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18
00417 8. 가장 갖고 싶었던 사용자(3/3). =========================================================================
“…그럼 이 사건에 대해서 클랜원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나는 조용히 말을 마치고 나서 전방을 응시했다. 머셔너리 하우스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개방한 4층 회의실에는 고요한 적막감이 흐르고 있었다.
상황 설명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요지도 간단하다. 차소림에게 죄를 덮을 기회를 주자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뱀파이어의 침입으로 선입관이 생긴 걸까? 눈에 보이는 클랜원들의 얼굴빛이 하나같이 미묘하기 그지없다.
그때였다.
탁.
“말도 안 돼. 오빠! 나는 절대로 반대야!”
테이블을 가볍게 치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유정의 성난 음색이 회의실을 울렸다. 아미(蛾眉)를 있는 대로 치켜 올린걸 보니 차소림을 클랜원으로 받아들이는 게 영 마땅찮은 듯 보였다.
“생각해봐. 오빠는….”
“유정아.”
그리고 다시 말문을 열려는 찰나 하연이 유정의 말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자 유정은 순간 흠칫했다. 이내 어색이 목을 가다듬는걸 보니 이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모양이다.
“죄, 죄송해요…. 그래도 클랜 로드님. 차소림과 뱀파이어에 대한 영입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다시 생각해보라…. 흠. 그럼 사용자 이유정이 반대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그, 그건….”
처음 기세와는 다르게 유정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궁색이 더듬는 걸 보아하니 명확한 이유는 없는 게 분명하다. 회의 전 “걸어오는 꼬락서니 봤어? 도둑년 주제에 당당한 게 마음에 안 들어!”라 외치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마 엘릭서가 도난 당할뻔했다는 사실에 선입관이 단단히 박힌듯했다.
“그…. 뱀파이어는 괴물이고…. 괴물을 받아들이면 불안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어떻게 볼지도 걱정되고…. 그, 그래요. 클랜 로드님도 그러셨잖아요. 요즘 주시하는 사용자들이 많으니 행동거지를 조심하라고….”
스스로 생각해도 궁색하다고 느꼈는지 유정은 조심스레 말끝을 흐렸다.
사실 유정의 주장은 아주 잘못 짚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이제부터 설득을 시작해야 한다. 하여 잠시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용자 이유정의 말대로 뱀파이어는 괴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뿐입니다. 분명히 드문 사례이기는 하지만, 홀 플레인에는 괴물이나 거주민이 사용자의 동료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주변 시선에 대해서는 딱히 걱정할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떻느냐는 의미로 응시하자 유정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이해는 했으되 납득한 얼굴은 아니었다.
‘정말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다른 클랜원들로 시선을 돌렸다.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로 가부를 가늠하려 했다면 회의 자체를 열지 않았을 터.
현재 회의실에 자리한 클랜원은 교관으로 파견된 고연주를 제외한 전원이 모여있었다. 그러니 다른 클랜원들의 생각 또한 들어보고 싶었다.
“아무튼 내 생각은 이래….”
“하지만 언니. 그건 아직 잘 모르는 거잖아요. 그리고….”
한 쪽에서는 하연과 한나가 소리를 죽인 채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영감님은 눈을 지그시 감은 게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었고, 안솔은 아까부터 뭔가 말하고 싶은지 입술을 달싹이며 고민하고 있다.
그에 반해 근래 들어온 클랜원은 비교적 조용했다. 이런저런 생각은 하는 듯 보였지만 아직은 눈치를 보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각자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비로소 하연과 한나의 얼굴이 떨어졌다. 서로 머리를 끄덕이는 걸로 보아 이제야 의견을 종합한 모양이다. 하여 그쪽에 시선을 두고 있자 이내 하연이 머리를 돌려 나를 마주한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을 무렵, 하늘색이 감도는 머리칼 사이로 분홍빛 입술이 자그맣게 떼어졌다.
“클랜 로드. 사용자 차소림과 뱀파이어를 받아들이는 건 약간 불안하지 않을까요?”
누구처럼 대놓고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반대를 완곡히 돌려 말한 것일 뿐, 뜻은 똑같다.
나는 바로 되물었다.
“어떤 부분이 불안하신가요?”
“우스갯소리이기는 하지만, 야한 동영상에 대해서 이런 말이 있어요.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요.”
순간 좌우로 미약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자리에서 꺼낼 말은 아니었지만, 회의실에 가득 찼던 긴장감이 약간은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나 또한 싱겁게 웃음을 터뜨리고 하연을 쳐다보았다. 정작 말을 꺼낸 그녀는 여전히 태연한 얼굴이었다. 하기야 하연의 성격에 괜한 말을 꺼낼 리는 없다.
나는 잠깐 동안 테이블을 두드렸다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사용자 정하연은…. 재범의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군요.”
“이미 창고는 한 번 뚫렸으니까요. 또한 뱀파이어가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높으니, 언제라도 똑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요?”
“이것뿐만이 아니에요. 사용자 차소림은 현재….”
하연의 말을 들으며 나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때였다. 내 미소에서 뭔가 느꼈는지, 자신 있게 말을 잇던 하연이 일순 아차 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하연의 말은 간단하지만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그건 바로 불안감이었다. 한 번 전례가 있는 만큼 재범의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머셔너리 하우스 안으로 받아들일 경우 그러한 가능성은 더더욱 높아질 것이다. 따져보면 사실상 그녀의 말은 정론이었다.
그러나 하연이 간과한 게 몇 가지 있었다.
“사용자 정하연. 확실히 뱀파이어는 창고에 침입했고 보안을 뚫었습니다. 그리고 엘릭서를 훔쳤지요.”
“…네.”
“그게 잘했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부분에서 관점을 달리하고 싶습니다.”
이윽고 나는 차분히 설득을 시작했다.
요점은 바로 뱀파이어가 엘릭서’만’ 훔쳤다는 점이다. 실제로 엘릭서 한 병을 제외하면 창고 안의 물건은 모두 그대로 놓여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주인인 차소림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머셔너리 쪽에서 차소림을 치료하면 뱀파이어는 더는 창고를 털고 다닐 이유가 없다. 그녀의 상처가 ‘설정’인 이상, 화정이나 기적으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하, 하지만 굳이 엘릭서가 아니더라도….”
“뱀파이어는 거주민입니다. 정 불안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 사용자 차소림에게 계약서 갱신을 부탁하면 됩니다.”
하연은 한 번 더 입을 열었지만 나는 바로 받아 쳤다. 그녀는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멋쩍게 미소 지었다. 보아하니 어느 정도 납득한 듯싶었다. 솔직히 더는 할 말이 없기도 할 테고.
이로서 조금 전 설명은 모든 클랜원들이 들었을 것이다. 시선을 들자 내 말을 일리 있다고 생각했는지, 몇 명이 머리를 끄덕끄덕 주억이는 게 보인다. 그러더니 한 쪽에서 누군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영감님이었다.
“클랜 로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늙은이도 한 마디 거들고 싶습니다.”
“허락합니다.”
머리를 끄덕이자 영감님은 차분히 몸을 일으켰다.
“허허…. 다른 분들의 심정은 익히 짐작합니다. 소중한 물건이 도난 당할뻔한 것에 깜짝 놀랐을 테고 또한 화도 나겠지요. 그 마음은 십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늙은이는 그래도 클랜 로드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영감님의 목소리는 손주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잔잔하고 부드러웠다. 뭔가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랄까. 나는 더욱 집중했다.
“사용자 차소림은 엘릭서를 훔치라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뱀파이어의 독단이었지요. 아마 그녀가 느끼기에도 억울한 감이 없잖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찾아왔고, 깊이 사죄했으며, 여러분들의 용서를 구하고 있지요.”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속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부디 그러한 점을 판단해 한 번은 기회를 주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오히려 끌어안는 게 더 좋은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살인멸구보다는 말이지요.”
침착히 말을 매듭지은 영감님은 이내 느릿하게 자리에 앉았다. 영감님이 마지막에 남긴 말은 꽤나 의미심장했다. 살인멸구보다 끌어안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영감님 또한 사용자 차소림을 둘러싼 상황이 애매하다는 걸 느낀 모양이다.
아무튼.
처음으로 찬성표가 나왔다. 영감님의 의견을 실로 좋은 타이밍에 나왔다고 볼 수 있었다. 유정, 하연의 반대를 설득하며 조금씩 넘어오던 분위기가 영감님의 찬성으로 확실히 힘이 실린 것이다.
“혹시 다른 의견이 있는 클랜원 있습니까?”
하여 이 기세를 몰아볼 생각에 바로 입을 열었고, 다른 의견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탐탁잖아 보이는 이가 한둘은 있었지만 결국에는 입을 다물었다.
이쯤이면 되었다는 생각에 나는 안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사용자 안현. 가서 두 명을 회의실로 데리고 오도록.”
“예? 아, 알겠습니다.”
그동안 조용히 앉아있던 안현은 순간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이놈 회의는 안 듣고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군.
이내 안현이 재빠르게 회의실을 나서는 걸 보며 난 입술에 침을 적셨다.
*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차소림과 뱀파이어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둘을 중앙으로 인도한 안현이 도로 자리에 앉은 후, 나는 조용히 그녀를 응시했다. 처분을 기다리는 동안 꽤나 노심초사했는지 차소림은 한껏 긴장한 기색이었다.
이윽고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용자 차소림.”
“네.”
“당신의 실력을 보고 싶습니다.”
“네, 네?”
차소림은 매우 당황한 음색으로 대답했다.
“클랜원들과 회의한 결과 사용자 차소림과 뱀파이어에게 한 번 기회를 줘보자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붙어있습니다.”
“그 조건이….”
“바로 사용자 차소림의 실력입니다.”
실력을 보아야 한다는 말은 바로 한별의 의견에서 나온 말이었다. 일단 받아들이기로 결정은 났으나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테스트가 필요하다는 소리였다.
‘왜 저러는 거지?’
차소림은 한동안 멍한 얼굴이었다. 그러면서 흘끔흘끔 주변을 둘러보는 게 마치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이윽고 차소림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저는 아직 처음이고…. 경험도 없으며…. 하물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이 없는 건가?’
순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차소림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몸이 불편한 상황이다. 이러할진대 자신이 전력을 내보일 수 있을지 궁금했으리라.
아무튼 그 정도로 잔인하지는 않기에 나는 걱정 말라는 뜻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용자 차소림의 몸 상태를 감안하여, 지금 바로 하는 게 아니라 우선 몸을 치료한 후 테스트할 예정입니다.”
그때였다.
‘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차소림은 눈을 번쩍 떠 머리를 들었다.
“제, 제 몸을 치료해주신다는 말입니까?”
“예.”
“그럼…. 설마!”
“엘릭서는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엘릭서가 아니더라도 머셔너리에는 사용자 차소림을 치료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도 두 가지나요.”
“그게 정말인가!”
뱀파이어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만일 이 두 방법이 먹히지 않는다면, 엘릭서를 사용해서라도 사용자 차소림의 몸을 치료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아.”
회의실에는 나 말고도 머셔너리 클랜원 전원이 착석한 상태였다. 그런 만큼 방금 발언은 그냥 해본 말이 아닌 실제로 유효한 공신력을 갖고 있다.
차소림은 멀거니 나를 응시했다. 눈을 쉴 새 없이 깜빡이는 게 뭔가 매우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자 약간이지만 가슴이 따끔해지는걸 느꼈다. 사실 화정이나 기적으로 치료할 자신이 있기에 꺼낸 말이었지, 엘릭서를 사용한다는 말은 일종의 생색이었다.
차소림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답했다.
“그, 그 편이 좋으시다면…. 아, 아무튼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들어보니 창 솜씨가 일품이라고 하던데. 기대하겠습니다.”
이윽고 머리를 꾸벅하는 차소림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네?”
한순간 차소림의 움직임이 멈췄다. 시선을 들어보니 마치 흐르는 시간 속에서 홀로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창 솜씨…? 아, 아!”
그렇게 10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시종일관 어색하던 차소림의 얼굴에서 마침내 또렷한 표정이 생겨났다. 이내 안면이 붉게 달아오르고 내 시선을 회피하는 게 무척 창피해하는 모습이었다. 흡사 몰라 몰라를 외치는 소녀처럼 보였다고나 할까?
“사용자 차소림.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큰소리로 대답한 차소림은 이내 숨을 색색 몰아 쉬었다. 그러더니 뭔가 확인해보겠다는 듯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저, 저. 그럼 테스트에 합격하면 저는 앞으로 이곳에서 지내게 되는 겁니까?”
“아마 그렇겠지요?”
“후. 그렇군요…. 그랬구나…. 머셔너리….”
잠시 후, 차소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서서히 얼굴이 안정되고 본연의 침착한 모습으로 돌아오는걸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의외로 당황하는 것 같아 불안했는데 저 모습을 보자 적잖이 안심할 수 있었다.
이윽고 차소림은 형형히 빛나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뜻이었다면…. 알겠습니다. 어차피 쓸모 없어진 몸뚱어리. 다시 살아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언제나처럼 똑같은 멘트로 답했다.
“머셔너리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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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 겨우 세이프했네요. ㅜ.ㅠ
아. 저번회 코멘트를 읽어보니 재미있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몇몇 분들은 실망하실지 모르겠지만, 차소림은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랍니다. 저번에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안현과 꽁냥꽁냥 하겠다고 말씀드렸지요? 차소림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