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05
00404 4. 모여드는 인재들(4/4) =========================================================================
손님이 찾아왔다는 말에 한 달음에 응접실로 달려가자, 안에서 조용히 앉아있는 세 명의 사용자를 볼 수 있었다.
남성 2명, 여성 2명.
바로 우정민과 일행들이었다.
“김…. 머셔너리 로드.”
“앉아있어도 됩니다.”
우정민은 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나는 손짓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어서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며 마주앉자, 한 쪽에서 조용히 시립해있는 여성을 볼 수 있었다.
“사용자 고연주.”
고연주였다. 아마 내가 초청한 손님이라는 말에 직접 안내한 모양이다.
이름을 부르자 고연주는 사뿐히 다가와 귀에 속삭였다.
“클랜 로드의 초대를 받았다는 말에 일단 안내했어요. 언제 돌아오실지 몰라서….”
“많이 기다렸습니까?”
“아니요. 한 10분 정도 기다렸어요.”
나는 알겠다는 의미로 머리를 끄덕였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차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아니요. 괜찮습니다.”
우정민은 약간 쉰 목소리를 내더니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다고 하네요. 이만 나가보셔도 됩니다.”
“네. 그럼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필요하시면 호출해주세요.”
이윽고 고연주는 신속하게 걸음을 물렸다.
달칵.
그리고 방문이 얌전히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는 찾아온 세 명과 시선을 마주했다.
어딘지 모르게 지쳐 보이는 우정민, 그리고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선유운. 그리고 그 옆으로….
“에헤헤, 에헤헤헤.”
입가에 침을 묻힌 채 멀거니 나를 바라보는 원혜수가 보인다.
“…차도는 좀 있습니까?”
“전혀.”
우정민은 천천히 손을 들어 원혜수의 입을 닦았고, 나직이 말을 이었다.
“후, 최악이야. 정신이 되돌아올 기미도 보이지 않고…. 그나마 처음보다는 온순해졌다는게 유일한 위안이랄까. ”
“그렇군요.”
“그리고….”
우정민은 잠깐 주저하는 듯싶더니, 조용히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결국 낙태도 하지 못했다.”
“예? 아니 왜….”
“하려고 할 때마다 병적으로 싫어하더군.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어쩔 때는 혀까지 깨물었지. 아마 옷을 벗고 몇 명에게 둘러싸이는 상황이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이다.”
“홀 플레인에서는 낙태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수면 마법을 거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요.”
“그렇지. 그런데 스스로 몸 안에 뭔가 있는걸 알고 있나 봐. 자신의 배를 감싸고 나를 애절히 쳐다보는데…. 순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더군.”
“…어쨌든 절반은 혜수의 것이니까.”라는 말을 덧붙인 우정민은, 이내 쓴웃음과 함께 한숨만 흘렸다.
“…….”
개인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처사였지만 난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깊이 간섭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었거니와, 가라앉은 얼굴을 보니 얼른 화제를 돌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잘 찾아왔네요.”
“찾는데 별로 힘들건 없었어. 그리고 여기 오니까 익숙한 얼굴들이 몇몇 보이더군.”
“그러고 보니…. 하하. 애들은 기억하던가요?”
“아니. 처음 보는 사람 취급하던데…. 아. 그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여자는 기억하는 거 같았어.”
붉은 눈동자라면 유정이를 말하는 건가.
나는 바로 말을 이었다.
“그때 바바라에서 만나고 제법 시일이 흘렀잖아요. 계속 도시에 있었던 겁니까?”
우정민은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계속 구호소에 있을 수는 없어 정리되는 데로 바로 나왔지. 너에게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에 서부로 향했다.”
“…….”
“그런데…. 뭐랄까. 참 막막하더군.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그래. 처음 홀 플레인에 나왔을 때. 딱 그 짝이었지. 더구나 전쟁 직후라 캐러밴을 찾는 것도 어려웠고, 혜수는 한 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고.”
적나라하게 밝히기에는 그 특유의 자존심이 상하는지, 우정민의 목소리가 서서히 줄어든다.
“여러 방면으로 노력해봤지만…. 결국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벅찬 게 현실이었다. 일이 없는 날은 비 전투 사용자들처럼 아르바이트도 해봤고, 정말 견디다 못해 갖고 있던 장비들도 팔았지. 하지만 그것도 곧 한계가 찾아오더군.”
그 말을 들은 순간 문득 새삼스런 기분이 들었다. 전투 사용자로서 장비를 팔았다는 것은 최후의 마지노선까지 갔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나를 향해 아기처럼 손을 뻗어오는 원혜수를 보자,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녀 혼자 둘 수도 없는 상황. 아마 둘의 입장에서는 원혜수가 엄청난 걸림돌이었으리라.
하여 한두 번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선유운과 시선을 맞추었다.
‘신궁’ 선유운. 추후 10강 중 1인이 될 사용자. 원래 과묵한 성격이어서 그런지, 그는 내가 들어오고 나서 지금껏 단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1. 이름(Name) : 선유운(1년 차)
2. 클래스(Class) : 일반 궁수(Normal, Archer, Expert)
3. 소속 국가(Nation) : 바바라
4. 소속 단체(Clan) : –
5. 진명 • 국적 : 백발백중(百發百中) • 대한민국
6. 성별(Sex) : 남성(26)
7. 신장 • 체중 : 180.9cm • 73.1kg
8. 성향 : 중립 • 중용(True • Neutral)
(변경 전) [근력 45] [내구 48] [민첩 62] [체력 54] [마력 50] [행운 50]
(변경 후) [근력 67] [내구 63] [민첩 84] [체력 71] [마력 74] [행운 61]
(잔여 능력치 포인트가 4포인트 남은 상태 입니다.)
괜찮다. 정말 괜찮다.
물론 현 사용자 정보는 보잘것없다. 그러나 이들도 이제 막 1년 차에 돌입했을 것이다.
그러한 점을 감안하면, 지금 이정도 능력치를 보여준다는 것은 역시나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붉은 송곳니 클랜이라…. 마침 인재가 필요하다 생각한 참이었는데.’
붉은 송곳니 클랜의 핵심 인물 두 명이 내 품으로 들어왔다. 물론 아직 완전히 들어왔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눈뜨고 놓칠 생각은 없다. 이들이 계속 머무를지 아니면 다시 나갈지는 나에게 달렸으리라.
“아무튼 그 지경에 이르러서야 네가 해준 말이 생각나더군.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았어….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찾아왔다. 미안하다.”
“아니요. 오히려 진작에 왔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그 순간 꼬르륵, 배 속이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웅….”
고개를 돌리자 원혜수가 살살 배를 쓰다듬는 게 보인다. 배가 고픈 모양. 나머지 둘은 내색하진 않았지만, 몰골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나는 고연주가 놓고 간 호출석을 누르며 부드러이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우선 세분은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일단 배부터 채우시고, 푹 주무신 다음에 만나도록 하죠.”
“…그래도 될까?”
그동안 정말 힘들었던 모양인지, 우정민은 한 번의 사양 없이 눈을 끔뻑였다.
우정민은 자존심이 강하지만 은원도 확실히 기억하는 편이다. 오죽하면 클랜원 한 명 죽었다고 ‘살인 여단’을 때려잡았을 정도이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최대한 빚을 지워두는 게 좋다.
“임산부도 있는 만큼 안정이 중요하니까요. 두 분도 예외는 아닙니다. 먼저 지친 심신부터 달래는 게 좋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때였다.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선유운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우정민은 입을 다물었지만, 꽤나 감동한 것처럼 보였다.
달칵.
“클랜 로드. 부르셨어요?”
그때 고연주가 문을 열어 들어왔고, 나는 약한 눈짓과 함께 입을 열었다.
“고연주. 아직 방이 많이 남아있던가요?”
“그럼요.”
노련한 고연주는 단박에 대답했다. 그것은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질문에 숨겨진 다른 의미를 이해했을 것이다.
나는 세 명을 가리켰다.
“중요한 손님들입니다. 먼저 식당으로 안내해주시고, 다음으로 숙소를 배정해주세요. 임산부가 있으니 특별히 신경 써주셔야 할 겁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아. 그리고….”
고연주는 아직 뭔가 남았냐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난, 나직이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 회의를 열겠습니다.”
*
다음날 아침.
정말로 오랜만에 개최된 회의는 제법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내부의 일을 맡기고 있는 만큼 보고받을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전후 처리가 공식적으로 마무리됨으로써 나 또한 알려줄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이제 남은 건 단 두 가지입니다. 바로 전쟁 포로에 대한 처리와, 남은 황금 사자 클랜원의 처우만이 남았을 뿐이죠.”
“나, 남아있는 클랜원이 있나요?”
한때 몸을 담은 적이 있어서 그런지, 한별이 무척 놀란 음색으로 되물었다.
나는 한두 번 고개를 끄덕인 후 대답했다.
“클랜원들을 약간 살아남은 모양이지만…. 수뇌부들은 거의 몰살이야. 10강이었던 클랜 로드는 목이 잘린 채로 발견되었고, 도영록은 반대로 목만 남은 채로 발견되었지.”
“…….”
“수뇌부에서 남은 인원은. 박현우, 그리고 성유빈 정도일걸.”
황금 사자 클랜 로드란, 강철 산맥에서 심한 상처를 입고 돌아온 사용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후 쭉 의식 불명으로 지냈는데 들이닥친 연합군에 목숨을 잃고만 것이다.
여기저기서 흘러 드는 깊은 신음을 들으며, 나는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포로 처우에 대해서는 회로를 부숴 노예화한다는 말은 있는데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예? 회로를 부순다고요?”
“수도 1000명 가량 되고, 그냥 놔두기에는 위험한 놈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허허. 북 대륙에서 강수를 두었군요.”
신재룡을 비롯한 몇 명은 끔찍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여 실은 원래 포로가 1500명 정도 되었고, 모종의 일로 500명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넣어두기로 했다.
“아무튼. 이외에도 몇 가지 더 있기는 하지만, 아직 논의 중이니 공식적으로 결정이 나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럼 사용자 정하연.”
“네.”
“이제 보고를 받아보죠. 일전 얼어붙은 숲에서 가져온 장비들은 결산이 끝났나요?”
“죄송해요. 워낙 수량이 많기도 하고, 창고 정리와 병행하고 있는지라 아직 완전히 끝내지는 못했어요. 아마 모레쯤이면 모두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연은 할 말이 없다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내저었다. 장비 하나하나가 고대 물품인 만큼 일일이 확인 절차도 거쳐야 했고, 수량이 굉장히 많으니 금방 끝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번엔 고연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외에 따로 특기할만한 상황은요?”
“음. 어제 온 세 명에 대해서는 말씀 드렸고. 아. 아직 관심 정도에 불과하지만…. 하나 있어요.”
고연주는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이내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요새 알게 모르게 하우스 앞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기웃거린다고요?”
“네. 제 산하 밤의 꽃들에게 들었는데, 요새 머셔너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 같아요.”
“산하 밤의 꽃이라면.”
“예전에 고용인으로 들어오지 못한 애들이죠.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눈을 찡긋하며 대답하는 고연주.
나는 가만히 고개를 주억였다가 조용히 상념에 잠겼다.
‘홍보가 필요한 때로군.’
탐험, 가입 문의, 용병 클랜에 대한 성격 등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마침 어제 우정민 일행들도 들어왔겠다. 이번 기회를 잘 살리겠다는 생각에, 클랜원을 확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려는 때였다.
“들으신 분도 있겠지만. 어제….”
똑똑.
그러한 찰나, 소심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그러자 조심스레 문이 열리더니 메이드 복을 입은 여인이 모습을 보였다. 고용인이었다.
그녀는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자그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요.”
“급한 일이요? 어떤?”
“네. 사용자 한 분이 찾아오셨어요. 지금 클랜 로드님을 찾고 계세요.”
또 찾아왔다. 고연주의 말마따나 요즘 부쩍 관심이 높아지긴 한 모양이다.
그때 문득 뭔가가 생각났는지, 고용인은 아차 한 얼굴로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초대를 받았다고….”
‘응? 초대라고?’
초대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한소영은 아니다. 그녀가 왔다면 나를 찾는 게 아닌, 방문했다고 말할 테니까.
아무튼 우정민 일행을 제외하면 초대한 사용자는 없기에, 누가 와서 그런 말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혹시 누가 왔는지 알 수 있나요?”
“네.”
고용인은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이고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검후, 남다은이라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 작품 후기 ============================
12월의 시작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달이네요! 새삼 감회가 새롭습니다. 🙂
또한 시험으로 인한 잠정 연재 중지의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어요. ㅜ.ㅠ
으허헝. 슬퍼라.
아. 여러분. 다음 회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검후에 대한 엄청난 반전을 보여드리죠.
후후후후후.(?)
아마 비비앙과 좋은 짝을 이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