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14
00413 7. 유현아의 그림자(2/2). =========================================================================
내 심장, 아니 화정이 입을 열은 순간이었다.
파지지직! 파지직! 파츳?!
정말 신기하게도, 조금 전까지 미친 듯이 폭주하던 마기가 일순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화정의 말이 이어졌다.
– 어머 수라야~. 정말 오랜만이야. 그런데 너 왜 여기 있는 거니?
파츠츳! 파츠츠츳!
– 아이고…. 인석 좀 봐. 얘 왜 이래…. 나야 나, 화정. 해치지 않아요. 응? 가만히 좀 있어보렴.
파츳…? 파츠츳….
– 옳지. 그래 그래. 착하다…. 나 원. 천 년 전 처음 봤을 때는 그렇게 순수하던 녀석이었는데, 어찌 이리되었을꼬.
순간 멍한 기분이 들었다. 수라마창의 기운은, 조금 전 흉포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화정이 말을 걸 때마다 흠칫 흠칫 물러나고 있었다.
하기야 서로의 기운이 상성이니 물러나는 건 이해한다. 그러나 화정이 이렇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건 당최….
“머셔너리 로드! 머셔너리 로드!”
“!”
그때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우렁찬 목소리가 귓가를 강타했다. 하여 멍하니 고개를 들자 콧김을 씩씩 내뿜고 있는 공찬호가 보였다.
“머셔너리 로드! 괘, 괜찮으신 겁니까!”
“아…. 예, 예. 괘,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이게 어찌된 건지 나도 아직 모르는 상황이라 순간 말을 더듬고 말았다.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후 난 다시 한 번 공찬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어느새, 그는 경악한 표정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린 상태였다.
하여 나 또한 시선을 따라 고개를 내리자 무척 기묘한 광경이 눈에 밟혔다.
화륵! 화르륵!
파츠츳! 파츠츠츳!
가시 돋친 듯 오른팔을 덮고 있던 검붉은 마기는, 어느덧 화정의 맑은 기운에 의해 감싸져 있었다. 그러한 광경은…. 마치 화정이 수라를 보듬는 모양새랄까.
그때였다.
– 이봐. 동반자.
그러고 보니 수라마창의 폭주가 멈췄다고 느꼈을 즈음, 화정이 말을 걸었다.
순간 난 재빠르게 공천호와 성하얀을 살폈다. 둘 모두 경황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여기서 말로 대답했다간 수상하게 생각할게 뻔하다.
‘화정이 마음을 읽을 수 있던가?’
그렇다면…. 화정?
– 너 왜 우리 수라 괴롭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얘를 왜 괴롭혀.
– 얘 지금 엄청 화나있는데? 싫다는데 네가 자꾸 만졌다고. 거기다 억지로 점령까지 하려고 했다는데?
점령?
창 주제에 표현이 꽤나 마니아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뭔가 할 말이 없어졌다. 수라마창이 ‘점령’을 어떤 의미로 말했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힘을 한 번 알아볼 생각에 억지를 가미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 흐응…. 힘을 알고 싶다 라…. 그렇군. 좋아. 그럼 잠시 기다려봐.
역시나 내 마음을 읽은 걸까. 화정은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고는 물결처럼 살며시 요동쳤다.
– 얘, 얘. 수라야. 있잖아….
“머, 머셔너리 로드. 이건…. 정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으세요?”
언뜻 고개를 치켜들자 공찬호와 성하얀이 지척까지 다가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어느새 걱정의 빛은 줄어들고 신기하다는 기색으로 내 팔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 속을 추슬렀다가 창을 한 바퀴 빙글 돌려보았다.
“예. 괜찮습니다. 한순간 큰일나는가 싶었는데 다행히 마법 저항력이 버텨주었네요….”
“그렇군요. 그럼….”
공찬호의 표정이 미묘해진다. 내가 이 반발 효과를 버틴 게 자신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말을 덧붙였다.
“예. 반발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만일 공식 재판까지 가게 되면 이 부분에 대해서 증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요. 당연히 해야 될 일인걸요…. 아. 그나저나 이 창, 그냥 보통의 창으로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창 좀 더 봐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하하하.”
이제야 완전히 마음이 놓이는지 공찬호는 크게 웃어 보였다.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창을 잡은 손을 하늘 높이 올려 들었다.
그나저나, 정말로 무시무시하다.
제 3의 눈으로 읽었을 때도 엄청난 능력치라 여겼었다. 그러나 직접 들어보자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었다. 형태는 단순히 막대기에 불과했지만, 사위로 흐르는 검붉은 마기는 소름 끼칠 정도로 파괴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다.
솔직히, 그리고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내가 가진 네 개의 검들 중 어느 것 하나 수라마창보다 뛰어난 게 없다. 그 정도로 수라마창은 최강 혹은 최악의 무기라 볼 수 있었다.
– 동반자. 준비해.
그때, 갑작스레 화정이 다시 말을 걸었다.
뭘 준비해?
– 힘을 알고 싶다며? 내가 부탁했어. 그러니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수라마창이 너를 주인으로 받아들일 거야. 그러니까 준비하라고.
수라마창의 주인…?
– 그래. 아. 지금 시작하려나 보다. 너한테서 얼른 벗어나고 싶나 봐. 아무튼 내가 조금 도와주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거야.
잠깐만. 주인이라면…. 설마!
크게 놀란 마음에 나는 곧바로 사용자 정보창을 띄웠다.
그 순간이었다.
– 시작한다.
화정의 한 마디와 함께,
쿠두둑! 쿠두두둑!
변화가 시작되었다.
“크윽!”
돌연히 손아귀가 찢어지는 감각에, 나는 격한 신음을 내뱉었다. 아무런 전조도 없었다. 그것은 흡사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커다란 해일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쿠두두두, 쿠두두두!
잠잠해졌다 생각한 마기가 다시금 거칠게 요동친다. 왼쪽에서는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기운이 막대기 전체를 휘감고, 오른쪽에서는 가시처럼 솟구친 기운이 줄기줄기 세차게 솟아오른다. 그러더니 점차 굵어져 하나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오오…! 고오오오…!
해일처럼 몰아친 마기의 폭풍은 이내 막대기를 감싸다 못해 주변을 휩쓸었다. 그에 따라 엄청난 압력이 순식간에 몰아치고 시야가 흔들렸다. 흡사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동시에 심한 소음이 발생해 누가 외치는 소리 또한 묻히는 기분이었다.
“큭…! 크읍…!”
나는 격하게 흔들리는 오른손을 붙잡으며 눈을 감았다. 동시에 혀를 세게 깨물었다. 조금은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다.
아까 수라마창의 마기를 ‘저항’으로 정의한다면, 지금 수라마창의 마기는 미묘했다. 마치 ‘받아낼 수 있으면 받아봐.’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힘을 양껏 뿜어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화륵! 화르륵!
아마 중간중간 화정이 도움이 없었다면 놓쳐도 진작에 놓쳤을 터.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몰아치는 압력을 견디며, 나는 서서히 눈을 떴다.
키햐아아아아아아!
수라마창은 이게 자신의 본 모습이라는 듯 사방이 떠나가도록 흉포한 괴성을 질렀다. 길쭉한 막대기였던 모습은 어느새 완전히 변화한 상태였다.
총 길이는 약 2미터 가량 될까. 왼쪽 끝에는 미친 듯이 마기가 피어오르고, 뾰족한 송곳 같은 것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오른쪽 끝에는 부드럽게 휘어지는 낫이 섬뜩한 빛을 번뜩이고 있다. 송곳은 어린 아이 팔만한 길이였고, 낫은 거대한 나무 하나를 가히 감싸 안을만했다.
이것이 바로 수라마창(壽拏魔槍)의 본 모습이던가.
이어서 허공에 메시지가 떠오른다.
『수라마창(壽拏魔槍)이 사용자 김수현을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근력이 6포인트 상승합니다!』
그와 동시에 전신으로 차오르는 충족감. 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허공을 응시했다.
1. 이름(Name) : 김수현(1년 차)
2. 클래스(Class) : 검술 전문가(Sword Specialist Master)
3. 소속 국가(Nation) : 자유 용병(Free)
4. 소속 단체(Clan) : Mercenary(Clan Rank : 실적 평가 중입니다.)
5. 진명 • 국적 : 검(劍)의 주인 • 대한민국
6. 성별(Sex) : 남성(25)
7. 신장 • 체중 : 181.5cm • 75.5kg
8. 성향 : 질서 • 혼돈(Lawful • Chaos)
[근력 102(+8)] [내구 92] [민첩 98] [체력 92(+2)] [마력 96] [행운 90(+2)]
근력 능력치가, 102가 되었다!
“하아!”
이 형용할 수 없는걸 주체할 수 없어, 나는 절로 탄성을 터뜨렸다. 도대체 이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쾌락? 포만감? 해방감?
마치 온몸을 꽁꽁 옭아매던 사슬이 일거에 풀린듯한 느낌은 무척이나 시원함 그 자체였다. 전신이 상쾌하다. 더는 어떤 압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 안의 무언가가 크게 변화하고 있었다. 회로를 휘도는 마력이 전에 없이 경쾌하고,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 엄청난 힘을 보내주는 기분이었다.
지금 눈앞을 가로막는 모든걸 박살낼 수 있을 것 같은 이 기분!
그때였다.
– 야! 오래 끌지마. 끌면 끌수록 후 폭풍의 부담이 커질 테니까.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지?
이어진 화정의 경고에 나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하아…! 하아…!”
여전히 가슴은 쿵쾅쿵쾅 뛰고 설렜지만 나는 억지로 진정했다. 그리고 제 3의 눈이 경고한 바를 떠올렸다.
극복했다고 생각한 순간, 수라마창이 나를 집어삼킬 것이다.
“후우…. 후우…. 후웁.”
지금 이렇게 버티는 것도 화정의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터. 그 말대로 오래 끌어 좋을 것은 없다. 하여 나는 몇 번의 심호흡 후 창을 비스듬히 세웠다. 섬찟한 빛을 뿌리는 검은 낫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겨냥한다. 그 상태로 잠시 동안 푸른 창공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흣!”
외마디 기합성과 함께 하늘을 향해 팔을 있는 힘껏 내리그었다. 궤적을 따라 흐른 기운은 이내 짙은 색으로 변하여 힘차게 솟구쳤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예전에도 느껴본 적 없던 가공할만한 마기가 아우성을 치며 부상한다. 허공을 훑고 지나간 그것은 삽시간에 하늘로 솟구쳐 길게 늘어졌다. 흡사 하늘에 기다란 줄이라도 그어진듯한 모습이었다.
쯔거억.
그 순간, 분명히 허공을 지나쳤을 뿐인데 뭔가가 섬찟하게 베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뭔가 싶어 안력을 크게 돋구었을 때, 나는 그 상태로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쩌저적, 쩌저저적!
마기는 가차 없이 하늘을 갈랐다.
그리고 갈라진 하늘에 이어서 드러난 광경은, 어두컴컴하면서 아무것도 없는….
…그래. 마치 우주를 보는 듯했다.
*
7. 유현아의 그림자.
밤이 깊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보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까닭 없이 허탈한 기분에 나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아카데미에서 돌아온 지도 며칠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아카데미에 있었을 때와 돌아온 후의 시간을 비교해보면…. 뭐랄까.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단 하루도 있지 않았는데, 아카데미에서 수많은 일을 겪은 것 같다.
‘공찬호를 만나고…. 박현우를 데려오고…. 그리고 수라마창도 쥐어보고….’
고연주는 결국 공찬호를 무죄로 잠정 판단했다. 다만 김민희쪽 클랜에서 보류를 요청한 터라 공식 발표만 미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마 ‘진실의 수정’을 구해올 요량이겠지만 과연 쉽게 구할 수 있을까.
잠시 후, 의미 없이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던 도중 문득 머리맡을 더듬었다. 이내 잡히는 가슬가슬한 기록의 감촉에 난 종이를 들어 내 앞으로 펼쳤다.
– [단독] 아카데미의 혼란. 교관 사망 사건에 이어 하늘도 갈라졌다? 알 수 없는 현상에 근래 사용자들의 신전 방문이 폭주….
근래 사용자들의 신전 방문이 폭주 중이라. 하기야 나에게도 호출이 한 세 번쯤 왔던가. 아마 지금쯤 세라프의 속은 타 들어가겠지.
조만간 신전을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싱겁게 웃었다.
‘…….’
그리고 이어진, 다시 찾아온 허탈감.
사실 이러한 허탈감의 원인은 알고 있다. 이유는 바로 얼마 전 잠시나마 근력 능력치가 102포인트로 올랐다는데 있다. 그때 느꼈던 그 무한한 힘을, 엄청난 해방감을 당최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오자 지금 내 몸이 적응을 못하는 것 같다. 즉 ‘맛’을 알아버렸다고 해야 하나.
‘그냥 돌려주지 말걸 그랬나.’
사실 그럴 수는 없다. 사망 사건으로 공찬호의 무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상태였고, 수라마창 또한 나를 싫어한다. 아마 화정이 아니었다면 하늘을 가르기는커녕 못 버텨 던져버렸을 것이다.
나는 다시금 기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멍하니 말을 걸었다. 대상은 바로 내 심장이었다.
화정.
– 응? 왜?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화정. 신속한 대답에 일순 놀라버렸지만 바로 진정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화정은 항상 갑작스레 등장하지 않았던가.
– 불렀으면 말을 해. 놀라지 말고.
화정의 핀잔에 나는 차분히 속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 예전에 네가 그랬잖아. 너를 제대로 사용하고 싶다면 체력을 101로 올리라고.
– 그랬지.
그럼…. 만약에 말인데. 체력을 102로, 아니 그 이상으로 올리면 어떻게 돼?
– 흐응….
너도 그 수라마창처럼 달라지는 건가?
– 글쎄? 그걸 말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 아직 말해서는 안되기도 하고. 아무튼 대답하기 곤란해.
화정의 직접적인 거절에 나는 입맛을 다셨다. 하기야 나와 화정은 동반자 관계. 나는 힘을 빌리는 입장이지,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다.
– 흥. 그렇지. 주제는 잘 아네. 어쨌든 뭐 다른 궁금한 건 없어?
궁금한 거라.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이내 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수라마창을 들었을 때 네가 나왔잖아? 저번에 용염을 앞에 두고도 스스로 나왔고.
– 응.
생각해보면 불과 관련됐을 때 네가 자주 나오곤 했지. 혹시 그게 네 출현과 약간이라도 관계가 있는 건가?
– 전혀. 용염은 네가 조금 위험하다 싶어서 나온 거고, 그리고 조금 건방지다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수라는 예전에 내가 보살핀 아이였어.
단지 그뿐?
– 그래. 그뿐이야. 네가 불을 마주했을 때 내가 항상 나온 건 아니잖아? 예를 들면 예전에 숲에서 어떤 여자를 상대했을 때나, 또는 전쟁 중에서나.
시원시원한 화정의 대답에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 같이 어울리는 것도 어느 정도 격이 있어야 놀아주지.
격이라.
그런데, 아까 숲에서 상대했다면 백서연을 말하는 건가? 그녀 정도라면 네가 말한 격이 어느 정도 있을 텐데.
– 개뿔이.
폭염이라면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불 중에서 최고로 볼 수 있는….
– 웃기는군. 내가 고작 인간 중 최고 불을 상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봐.
자부심 넘치는 화정의 목소리. 문득 화정이 만약 얼굴이 있다면, 지금쯤 코웃음을 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고 보니 너. 이번 기회에 말하는데, 툭하면 내게 의지하려는 버릇 좀 고치라고. 응? 얼마나 귀찮고 한심한지 알아? 이 바보야. 그리고….
화정은 때는 이때다 싶었는지 기관총처럼 쉬지 않고 쏘아붙였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
예전에는 몇 마디 하지도 않고 들어가는 게 끝이었는데, 오늘은 다르다. 따따따따따따따따. 102에 대해서 물어보려다가 이게 뭔 꼴인지.
그렇게 화정의 잔소리에 한동안 쓰디쓴 입맛만 다시고 있을 무렵. 그러다 불현듯 스치고 지나간 하나의 생각.
– 아. 물론, 절~대로 네 몸이 걱정돼서 이런 말하는 건 아니니까….
그럼 너는 왜 고작 인간에 불과한 내 몸에 있는 건데?
그때였다. 쉴 새 없이 조잘거리던 화정의 목소리가 일순 뚝 끊겼다. 하여 또 예전처럼 멋대로 나와서 멋대로 들어간 건가 추측했을 때, 돌연히 몸 안을 휘도는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화륵! 화르륵!
심장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삽시간에 마력 회로를 점령한다. 그러더니 이내 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흘러 움직인다.
“어헉. 자, 잠깐만.”
백기를 들자 화정의 움직임이 멈췄다.
– 씩…. 씩….
하여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을 꺼내자, 화정이 뭔가 굉장히 화가 난듯한 게 느껴졌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 너 잘 들어.
화륵! 화르륵!
그리고 새어 나온 한 줄기 염화는 이내 내 코에 닿아 꾹 누르기 시작했다.
– 내가 너에게 힘을 빌려주는 이유는, 그때 네 간절한 의지에 반했을 뿐이야. 앙? 절대로 너 따위한테 반한 게 아니라고. 알아들어?
“아니. 누가 뭐라고 했어?”
– 이 멍청이. 흥! 곧 밖에 나갈 준비나 해!
화륵!
어이없어 반문하자 화정은 크게 불꽃을 뿌리고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이내 점점이 흩어지는 불똥을 보며 나는 거세게 머리를 털었다. 불로 세수하는 게 이런 기분이로군.
아무튼.
“모르겠다.”
나는 크게 기지개를 피며 하품했다. 뜻하지 않게 몸이 따뜻해져 지금은 그냥 노곤한 기분이 들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잠이 오지 않았는데, 지금 눈을 감으면 왠지 모르게 잠들 것 같은 기분.
나는 기록을 던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찾아들 어둠을 기다리며 화정과의 대화를 곱씹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했던 말이…. 나갈 준비를 하라고? 그게 무슨 말이지?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우웅우웅우웅우웅우웅우웅우웅우웅!
머셔너리 하우스가 떠나가라 울리는 마력의 알림에,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건….
3층 창고에 설치한 보안 마법의 작동이었다.
나는 귀걸이에 손을 가져다 대며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 작품 후기 ============================
아이고. 제가 오늘 내용 적으면서 얼마나 떨었는지 독자분들은 모르실 겁니다. 설마 오늘도 파트 못 넘어가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흑흑. ㅜ.ㅠ
예. 우리 수현이가 또 하나의 기연을 얻었네요. 드러나지 않은 기연입니다. 살짝 힌트를 드리자면, 예전보다 화정의 말이 많아졌다는 걸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하하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차 드러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