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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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고연주가 건네준 명단을 확인한 후, 난 모든 일을 제쳐두고 바바라로 이동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사용자 아카데미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관계자 분이시라면 성함, 소속 클랜을 밝혀주세요.”
바로 사용자 아카데미에 방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머셔너리 클랜 로드 김수현입니다.”
“머셔너리 클랜…. 이번 회 참가 클랜임을 확인했습니다. 방문 목적은 홍보입니까?”
“아직 대대적인 홍보 계획은 없습니다. 스카우트할만한 신규 사용자가 있는지 살피러 왔습니다.”
“스카웃겸 시찰. 알겠습니다. 옆에 총 교관님이 계시니 유의 사항은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총 교관?’
뭔 말인가 싶어 옆을 돌아보자 눈을 찡긋하는 고연주. 총 교관은 처음 들어보는 보직인데 새로 만들어진 직책인 듯싶었다.
이윽고 꾸벅 고개를 숙이는 사용자를 지나쳐 나는 아카데미 안으로 진입했다.
‘…성하얀.’
명단 첫 페이지에 있던 하얀이라는 이름은 내 뇌리 속에 꽤나 강렬하게 남아있는 이름이다. 물론 기억하는 사용자와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직접 확인하는 길을 선택했다. 성이라는 성(姓)은 흔한 편이지만 하얀이라는 이름은 흔하지 않을 테니까.
‘한 번 보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까닭 없이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추스르며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주변으로 익숙한 건물들이 눈에 밟혔다. 아직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아카데미도 곧 개축에 들어간다고 했던가?
그렇게 예전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 즈음, 고연주가 슬그머니 말을 걸어왔다.
“아차…. 수현. 그러고 보니 깜빡 잊고 말을 안 한 게 있네요.”
“?”
“지금 이곳에 이효을이 와있어요. 아니. 아카데미가 열린 후 계속 이곳에서 지내며 일하고 있죠.”
‘이효을?’
이효을이라면 북 대륙의 수호자. 직업상 최대한 모습을 숨겨야 할 사용자였다. 그러한 존재가 왜 이렇게 드러난 곳에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난 일순 고개를 갸웃했다.
이윽고 고연주의 말이 이어졌다.
“그녀는 수현과의 만남을 원하고 있어요.”
“저를요?”
“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뭐, 개인적으로 볼 일이 있나 봐요. 아무튼 수현도 볼 일을 마치고 나면 한 번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 이러나저러나 그녀에게 빚을 지었으니까요.”
빚이라. 순간 나는 고연주에게 했던 두 번째 부탁을 떠올렸다.
‘하기야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
하여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어쨌든 가장 우선적인 일은 성하얀의 사용자 정보를 확인하는 것. 다른 신규 사용자들을 살피거나 이효을을 찾는 일은 그 이후의 차례였다.
“그럼 어디 먼저 가시겠어요?”
“일단 근접 클래스. 그 중에서 검사가 소속된 반을 보고 싶군요.”
나는 곧장 대답했다. 명단을 보았을 때 성하얀이 소속된 반은 1반. 검을 사용했던 여인으로 기억하니 아마 근접 계열로 분류됐을 터였다.
고연주는 두세 번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검사? 근접 계열을 영입할 계획이세요?”
“그냥…. 겸사겸사?”
석연찮은 낯빛은 여전했지만 그녀는 곧 고개를 움직였다.
“흐응. 안내할게요.”
이내 총총히 걸어가는 고연주를, 나는 조용히 뒤따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고연주가 날 안내한 곳은 놀랍게도 숙소가 아닌 아카데미 강당이었다. 주말이라서 교육이 없는 줄 알았지만 예상외로 교육생(신규 사용자)들로 빼곡히 찬 상태였다.
물론 모종의 사정으로 주말에 교육을 하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현재 아카데미가 활성화된 초기임을 감안한다면 비교적 생소하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나는 제 3의 눈을 활성화할 준비를 하며 지그시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런. 오늘은 합동 수업인가 봐요.”
강당 안에는 족히 삼백은 넘어 보이는 인원이 모여있었다. 고연주의 말대로 근접 계열 클래스 전부를 모아놓은 듯했다. 간간이 조는 교육생이 보이는 걸로 보아 아마 역사 또는 정신 교육 시간인 모양.
그때였다.
막 왼쪽 열부터 한 명 한 명 확인하려는 찰나, 한창 가르치고 있던 교관이 나와 고연주를 돌아보았다. 하기야 대놓고 안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여길 법도 했다.
교관은 일순 눈을 크게 만들고는 곧바로 강의를 중지했다. 이윽고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온 교관을 볼 수 있었다.
“초, 총 교관님. 여기는 어쩐 일로….”
“아. 그냥 계속하세요. 클랜 로드님과 함께 잠시 참관하러 왔답니다.”
“클랜 로드님이라면…. 아. 혹시 머셔너리 로드님이십니까?”
나는 맞는다는 의미로 머리를 끄덕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성 클랜 소속 김현우라고 합니다.”
“머셔너리 클랜 로드 김수현입니다.”
들어본 적 없는 클랜, 그리고 들어본 적 없는 이름. 나는 의례적으로 인사를 받았다.
한동안 날 멍하니 쳐다보던 교관은 이내 아차 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참관이라 하면 홍보를 목적으로 오신 겁니까?”
“홍보는 아닙니다. 오늘은 적당한 탐색 정도랄까요.”
“아하. 그럼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자리를 마련해드리겠습니다.”
안으로?
그래도 되겠냐는 뜻으로 고연주를 돌아보자 마음대로 하라는 양 어깨를 으쓱인다. 하여 난 안으로 들어가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데요.”
“그냥 조용히 구경하다 나갈 테니 강의는 계속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잠시 후. 나와 고연주는 김현우를 따라 강당 안으로 들어섰고, 동시에 수많은 교육생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휘익~! 휘이익~!”
“와~! 연주 누님!”
남성 교육생들의 열띤 환호가 터져 나왔다. 순간 어찌된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연주를 보자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고연주는 손에 입을 맞추더니 환호하는 교육생들을 향해 후 불어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 더불어 한 쪽 눈을 깜빡이는 눈짓까지.
“수현. 머셔너리의 인지도는 제가 착실히 쌓아놨답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하기야 좋고 그르고를 떠나서 이것 또한 하나의 방법은 될 수 있다. 나 때도 생활 교관으로 선남선녀를 배치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남성에 한해서 인지도를 쌓았겠지만.’
나는 쓰게 웃었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용자 고연주. 교육 중입니다. 강의를 방해하는 행동은 지양하도록 하세요.”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대부분 졸고 있었는데요. 잠이라도 깨면 다행이지요.”
김현우는 하하 웃으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고연주 또한 팔짱을 끼어 은근슬쩍 애교를 부렸다.
“호호. 알았어요. 조용히 있을게요.”
아무튼 교관이 괜찮다는데 더 몰아붙일 수는 없어 나는 강당의 교육생들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단상으로 걸어간 교관은 책상을 탕탕 쳐 주목하게 하더니 높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두 조용. 강의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래도 미약한 환호가 흘러나오자 그는 한 번 더 말을 이었다.
“지금 이곳에 중요한 관계자 두 분이 참관하러 오셨습니다. 한 분은 다들 알고 있듯이 총 교관님이고, 다른 한 분은 총 교관님을 클랜원으로 두고 있는 머셔너리 클랜 로드 김수현 님이십니다.”
그 순간 소란은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비로소 조용해진 좌중을 둘러보며 만족한 듯 웃음지었다.
“지금껏 누누이 말씀드렸을 겁니다. 교육생들은 졸업 후 조금 더 좋은 출발을 하고 싶다면….”
상투적인 이야기가 이어지고 교육생들이 날 새삼스레 쳐다보는 눈길들이 느껴졌다. 생각하는 거야 뻔하다. 아무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제 3의 눈을 활성화해 강당을 둘러보았다.
『서윤희』
『박태준』
『구본경』
『안보람』
………….
『성하얀』
‘찾았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 나는 원하던 이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찾아내는 거야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내 시선이 저절로 중앙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해야 할까?
나는 사용자들이 몰려있는 중앙에 파묻힌 한 여인을 정확히 응시했다. 공교롭게도 여인 또한 나를 쳐다보고 있어 시선이 마주치게 되었다.
티 한 점 보이지 않는 말간 눈동자. 볼에 흘러내린 칠흑 빛 머리카락이 도드라져 보일 만큼 살결이 흰 눈을 연상케 할 정도로 새하얗다. 가늘고 긴 목덜미와 소담한 어깨는 한 번 건드리면 물결칠 것처럼 고요해 보인다.
눈길 또한 미묘했다. 일견 나를 보는 것 같지만, 또한 나를 보지 않는다고 느껴질 정도로 불가사의한 시선이었다.
거기까지 봤을 때 나는 돌연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보고 있는 성하얀이 내가 기억하는 성하얀과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1. 이름(Name) : 성하얀(0년 차)
2. 클래스(Class) : 일반 검사(Normal, Sword User, Beginner)
3. 소속 국가(Nation) : –
4. 소속 단체(Clan) : –
5. 진명 • 국적 : 눈꽃(Snow On The Branches) • 대한민국
6. 성별(Sex) : 여성(20)
7. 신장 • 체중 : 165.5cm • 42.5kg
8. 성향 : 절개 • 지조(Integrity • Fidelity)
[근력 36] [내구 42] [민첩 55] [체력 31] [마력 47] [행운 58]
(잔여 능력치 포인트는 0포인트입니다.)
‘지조 있는 여자네.’
성향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나는 다시 한 번 사용자 정보를 면밀히 살폈다.
‘…….’
하지만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는다. 끽해야 진명 ‘눈의 꽃(Snow On The Branches)이 눈에 밟혔지만, 그뿐이었다. 능력치는 그냥 저냥 괜찮은 편에 속했고.
두루두루 주의해 자세히 보았지만 더는 특이한 점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한숨과 함께 제 3의 눈을 비활성화로 돌렸다.
그리고 1회 차 시절, ‘그’가 남긴 말을 떠올렸다.
‘오직 그녀만이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여인이다.’
성하얀. 1회 차 시절 ‘그’가 자신의 목숨보다 아꼈던 여인이며 연인이기도 한 사용자. 단순한 연인이라고 보기에는 둘의 관계는 무척 깊던 걸로 알고 있다. 오죽하면 ‘그’의 사후 밝혀진 둘의 사랑 이야기가 북 대륙 전역으로 퍼졌을 만큼 말이다.
그렇다면. 솔직한 심정으로는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놈이 하도 아끼고 보호하길래 뭔가 특별한 게 있는 여인인줄 알았는데, 딱히 별다른 점은 없는 사용자였으니까.
‘성하얀은…. 일단 보류.’
한두 번 입맛을 다시고 나서 나는 고연주에게 나가자는 눈짓을 보냈다. 미래가 변했을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성하얀에 대해서는 일단 보류해둘 생각이었다. 어차피 수료 전까지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지금 당장 취할 수 있는 이득인 두 번째 부탁을 해결하는 게 낫다.
강당을 나온 후 고연주는 내게 어땠냐는 시선을 보냈지만, 고개를 가로저음으로써 대답해주었다. 한 명 한 명 제 3의 눈으로 확인해야 알 수 있겠지만, 성하얀을 제외하고서라도 딱히 느낌 있는 교육생은 없었다.
“수현. 그럼 다음에는 어디를 갈까요? 마법사? 사제?”
이내 다시 물어오는 고연주를 향해 나는 다시금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요. 교육생들은 둘러보는 건 이쯤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여기서 그만두신다고요?”
“예.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흐응. 별일이네요.”
고개를 갸웃하는 고연주. 그녀의 심정도 나름 이해는 간다. 눈치가 좋은 여인인 만큼 분명 내가 노리고 있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터. 그것을 시원하게 말이라도 해주면 모르겠는데 이렇게 의미 없이 겉도는걸 보면 이상하게 여길 법도 했다.
하지만 사실을 모두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나는 그저 씁쓸히 웃어줄 뿐이었다.
‘괜찮아…. 어차피 공찬호는 영입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성하얀을 찾은 이유는, 그만큼 101능력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서일까?
공찬호. 근력 101능력치 사용자의 이름을 떠올리며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연주. 박현우에 대한 부탁은 어떻게 됐습니까?”
“말씀드린 대로에요. 이미 얘기는 끝마쳤고, 이효을의 허락도 받아두었어요. 다만 그가 클랜 로드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네요.”
“그렇군요. 현재 포로 수용소에 함께 있다고 했나요?”
“네. 하지만 그전에 이효을을 한 번 찾는 게 어떨까요?”
나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이윽고 나는 고연주의 안내를 받아 천천히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하하. 죄송합니다. 오전 9시에 올린다는 게 이리도 늦어버렸네요.
5일만에 다시 키보드를 잡아서 그런지 집필이 약간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하여 늦게 업데이트한 점 깊이 사죄 드리며, 최대한 빠르게 페이스를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연재에 들어갑니다. 이번 외전 파트는, ‘101’입니다. 외전은 전부 연재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추가로 연재한 후 바로 2부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그리고….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