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15
00414 7. 유현아의 그림자(2/2). =========================================================================
깊은 밤 통로는 어두웠다. 하지만 난 이것저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리는데 집중했다.
3층에 설치한 보안 마법이 울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그동안 탐험으로 얻은 성과를 넣어둔 창고에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것.
물론 출입 허락을 받지 못한 내부 클랜원의 소행일수도 있지만, 창고에 있는 여러 물품들을 떠올리면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하여 난 캄캄한 복도를 신속히 가로질러 나는 듯 계단을 내려갔다.
그렇게 막 3층으로 내려왔을 때였다.
“감히 짐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더냐!!!!”
푸확! 철썩!
“꺄아아악!”
액체가 ‘뻥’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비명이 복도를 울린다.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자 뭔가가 공중으로 튀어올라 허공을 나는 것이 잡혔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내 쪽으로 날아오는 그것은, 바로 비비앙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양팔을 내밀었다.
풀썩!
최대한 충돌을 줄이며 부드러이 받아내자, 비비앙의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크윽! 아, 아프잖아!”
“비비앙! 무슨 일이냐?”
“젠장! 저 빌어먹을 자식이…! 제기랄! 이거 놔! ───! ───! ───!”
그러나 비비앙은 나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무척 화가 난 듯 거칠게 몸을 일으키더니 바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상황을 알아볼 생각에 나는 곧장 안력을 돋웠다. 그리고 창고가 있는 방향을 응시하자 곧 침입자의 실체가 서서히 눈에 잡히기 시작했다.
‘저건….’
키는 일반 성인 남성과 비슷할까. 하얗다 못해 창백히 질린 피부와 어둠에 동화된 다크 블론드 색 머리칼. 어딘가 모르게 고귀한 기운을 뽐내는 서구 외모는 척 봐도 북 대륙 사용자로 보이지는 않는다.
“후…. 조용히 나가고 싶었건만, 또 한 명의 버러지의 등장인가.”
이윽고 조금 높긴 하지만 확실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어깨까지 늘어진 머리칼을 차분히 쓸어 올린다. 이내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싸늘한 번뜩임이 나와 비비앙을 노려보듯 주시한다.
그리고 빛나는 시선과 마주한 순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침입자는 인간처럼 보이되 인간은 아니다. 저건 바로….
‘뱀파이어다.’
순간 왜 저놈이 이곳에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일단 ‘빅토리아의 영광’을 겨누었다.
지금 중요한 건 호기심이 아니었다. 침입자가 ‘뱀파이어’라 불리는 괴물인 이상, 그리고 손에 황금빛 액체를 찰랑이는 ‘엘릭서’ 한 병이 쥐어져 있는 이상. 놈은 확실한 내 적이다.
“인간이여. 이 몸이 친히 경고하마. 지금 나를 곱게 보내준다면, 불필요한 유혈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
그리고 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나는 있는 힘껏 복도를 박찼다.
휙!
칠흑 같은 어둠이 살갗을 스치고 뱀파이어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든다. 그러나 놈은 당황하지 않았다. 흡사 내가 달려들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담담한 표정.
놈이 팔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인간은 언제나 한결같구나. 어찌도 이리 어리석은가.”
순간 비릿한 냄새가 물씬 흘러들었다. 들어올린 팔에는 뭔가 뭉클뭉클한 핏빛 액체가 어깨와 손목 사이를 감싸듯 돌고 있다. 아까 뭔가 이질감이 느껴진다 싶더니 놈의 ‘피’가 정체였던 모양이다.
잠시 후, 손끝이 나를 겨냥했다.
“경고는 한 번으로 충분하겠지. 굳이 벌주를 마시겠다는 걸 말릴 생각은 없다.”
그 순간 휘돌던 액체가 손끝으로 쭈르륵 집중됐다.
“각오해라! 내 피가 너를 먹어 치울 것이다!”
푸확!
그러더니 우산처럼 널찍하게 펴지며 나를 삼킬 듯 짓쳐 들어온다. 아마 비비앙도 비슷한 수법에 당한 듯싶었다.
한순간 지척까지 다가온 피로 이루어진 주둥이를 보며 나는 다급히 마력을 일으켰다.
‘최대한 빠르게 없애야겠다.’
뭐랄까.
사실 이런저런 경험을 겪은 만큼 그리 위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왜인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귀가 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팟!
하여 곧바로 이형환위(移形換位)를 발동하자, 순식간에 시야가 바뀌어 뱀파이어의 후방을 점거할 수 있었다.
뱀파이어의 피는 어느새 내가 있던 자리를 게걸스레 집어삼키고 있었다. 비스듬히 보이는 놈의 얼굴에 거만한 빛이 가득하다.
부디 그 오만한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기를 기대하며, 나는 힘껏 검을 내리그었다.
부웅!
“더헛!”
순간적으로 위험을 느꼈을까? 정수리를 노렸던 검날은 흔들린 머리를 스치듯 타고 흘러 어깨부터 베어 들어갔다. 그에 이어 손을 타고 전해지는 뭔가를 자르는 감촉.
싹둑! 찰박!
그 순간 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살가죽을 자르는듯한 감촉에 어느 순간 끈적끈적한 불쾌감이 섞여 든 것이다.
사실 이대로 끝까지 베어내도 상관없겠지만, 나는 곧장 마력을 일으켰다. 그리고 중간에 검을 멈춰 힘차게 마력을 투사했다. 내 장기인 마력 폭발이었다.
펑! 퍼펑!
“크하아아악!”
이윽고 뱀파이어의 신체에 울룩불룩한 폭발이 터지고, 고통에 젖은 비명이 복도를 떠르르 울린다. 그와 동시에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는 엘릭서를 보며 나는 눈을 번뜩였고, 신속히 손을 뻗었다.
“아, 안 돼!”
‘허. 아직 살아있었던가?’
분명히 몸을 절반 이상 가르고 마력 폭발도 실컷 먹여주었다. 내 사용자 정보를 생각해보면 아무리 생명력 높은 뱀파이어라도 빈사 상태에 이를 정도의 충격일터. 그럼에도 미약하게나마 들려오는 외침에 매우 놀라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여벌의 목숨이나 다름없는 엘릭서가 훨씬 중요했기에, 우선 허공을 선회하는 병을 가볍게 낚아챘다. 찰랑.
“이, 이럴 수가아아아아!”
엘릭서를 놓친 게 그리 분한 걸까? 뱀파이어는 복도가 떠나가라 절규했다. 그러더니 도망이라도 치려는 듯 몸의 일부에서 터져나간 액체가 소용돌이처럼 돌기 시작한다.
‘어딜.’
하여 허공에 뜬 상태서 그대로 왼발을 날리자 철퍽, 발등이 끈적한 액체를 후려치는 게 느껴졌다.
후루룩! 후루루룩!
분수처럼 솟구친 혈액은 허공에 점점이 흩뿌려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그라졌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 복도의 끝 쪽에서 다시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윽고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던 놈이 당황한 음색을 내뱉었다.
“헉! 허억! 어떻게 된 거냐…. 어째서, 어째서 재생이 되지 않는 거냐! 고작 인간의 검에 당했을 뿐인데!”
그건 내 권능 때문이야.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아무튼 헐떡이는 숨소리로 보아하니 큰 타격을 입은 것 같기는 했다. 이 와중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도망치지 않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
‘도망치려는 게 아닌가?’
그때였다.
“오라! 아라냐! 제 32군단을 지배하는 죽음의 거미줄이여!”
비비앙의 낭랑한 목소리가 날카로이 터져 나왔다. 꽤나 씩씩거리더니 마수 소환을 준비했던 모양이다.
“김수현! 이제 됐어! 내가 처리할 테니 비켜!”
쉬리릭! 쉬리리릭!
동시에 섬뜩한 은빛이 흐르는 여러 줄기들이 복도를 쇄도한다. 살아있는 뱀이 춤을 추듯, 날 부드러이 지나친 거미줄은 복도 끝으로 이동한 뱀파이어를 삽시간에 뒤덮었다.
“잡았다! 요놈!”
수십의 거미줄에 묶였음에도 뱀파이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서 있기만 할 뿐. 그런 놈의 모습은 매우 처참했다. 폭발이 일어난 부분이 군데군데 뚫려있는 게 마치 커다란 펀치로 여러 번 몸을 뚫은듯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비비앙이 복도를 걸어온다. 놈을 서늘히 쳐다보던 그녀는 나를 보지도 않은 채 걸음을 멈추었고, 곧 턱으로 한 쪽 방향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비키라는 의미 같았다.
“김수현. 미안하지만 이 싸움은 양보할 수 없을 것 같아.”
“응? 아니 무슨 양보. 보니까 이미 거의….”
“아니야. 김수현. 저놈은 내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혔어. 너무 분해. 그러니 이 수치심을 회복할 기회를 주겠어? 부탁해.”
내가 다 잡아놨는데 뭔 헛소리를 하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쏘아붙이기에는 비비앙의 얼굴이 굉장히 진지했다. 아니 진지하다 못해 눈망울이 그렁그렁해 보일 정도였다.
“…마음 대로해라.”
“후. 좋아. 똑같이 날려주겠어. 내 눈앞에서.”
하여 짧은 숨을 뱉고서 나는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한 쪽으로 비켜서자 비비앙은 득달같이 달려가 뱀파이어의 앞에 섰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 간신히 숨이 붙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뱀파이어 중에 유난히 생명력이 질긴 놈들이 있었는데. 생명력을 저장하는 놈들이랬나?’
고개를 갸웃하던 도중 비비앙이 가녀린 검지를 피어 뱀파이어의 턱을 들어올린다.
“어이 너. 아깐 잘도 내 엉덩이를 쳤겠다.”
“크윽….”
“호호호. 꼴 좋네. 어떻게 죽여줄까? 앙? 갈기갈기? 아니면 발기발기?”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여라! 더는 내게 모욕을 주지 마라. 거미 냄새를 풍기는 인간이여.”
‘오호라.’
뱀파이어의 말에 일순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괴물은 괴물을 알아보는 건가?
비비앙은 낭랑히 웃었다.
“호호호, 호호호호! 보아하니 너도 인간은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
“대답이 없군. 그럼 이건 어때?”
딱!
비비앙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거미줄이 스르르 움직인다. 이윽고 놈의 왼팔을 세게 잡아당기는 것과 함께 뿌드득, 뭔가 세차게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끄아아아아아아악!”
한밤에 일어난 뱀파이어의 고문. 나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비비앙. 바로 죽이지는 마. 배후를 캐내야 하니까.”
“걱정 마. 고문하면 나야. 백서연 사건을 잊었어?”
비비앙은 딱 잘라 대답했다.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돼 나는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였다.
놈이 연신 부르짖는 처절한 비명을 반주 삼아 차가운 벽에 기대어 섰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왜 엘릭서만 가져가려고 했을까?’
솔직히 이번 침입 사건을 따져보면 이상한 점이 몇 가지가 있었다. 창고 안에는 여러 가지 물품이 있었을 텐데, 왜 굳이 엘릭서 한 병만 가져가려고 했을까? 그리고 인간이 아닌 괴물이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두두두두! 두두두두!
문득 느껴지는 진동에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자 여러 발소리들이 들려온다. 아마 뒤늦게 달려오는 클랜원들인 듯싶었다.
‘쯧. 모르겠다.’
다시 탈환한 엘릭서를 느릿하게 매만지며 나는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 알아낼 것만 알아내고 죽일 생각이니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1. 이름(Name) : 사샤 펠릭스(Sasha Felix)
2. 클래스(Class) : 뱀파이어(Monster, Vampire, Master)
3. 소속 국가(Nation) : 펠릭스(Felix, 현재는 멸망한 뱀파이어의 왕국입니다.)
4. 소속 단체(Clan) : –
5. 진명 • 국적 : 피의 군주의 후계자• 홀 플레인
6. 성별(Sex) : 남성(127)
7. 신장 • 체중 : 183.3cm • 65.4kg
8. 성향 : 혼돈 • 푼수(Chaos • Idiot)
[근력 53] [내구 67] [민첩 78] [체력 84] [마력 93] [행운 51]
* 1. 로드 오브 뱀파이어(Lord Of Vampire)가 될 가능성이 있는 뱀파이어의 정통 후계자, 즉 진조입니다.
* 2. 현재 사용자와 일시적인 계약서를 체결한 상태입니다. 계약을 맺은 사용자는 이 뱀파이어에 대해 ‘주인’의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피의 군주…? 푼수…?’
그때였다. 하나씩 읽어 내려가던 도중 ‘사용자와 계약’을 했다는 내용이 눈에 밟혔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 떠오른 의문이 일부 해소되는 게 느껴졌다.
‘아…? 아!’
그와 동시에, 갑작스레 머리에 떠오른 기억에 나는 다급히 비비앙을 불렀다.
“비비앙! 잠깐만!”
“알아들어? 네까짓 게 건드릴 수 없는…. 응? 왜?”
얼른 뱀파이어를 쳐다보자, 그새 일을 벌였는지 몸통과 다리 한 짝만 남은 몰골이 눈에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 숨은 붙어있었다.
나는 ‘빅토리아의 영광’으로 팔을 얇게 베어내며 빠르게 걸음을 놀렸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저 뱀파이어는 추후 ‘성스러운 여왕’의 ‘그림자’로 불릴 놈이 분명하다.
‘맞아. 비교적 일찍 죽어 기억하지 못했어.’
그리고 ‘그림자’가 여기 있다는 말은….
‘그녀도 여기 있다는 말이겠지.’
============================ 작품 후기 ============================
흠. 외전은…. 1, 2, 1, 2, 1. 현재 구상 예정으로 따지면 이르면 이번 주, 늦으면 25일 안에 끝날 것 같네요. 예전에 말씀드린걸 전부 연재하지는 못하고, 최대한 이거다 싶은 것들만 뽑아놨습니다. -_-a
아. 독자님들. 혹시 제가 예전에 투표했던 표지 기억하시나요? 그때 안솔이 선정됐었지요. 현재 여유가 생겨 일러스트레이터 분과 접촉 중입니다. 몇 일안으로 결정이 날 듯싶으니 확정되면 따로 말씀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