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366
00365 단판 승부 =========================================================================
한순간 눈부신 빛의 명멸(明滅)이 시야를 가득히 채웠다.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강렬한 빛 무리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는다. 이윽고 눈동자를 아릿하게 만드는 감각과 함께 눈을 뜨자, 눈앞에는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호용 마력 차단 진’은 어느덧 발현을 멈춘 상태였다. 당장에라도 도시를 감쌀 듯 몸을 일으키던 남청 색 장막은, 마치 만들다 만 울타리처럼 발동 도중 성장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구멍 난 성벽의 틈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수십…. 아니. 어쩌면 수백에 이를지도 모르는 빛의 줄기가 허공을 그득히 메우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도처를 비추는 빛의 조명이 서서히 강도를 더해가기 시작한다.
단지 눈 한 번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윽고 도처에 뿌려지는 빛의 조명이 점차 거세어지는걸 느꼈을 즈음, 성장을 멈춘 장막이 다시금 서서히 몸을 일으키려는 낌새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처 대응할 틈도 없는 창졸간,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꽈앙!
일순간, 고막을 뒤흔들 정도의 거대한 폭음이 솟아올랐다. 아주 잠시나마 귀가 멍해질 정도로 커다란 충격음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금껏 굳건히 버텼던 바바라의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걸 볼 수 있었다.
“피, 피해라!”
누군가 다급히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성벽이 일거에 무너지며 터져 나온 화려한 빛의 폭발에 고함은 곧바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윽고 내가 마지막으로 본 상황은 이내 도시를 둥글게 감싸 올라가는 남청 색 장막과, 폭렬(爆裂)한 빛의 파도가 동부의 진영을 사정없이 휩쓸어오는 광경이었다.
번쩍! 와장창!
잠시 후. 보호막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였다.
…….
………….
…………………….
한순간 꺼졌던 시야가 부옇게나마 보이기 시작했을 때, 등에서 차가운 대지의 감각이 느껴졌다. 정신을 잃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너무나 거대했던 충격에 나도 모르게 쓰러졌던 모양이다. 뒷골을 잡아당기는 감각은 이대로 몸을 누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양손으로 땅을 짚고 애써 몸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차분한 심호흡으로 속을 가라앉히자 주변 상황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용자들 또한 쓰러져 끓는듯한 신음을 내고 있었다.
어느새 도처를 점령했던 빛 무리는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그러나 뭔가가 이상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몸에서 미미한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반사적으로 몸의 이곳 저곳을 만져보자, 거동엔 이상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설핏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노란빛을 띠는 마력이 신체의 일부에 붙어있는걸 볼 수 있었다. 마치 방전할 때 일어나는 현상처럼, 불빛을 튀기는 마력에선 굉장히 불안정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이건….’
우우웅!
그때였다. 아까 들은 기억이 있는 웅혼한 마력의 음파가 귓가를 웅웅 울리었다. 퍼뜩 고개를 들자 도시를 빈틈없이 감싸고 있는 거대한 보호막이 보였다. 그곳에도 노란색 전류가 흐르고 있었는데, 불안정한 마력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는지 장막의 빛이 점차 옅어져 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바닥에 그려진 마법 진을 응시한 순간, 나는 그러한 생각이 완전한 착각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수호용 마력 차단 진’은 더 이상 마력을 띤 상태가 아니었다. 처음 바바라에 왔을 때처럼 빛이 바래어져 있었다. 이 말인즉슨 발동된 마법 진을 유지하는 장치를 의도적으로 파훼(破毁)했다는 소리였다.
기껏 발동한 마법 진을 왜 다시 꺼트리려는 걸까?
어떠한 목적이 있는지는 몰라도, 아직 숨겨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느 틈에 반투명하게 변한 장막은 흡사 허공으로 녹아 드는 것처럼 슬슬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비로소 드러난 내부의 광경이 모습을 보였다. 서문의 성벽은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태였고, 훤히 보이는 대지로는 부서진 벽돌의 잔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러나 부서진 성벽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적은 동부에게 일말의 틈도 줄 생각이 없는지, 곧바로 다음 수를 꺼내었다.
문득 흐릿하게 끼어 부근을 감돌던 안개가 어딘가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착각이 느껴졌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콰아아아!
잠시 후. 뭔가 솟구쳐 오르는 굉음과 함께, 눈앞에 보이는 도시 내부의 전경의 중앙에서 사나운 물결이 세로로 치솟았다. 그것은 가히 수십 미터에 이를 정도로 높은 크기를 가지고 있어, 마치 폭포를 눈앞에 둔 기분이었다.
이윽고 삽시간에, 폭포는 하나의 맹렬한 파도가 되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다가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주변은 물론이고, 파도는 의도치 않은 바리케이드 역할을 한 벽돌 더미도 깡그리 해치우며 거칠게 달려온다. 그러더니 한 지점에서 우뚝 멈춘 파도는 이내 순식간에 하강하여, 동부 사용자들이 모여있는 지점을 세차게 강타했다.
꽝!
이게 과연 물과 대지가 부딪치는 소리일까? 그러나 의문을 채 곱씹을 새도 없이, 나는 몸이 급격히 뒤로 쏠리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그렇게 빛의 파도에 이은 물의 파도는, 다시금 매몰차게 동부의 진영을 휘몰아 쓸었다.
*
한순간 전신을 강타당한 탓인지 이번엔 고막에서 윙윙대는 소리가 울렸다. 눈은 일부러 뜨고 있었지만 시야에는 너울대는 하늘만 보일 뿐이다. 그저 감각으로 파도에 휩쓸려 압력에 뒤로 밀렸구나 인지할 뿐이었다.
이후 거칠었던 한 번의 웨이브가 지나가고 나는 폐 속에 담은 산소를 폭발하듯 내뿜었다.
“푸.”
내뱉는 소리와 함께 튀어 오른 물방울들이 얼굴에 다시 떨어진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거슬려 나는 거세게 머리를 털었다. 문득 비릿한 물 냄새가 물씬 코를 찔러 들었다.
빛의 파도를 맞았을 때부터 파괴된 동부의 진형은, 이제는 진을 구축했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물이 흘러 질척해진 대지로 사방팔방 널브러진 사용자들이 보인다. 개중에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극히 소수였다. 대부분 연이은 파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한 것도 오랜만인데.’
그러나 심안의 영향인지 내 정신은 혼란스럽다기보다는, 지극히 차갑고 또한 고요했다. 파도의 영향으로 성벽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진 상태였다. 비록 불의의 일격을 두어 번 맞았다고는 하지만 혼란에 빠지기보다는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일단 몸은 멀쩡했다. 그리고 이것은 나로서도 의문이었다. 빛의 파도의 정체는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마탄’이었다. 수백 개가 일거에 터져 파도라는 착시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물의 파도는 제대로 직격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이상 효과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아까부터 느껴지던 마력의 불안정한 흐름이 점차 안정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어지는 의문에 곧바로 제 3의 눈을 활성화하자, 나는 방금 전 덮친 파도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령 마법(Elemental Magic) : 정화의 해일(The Tsunami Of Purification)』
‘정화의 해일…?’
그 순간 빛살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하나의 생각에 나는 번쩍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복잡하게 퍼져있던 머릿속의 퍼즐이 이내 차분히 정리되기 시작한다. 이윽고 재빠르게 주변을 훑자 이내 내 추측이 맞는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어느덧 신체에 붙어있던 ‘마탄’의 흔적은 깔끔히 사라진 상태였다.
“하하….”
문득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해낸 상대에 속으로 감탄이 일었다.
‘마탄’이란 간단히 말해서 마력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는 일종의 마법 도구이다. 마력의 흐름이 극히 불안정해져, 원거리 통신 등 원(元) 흐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마법이 제한되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수백 발을 한꺼번에 터뜨렸을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 중첩되고 중첩되어, 사용자들이 직접적으로 유도하는 마력의 흐름에도 간섭할 수 있을 정도로 필드 효과가 강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번에 적들이 보인 작전은 타이밍과 연계기의 결정체였다.
이정도 규모로 ‘마탄’을 터뜨렸다면, 필드 효과는 양날의 검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적은 자신들 쪽으로 겨누어진 날을, ‘수호용 마력 차단 진’으로 방어했다. 한 마디로 ‘마탄’의 효과가 일어나기 직전의 시점에 정확히 맞추어, 마법 진을 완벽하게 일으킨 것이다. 이건 나보고 해보라고 해도 자신할 수 없는, 소름 끼칠 정도의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정화의 해일은 아마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첫 번째는 동부의 진영을 완전히 흩트려놓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현재 주변에 일어난 필드 효과를 스스로 정화하는 것.
이미 동부의 사용자들은 마법을 발현하기 직전 ‘마탄’에 맞았고 그에 따라 내부가 크게 헝클어졌을 것이다. 비록 지금 정화의 해일에 맞았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필드 효과를 없애줄 뿐이다. 물론 개인차야 있겠지만, 이미 간섭된 마력은 당장 회복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시간을 두고 회복된다.
즉 현재 서문 부대의 진형은 산산조각이 났고, 마법사와 사제들은 마력의 사용을 제한 받는다. 한 마디로 전투에 돌입한 이후 가장 약해진 시점이었다.
그리고 적들이 노린 것은, 바로 이순간일 것이다. 놈들이 일말의 틈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몰아친 이유는, 바로 지금의 ‘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그런 내 생각에 화답이라도 해주듯이, 이윽고 전방에서 커다란 함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수한 사용자들이 일거에 뛰쳐나오는지 대지에 고인 물은 미약한 파문이 인다.
크아아아아아아앙!
스스스스스스스스….
그러나 적들의 함성에 이어지는, 평야를 으르렁 울리는 괴성과, 땅을 적시는 물들이 다시 빠르게 휘돌기 시작한 광경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성벽 부근으로 10미터에 다다르는 신장을 보이는 괴물이 출현한 게 보였다. 손에는 거대한 몽둥이를 쥐고 있고, 몸에는 황금빛이 감도는 인간의 형상을 한 거인이었다.
『거인들의 (전대)제왕 : 쿠샨 토르(현재 길들여진 상태입니다.)』
‘반신?’
거인들의 제왕. 다른 말로는 자이언트 로드. 이제는 헛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이윽고 거인을 선두로 한 적들이 떼지어 밀려오기 시작했다. 고인 물이 하나씩 하나씩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다. 적들의 수장은 어설프게 워프 게이트와 차단 진을 연계해 각개격파를 당하느니, 한 곳으로 힘을 모아 스스로 활로를 개척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런 만큼 이번 전투에 사활을 걸을 셈인지, 자신들의 역량과 비장의 수를 총동원한 모양이다.
그에 비해 서문 부대의 사용자들은 비척비척 간신히 몸을 일으키곤 있었지만, 여전히 혼란에 빠진듯한 상황이었다.
잠시 동안 전방을 응시하다가 나는 거인에게 눈을 맞췄다. 계속 주시하며 화정을 한 번 돌리자, 몸 속에 남아있던 불안정한 잔재가 말끔히 불타 사그라졌다. 곧이어 몸에 활력이 샘솟는 것을 느끼며 나는 차분히 허리춤에 걸린 검을 쥐었다.
그와 동시에, 있는 힘껏 마력을 밀어 넣는다.
키아아아아아아아!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마검 칼리고 아브락사스(Caligo Abraxas)의 봉인이 풀렸습니다. 변화가 시작됩니다.』
이윽고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가공할 어둠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거인은 어느덧 거리를 절반이나 줄인 상태였다.
아마 지금쯤 다른 도시에 있던 인원들도 전부 바바라로 복귀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는 수적 우위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우리도 크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서문 부대의 사용자들이 얼른 정신을 차려 시간을 끄는 동안, 다른 부대의 지원이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러니, 결국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문득 나는 앞으로 나가려던 걸음을 잠깐 멈추었다.
쿠샨 토르. 내가 알고 있는 거인들의 제왕과는 다르지만, 엄연한 반신과의 대결이었다.
한순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곧 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나는 곧바로 땅을 박차 올랐다.
============================ 작품 후기 ============================
(오늘 리리플은 쉽니다. 다음 회에 합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해요.)
음. 독자분들. 오늘은 죄송한 말씀을 하나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10월 7일(월요일)부터 10월 18일(금요일) 동안 연재 주기에 변화를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유인즉슨 바로 과제와 중간고사 때문입니다.
제가 1학기 때 신청한 학점이 지금만큼은 아니어서, 그때는 그래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2학기에 들어서 학점을 가득 신청하고, 더불어 강의 난이도도 많이 올라간 편이라 이번에는 조금 위기감이 느껴지네요. 더불어 쏟아지는 과제도 처리해야 할 것 같고요.
몇몇 분들은 아시다시피, 부모님께서 제가 조아라 노블레스에 연재를 하는걸 알고 계십니다. 생활패턴이 항상 ‘학교 – 글’이라 걱정도 꽤 하시는 편이고요. 1학기 때는 다행히 학점이 괜찮게 나와서 잘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번 2학기에도 성과를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시험은 10월 14일(월요일)에 시작해 10월 18일(금요일)에 끝납니다. 그리고 준비는 10월 7일(월요일)부터 할 생각이고요. 그래서 당분간 일일 연재가 아닌 격일 연재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일단 이번 주는 10월 7일(월요일 : 이건 오늘 올렸지요.), 10월 9일(수요일), 10월 11일(금요일) 자정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0월 13일(일요일)은 시험 전날이니 공부에 집중하고, 시험 시작인 10월 14일(월요일)부터는 제가 한 번 상황을 보고, 시험이 끝나는 10월 18일(금요일)까지 어떻게 연재할지 다시 공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분들의 양해 부탁합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