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12
00411 6. 101(4/4) =========================================================================
뭔가 펑 터지는 소리는 컸지만, 비명은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이 말인즉슨 현장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다는 소리였다.
“이, 이건 무슨…!”
멍하니 있던 것도 잠깐이었다. 금방 나를 돌아본 고연주의 낯빛은 전보다 확연히 가라앉아 있었다.
“수현. 뭔가 터진 것 같아요.”
“나가봅시다. 아. 사용자 박현우는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고 계십시오.”
박현우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와 고연주는 재빠르게 문밖으로 나섰다.
“어디서 들렸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까?”
“지금 추적 중이에요…. 그렇게 멀지는 않아요.”
고연주의 걸음 속도가 점차 빨라지기 시작한다. 하여 나 또한 속도를 높여 그녀와 걸음을 맞췄고, 우리는 순식간에 복도를 통과했다.
그렇게 약 2분 정도를 빠르게 걸었을까. 현장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 걷는 데 집중했고, 제 2 별관(교관 전용 숙소) 1층에 이르러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초, 총 교관님! 큰일 났습니다!”
누군가 고연주를 알아봤는지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곧 안으로 헤쳐 들어가는 고연주를 쫓으며 나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딱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주변에 모인 사용자들의 크게 놀란 얼굴만이 눈에 밟힐 뿐.
사실 홀 플레인이라는 세상에서 사람이 죽는 일은 그렇게 야단스러운 일은 아니다. 단순히 시비가 붙어서 죽을 수도 있고, 탐험을 나가서 죽을 수도 있고, 전쟁 중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세상, 이러한 상황에서 특수성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곳이 ‘사용자 아카데미’라는 것. 기본적으로 사용자 또는 교육생의 사망이 발생할 일이 없기 때문에, 현 상황은 확실히 의외라 할 수 있었다.
이윽고 사용자들을 헤쳐 안으로 들어가자 정확한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은 건, 바로 까맣게 불타다 못해 이곳 저곳이 터져 나간 그로테스크한 시체였다. 그리고 그러한 시신의 주위로 세 명의 사용자가 한바탕 어우러져 있었다.
“이 개 자식!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제, 제가 죽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죽인 게 아니라고요!”
“입 닥쳐! 네가! 네가 성훈이한테 수작을 부린 거잖아!”
“억울합니다! 수작이라니요! 그러길래 애초에 누누이 주의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거짓말하지마! 그럼, 그럼 왜 저 여자는…!”
얼굴에 눈물 자욱이 가득한 채 사내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여인과,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내. 그리고 둘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말리려 애쓰는 듯 보이는 또 한 명의 여인.
그때였다.
“모두 그만!”
마력이 한 가득 담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1층을 크게 흔들었다. 어찌나 강력한 음파가 발생됐는지 가까이 있던 사용자들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정체는 당연히 고연주였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훑더니 한 덩어리가 돼 있는 사용자들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거기 세 명, 떨어져.”
멱살을 잡고 있던 여인도 고연주를 알아본 듯 떨리는 고개로 옆을 돌아보았다. 볼에는 눈물 자욱이 선명하고 눈은 아직도 그렁그렁하다. 그 정도로, 무척이나 원통한지 여인은 얼굴을 와짝 일그러뜨려 보였다.
“초, 총 교관님! 하지만…!”
“떨어지라고 했는데. 안 들리니?”
어지간히 짜증이 솟구쳤는지 고연주의 목소리가 일변했다. 표정은 여전히 없었지만 음색은 짜증이 가득하다.
여인도 그것을 느꼈는지 일순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더니 마지못해 사내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기 시작한다.
이내 둘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몇 걸음 물러섰지만, 여인은 여전히 사내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후.”
고연주는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수현. 잠시 상황을 파악해야 할 것 같아요.”
“이곳의 총 교관은 고연주입니다. 저는 손님에 불과하고요. 권한은 오롯이 고연주에게 있습니다.”
다음부터는 일일이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고연주는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이고는 침착히 현장으로 다가섰다.
이윽고 시체 앞에서 허리를 숙이는 그녀를 보며 난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약간의 도움이라도 줄 생각이었다.
하여 우선 숨을 거칠게 몰아 쉬는 세 명을 응시했을 때였다.
『사용자(User) 공찬호.』
『사용자(User) 성하얀.』
『사용자(User) 김민희.』
‘응?’
뭔가 눈에 익숙한 이름. 차오르는 의문 감에 옆으로 고개를 빼자, 사내 뒤에 가려져있던 성하얀….
아니 잠시만. 뭐라고?
“공찬호?”
“예, 예?”
이름을 부르자 멍하니 목을 쓰다듬던 사내가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기분을 느꼈다.
송충이를 연상케 하는 짙은 눈썹 아래 우수에 찬 눈동자. 하지만 그렇다고 멍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볼에 새겨진 흉터를 보면, 오히려 날카롭고 호전적인 인상이었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하고 허공으로 여러 메시지들이 주르륵 떠오른다. 나는 턱이 떨리는걸 느끼며 허공을 응시했다.
1. 이름(Name) : 공찬호(3년 차)
2. 클래스(Class) : 일반 창술사(Normal, Lancer, Master)
3. 소속 국가(Nation) : 바바라
4. 소속 단체(Clan) : –
5. 진명 • 국적 : 수라마창(壽拏魔槍)의 주인 • 대한민국
6. 성별(Sex) : 남성(34)
7. 신장 • 체중 : 191.3cm • 94.7kg
8. 성향 : 안전 • 신념(Safe • Belief)
[근력 101(+6)] [내구 85] [민첩 87] [체력 91(+2)] [마력 78] [행운 72]
1. 김수현 : 564 / 600~
[근력 96(+2)] [내구 92] [민첩 98] [체력 92(+2)] [마력 96] [행운 90(+2)]
2. 공찬호 : 514 / 600~
(잔여 능력치 포인트는 0포인트입니다.)
[근력 101(+6)] [내구 85] [민첩 87] [체력 91(+2)] [마력 78] [행운 72]
‘…공찬호!’
이름도, 진명도, 능력치도 알려주고 있다.
그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사용자 정보 창은 근력 101 능력치 사용자, 공찬호의 등장을 알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이윽고 나를 멀거니 보는 공찬호를, 난 아무 생각 않고 멍하니 응시했다. 그것도 한참 동안.
*
황금 사자가 몰락한 이상, 현 사용자 아카데미에는 여러 클랜들의 ‘교관’과 ‘교육생’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만일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교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이러한 상황에서의 책임이란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제 자체에 대한 책임은 어디까지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해결할 문제이며, 교관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발표할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고연주는 운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직함은 ‘총 교관.’ 이 말인즉슨, 고연주가 현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발표할 의무가 있다는 소리였다.
“후유….”
현장에 도착한지 3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야 상황 파악을 마쳤는지 고연주는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숨을 내쉬었다.
난 한동안 공찬호와, 옆에서 괜찮다고 다독이는 성하얀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어떻습니까?”
“글쎄요…. 살인으로 보기에는 애매하네요. 아마 부주의로 인한 사망 판단이 나올 것 같아요.”
사건은 이랬다. 자세한 상황을 빼고 간단히 요약해보면….
공찬호는 이번 전쟁에서 뮬을 탈환한 공적을 인정받아 사용자 아카데미에 교관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교육생인 성하얀을 호출해 면담을 했다는 것.
그렇게 면담을 끝내고 돌아가던 도중 아카데미에서 친분을 쌓은 두 교관을 만났다고 한다. 그 두 명이 바로 사망자 강성훈과 피해자 김민희였다.
여기서 바로 문제가 터졌다.
강성훈은 평소 공찬호가 들고 다니는 무기를 궁금해했다. 보통 때는 검붉은빛이 감도는 기다란 막대기에 불과하지만, 마력을 넣는 순간 모습이 크게 변화하는데 깊은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
강성훈이 한 번 봐도 되냐고 여러 번했던 부탁을, 공찬호는 주인이 아닌 사람이 만지면 다칠 수도 있다는 말로 계속 거절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강성훈은 공찬호가 성하얀을 바래다주던 도중, 그녀가 “우와. 이거 되게 무거워요.”라 말하며 그의 무기 ‘수라마창’을 들고 있는걸 발견했다.
하여 성하얀을 보자마자 공찬호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서 공찬호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수라마창’을 억지로 만졌고, 그 결과 엄청난 반발 효과가 일어나 온몸이 터져 죽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옆에서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었기에, 고연주의 의견에는 나 또한 동의하는 바였다. 그러나 피해자는 그렇지 않은지 단박에 눈을 치켜 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총 교관님! 그게 아니라고요! 지금 저 자식의 말을 믿으시는 거예요?”
“진실이 밝혀졌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지.”
완곡히 돌려 대답하는 말에 여인은 일순 입을 뻐끔거렸다. 고연주는 한두 번 이마를 꾹꾹 누르고 나직이 말을 이었다.
“아직 애매해. 김민희라고 했던가? 너, 클랜은 어디니?”
“네, 네! 거인들의 모임이에요.”
“거인들의 모임? 아무튼 지금 나랑 가서 내용 기록 작성하고 바로 클랜에 연락해. 그리고 혹시 진실의 수정을 사용할 의향이 있다면….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
사실 이미 고연주는 의견을 밝혔다. 이대로가면 ‘부주의로 인한 사망’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높으니, 조금 더 확실히 하고 싶다면 ‘진실의 수정’을 가져오라는 얘기였다.
여인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떨떠름히 머리를 끄덕였다. 아마 ‘진실의 수정’이 없거나 그것을 구할 만큼의 여력은 없는 모양.
그러나 거기까지는 알 바가 아니었기에 고연주는 어느새 구름처럼 몰린 구경꾼들에 해산 명령을 내렸다.
“더 구경할 거 없으니 다들 자리로 돌아가세요. 그리고 교관들은 최대한 현장을 보존하고, 추가 지시가 나올 때까지 대기하도록. 그리고….”
이윽고 공찬호와 성하얀을 돌아본 고연주는 약간 고민하는 기색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재빠르게 그녀에게 눈짓을 보냈다.
내 신호를 받은 걸까. 고연주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내 쪽으로 다가와 은밀히 속삭였다.
“수현. 왜요?”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그럴 필요는….”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잠깐 자리만 마련해주시면 됩니다.”
고연주는 날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머뭇머뭇 서 있는 둘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 둘. 사용자 김민희와 증인의 내용 진술이 끝나면 둘의 차례야. 끝나고 바로 갈 테니 잠시 이분과 함께 있으렴.”
“왜요? 도망치면 어떡하려고요!”
김민희의 지적은 온당 당연했지만 고연주는 여유로이 대꾸했다.
“너랑 같이 있으니까 저 사람이 말을 못하잖니. 그리고 도망은 걱정 마. 저분이 잘 지켜보고 계실 거야.”
“도대체 저분이 누군데요?”
“내 클랜 로드님.”
“…네?”
“머셔너리 로드님이라고.”
고연주가 내 정체를 밝힌 순간 여기저기서 미약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마 전쟁 이후 내 명성도 어느 정도 퍼진 듯싶었다.
나는 공찬호와 성하얀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새삼스런 눈길을 보내는 김민희와 마주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잘 감시하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어요. 하지만 당신, 두고 봐.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테니까.”
김민희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듯 보였지만 이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원한에 찬 시선을 쏘아 보내 공찬호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사망자 강성훈과는 각별한 사이였던 모양이다.
“그럼 모두 해산.”
이윽고 고연주의 지시가 떨어지자 구경꾼들이 산산이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난 둘의 앞에 다가가 여전히 얼굴이 굳은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사용자 공찬호. 잠시 얘기 좀 하실까요?”
“아…. 예…. 알겠습니다.”
공찬호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소심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천하무쌍’ 공찬호의 모습과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네가 지금 여기 있고…. 어떻게 성하얀과 벌써 만난 거지? 설마 벌써 둘이 만난 건가?’
처음 봤을 때만해도 성하얀은 보류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공찬호의 등장으로 머릿속이 한순간 복잡해졌다.
아무튼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 나는 일단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입구로 걸음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제 3의 눈으로 수라마창을 응시했다.
============================ 작품 후기 ============================
오랜만에 자정에 업데이트 해보네요. 하하. 오늘은 후기로 몇 가지 의문 사항에 대해서 답변하겠습니다.
1. 홀 플레인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Sol) 사용자 + 사용자 = 사용자.
사용자 + 거주민 = 사용자(50%) 또는 거주민(50%).
거주민 + 거주민 = 거주민.
2. 캐릭터들의 사용자 정보가 궁금합니다.
Sol) 2부의 시작과 동시에 작품 설정에 올려두겠습니다. ‘지금’의 상태가 아닌 ‘2년 후’ 상태로요. 사실 2년 후 사용자 정보는 아직 초기 구상에서 멈춘 상태라, 조금 더 손을 봐야 할 것 같기는 합니다.
3. 클랜원이 늘어날수록 일부 캐릭터가 공기화가 진행되는 것 같다.
Sol) 이 부분은 저도 근래에 들어 느끼고 있습니다. 너무 김수현에 대한 비중이 높다고나 할까요. 차후 현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최대한 노력해 공기화를 해소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