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354
00353 바바라 =========================================================================
동, 서, 남, 북.
이 네 개의 문을 맡은 부대 중, 가장 선두에서 진군하는 부대는 바로 한(韓) 로드가 총대장으로 있는 동문 부대였다.
동문 부대는 ‘성단의 숲’을 횡단하던 도중 바바라에서 도망친 것으로 보이는 사용자들과 조우했고, 이에 급작스럽게 행군을 멈추었다. 그리고 부대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 구비된 통신용 수정구를 통해, 사용자들의 처리나 행군의 속행 등 차후 진행 방향에 대한 지시를 기다린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통신을 받은 서문 부대는 “일단 사용자들을 이쪽으로 인도하기를 바란다. 행군은 이곳에서 잠시 멈추기로 하고, 따로 통신이 들어가기 전까지 주변의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이라고 답신했다.
이윽고, 인도를 위해 나온 동문 부대 소속 사용자들과 함께 바바라에서 도망친 사용자들이 도착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꼴랑 일곱 명?’
하나씩 인원수를 세어보자 뜻 모를 의심이 설핏 고개를 들었다. 하기야 인원수 자체는 크게 상관없을지 몰라도, 보면 볼수록 처음 봤을 때부터 차오르는 미묘한 위화감이 가시질 않는다.
‘안솔을 데려올까?’
문득 옆에 복덩이가 없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들려는 찰나, 고려 로드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바바라에서 도망쳐 나온 사용자라고 들었습니다. 보아하니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미안하지만 몇 가지 물어볼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겐 중요한 것들이라서 말입니다.”
“하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지금은 그저 같은 사용자 분들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군요. 사정은 앞에 분들에게 대강이나마 들었습니다. 질문에는 성심 성의껏 대답하겠습니다.”
고려 로드의 질문에는 7명의 사용자들 중 정 중앙에 있던 남성이 대답했다.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고 얼굴에는 피로감이 가득해 보인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진정 다행이라는 듯 안도감이 서리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자세히 살폈다. 군데군데 찢어진 옷과 일부러 그랬나 싶을 정도로 더럽혀진 옷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이해해주셔서 고맙군요. 그럼 먼저 간단한 사용자 정보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혹시 클랜도 있다면, 같이 듣고 싶습니다.”
“4년 차 사용자 백건웅입니다. 현재는 무소속 상태입니다. 원래 있던 클랜은 강철 산맥 원정 이후로 해산되었거든요.”
남성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고려 로드는 주변에 모인 사용자들을 둘러보았다. 눈빛을 보니 혹시라도 백건웅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사용자들은 모두 어느 정도 지위가 있거나 명성을 쌓은 사용자들이었다.
그에 반해 백건웅은 그저 그런 사용자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교류를 나누었을 기회는 일반적으로 적다고 보는 게 옳다.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면 말이다.
고려 로드는 하나같이 고개를 젓는 사용자들의 반응을 확인한 후,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그럼 지금 바바라의 상황을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면 현재 전투가 흘러가는 양상이라던가….”
“양상이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일주일전에 도시를 떠난 지라 전투 상황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상황을 모르다니요?”
“말 그대롭니다. 저희가 도시를 떠난 것은 얼추 일주일전입니다. 그때는 아직 도시가 침략을 받기 전이라서요.”
이 말인즉슨 침략을 받기도 전에 바바라에서 나왔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옷이 저 꼴이야?’
바바라의 안정화는 북 대륙에서 제일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 더구나 일주일전에 나왔다면 도시 부근 지역을 거쳤음이 분명하다. 그런 만큼 저 정도로 옷이 훼손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아니 아예 없다고 봐도 좋았다. 처음 미약했던 의심이 더욱 증폭되는 게 느껴졌다.
“일단 저희가 나오기 전까지의 상황이라도 말씀 드리자면….”
이어지는 백건웅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하?’
그리고 그의 사용자 정보를 확인한 순간, 눈동자에 엄청난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우선, 워프 게이트를 끊은 것은 황금 사자의 독단적인 소행이었습니다. 동부와 남부에서 태도를 바꿀 것 같지는 않고, 사용자들은 자꾸만 빠져나가는 와중이었죠. 아마 강제적으로 방어 인력을 확보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그런데 워프 게이트뿐만 아니라 연락 자체가 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아. 그것은…. 예전에 침략을 받은 타 도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바라는 침략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통신을 하려고 할 때마다 마력의 흐름이 굉장히 불안정해지더군요.”
백건웅의 그 부분은 전혀 모른다는 듯 고개를 차분히 좌우로 저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황금 사자는 이후 사용자들을 어르고 달래는 등 어떻게든 도시 방어에 힘을 기울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최후의 보루로 믿고 있던 북부도 이미 등을 돌린 상태였고, 날이 갈수록 성문을 통해 빠져나가는 인원은 증가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건웅은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지만, 결국 지척까지 다다른 침략자들을 확인한 순간 주저 없이 도시에서 도망 나왔다는 것으로 말을 맺었다.
“비겁한 행동이었다는 것은 시인합니다. 하지만 도저히 도시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한때는 못해도 만 명 이상이 상주하던 도시였는데…. 제가 나올 때는 천명도 채 남지 않았을 겁니다.”
“음…. 말은 잘 들었습니다. 그럼 그 외의 상황은 모르신다는 말이고요.”
“예….”
백건웅은 짙은 후회가 서린 음색으로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던 고려 로드는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바바라의 상황은 동부가 남부가 주도한 것과 다름없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던지 별달리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분들의 거취를 결정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일단은 이대로 도시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여기는 위험합니다.”
“아. 잠시 그것에 관해 한 가지 부탁할게 있습니다.”
“부탁이요?”
“지금 바바라로 가시는 거라면, 혹시 저희도….”
그 순간 백건웅은 말을 멈췄다.
왜냐하면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나는 고려 로드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응? 머셔너리 로드.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예. 고려 로드. 혹시 저번에 첩자들을 정리한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아. 그건 당연히 알고 있지요. 특히 그림자 여왕의 능력 덕분에 백서연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던 놈들도 모조리 발본색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꺼내시는지요?”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이분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추가로 해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더 이상 병아리가 아니었다. 이번 전쟁을 준비하는 게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사용자이고, 지금 한창 주가를 올리는 머셔너리 클랜의 로드였다. 예전 같았으면 건방지다는 말을 들을만한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고려 로드는 일순 의아한 빛을 보였지만 이내 해보라는 듯 한두 번 고개를 주억였다.
나는 바로 질문을 시작했다.
언제나와 같이, 시작은 직구와 함께.
“일단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당신들이 굉장히 의심스럽습니다.”
“예?”
“이곳에서 바바라까지의 거리는 빠르게 가면 닷새. 천천히 가면 이레 정도 걸리는 거리이지요. 말 자체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데…. 그런데 말이죠. 너무 타이밍이 딱 맞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도시가 침략 당하기 직전에 나오셨다고 했는데, 그거야 모르는 일이잖습니까. 일주일보다 훨씬 전에 침략을 당했을 수도 있고. 아니 어쩌면 벌써 함락됐을 수도 있지요. 지금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십니까?”
웅성웅성.
내 말이 끝난 순간 주변 사용자들 사이로 작은 소란이 일었다. 갑작스런 발언에 놀랐는지, 갑자기 왠 헛소리냐고 말하는 소리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러한 반응은 예상하고 있었고, 내게는 확신과 비장의 무기가 있기에 바로 터뜨린 일이었다. 질질 끌 것도 없이 속전속결로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머. 머셔너리 로드?”
그때, 옆에서 정중하면서도 정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목소리의 정체는 선율이었다. 그녀는 살며시 팔짱을 끼고는 나직한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방금 전 말씀은, 지금 저들을 부랑자라고 의심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현재 첩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인 상태입니다. 첩자들과 연락이 되지 않으니 우리의 상황을 궁금하게 여기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눈앞의 사용자들을, 아니 부랑자들을 사용자로 위장해 정보를 빼낼 생각이었겠지요.”
“흐응. 그것 참 대단하신 추측이세요.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는…. 억지랄까?”
선율은 가벼운 웃음을 흘리고는 비꼼이 가득한 기색으로 나를 힐난했다. 그러자 자신의 아군이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백건웅은 당황한 얼굴에서 금방 미소를 되찾으며 말했다.
“하하.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상황이 이런 만큼 확실히 의심스러울 수도 있겠지요. 그 부분에 관해서는 제가 해명을….”
“아니. 실은요. 억지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저도 머셔너리 로드와 비슷한 생각을 해서요. 그래서 그런 거랍니다.”
그때였다. 내 말에 이의를 제기했던 타로 카드 마술사, 선율은 순식간에 표정을 가라앉히더니 이내 바로 태도를 바꾸었다.
“예, 예? 그, 그게 무슨….”
“우리들은 바보가 아니에요. 당신 말은 언뜻 들어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도 많아요. 예를 들면 통신용 수정구. 도시 안에서는 그랬다고 치더라도, 도시를 나왔으면 수정구를 사용할 수도 있었겠죠. 저희는 방금 전에 아주 잘 사용했거든요. 혹시 사용해보셨어요?”
어. 이거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일단 억지로 느껴지더라도 크게 터뜨리고, 부연 설명을 이어나가려고 했던 나로서는 조금 아쉬운 순간이었다.
“아, 아니. 저희는 수정구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요.”
“아하. 그러시구나. 그러면 간단한 몸수색을 해보죠. 아마 첩자라면 몰래 통신을 넣을 수정구를 가지고 왔다고 생각되는데. 안 그래요? 머셔너리 로드?”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태도를 바꾸어 공격하자, 백건웅의 시종일관 침착했던 낯빛은 사그라지고 한껏 당황한 기색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흠. 제법 꿍 짝이 맞는데?’
이윽고 나를 향해 눈을 찡긋하는 선율을 보며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물론 종잡을 수 없는 여성이라는 생각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정말 너무 하시는군요!”
그때, 가만히 뒤에서 듣고만 있던 한 명의 여성이 앙칼진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우리들이 어떤 심정으로 도시를 나왔는지 알기나 해요?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불안에 떨었는데. 겨우 아군을 찾았다 싶었는데. 이렇게 되도 않은 부랑자 취급을….”
여성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빛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제 3의 눈으로 확신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감정에 호소해 어떻게든 위기를 탈출하려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죠? 간신히 살았다 싶었는데…. 어떻게…. 흑…. 흑….”
어떻게 이러긴.
‘너희 모두의 사용자 정보를 봤으니까 알지.’
“크흠. 머셔너리 로드의 말이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그냥 이렇다는 생각만으로 몰아붙이는 건 옳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군요. 타이밍이야 맞을 수도 있는 거고, 통신용 수정구야 생각을 못했을 수도 있지요. 아무튼 정말 억울한 사용자들일수도 있지 않습니까.”
잠깐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하기야 고려 로드의 말은 현재 상황에서는 가장 적합한 발언이었다.
고려 로드가 옹호해주자 약간의 힘을 얻었는지, 백건웅은 뭔가 번뜩 떠올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잠시만요! 현재 이곳에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이중에서 저희 일곱 명중 한 명이라도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 아니. 그럴 필요도 없이, 처음 마주했던 분들 중에 제가 아는 얼굴이 있었습니다! 그 분에게 가면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 겁니다.”
“오. 그러고 보니 그런 방법도 있겠군요. 그래도 만약을 위해서 몸수색 및 수정구는 잠시 압수하는 것으로 하고….”
최후의 발악인가. 물론 이 방법이 확실한 방법일지는 몰라도, 여기에는 가장 큰 맹점이 있었다. 동부, 남부, 그리고 비밀리에 북부의 첩자들도 청소했다곤 하지만, 중앙의 첩자는 아직 남아있는 상태였으니까.
즉 백건웅과 뒤에 있는 사람들은 사용자의 탈을 쓴 부랑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증거가 있거든요.”
“예? 증거라니….”
고려 로드가 의아히 반문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지체 않고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사용자 고연주.”
“네. 클랜 로드. 부르셨어요?”
그러자, 내가 나설 때부터 기다리고 있었는지 고연주가 얼른 나서며 대답했다.
“아.”
그리고 그 순간, 옆에서 고려 로드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고연주는 자주 출장을 보내줬으니,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 지는 충분히 짐작하고 있으리라.
“저는 눈앞의 일곱 명이 전부 당신의 능력에 저항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만.”
“음~.”
나는 고연주를 돌아본 채 긴장한 얼굴로 서 있는 부랑자들을 가리켰다. 그녀는 느긋한 신음으로 잠시 말을 끌었다.
“호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이윽고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한 고연주의 눈동자는, 어느덧 연한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
해는 저물어가 어느새 짙은 황혼이 평야를 드리우고 있었다. 하지만 군데군데 어둑한 빛이 스며든 것을 보니, 조금 있으면 저녁이 찾아올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자 이미 야영 준비를 마쳤는지 가지런히 설치되어있는 천막들이 보인다. 원래대로라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최대한 행군을 했겠지만, ‘성단의 숲’을 벗어난 이후로 급속 행군은 일절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 곧 바바라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남은 거리는 아무리 천천히 가도 이틀이면 충분히 갈 수 있을 만큼의 거리였다. 그런 만큼 이제는 전쟁을 위한 체력도 비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천막에서 나와 심각한 얼굴로 얘기를 나누는 사용자들을 보다가, 나는 한 번 더 고개를 돌렸다. 내가 고개를 돌린 곳은 야영지의 중앙이었는데, 그곳에는 일곱 명의 사람이 나무 기둥에 매달려있었다. 이곳 저곳에서 핏자국이 보이고 미동도 하지 않는 게, 이미 사망한 상태인 모양이다.
매달려있는 일곱 명의 정체는 바로 사흘 전 사용자로 위장하고 찾아온 부랑자들이었다. 나는 고연주의 고유 능력 ‘유혹의 눈동자’를 이용해 그들의 정체를 손쉽게 밝혀내었고, 그들은 곧바로 포로로 잡혀 역으로 알고 있는 정보를 대부분 밝혔다.
물론 잔챙이들이라서 그런지 딱히 건질만한 것은 없었다. 그나마 쓸만한 것은 두 가지 정도?
하나는 바바라가 이미 점령당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우웅….
그때였다. 문득 들려오는 검의 공명에 나는 몸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등 뒤로 검후, 남다은이 다소곳이 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머셔너리 로드께서 이번에도 공을 세우셨군요.”
차갑고 냉랭한 목소리. 음색만 들으면 나를 싫어하는 건가 착각할 정도였지만, 이제는 그녀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담담히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의심스러웠을 뿐입니다. 공이라고 추켜세울 정도는 아니에요.”
“겸손하시네요.”
우우웅.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클랜원들을 추천할 때 도와준 것은 있지만, 그 이후로 서로 마주치면 간단히 고갯짓만 하고 피하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갑작스레 내게 말을 붙이는 검후가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얘 갑자기 왜 이래. 부담스럽게.’
여기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고심하는 찰나, 남다은의 입술이 한 번 더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늘 저녁에 회합이 있어요. 물론 조원끼리요.”
“그렇군요.”
명료한 용건과 간단한 대답. 그리고 다시금 이어지는 불편한 침묵. 그러한 분위기가 이어질수록, 왠지 모르게 자꾸만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뜻 모를 죄책감을 벗어나고자, 조금 더 성실히 답변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우웅!
“회합에는 꼭 참가하도록 하겠습니다.”
“…….”
내 확답에 남다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나와 그녀는 서로를 쳐다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그렇게 의미 없이 서로 눈을 맞춘 채 10초 정도 흘렀을까.
남다은은 내게 아직 볼 일이 남아있는지 입술을 오물오물 거리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눈을 슬쩍 내리깐 그녀는, 자그마한 목소리와 함께 두 손을 수줍게 내밀었다.
“머, 머셔너리 로드. 이것 좀….”
“…네?”
“부탁…. 해요…. 제발….”
“…또 그럽니까?”
내게 이런 말을 꺼내는 게 무척이나 부끄러웠는지, 남다은은 애꿎은 바닥만 내려다보며 고개만 끄덕끄덕 흔들었다. 그런 그녀의 가녀린 양손에는, 아까부터 거슬릴 정도로 공명을 내뿜던 검이 쥐어져 있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건가.’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조심스레 검을 받아 들었다.
우잉 우잉.
갑자기, 검은 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 검을 놓치고 말았다.
우에에엥.
그러자, 이번에는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 작품 후기 ============================
남다은 : 설아야. 너 자꾸 왜 이래. 응? 가만히 좀 있으렴.
설아(검) : 싫어 싫어. 아빠한테 갈래. 아빠 보고 싶단 말이야. 으아아앙.
남다은 : 아, 아빠? 왜 갑자기 아빠가?
설아(검) : 훌쩍. 아빠는 검의 주인이고, 엄마는 검의 여왕이니까. 그런데 왜 둘이 결혼 안 해?
남다은 : …겨, 결혼? 얘가 큰일날 소리를…!
설아(검) : 징징! 나 동생 갖고 싶어! 둘이 결혼해서 동생 만들어줘! 징징징!
PS. 그냥 콩트입니다.
『 리리플 』
1. 쿠로시온 : 1등 축하합니다. 하하. 롤드컵 보시는군요! 저는 꼬박꼬박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결과는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
2. 츄파츕스틱 : 101 이상은 찍을 수 있습니다! 가능해요!
3. 천연천연 : 검의 주인은, 모든 검에게 사랑을 받고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진지.)
4. 타나투스 : 푸하하하! 아, 상상해보고 빵 터졌습니다. 그럴 일은 없어요! ㅋㅋㅋㅋ. 아 정말 대단하세요. 오늘 기분 약간 우울했는데, 타나투스 님 코멘트 보고 확 풀렸네요. 😀
5. 태일이 : 군대 가시는군요! 몸 건강히 다녀오세요! 저는 연재 분 잔뜩 쌓아놓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6. 석양s : 내일 잠시 특별 조 인원들이 나올 예정입니다. 남자들도 있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로맨스는 주가 아닌, 양념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후후. 재미있는 것들이 잔뜩 떠올랐거든요!
7. 붉은고양이 : 아. 그렇군요. 이게 진도를 팍 끌어내기 위해서 생략이 들어가서 그래요. 솔직히 생략 안하고 쓰면 저도 좋긴 해요. 쓰고 싶은 것 맘껏 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랬다가는 진짜 1000회 완결날것 같아서요. ㅜ.ㅠ 아무튼 제가 조금 더 신경 써보겠습니다!
8. [暗黑]魔劍流 : 저는 승급전 11번 떨어졌어요. 브론즈에서요. ㅋㅋㅋㅋ.
9. Lea : 고연주, 임한나, 정하연이요! 저는 연상이 좋아요! 마구 응석부리고 싶거든요. 헤헤.
10. 천성녀 : 허헉! 수백 명이면 수현이 복상사하지 않을까요?! ㅋㅋㅋㅋ.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