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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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아카데미로 와서 처음 느꼈던 점은 예전에 느꼈던 분위기와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황금 사자 관할 하에 있던 아카데미는 군대가 연상될 정도로 굉장히 딱딱했다. 수료식이 다가올수록 느슨하게 풀어주는 경향은 있었지만, 중 후반까지는 꽤 강압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은 확실하게 다르다. 아까 고연주를 부르던 교육생들의 태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즉 전에 비해 매우 개방적으로 변한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 변화 초기에 불과하니 속단할 수는 없는 노릇. 지금은 그저 앞으로 지속될 변화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수현. 거의 다 왔어요. 이 복도를 돌면 바로 왼쪽에 문이 하나 나오거든요? 그곳이 이효을이 지내는 방이에요.”
어느새 도착한 모양이다. 귓가로 흘러오는 나른한 음성에 난 상념에서 깨어나 주변을 살폈다.
“생각보다 소박한 곳이네요.”
“최대한 일반인 행세를 해야 하니까요. 아무튼 저는 여기서 기다릴게요.”
여기서 기다리겠다는 말에 나는 천천히 고연주를 돌아보았다.
“같이 들어가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평소라면 그랬겠지만, 수호자의 초대는 가벼이 여길 수 없으니까요. 저는 초대받지 못한 사용자에요.”
고연주는 딱 잘라 답했다. 그녀는 나와는 다르게 수호자라는 존재를 꽤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아무튼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해 난 금방 나오겠다고 답하고 바로 복도를 돌았다.
북 대륙의 수호자 이효을. 그녀를 생각하자 새침해 보이면서도 이지적인 외모가 떠오른다.
‘안솔에게 떠넘기려 하지만 않았다면.’
엄밀히 말해서, 나와 이효을은 좋다고 볼 수는 없는 관계였다. 아니.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거슬린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까.
하지만 이러한 감정만 넣어두면 이효을을 살린 건 나름 좋은 선택이었다고 판단한다. 북 대륙에 대한 입장이나 그동안 보여준 일 처리는 그래도 제법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여 나는 그녀에 대한 감정을 조금은 누그러뜨리기로 마음먹었다.
이효을은 아직까지는 쓸만한 사용자였고, 그 사건이 있은 이후로 내게 끈임 없이 화해의 손길을 보냈다. 이번 박현우에 대한 부탁만 봐도 그렇다. 그러니 한순간의 감정을 계속 밀고 나가기보다는 적당히 경계하면서 도움을 받는 게 훨씬 나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난 어느덧 눈앞에 보이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약간의 심호흡 후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똑똑.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들어오시어요.”
“?”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말투에 순간 멈칫. 그러나 난 곧바로 문을 밀어젖혔다. 그리고 침착히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클클클클클….”
“어헉.”
그리고 막 이효을과 대면한 순간, 나도 모르게 침음을 내뱉고 말았다.
퀭한 눈과 거무죽죽한 눈가. 동시에 들려오는 가래 끓는 음침한 웃음소리. 예전 말끔하고 이지적인 자태는 어디서 엿 바꿔 먹었는지, 지금은 당장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환자만 눈에 보일 뿐이었다.
하여 나도 모르게 안부를 묻고 말았다.
“괜찮으냐?”
그러자 그녀는 손에 쥔 기록을 꼬깃꼬깃 구기더니 한껏 낮음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오호호호…. 어서 오시어요, 머셔너리 로드. 이리 오랜만에 뵈니 소녀는 무척이나 반갑답니다?”
“…미쳤냐?”
“어머. 지금 친히 소녀를 걱정해주시는 건가요? 오호호. 소녀, 너무 기뻐 몸 둘 바를….”
“완전히 미쳤군.”
그 말을 끝으로 이효을은 주변에 수북이 쌓인…. 아니 쌓이다 못해 층을 이루는 기록 더미에 풀썩 얼굴을 묻었다. 그러더니 힘없이 손을 들어 검지를 핀다. 아마 아무데나 앉으라는 뜻 같았다.
그렇게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이효을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입술을 달싹였다.
“기, 김수현…. 너였구나…. 그래. 와줘서 고마워. 헤헤….”
“기록 정리 도와주러 온 건 아니니까 고마워할 필요는 없는데.”
“…빈말로라도 도와주겠다고 말하면 안 될까? 꼭 거절할게. 그러니 말이라도 해줘. 제발.”
말하는 목소리가 하도 처량해 나는 한 번쯤은 말해주기로 했다.
“…도와줄게.”
“고마워! 그럼 이것부터…!”
그러자 고개를 번쩍 든 그녀는 반색하며 구겼던 기록을 내밀었고.
“꺼져.”
곧바로 이어진 거절에 쿵 소리가 날만큼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아무래도 안 좋은 때에 온 모양이다.
‘이 엄청난 양의 기록이 멀쩡한 사람 하나 망가뜨렸군.’
하기야 기록 정리가 얼마나 고되고 짜증나고 지루하고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지는 매우 잘 알고 있기에, 난 그녀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힘들어 보이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는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이는 이효을. 이윽고 그 상태로 기다란 한숨을 내쉬더니 힘없는 음색이 흘러들었다.
“미안. 잠깐 정신 줄을 놓고 말았어.”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넌 수호자 아닌가?”
책상에 쌓인 기록은 여전히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아마 저 기록 하나하나에 사용자 아카데미의 변화를 알리는 내용이 들어있을 터.
아무튼 기록은 많은데 사람은 한 명이다. 말인즉슨, 네가 지금 왜 여기 있냐는 소리였다.
“필요해. 그리고 내가 맡는 게 가장 나으니까. 하~움. 다, 다으 오으으 오 이어~.(다른 놈들은 못 믿어~).”
그리고 하품을 하며 말을 잇더니 짝 소리가 날 정도로 뺨을 세게 쳤다. 이어서 천천히 손을 내리자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볼에 새겨진 발간 자국 위로 조금은 초롱해진 눈동자가 보인다.
“흠냐…. 아무튼 잘 왔어. 차라도 한 잔 줄까?”
“아니.”
“그럼 할 말만 빨리 해주는 게 좋겠군. 소문은 들었어. 이번에 해밀 클랜이랑 발할라의 탑이란 유적을 발굴했다며?”
“왜. 어떻게 그렇게 유적을 잘 발굴하는지 천사들이 알아내라고 지시했나?”
“아니. 이제 그런 건 별로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삐딱하게 말하지 말아줘.”
‘그런 건 상관없다고?’
문득 새삼스런 기분이 들어 나는 조용히 그녀를 응시했다. 상관이 없다는 소리는…. 설마 후계자를 찾았다는 말인가?
치익, 치이익.
“후우.”
상상의 나래에 빠져있는 동안, 이효을은 연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가볍게 한 모금 내뱉더니 한결 좋아진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소영씨한테 얘기는 들었을 테고…. 그 후 탐험 성공으로 북 대륙이 떠들썩하게 변했지. 그럼 승낙의 의미로 봐도 되지?”
“?”
“10강.”
나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리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조금 천천히.”
“콜. 어차피 한꺼번에 발표할게 아니라 몇 명씩 기간을 두고 올릴 생각이었어.”
이효을은 짐 하나 덜었다는 듯 한결 후련한 얼굴로 OK사인을 보냈다. 그 순간 돌연히 떠오른 생각에, 나는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나를 선택한 거지? 찾아보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없는 게 아니라, 없어. 진짜로.”
“…….”
“그리고 너라면 어차피 언젠가 10강에 오르겠다고 생각했거든. 그 시기를 조금 당길 뿐이지. 뭐, 말은 이렇게 해도 나도 노리는 게 있지만…. 어쨌든 10강이 되는 게 나쁘지는 않을 거야. 특히 막 발돋움하는 클랜이라면 말이지. 으다다다~!”
그녀가 의자에서 일어나자 뭉쳐있던 기록 몇 장이 흩날렸다. 이윽고 한껏 기지개를 편 이효을은 아차 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현우를 데려가고 싶다고 했었지? 걔 머셔너리로 가겠데?”
“이미 고연주가 얘기를 끝내놨더군. 그전에 한 번은 만나야겠지만.”
“그렇군…. 좋아.”
이효을은 고개를 서너 번 끄덕이더니 곧 한 쪽 구석에 놓인 수정구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현우는 지금 포로들과 함께 지하 감옥에 있어.”
“지하 감옥?”
“예전에 새로 개축한 감옥이지. 장소는 전 황금 사자 클랜의 지하층. 지금 연락을 넣어둘 테니 바로 가면 될 거야.”
“알겠다.”
재지 않고 시원하게 얘기를 이끌어나가는 게 마음에 들어, 난 기꺼운 마음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나가려는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옷깃을 붙잡았다.
“아, 잠깐만! 김수현!”
“?”
“이왕 감옥에 가는 김에 혹시 다른 거 필요한 건 없어?”
“다른 거라니?”
“예를 들면 성유빈이라던가. 아니면 서 대륙 포로들 등등.”
‘포로?’
성유빈은 생각할 것도 없어,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유빈은 볼 일없고, 포로는 쓸만한 사용자가 있나?”
“쓸만하다 함은 사용자 정보를 말하는 거겠지?”
“그럼?”
“앞서 찾아온 구매자들은 튼실하거나 어여쁜 포로를 원했거든. 뭐라더라. 백마?”
순간 난 암암리에 떠돌던 하나의 소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 대륙 포로 중 일부는 돈을 받고 노예로 판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무래도 사실인 듯했다. 노예라 함은 아마 마력 회로를 파괴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리라.
“아무튼 관심 없어? 혹시 구매 의사가 있다면 싸게 쳐줄게.”
“…그냥 박현우만 데려가도록 하지.”
이효을은 역시나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흐응. Ok. 좋은 선택이야. 그럼….”
“그럼?”
그러더니 약간 밝아진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잠시,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겠어?”
*
이효을과 헤어진 후 난 고연주와 함께 그녀의 숙소로 이동했다.
앞서 말했던 두 번째 부탁이란, 살아남은 박현우를 회유해 머셔너리로 끌어들이라는 것이었다.
원래는 지하 감옥으로 직접 찾아가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노예를 구매할 생각이 없으니 직접 가서 고를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현재 지하에 구금돼있는 박현우를 불러오는 게 더욱 편하고 효율적이다.
‘박현우.’
똑똑.
그때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고연주가 사용하던 침대에 누워있자 문득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 데려왔어요. 들어갈게요.”
“들어오세요.”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켰고 동시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고연주와 함께 그녀의 뒤에 서 있는 한 사내를 볼 수 있었다.
정말 간만에 보는 사용자. 황금 사자 클랜의 전 간부 박현우였다. 나는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1. 이름(Name) : 박현우(5년 차)
2. 클래스(Class) : 일반 검사(Normal, Sword, Master)
3. 소속 국가(Nation) : 바바라
4. 소속 단체(Clan) : –
5. 진명 • 국적 : 검에 잔영을 남기는 자 • 대한민국
6. 성별(Sex) : 남성(27)
7. 신장 • 체중 : 179.2cm • 67.8kg
8. 성향 : 중립 • 중용(True • Neutral)
[근력 90] [내구 81] [민첩 73] [체력 87] [마력 89] [행운 60]
1. 김수현 : 564 / 600~
[근력 96(+2)] [내구 92] [민첩 98] [체력 92(+2)] [마력 96] [행운 90(+2)]
2. 박현우 : 480 / 600~
[근력 90] [내구 81] [민첩 73] [체력 87] [마력 89] [행운 60]
‘어느 정도 진보는 했군.’
능력치는 변동이 없지만 검사 숙련도는 Master로 상승했다. 사실 박현우의 사용자 정보는 필히 영입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소수정예’를 지향하는 머셔너리와 어느 정도 부합하기에 나는 그를 영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남다은, 우정민, 선유운에 이어서 박현우까지 추가된다면 머셔너리의 스쿼드도 한층 볼만해질 것이다.
얘기는 거의 끝났다고 들었고 이제 마지막 면담만 남았다. 여기서 초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최대한 부드러이 입을 열었다.
“사용자 박현우.”
“오랜만입니다. 머셔너리 로드.”
예전의 말끔한 인상은 어디 갔는지, 초췌한 얼굴과 거뭇한 턱수염이 눈에 밟혔다,
언뜻 나를 보는 박현우의 입가에 이내 나직한 고소(苦笑)가 아로새겨진다. 난 그것을 눈치챘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아마 과거의 입장과 지금의 입장을 비교해보자 쓴 물이 올라오는 모양이다.
이윽고 박현우와 자리에 앉은 후,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래도 최근에는 괜찮아졌습니다. 그림자 여왕님이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셨거든요.”
순간 손가락으로 V자를 짓는 고연주.
현재 살아남은 황금 사자 클랜원들. 그 중에서도 특히 간부들은 거의 포로 수준으로 취급 당한다고 들었다. 명분이야 연합군에게 항복했다는 사실을 들고 있지만, 내심은 안 봐도 뻔했다. 내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불거지던 감정 싸움이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사용자 박현우는…. 처음 아카데미에 교관으로 들어왔을 때 많은 것을 도와주셨죠. 이렇게라도 도와드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
박현우는 일순 눈을 끔뻑였다. 그러다 이내 한별이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당신이 일을 주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예전 일을 따지자는 것도 아니고요.”
나는 어깨에 손을 얹고 살며시 밀었다. 그러자 숙였던 고개가 조금씩 들어지더니 피로한 눈빛이 나를 마주한다.
길게 끌 것도 없이,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고연주에게 얘기는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그전에 저를 만나고 싶다고 들었는데?”
“아. 그건….”
박현우는 잠시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생각하는 듯싶더니 차분히 목을 가다듬었다.
“솔직히 감옥 생활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나름대로 억울한 것도 있었고, 포로 취급을 받는 게 분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죄가 명백한 이상 남아있는 자들은 감당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연합군에게 잡혔을 때나, 또한 같은 대륙의 사용자들에게 잡혔을 때나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
“희망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감옥에서 평생 고통 받거나, 아니면 재판에 회부되어 죽을 것이라 여겼거든요. 그렇게 좌절하던 중에, 그림자 여왕님이 전해주신 머셔너리 로드의 전언은 무척이나 감사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제 입장에서는 기필코 잡아야 할 동아줄이지만…. 콜록! 콜록, 콜록!”
말을 길게 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목이 메마르다 못해 갈라진 걸까. 박현우는 중간중간 심한 기침을 했고, 나는 얼른 고연주에게 눈짓해 음료를 가져다 주었다.
한 차례 목을 축인 후(제법 양이 많은 음료였는데 한 번에 비우는 건 조금 신기했다), 박현우의 말이 이어졌다.
“후우. 감사합니다. 아무튼…. 동아줄이었지만, 그렇다고 줄을 덜컥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죠?”
내 반문에 박현우는 쓰게 웃으며 답했다.
“여기서 나간다고 해서 제 입장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게 되면 단순히 저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머셔너리 클랜 자체도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그제야 박현우의 내심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말했다. “죄는 명백하다.”라고. 박현우는 황금 사자 클랜의 잘못을 인정했고, 감옥을 나간 이후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박현우는 잠시 내 눈치를 보더니 한층 조심스런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조금 뻔뻔하다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머셔너리 로드께 묻고 싶었습니다.”
“머셔너리 클랜이, 당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힘이 있냐고 말이지요?”
박현우는 잠깐 멍한 얼굴을 보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하여 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생각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실 박현우가 말하는 문제는 나도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머셔너리는 북 대륙에 거주하되 매인 클랜은 아니며,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한다. 더구나 남쪽에서는 이스탄텔 로우와, 그리고 동쪽에서는 해밀 클랜과 긴말한 관계를 맺고 있다. 동시에 동부 클랜들과는 여러모로 친분을 쌓은 상태였고.
차후 관리만 잘한다면, 최소한 동부 그리고 남부 모니카에서는 적당히 눈을 감아줄 것이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난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어 입을 열었다.
“그 의문에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예. 머셔너리 클랜에는 사용자 박현우를 보호할 힘이 있습니다.”
“…….”
“보호뿐만 아니라 다시 당당히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드릴 자신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요.”
현 머셔너리의 사정은 고연주에게 이미 충분히 들었을 것이다. 여기서 자랑 식으로 또 구구절절이 늘어놓기보다는 자신감 넘치는 한 마디가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흐르는 시간 동안 박현우는 나를 빤히 응시했다.
“사용자 김수현…. 아니 머셔너리 로드.”
그리고 서서히 몸을 일으키더니 일순 정중히 허리를 숙인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바로 “감사합니다.”였다.
“지금부터 클랜 로드로 모시겠습니다. 앞으로 머셔너리의 용병이 되어, 견마지로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 순간 떠오른, 뮬에서 들었던 누군가의 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수현씨 일행의 목표 달성을 위해 견마지로를 마다하지 않고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이 일어나 느릿하게 손을 내밀었다.
“머셔너리 클랜의 가입을 환영합니다. 사용자 신…. 박현우.”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클랜 로드.”
그렇게 서로 막 악수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펑! 꽈꽝!
“끄아아악!”
일순 외부에서 들려온 거대한 폭음이 방안을 뒤흔들고, 찢어지는 비명이 2차로 흘러들었다.
잠시 후. 나, 고연주, 박현우. 우리는 갑작스레 동작을 멈춘 채 멍하니 서로를 번갈아 보았다.
그때였다.
“사,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 아니야! 내가 아니야!”
다급히 들리는 비명이 열린 문틈으로 흘러들었다.
============================ 작품 후기 ============================
우정민, 선유운, 박현우…. 훈훈한 아이들이 머셔너리에 들어오네요. 하하하.
아. 오늘은 엄청 늦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생각보다 페이스가 빠르게 돌아오는 느낌입니다. 방심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언젠가 이루어질 자정 업데이트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