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02
00401 3. 두 번째 의뢰 – 구출 : 얼어붙은 숲(5/5) =========================================================================
…그리하여 마법사는 일생일대의 소원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한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지요.
마침내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공주와 탑에 단둘이 남게 되었지만…. 그녀는 결국 싸늘한 시체로 되돌아왔으니까요.
한때 전 대륙을 설레게 만들었던 아름다운 꽃도 이제는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마법사는, 어느 날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릅니다.
네. 그건 바로 ‘부활’이었습니다. 그는 고명한 마법사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연금술사이기도 했거든요. 하여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해 공주를 부활시키자는 결심을 하게 되고, 결국 금단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냐고요?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날 이후 마법사는 숲에 ‘영원의 마법’을 걸어놓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소식도 끊기게 되었거든요. 즉, 여기까지가 설화에 기록돼있는 전부입니다.
다만 이따금 숲에서 들려오는….
– 북 대륙 대도시 바바라(Babara) 중앙 도서관, ‘얼음 숲의 귀곡성’에서 발췌.
*
송승규의 말대로였다.
명색이 유적임에도 불구하고, 탑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보이는 거라고는 서늘한 빛을 내뿜는 얼음들과 을씨년스러운 광경뿐.
아무튼 나쁜 일은 아니었고, 우리는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순조로이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탑의 내부가 점차 어두워지는 게 느껴졌다.
시야에 별문제는 없다. 그러나 1층부터 계단을 올라오면서 보았건대 나는 단 하나의 창문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 결과 햇살이 비쳐 들지 못해, 훤한 낮임에도 불구하고 알게 모르게 어둡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어두운 탑을 오른 걸까?
후웅…. 후우웅….
돌연히, 계단 위쪽에서 싸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탑 안으로 들어왔다고 해서 냉기가 어디 가시는 건 아니었다. 내부에도 당연히 얼음이 서려있었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오히려 더욱 추위를 부추기는 듯했다.
자꾸만 찔러 드는 한기에 온몸을 움츠렸을 때였다.
“이제 곧 8층에 도착합니다.”
문득, 소름 끼치는 쇳소리가 스치는 바람결을 타고 흘러들었다.
얼음 서린 계단은 소라 껍데기처럼 나선형으로 비틀려, 까닥 잘못하면 발을 헛디딜 만큼 미끄럽다. 하여 조심조심 균형을 잡고 나서,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앞쪽을 응시했다.
“저 문만 넘으면 바로 얼음 미로가 나올 겁니다. 캐러밴에 이상이 생긴 것도 저곳부터였으니, 이제부터는 한층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송승규. 여전히 듣기 불편한 음색이었지만 말투 자체는 꽤나 느긋하다. 아마 여기까지 별 의심 않고 따라 올라온 만큼, 이미 다 잡은 고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럼 미로를 넘으면 문제의 어두운 방이 나오는군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미로가 관건인데…. 혹시 가는 길은 기억하고 계신가요?”
딱히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한 번 찔러보는 질문이었다.
송승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다가, 가볍게 끄덕이는 것과 함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터벅터벅, 터벅터벅.
저벅저벅, 저벅저벅.
고요한 탑 안을 울리는 발소리.
송승규는 탑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거침없이 행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클랜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보며 조용히 뒤를 따르고 있었다.
잠시 후 8층으로 통하는 문 앞에 도착한 우리는, 송승규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관찰했다.
그는 바로 옆쪽으로 다가서 벽을 더듬더니 곧 손잡이 비슷한 것을 찾아내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래로 쭉 내리자, 끄르릉! 뭔가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얼음 문이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까지 드러낼 생각은 없는 건가….’
이윽고 4/5정도 올라간 얼음 문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한기와 함께 어두운 내부를 드러내 보였다.
“길은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럼 들어오시죠.”
이윽고 송승규는 나직이 한 마디 내뱉고서 입구 안으로 홀연히 몸을 감추었다.
*
8층으로 올라와 미로에 들어선지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송승규의 말대로 8층은 어지럽게 갈래가 져, 언뜻 봐서는 굉장히 복잡한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헤맨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미로가 미로 같지 않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왜냐하면.
“여기서 왼쪽이었을 겁니다.”
이 정도로 복잡한 길이면 최소 한두 번은 주저할 법도 한데, 송승규는 11번째로 맞이한 갈림길에서도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길을 골랐다. 그러더니 곧 거침없이 성큼성큼 걸어가는 게, 고작 두 번째로 오는 사람 치고는 굉장히 익숙한 모양새였다.
이내 저 멀리 앞으로 나아가는 송승규를 봤는지, 하연이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수현.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저는 아직도 헷갈려요.”
“의심할 여지는 없습니다.”
“그럼….”
“우선은 따라가죠. 어차피 둘 중 하나겠지요. 이대로 호랑이 굴로 들어가든, 아니면 들어가기 전에 뭔가 행동을 취해오든.”
얘기에 따르면 이상 징후는 미로에서부터 발생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방심할 수는 없지만, 난 왠지 모르게 우리를 9층으로 데려가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일단은 갑시다.”
터벅터벅, 터벅터벅.
저벅저벅, 저벅저벅.
그렇게 갈림길을 지나고 나서,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걸까?
송승규도 미로에 들어오기 전 경고했지만, 미로에서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고요한 행군이 자못 지루했던 걸까.
“김수현! 여기 아까 지났던 길 같은데? 우리 지금 빙빙 도는 거 아니야?”
문득 비비앙이 내게로 걸어와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대답을 구하려는 듯 눈을 반짝였지만, 나는 고개를 젓곤 묵묵히 걸었다. 그녀는 구시렁거리긴 했지만 더는 보채지 않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클랜원들에게는 이미 출발 전부터 송승규에 대해서 말을 해둔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긴장의 빛을 늦추지 않고 있었는데, 오직 비비앙만은 “아. 그렇구나.”하는 태도였다. 하기야 이따금 덜렁거리는 것만 제외하면 나와 아주 약간은 비슷한 성격을 지닌 그녀였기에, 내심 지루해하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지났던 길은 확실히 아니지만…. 돌고 있다는 사실은 한 번 재고해봐야겠군.’
밖에서 탑의 규모를 확인했을 때보다 지금 체감하는 넓이가 훨씬 넓게 느껴진다. 물론 중간중간 몇 번 길을 돌은 것도 있지만, 미로에 들어선지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문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윽고 기다란 얼음 벽을 돌아 새로운 길로 들어서자, 좌우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 눈에 밟혔다. 언뜻 보면 그냥 단순한 얼음 벽이었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뭔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하여 안력을 끌어올려 살펴보자 곧바로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벽면에 흐릿하게 묻어있는 핏자국이었다. 자국 자체는 희미하긴 했지만…. 색을 보면 분명 최근에 뿌려진 피였다.
나는 걸음을 멈춘 채 입을 열었다.
“피가 묻어 있군요.”
나직이 말을 건네자, 순간 모두의 걸음이 멈추었다. 이윽고 하나하나 쏠리는 시선에 난 차분히 오른쪽 벽면을 가리켰다.(동시에 클랜원들에게 눈치를 주어, 함부로 행동하지 않도록 사전에 신호를 주었다.)
송승규는 잠시 고개를 갸울이더니 벽면으로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뭔가 희미한 게 보이는군요.”
“예. 색깔을 보면 최근에 뿌려진 피 같습니다. 혹시 짚이시는 거라도…?”
눈에 보이는 뒤통수가 부자연스럽게 흔들린다.
“아니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별로 중요해 보이지는 않고요.”
“동료의 것 일수도 있습니다만.”
“그렇겠죠. 하지만 지금 완벽히 판별할 수는 없으니, 일단 미로를 벗어나는 게 우선인 듯싶습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이윽고 송승규는 벽면에서 두어 걸음 물러서고는, 앞쪽으로 트인 길을 가리켰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이 길을 걸어가면 오른쪽으로 꺾은 방향으로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옵니다. 계단만 올라가면 문이 나올 겁니다. 그곳이 저와 동료들이 당했던 9층입니다.”
나는 그가 가리킨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 마디 툭 내뱉었다.
“굉장히 상세하게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송승규는 다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길이 난 쪽으로 걸음을 돌려 다시 걸어가려는 모양새를 취했을 때였다.
비비앙은 어지간히 추운 듯 손을 싹싹 비비더니 불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휴. 드디어 도착이라네. 다행이다. 안에 원혼이든 뭐든 얼른 때려잡고 돌아갔으면 좋겠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탁!
막 걸음을 옮기려던 송승규는 순간적으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여전히 등을 보이고 있는 채였고, 그 상태서 말했다.
“…뭐라고요?”
“으, 응?”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나는 지그시 비비앙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처음에는 눈만 끔뻑이다가, 금세 상황을 파악했는지 아차 한 얼굴을 보였다.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9층도 금방이었고, 사실상 이제 와서 별 문제는 없었다.
어차피 저놈은 기생 체에 불과했고, 죽여봤자 큰 의미는 없다. 솔직히 탑에 들어왔을 때부터 처리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일단은 어디까지 데려가는지 한 번 지켜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올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내가 잘 알고 있다 라….”
이윽고 음산하면서도 약간 높은 톤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키킥, 내가 누군 줄 알고?”
“글쎄. 그래도 최소한 네가 몸의 주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
“언제부터 알았어? 그놈들이 알려준 건가?”
그놈들이란 망령들을 말하는 거겠지.
나는 느릿하게 검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네가 깃든 육체가 사망했다는 사실이라는걸 알 수 있었거든.”
정확히는 제 3의 눈으로 알 수 있었지만.
그때 보인 메시지는 ‘사망’ 그리고 ‘빙의’라는 정보가 떠올라 있었다.
이윽고 송승규, 아니 원혼이 말을 이었다.
“…어떻게 안 거야?”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었지. 네 말대로 망령들이 알려주기도 했고.”
“어떻게 안 거야?”
“또 탑에 들어와서 알 수 있었어. 이상하게 네 행동이 미묘하게 부자연스러웠거든. 그러다가 계단을 오를 때 발이 닿지 않는 것을 보고 확신했지.”
그러자 송승규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자신의 발을 쳐다보려는 건가?
아니, 아니다. 비단 고개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몸 전체가 마치 실이 끊긴 인형처럼 힘없이 축 늘어진 것이다.
툭, 데구루루.
그러더니 뭔가 하얗고 동그란 게 떨어져 바닥을 구른다. 그러나 채 정체를 확인할 틈도 없이, 지금껏 주구장창 앞만 보던 머리가 삐걱삐걱 돌아보기 시작한다.
“어떻게 안 거야?”
“…….”
그나마 완전히 돌리지도 못했다.
이내 정확히 반쪽만 드러난 그의 얼굴은 꽤나 그로테스크했다. 검게 죽어있는, 퀭한 눈. 그리고 귀까지 쭉 찢어져있는 흉물스러운 입술. 간신히 절반 정도 돌려진 고개는 눈에 보일 정도로 푸들푸들 떨리며, 어떻게든 돌아가려고 애쓰는 듯 보였다.
“어…. 떻…. 게…. 안…. 거…. 야…?”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뿌드득!
한순간 송승규의 목이 왼쪽으로 크게 꺾이었다. 꺾인 각도가 90도를 훨씬 넘어서, 누가 봐도 기형적이라 여길 정도였다.
뒤에서 누군가 깊이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뿌드득!
이번엔 반대로 고개가 꺾이더니, 이내 덜렁덜렁 흔들려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 상태로, 3초의 시간이 흘렀다. 1초가 1분처럼 느껴지는 시간.
그때, 덜렁거리던 목이 갑작스레 핑그르르 목을 꼬아 우리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시퍼렇게 죽은 얼굴이 완전히 눈에 들었다. 그와 동시에 아까 땅으로 떨어졌던 하얀 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퀭한 눈 사이로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눈알이 떨어졌던 모양이다.
이윽고.
입술이 귀밑까지 찢어져 드러난 이빨이 호두 까기 인형처럼 딱딱 부딪쳤다.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그러더니, 곧 온몸을 덜그럭거리며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런 그의 머리카락은 위쪽 방향으로 쭉 잡혀 올라가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 물려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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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역시 초반에 예상했던 대로 1회가 더 필요하네요. 그러므로 즐거운 쥐불놀이는 다음 회에…. 헤헤.
후유. 아침 10시에 개인 발표 있는데 아직 절반밖에 못했네요.
졸려 죽겠는데…. 큰일났어요.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