“뀨뀨…. 뀨우…. 뀨웅….”
슬슬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아기 유니콘은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고는 이내 슬며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보는 녀석의 눈망울이 벌써부터 그렁그렁한 게 한바탕 울음을 터뜨릴 모양이었다.
‘빨리 떠나야겠군.’
그렇게 생각한 나는, 마지막으로 아기 유니콘의 머리를 서너 번 더 보듬은 후 훌쩍 몸을 일으켰다.
“아무튼 조금 늦을 수는 있어도 꼭 돌아올 테니까. 그 동안 밥 잘 먹고, 말 잘 듣고 있어야 한다. 알겠지?”
“뀨? 뀨뀨?!”
덥석.
그리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 아기 유니콘이 내 발목을 왈칵 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앞으로 말 잘 들을게요. 가지 말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가지 않는다고 할 수도, 그렇다고 녀석을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돌아오면, 네 이름을 지어주마.”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차분히 발을 떼고 등을 돌렸다. 그러자 결국 등 뒤로 미약한 울음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었다.
약간 찝찝한 마음과 함께 클랜원들의 앞으로 걸음을 옮긴 후, 나는 클랜원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고연주처럼 비교적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도 있었지만, 대다수 클랜원들은 묵직한 긴장감이 맴도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들 앞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까.
한순간 수많은 고민이 들었지만, 나는 길게 끌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 되도 않은 미사여구를 붙일 생각은 없다. 불현듯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말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매우 짧게 끝날 수도 있겠지만, 또 어쩌면 생각 외로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요.”
“…….”
아무런 대답도 없다. 클랜원들은 그저 조용히 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 달이 걸리든 간에, 지금 제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이 자리에 모였을 때.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을 하던 도중 문득 신상용의 담담한 얼굴이 눈에 밟힌다. 이윽고 그는 갑작스레 고개를 돌려 건물을 바라보다가, 살짝 멍해 보이는 표정으로 다시 앞을 쳐다보았다.
신상용은 방금 전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더 이상 말을 길게 늘어놓지는 않겠습니다. 그저 마지막으로, 제 결정에 아무 이견 없이 따라준 여러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 말이 클랜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는 짐작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마음속에 품은 진심을 전달했다는 것. 이번 전쟁에 참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클랜원들이 몸 성히 돌아오는 것을 진정 바라고 있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이별은 진작에 끝냈고 하고 싶었던 말도 모두 끝냈다. 더 이상 질질 끌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지체 않고 몸을 돌려 정문을 통과했다.
저벅저벅.
그러자, 등 뒤로 이어지는 10명의 발소리가 대지를 힘차게 울리기 시작했다.
*
클랜 하우스의 정문을 나선 이후 우리는 워프 게이트를 통해 프린시카로 이동했다.
프린시카와 모니카는 전반적으로 비슷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당연히 전운의 냄새가 물씬 풍겨져 오고 있었다. 그러나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용자들이 내뿜는 기세는, 모니카의 사용자들과 확연한 차이점이 있었다. 오히려 긍정적인 기세가 너무 강해, 마치 ‘이번 전쟁에서 무조건 이길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한 분위기를 가로질러 나는 클랜원들을 이끌고 곧바로 해밀 클랜으로 직행했다. 미리 연락을 넣어둔 터라 형은 반갑게 나를 맞이했고, 그와 함께 때깔 좋은 장비들을 차려 입은 해밀 클랜원들을 볼 수 있었다. 형도 다른 도시로 출장을 보낸 클랜원들은 전부 복귀시켰는지, 전에 왔을 때보다 한층 사람이 많아 보였다.
“수현아. 밥은?”
“먹었어. 식사는 됐으니까, 빨리 편성에 대한 얘기나 해줘.”
“녀석. 그럴 줄 알았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내 단호한 말투에 형은 쓰게 웃더니 이내 고용인을 시켜 머셔너리 클랜원들을 안내하라 일러두었다. 나는 클랜원들에게 얘기가 끝나고 바로 가겠다고 약속한 후 형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이윽고 형이 나를 데려간 곳은, 바로 3층에 있는 집무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뜻밖의 인물을 볼 수 있었다.
“오랜만~.”
방안에는 이효을이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팔랑팔랑 손을 흔들고 있었다.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형을 쳐다보자, 형은 미미한 눈짓을 보냈다. 싫어도 잠시만 참아달라는 신호였다.
“네가 여긴 웬일이냐.”
“으, 응?”
속으로 투덜거리며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입을 열자, 이효을은 생글생글 웃던 낯빛을 지우고 떨떠름히 대답했다.
“웬일이긴! 나도 아직은 해밀 클랜원이니까 여기 있지. 그리고 너한테 편성에 대해 설명해주려고….”
“…….”
“시, 싫으면 나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에 “응.”이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옆에서 형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수현아. 이번 편성은 얘의 생각도 상당히 많이 들어갔거든. 그러니까 나보다 더욱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머셔너리의 편성에 관해서도 말해줄 것이고.”
그 말에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하기야 일단 전쟁에 참여한 이상 기본적인 통제를 따르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아무리 자유 용병이라고 해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더욱이 우리의 편성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고 하니, 나는 개인적인 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이효을의 말을 경청하기로 했다.
“흠흠.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문제없지?”
그런 내 반응을 확인했는지 이효을은 약간 밝아진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이효을은 굉장히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결국에는 요약해보자면 이거였다.
이번에 동부에서 편성한 인원은 총 16000명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최대한 균등하게 4부대로 나뉘어, 동, 서, 남, 북을 동시에 공략할 계획이다. 만약 공략이 지지부진하게 되면 추후 맡은 도시의 워프 게이트를 확보한 남부, 북부와 힘을 합쳐 재차 공략에 나선다.
물론 중간중간 견제나, 퇴로 하나를 열어두고 기습을 한다는 등 세세한 전략이 나오기도 했지만, 아무튼 커다란 흐름은 ‘동시 공략’으로 볼 수 있었다.
“여하튼 전략은 여러 가지를 세워놨지만, 일단 직접 부딪쳐봐야 알겠지.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니 최대한 유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거든.”
이효을은 오랫동안 말해서 입이 아픈지 턱을 이리저리 움직였다가, 이내 의자에 몸을 묻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여기까지 1차적인 설명은 끝. 혹시 뭔가 궁금한 점이라도 있어?”
“몇 가지. 부대를 클랜을 기준으로 총 4개로 나눈다고 했는데, 그럼 각 부대의 지휘는 누가 맡게 되지?”
“고려, 달밤, 한, 그린나래. 클랜이 없는 사용자들은 인원이 부족한 곳에 적당히 분배했고.”
“Ok. 그럼 총 인원이 16000명이라고 했는데 각 클래스 별 인원은 어떻게 되고?”
“근접 계열 8100명. 궁수 3900명. 마법사 2800명. 사제 1200명. 물론 정확한 수치는 아니고 대략 계산한 수치야.”
마치 내가 질문할 것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이효을은 물 흐르듯 막힘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의 대답을 들은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1회 차에서 동부는 자체적으로 구성한 병력으로 바바라 탈환에 나섰고, 서 대륙과 부랑자들에 의해 대패를 하게 된다. 물론 지금과 그때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고는 하지만, 일단 동부 혼자서 맞붙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설명만 들으면 질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미묘한 불안감이 자꾸만 무언가를 부추기고 있었다.
“표정이 왜 그래? 되게 불안해 보이는데.”
“그냥. 조금 이상해서.”
“응? 뭐가 이상한데?”
이효을은 궁금해하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반사적으로 대답한 거라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지만, 일단은 완곡히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전쟁에 생각대로만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잖아. 그리고 오면서 대충 분위기를 봤는데, 벌써부터 이겼다는 사용자들도 있고. 너무 방심하는 거 아냐?”
“아. 분위기? 그건 우리가 언론 플레이를 조금 해서 그럴 거야.”
“언론 플레이?”
“응. 그런데 없는 것을 지어낸 건 아니야. 그냥 지금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알려줬을 뿐이지. 예를 들면 기존에 동부에 있던 유명한 사용자들을 제외하고, 이번에 중앙과 서부에서 새로 들어온 사용자들 중 유명한 사람들이 되게 많거든? 검후, 닥터, 간호사, 타로 카드 마술사, 진혼의 암살자, 저주술사 등등. 아. 너랑 그림자 여왕도 있고. 그 사람들도 전부 참여한다고 했거든.”
이효을은 검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는 이내 슬며시 팔짱을 꼈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확실히 네 말대로, 내 생각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겠지. 한 마디로 변수를 걱정하는 거지?”
“변수라. 대충 비슷해. 우리도 유명한 사용자들이 있지만, 적들도 없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아하. 그러고 보니 그것에 대해서도 말해줘야 하는데. 그전에…. 한 가지 정하고 가자. 머셔너리는 어떻게 할거야?”
“응? 뭘 어떻게 해?”
내 반문에 이효을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이미 편성은 대부분 마친 상태라서, 머셔너리는 추가 편성에 들어가야 해. 원래는 내가 정하는 게 맞는 일이기는 한데, 그래도 의뢰 형식으로 참가한 거니까 선택권을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어서.”
“선택권…?”
“응. 선택권. 동, 서, 남, 북. 어느 부대에 편성되고 싶어? 참고로 네 곳 모두 너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나는 서쪽이야 수현아.”
문득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형이 끼어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시 동안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쪽 부대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은데.”
============================ 작품 후기 ============================
(오늘 하루 리리플을 쉬겠습니다. 다음 회와 합칠 예정이오니 독자분들의 양해를 부탁합니다.)
이효을이 말해주는 전략에 관해서 구구절절이 적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까 2천자를 차지하고 있더군요. 순간 내가 뭐 하고 있지 라는 생각에 과감히 날려버리고 7줄로 줄였습니다. 하하하.
독자분들 모두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