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372
00371 신상용 =========================================================================
3단 비행.
물론 세 번만 사용한다고 해서 3단 비행이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보유한 이동 능력을 세 개로 나누고, 도약할 때마다 들어가는 마력을 컨트롤하여 임의대로 비거리를 조절하는 능력이었다.
각도가 나온 순간,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곧바로 대지를 박차 올라, 오로쓰로스 롱 부츠(Orthros Long Boots)의 속도를 이용한 첫 번째 도약을 실행했다.
– 죽여!
그리고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 순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양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살기들이 매섭게 쇄도해 들어온다.
하지만 그것은 나 역시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렇기에 공중에 오르자마자 급격히 몸을 꺼트렸고, 이내 위쪽 빈 허공을 스치는 무수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일단 피하기는 했지만 이대로 착지할 생각은 없다. 나는 완전히 바닥에 닿기 전 급히 발을 내저었고, 이내 발바닥이 누군지 모를 이의 어깨에 닿은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상태서, 나는 다시 한 번 부츠를 이용한 도약을 감행했다.
슈슈슉!
이번엔 화살이 다시금 나를 노리고 들어왔지만, 방금 전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살기를 느끼었다. 화살이 최대한 들어오는 방향으로 ‘빅토리아의 영광’을 거세게 훑는다.
베어진 것들은 툭툭 반으로 잘라져 모조리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러나 미처 막지 못한, 사각으로 들어온 화살 몇 개가 몸을 치는 것을 느꼈다.
살며시 입술을 깨물고 아래를 쳐다보자, 약간의 공간은커녕 발 디딜 틈 없는 촘촘한 전열이 눈에 들었다. 적들은 하나같이 눈을 치켜 뜬 채 길쭉한 병장기들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만일 이대로 아래로 하강하면 몸의 균형은 틀림없이 무너져 내린다. 3단 비행의 핵심은 1, 2, 3단을 나누는 부분에서 물 흐르듯 이어지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해답은 하나. 아까처럼 공간을 만들어내면 된다.
이윽고 몸의 추락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검에 마력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낙하지점을 향해 쉴 새 없이 검기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빅토리아의 영광’이 짧은 검음을 토해내고, 그럴 때마다 30cm에 다다르는 파동을 적들의 한복판에 쏟아 붓는다.
펑! 펑! 펑! 펑!
충격으로 일어난 자욱한 먼지 사이로 분주한 움직임과 어지러운 비명이 흘러나온다. 무차별적으로 내려친 파동은, 이윽고 빛의 세례가 되어 적들의 전열에 자그마한 구멍을 만들어주었다.
잠시 후.
나는 거센 바람에 머리카락이 좌우로 나부끼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땅에 착지했다. 그리고 1차 비행을 마치고 대지에 발을 디딘 순간, 번쩍거리는 빛이 내 전신을 뒤덮는 게 느껴졌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동시에 번들번들거리는 수십 개의 날이 사방에서 짓쳐 든 것이다.
완벽히 이어지는 연계에 혀를 차는 것도 잠시.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들어 전방을 응시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병장기들 사이로, 어그러진 전열이 눈에 밟힌다. 그리고 그 어그러짐 사이로, 나는 두 번째 비행인 이형환위를 발동해 그것을 뛰어넘었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뜨자, 눈앞 광경이 달라지는 것과 동시에 등 뒤로 미약한 환호성이 울렸다. 그러나 이내 뚝 끊긴 것으로 보아 잔상이 사그라지는 것을 확인한 모양이다. 하지만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나는 곧바로 달리기를 재개했다.
‘남은 거리는 절반.’
삽시간에 절반을 줄였다. 그렇다면 15미터. 평소라면 한달음에 줄일만한 거리였다.
그러나 눈앞에 버티고 있는 정령왕을 확인하자 갑작스레 까닭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엄습한다. 어찌 보면 정령술사에 도달하기 전 마지막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만큼 쉽지 않은 상대였다.
그러나 이제 와서 어떡하겠는가. 결국 관건은 누가 더 치밀한 계산을 했는가에 달렸다.
한 번 침을 삼켰다. 이대로 다시 공중에 떠오르면 다시 표적이 될 것은 알지만, 지금 나에게 트인 공간은 허공뿐이었다. 과연 나를 노리고 들어오는 것들을 회피하면서 정령왕을 넘을 수 있을까?
‘운에 맡길 수는 없다.’
목숨을 행운에 맡기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적들은 현재 내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 점을 노려야 한다. 아마 지금쯤이면 다시 장전을 마쳤을 것이다. 장전된 주문과 화살을 한 번 더 소비하게 만들어야, 내가 정령왕을 뚫고 나갈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나는 들어오는 공격을 느껴 반사적으로 행동을 개시했다.
우선 대지를 냅다 차오르기 전, 이형환위의 능력을 끌어올린다. 이어서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과 동시에, 준비한 이형환위의 능력을 한 박자 늦게 발동했다.
발은, 아직 대지에 붙어있었다.
이윽고 몸이 바람을 세차게 가르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몸에 찾아 든 부유감은 잠시였다.
그것은 한순간 반전해 아래로 쏠리었고.
쿵!
이내 나는 떠오른 순간 다시 대지에 착지할 수 있었다.
퍼버벙! 퍼버벙!
슈슈슉! 슈슈슉!
뒤늦게 허공을 후려갈기는 무수한 마법과 화살들. 적들은 허공에 떠오른 나를 곧바로 노렸지만, 나는 허공에 오르자마자 발동된 이형환위의 능력으로 바로 대지로 착지했다. 그 사이의 틈은 약 1초. 허공으로 솟구치기 전 준비한 이형환위로 인해, 뛰어오른 것과 능력을 발동한 게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판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로서 한 번의 기회가 생겼다.
아직 정령왕이라는 관문이 버티고 있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간신히 만들어낸 시간이 가기 전에, 나는 바삐 행동을 개시했다. 앞에서 멍하니 눈만 끔뻑이는 사내의 멱살을 붙잡고, 힘차게 아래로 끌어내린다.
지금의 도약이 승부를 가릴 것이라는 생각에, 순순히 몸을 허물어뜨리는 그의 어깨를 밟고서 이번에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뽑아내어 단숨에 뛰어올랐다.
정령왕과의 거리는 약 5미터. 이 정도 도약력이라면 충분히 닿고도 남을만한 거리였다.
힘껏 뛰어서 그런지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몸은 물의 거인과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이내 정령왕도 나를 인식한 듯싶었다. 놈의 고개가 슬며시 내려오더니 나를 지그시 응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이윽고 전신에서 수십 줄기의 물빛 광선이 뿜어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놈의 오른팔이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나서, 맹렬한 기세로 들어오는 물빛 광선들은 마주 올라가는 나를 정확하게 노리고서 낙하한다.
풍풍풍풍풍풍풍풍!
거의 집중 사격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잠시 숨을 삼키었지만, 나는 검을 앞으로 쭉 뻗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와 동시에 힘껏 마력을 불어넣어 정령왕을 베어낼 파동을 준비한다.
풍! 풍! 풍! 풍!
믿는 구석은 있었다. 몸에 닿은 물빛 광선은 아까처럼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며 허공에 번져 퍼지었다. 아까부터 연신 두들겨 맞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내 마법 저항력을 살아있어 수십 줄기의 물빛 광선을 가까스로 방어한 것이다.
오오오오오오오오!
그 순간 엄청난 분노성과 함께, 아까보다 거대해진 오른팔이 나에게 뻗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휘둘러 들어오는 일격이 행사하는 물리력은 무시할 수 없다. 내가 온 힘을 다해 뛰어든 것처럼, 혼신을 다해 휘두른 물의 주먹은 당장에라도 나를 처박으려는 듯 힘차게 쏘아지고 있었다.
그것이 닿기 직전, 나는 양손으로 검을 쥐어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이윽고 주먹과 검이 서로 맞닿으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검을 사선으로 비스듬히 돌리는 것과 함께, 오른쪽으로 반 바퀴 몸을 기울였다. 검후와 일대일 전투를 벌였던 경험이 지금 순간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스치는 왼쪽 팔꿈치가 아릿해지는 느낌이었지만, 뻗어져 나간 물의 주먹은 이내 하나의 거대한 줄기를 이루어, 내 옆을 확실히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그 옆을 타는 듯 들어가 몸체를 향해 스미듯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정령왕의 몸체로 그대로 돌진해 들어갔다.
한순간 눈앞에 파란 바다가 보이는 착각이 있었다. 직경 8미터에 이르는 몸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물의 장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대로 바다에 묻히려는 찰나, 나는 바로 정면에서 진로를 가로막은 그것을 향해, 준비해둔 파동으로 크게 그어 내렸다.
촤아악!
그러자 일순간 거짓말처럼 바다가 좌우로 열리었고, 그 뒤에 있는 텅 빈 허공이 눈에 보인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정령왕에게 확실한 타격을 줄 기회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생각을 접었다. 비록 왕이라고는 하지만 정령왕도 엄연한 소환수였다. 소환의 주체를 죽이면 자연스레 소멸할 것이다.
목표는 단 하나. 정령술사.
그것을 되새김질하자, 일순 좌우로 갈라진 바다에서 부글거리듯 물이 끓어올라 상처를 수복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나는 틈새를 직선 궤도를 그리며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해냈다…!’
그렇게 빠져 나오고 나서, 생각한 순간이었다.
꿍!
“허억.”
정령왕을 가르고 나오자마자, 등을 가격하는 거센 충격에 나도 모르게 헛바람 들이켰다. 안 그래도 검면으로 물을 타고 들어오면서 속력이 무척 감소된 상태였는데, 방금 전 일격으로 몸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이윽고 몸이 더더욱 기울어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이대로 몸을 떨군다면 지금까지의 개 고생은 물거품이 돼버리는 것과 다름없어진다.
“큭!”
다행히 극한으로 끌어올린 집중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게 만들었다.
등쪽으로 들어온 힘에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일전에 통과의례에서 안솔을 구해냈을 때처럼, 받아들인 충격을 조절하여 오히려 앞으로 가속하는 힘으로 바꾸어내자, 이윽고 멈췄던 몸이 한순간 퉁기듯 튀어나간다.
살랑!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탁 트인 허공. 그것을 보자 드디어 팔부능선을 넘었다는 환희가 전신을 감돌았다.
남은 거리는 10미터. 몸은 여전히 허공에 떠 있는 상태.
두 번의 비행을 마치고 아래를 보자, 이제는 손에 잡힐만한 거리에 있는 정령술사가 보였다.
마침내. 드디어 정령술사가 간격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아까의 거만한 미소는 어디 갔는지. 입을 멍하니 벌린 모습을 보자 목적을 달성하기 직전이라는 것을 느꼈다. 잡힐 듯 말듯 애매했던 생각이 이제 눈앞으로 확신으로 변해 다가왔다.
나는 온몸을 감도는 회로에 마력을 가득히 일으켰다. 아래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사용자들이 나를 보고 있다. 과거 제로 코드를 쥐었을 때의, 그때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할 수 있다.’
그렇게 정령왕이 보태어준 힘 덕에, 나는 일부 속도를 되찾아 하강을 시작했다. 힘을 다한 도약과 마력은, 이번에야 말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끄럼틀처럼 대기를 가른다. 나를 보는 정령술사는 분한 얼굴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가, 일순 표독스런 표정을 지어 보인다.
나는 그대로 여인의 품으로 직선으로 파고들며 온몸의 회로에 흐르는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한 발자국이었다.
주르륵!
그때였다.
승리를 한 발짝 앞에 두고서, 이어진 정령술사의 행동에 눈동자에 힘이 들어갔다.
그것은 내가 막 하강을 시작할 즈음이었다.
이대로 내가 들어올 것을 깨달았는지 정령술사는 입을 크게 벌려 소리쳤고, 이내 손을 횡 방향으로 기다랗게 내저은 것이다.
쭈르르르르륵!
그때, 내가 들어가는 지점의 왼쪽에서 거대한 물의 길과 함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마치 파란 카펫을 밀어 까는 것처럼 쭉 밀고 들어오는 그것은, 내가 통과하려는 지점을 가로막으려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또한 오른쪽에선, 뭔지 모를 거친 기세가 물의 질주와 맞춰 세차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비록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속으로 감탄이 일었다.
그것들은 내가 들어오는 속력까지 계산한 정확한 공격이었다. 만일 이 속도를 유지한 채 날아간다면, 양방향에서 들어오는 살기는 내가 지점에 다다른 순간 손뼉 치듯 나를 터뜨릴 것이다.
‘그럴 수는 없지.’
아직, 도약은 끝나지 않았다. 그에 따라 나는 한껏 몸을 웅크렸다. 아까 채워둔 마력은 여전히 몸 안 회로를 따라 거침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윽고 통과 지점을 바로 앞에던 직전의 순간.
쾅!
나는 지체 않고 몸을 활짝 피는 것과 함께, 온몸의 휘도는 마력을 일거에 폭발시켰다. 그러자 가는 곡선을 그리며 허공을 낙하하던 몸은, 한순간 고무줄 튀기듯 퉁 튀어나가며 직선에 가까운 곡선으로 변했다.
마지막 도약, 궁신탄영(弓身彈影)의 발동이었다.
하강하는 속도에 한층 가속이 붙는다. 그 상태로, 나는 통과 지점을 말 그대로 ‘통과’했다.
철썩!
아무것도 들리지는 않는다. 그저 마법이 들어오는 지점을 통과하고 나서, 뒤늦게 하늘로 치솟는 빛과 물보라만을 느꼈을 뿐.
비로소 다가온 희망에서, 나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빅토리아의 영광’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아래 정령술사와 여인을 단단히 감싸는 사용자들을 겨누었다.
챙챙챙챙챙챙챙챙!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아끼고 아껴온 능력. 마침내 새하얀 검이 청명한 검음을 내질렀다. 검 빛이 쏘아지고, 이어서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수 명의 사용자들이 몸을 허물어뜨린다.
그 사람들 중에는 정령술사도 포함되어있었다. 그러나 아직 죽지는 않았는지, 한순간 휘청거렸다가 오른쪽 팔을 부여잡으며 간신히 자세를 잡는다.
이윽고 겨우 몸을 일으킨 정령술사는, 지척까지 다가온 나를 노려보았다. 언제 주웠는지 정령술사의 오른손에는 변화가 풀린 ‘칼리고 아브락사스’가 들려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비로소 짜릿한 환희가 온몸에 감돌았다.
지금껏 참고 참고 참아온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수많은 위기를 헤치고 간신히 만들어낸 확실한 기회.
나는 정말 끝이라는 생각에 오른팔을 크게 뒤로 젖혔다.
웅웅웅웅웅웅!
마치 나의 승리를 확신하듯이, ‘빅토리아의 영광’은 전에 없는 청명한 검음을 울리었다.
– 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지, 정령술사는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힘겹게나마 ‘칼리고 아브락사스’를 들어 보였다.
그것으로, 나와 정령술사의 거리는 ‘0’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하얀색과 검은색이 교차했다.
싹둑!
쾅!
이윽고 뭔가를 자르고 지나간 것과 함께, 나는 그대로 대지로 추락했다. 어찌나 혼신의 힘을 담았는지, 지축은 거대한 굉음과 함께 흙먼지들이 일어나 주변을 자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신에 느껴지는 것은 딱딱한 대지가 아니었다. 뭔가 말캉하고 부드러운 인간의 육체가 느껴졌다.
충격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자 간헐적으로 뿜어지는 피 분수와, 전신이 으깨어져 피가 튀어나온 목 없는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
고생한 것에 비해, 결과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래도 드디어 죽였다는 생각에 숨을 몰아 쉬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나는 시체를 들어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사위는 고요했다. 일어났던 먼지는 어느새 가라앉아, 나와 정령술사만을 멍하니 보는 적들만이 보였다.
이윽고 왼손에는 시체를, 오른손에는 ‘빅토리아의 영광’을 든 채,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하늘은 어둑한 구름을 품고 있었다.
찰랑!
그에 이어서, 정령왕을 이루었던 거대한 물들이 한순간 점점이 흩어지며 이곳 저곳 흩뿌려진다. 소환자가 죽었으니 더 이상 이곳에는 존재할 수 없다는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후드득! 후드득!
일대를 적시는 빗방울에 적들은 이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이내 흉흉한 살의가 일대를 뒤덮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쯤이면 그쪽에도 신호가 갔을 터.
꾸릉!
그리고 구름 사이로 비치는 한 줄기 뇌광(雷光)을 보자, 눈동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나는 다시금 마력을 일거에 터뜨리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혀어어엉!”
그리고 그 순간.
꾸르르르르르르릉!
세상이, 샛노란 빛으로 변하였다.
============================ 작품 후기 ============================
아마 내일은 조금 긴 후기가 될 듯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