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373
00372 신상용 =========================================================================
바바라의 들판은, 아직 오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흐릿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해는 여전히 하늘 한가운데 떠올라 있었지만, 어느새 몰려든 먹구름들이 햇빛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마치 비가 쏟아져 내리기 직전의 모습 같았다.
문득, 들판에 한 줄기 사늘한 바람이 불어 어딘가로 닿았다.
그리고 들판에 분 바람이, 한 무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때였다.
라라라라라라….
라라라….
라….
찰랑!
찬란한 승리를 노래하던 물의 정령이 불어온 바람에 휘감겨 일거에 사그라진다. 그것을 시작으로, 형체를 이루던 액체는 점점이 흩어져 허공에 반짝이는 물보라를 수놓았다.
그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 후에, 비로소 김유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멍하니 서 있는 그의 눈길이 얼굴이 어딘가를 망연히 응시한다. 하지만 한 번 짧게 숨을 들이키고는, 오른손을 들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 꾹 말아 쥔 손등에 한 문양이 나타남과 함께 황금빛 기운을 발하였다. 금색의 마력은 순식간에 전신으로 번져 방전 현상을 일으켰고, 이내 크게 솟구쳐올라 하늘 전체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흑운(黑雲)이 황운(黃雲)으로 변하는 과정은 가히 장관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느덧 김유현의 전신은 황금빛으로 뒤덮여있었고, 새어 나온 마력의 전류는 허공을 찢어발길 듯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상태로 물끄러미 전방을 바라보는 태도는 담담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살짝 숙인 고개로 보이는 그의 눈동자는, 입술은, 어깨는 미미한 떨림을 담고 있었다.
갑작스레, 김유현은 질끈 눈을 감았다. 이윽고 그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걱정, 고뇌, 구슬픔, 서글픔, 눈물…. 총체적으로 ‘슬픔’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그의 표정에 묻어 나오고 있었다.
“…….”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김유현은 말아 쥐었던 손을 활짝 피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술을 떼었다.
“극(極).”
번쩍!
한순간 뇌성을 동반한 빛이 세상을 환히 밝혔다. 그리고 비로소, 김유현은 약간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느새 뜬 눈에서 진한 노란색 안광이 실 가락처럼 흘러나온다.
이윽고, 김유현은 마치 목멘 사람처럼 목 울대를 움직였다. 그러다가 이내 뭔가를 토해내는 사람처럼 힘겹게 말을 잇는다.
“뇌(雷)…!”
꾸릉, 꾸르릉!
그리고, 세상은 샛노란 빛으로 물들었다.
이어서 김유현의 로브 자락이 크게 펄럭여 올라간 순간.
꽈과광! 꽈과과광!
노랗게 물든 하늘에서, 들판을 뒤덮는 수백의 빛 줄기가 물 젖은 대지로 내리 꽂혔다.
*
구름 사이로 비친 뇌광이 부근을 환히 밝혔다. 이제야 뭔가 이상한걸 느꼈는지,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던 적들이 일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곧바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이미 때는 한참 늦었다.
뇌신(雷神)은 이미 힘을 발동한 상태였다.
꽈과광!
폭음에 가까운 뇌성이 들린 순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과 동시에 눈앞 시야가 하얗게 변하였다.
한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바로 마력을 일으켜 안력을 돋우었다. 그러자 하늘에 떠 있던 황금의 구름이 녹아내려 대지로 쏟아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벼락의 폭우였다.
쿵, 쾅! 쿵, 쾅! 쿵, 쾅! 쿵, 쾅!
짜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피부를 찌르는 따끔한 살기. 직선으로 추락한 벼락은 이내 흙 바닥을 거세게 내리쳤고 크게 파인 구멍을 만들었다. 그리고 적들이 미처 대응할 틈도 없이, 대지를 흐르는 물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마치 전기로 이루어진 강줄기를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 으, 으아악! 으아아악!
– 끄아아아아아아악!
이윽고 내려치는 뇌성에 이어, 찢어지는 비명의 합창이 도처를 울린다.
사방은 곧바로 아우성으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 흐악! 흐아아아아아아악!
– 끄게레레레레레렉!
전기와 물이 이루어내는 시너지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감전된 적들은 몸을 부르르 떠는 것도 모자라, 온몸이 시꺼멓게 타오를 정도였다. 하릴없이 스러져가는 숫자는 얼추 세어도 헤아릴 수 없다. 내 이동을 제한하려 빽빽이 서 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나마 감전된 적들의 상황은 나을지도 모른다. 벼락에 직격당한 불운한 놈들은 아예 형체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그저 일부 남아있는 육신의 파편이 끔찍한 결과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꼿꼿이 선 채 지그시 주변을 응시했다. 지금 이 공간에 나도 서 있었고, 그렇기에 벼락을 피할 수 없다. 그에 따라 이미 수십의 사용자를 삼킨 황금빛 물길은 꺾어지듯 달려와,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나에게 흘러 들고 있었다.
파츠츳! 파츠츠츳!
이윽고 근접한 벼락의 물줄기는 거센 방전 현상을 일으키어 파도처럼 덮쳐 들었다.
파지직! 파지지직!
일순 짜릿한 마법 저항과 부딪쳐 짜릿한 파문이 일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비끼듯 스쳐 지나가 유유히 흘러나간다. 형의 마력 조절 능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나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마법 저항 능력만 믿을 수는 없다. 해서 언제든 화정의 힘을 뽑아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형의 고유 능력. 뇌신.
뇌신의 능력은 시야에 대한 증가와 마력 조절 능력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백미는 ‘증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뇌신의 힘을 빌어 자신의 능력에 대한 범위와 파괴력을 큰 폭으로 넓히는 것.
이것은 단순한 증폭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상 내가 지닌 화정(火正)과 비슷한 반열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 푸하! 놀고 있네. 이까짓 게 나랑 비슷하다고?
‘응?’
그때였다. 내면에서 들린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한순간 하늘에서 다시 벼락이 내리쳤고, 또다시 내리친다. 벽력(霹靂)과 대지가 마찰하는 소름 끼치는 소음에 나는 곧장 의문을 접고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꽈꽝! 꽈꽈광! 꽈꽈꽈광!
“…….”
벼락은 끊이지 않고 내리쳤다. 꼭 누구 맘대로 감히 내 동생을 몰아붙였느냐고 화를 내는 것처럼, 형은 일말의 틈도 주지 않고 연거푸 벼락을 쏟아 부었다. 마력을 돋운 안력임에도 희뿌옇게 보이는 시야에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제는 비명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감은 채 기척에 집중하고 있을 즈음, 이내 주변을 울리던 진동이 서서히 잦아드는 게 느껴졌다.
그 상태서 한동안 더 눈을 감고 있다가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고오오오오오오오….
줄곧 내리치던 벼락은 어느새 뚝 멈춘 상태였다. 주변은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연기가 잔뜩 끼어 흐릿했다. 충격으로 일어난 흙먼지들이 부근을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차차 가라앉을 즈음, 비로소 내가 주변의 광경이 완연히 눈에 보였다.
문득, 바삭바삭 타오르는 냄새가 코를 찔러 들었다.
그을린 흙.
용암이라도 흐른 것처럼 쩍쩍 갈라진 대지.
군데군데 널브러진, 시꺼멓게 타버린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시체.
그랬다. 최소 반경 100미터 안으로 나 말고 서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죽일 듯 노려보던 적들이, 마치 거짓말처럼 한꺼번에 사그라진 것이다.
말 그대로 잿더미….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렇게 불러도 오히려 부족할 만큼의 참상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놀라는 것도 잠시. 나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었다. 어차피 1회 차에 몇 번 보았던 광경이라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란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대로 주저앉을 여유는 없다. 지금 이 상황은 형이 자신의 몸에 부담이 걸리는 것을 감수하고서 만들어준 소중한 기회였다. 믿어달라고 말한 주제에, 정작 얼빠진 모습을 보이면 그것이야말로 형의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이어지는 행동은 신속했다.
우선 재빠르게 ‘칼리고 아브락사스’와 ‘빅토리아의 영광’을 챙기었고, 바로 시선을 내려 아까 들었던 시체를 살폈다. 정령술사의 시체는 간신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내게 보였던 거만한 미소는 이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져 있었다.
나는 얼른 제 3의 눈으로 탐색을 실시한 후 복부를 향해 손을 밀어 넣었다. 이윽고 손바닥에 뭔가 딱딱하면서 차가운 기운이 전해지는, 동그란 구슬이 잡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바로 꺼내었다.
『물의 결정』
“역시 있었군.”
약간 그을리긴 했지만, ‘물의 결정’은 다행히 원형을 보존한 상태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구슬을 소중히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시간을 벌었다. 변수도 제거했다. 추가로 적들의 돌진을 죽이고 커다란 피해를 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적의 총 병력 1만 5천 명 전원에 해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범위에 닿지 않는 적들은 아마 잠깐 멈추고 우왕좌왕했다가, 그대로 달려나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도 지금쯤이면 비비앙이 어느 정도 방어진을 구축해두었을 터….
그러나 나는 그쪽으로 가지 않는다. 아니. 가서는 안 된다.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버텨야 한다.’
현재 동부의 진영은 ‘정화의 해일’을 맞아 크게 흩어진 상태였다. 한곳에 몰려있는 게 아니었기에, 바쁘게 뛰어다녀야 한다. 이제 남은일은 내가 아는 사람들만을 구해내 최대한 빨리 방어진 안으로 데리고 가는 것.
차후 악마와 마족의 군세를 상대할 수단을 얻었다는 환희도 접어두고서, 나는 신속히 들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허공으로 하나의 잠재 능력을 띄웠다.
『전장의 가호(Rank : Extra)』
(설명 : …. 오직 전장 한정으로 발동하는, 한 명의 병사로서 누릴 수 있는 여신의 축복. 가호를 받은 사용자는 전장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얻으며, 위기에 몰린 아군의 위치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
고막을 왕왕 울리는 소란을 느꼈는지, 신상용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이윽고 그의 눈이 서서히 떠졌다. 그리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지 한두 번 깜빡이다가, 습관적으로 주변을 더듬는다. 아마 머리맡에 부서진 안경을 찾는 듯 보였다.
마력으로 안력을 돋울 생각도 못한 채 한동안 안경을 찾던 신상용은, 이내 갑작스레 움직임을 멈췄다. 이윽고 짧게 열렸던 실눈이, 일순 화등잔만 하게 커지었다.
신상용은 아직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였다. ‘정화의 해일’에 휩쓸린 이후 줄곧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어…. 어….”
여전히 생각을 못하고 있는지, 간신히 고개를 든 신상용의 시선은 굽혀 든 오른손에 꽂혔다. 그리고 손바닥에 묻은 진득한 핏물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상체를 세웠다.
“으, 으아아악!”
그러나 신상용은 몸을 일으키려는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누군지 모를 시체를 보자마자 커다란 비명을 질렀고, 이내 다시 몸을 눕혔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다리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도 함께 밀려와, 그의 정신을 세차게 헤집었다.
그렇게, 갑작스레 맞닥뜨린 상황에 팔만 허우적거리고 있을 즈음이었다.
“거기 누구 살아있지 말입니다?”
아직 앳된 여인의 음성과 함께, 신상용을 덮고 있던 시체가 데구루루 굴러 치워졌다.
“괜찮지 말입니다?”
“아…. 어…. 아…. 어….”
신음만 내뱉는 신상용이 답답한 모양이다. 여인은 바로 몸을 굽히곤 그의 어깨를 잡으며 외쳤다. 신상용은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참! 가만히 있지 말입니다! 아직 이곳까진 닿진 않았지만, 그래도 빨리 도망쳐야 하지 말입니다!”
“사, 살려….”
여전히 신음만 내뱉는 신상용이 이상했는지, 다급히 훑어보던 여인의 눈빛이 일순간 번뜩였다.
“이런…! 심하게 다치셨지 말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지 말입니다.”
여인의 힘이 제법 센지, 이윽고 신상용의 몸은 부축을 받아 번쩍 일으켜졌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약간이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도와준 여인을 돌아보자, 이내 젖살이 통통히 오른 귀여운 인상의 여인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얼굴 가득 흙을 묻히고선 뭔가에 쫓기는 듯 연신 뒤를 돌아보는 중이었다.
“가, 감사….”
“아아. 그건 나중에 받겠지 말입니다. 일단은….”
그때였다.
핑! 팍!
“아악!”
어디선가 날아온 한 대의 화살이, 신상용을 부축하던 여인의 얼굴을 가열차게 꿰뚫었다. 그녀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몸을 허물어뜨렸고, 그에 따라 신상용 또한 겨우 일으킨 몸을 다시금 대지에 던질 수밖에 없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그와 동시에, 신상용의 감각에 비로소 주변의 상황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하하. 정령술사를 잡는 파트가 논란이 많았네요.
이번 후기는 가장 많이 들어왔던 의문을 답변하는 시간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1. 왜 혼자서 개 고생을 하는가.
현재 동부, 특히 서문 부대의 상황은 굉장히 어지럽습니다.
마력의 사용에 일부 제한을 받는 ‘마탄’에 맞았고, ‘정화의 해일’에 맞아 서서히 회복하고는 있지만, 그것에 크게 휩쓸린 탓에 전열이 굉장히 어그러진 상태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적들 1만 5천 명은 일거에 서문 부대 쪽으로 달려 나왔고, 그에 반해 서문 부대는 5천 명은 사방팔방 흩어진 상태이지요. 전투력 또한 급감한 상황이고요.
그럼 잠시.
368회에 이런 내용이 나오죠.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까?
지금의 나와 형은 혈혈단신(孑孑單身)이 아니다. 머셔너리와 해밀이라는 클랜의 로드이고, 각 울타리 안에 있는 사용자들을 이끄는 입장이었다. 1회 차에서 나 때문에 목숨을 버렸던 해밀 클랜원들이나, 2회 차에서 나를 믿고 따라온 머셔너리 클랜원들은 나와 더 이상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홀 플레인의 대명제(大命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이러한 명제 아래, 나는 여럿을 생각했고 그에 따라 결정할 수 있었다. 즉 ‘형’이라는 단수에서 ‘그들’이라는 복수로 의미를 확장한 것이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그들 모두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나였지만, 난 그 모든 것을 고려하고서라도 최대한 많이 살릴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김수현은 혼자서 도망치거나 형과 둘이 도망치는 게 아닌, ‘자신이 아는 사람들(해밀, 머셔너리 클랜원들.)을 살리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고요. 시간은, 바로 동, 남, 북문에 있던 지원 부대가 도착하기까지 버틸 시간이요.
현재 적들은 탈주를 위해 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나온 상황입니다.
북 대륙을 모조리 휩쓰는 게 주된 목적이 아니라, 서 대륙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에 대응한 김수현의 계획은 이렇습니다.
1. 김수현이 거인, 물의 정령술사를 제거해 시간을 벌고, 가능하면 최대한 피해를 입힌다.
2. 그 사이 비비앙이 2개의 군단을 소환하고, 주변 사용자들은 최대한 끌어들여 버티기를 위한 방어진을 구축한다.
3. 김수현이 돌아와 ‘전장의 가호’를 최대한 이용해, 흩어진 아는 사람들을 찾아 방어진으로 데려간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김수현은 방어진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전장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적들이 북 대륙의 몰살이 아닌 도주가 목적이라면, 김수현은 방어진이 세워진 곳보다는 세워지지 않은 곳으로 몰릴 것이라 계산했습니다. 그래서 거인과 정령술사를 필히 죽여야 했던 겁니다. 방어진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혹시라도 방어진을 위협할만한 최대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서요.(마수들보다 강한 정령의 군단이 방어진을 덮친다면 그때는 제법 난감한 상황에 빠질 테니까요.) ‘물의 결정’은 덤, 또는 부차적인 이유에 불과합니다.
물론 굳이 들어가지 않고 바로 방어진을 세우고 아는 사람들을 찾는 방법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신속히 들어온 적들을 맞이했을 것이고, 어느 정도의 시간을 방어진 안에서 보냈어야 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때는 구하지 못한 ‘아는 사람’들에 대해선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농후했을 겁니다.
지금도 늦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김수현이 고생해서 번 시간으로 그 차이를 어느 정도 줄였습니다.
상황은 아직도 불리합니다. 다만 김수현의 입장에서, 효율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길을 선택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PS. 후반부에 화살에 맞은 여인은 일전에 김수현과 불침번을 섰던 여인입니다. 이름은 노유미라고 내용에 언급되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