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43
00442 증오, 그리고 갈등. =========================================================================
다시 눈을 떴을 때, 가물가물한 시야로 어슴푸레한 회색빛 세상이 보였다.
이 장소가 어디인지.
나는 왜 여기 있는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제 더는 궁금하지 않다. 오직 마음속으로 어두운 절망이 자리 잡는걸 느꼈다.
사삭! 사사삭!
왜냐하면 이미 수십, 아니 수백 번은 보아온 풍경이니까. 아까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상황을 무수히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싫어.’
마음속으로 간절히 외쳐보았지만…. 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싫다고 해봤자, 지금 이 상황을 조작한 놈이 그만둘 리 없다는 것을.
사삭! 사사삭!
역시나.
내 생각이 맞는다는 듯이, 잠시 후 목을 칭칭 동여매는 가슬가슬한 감촉이 느껴졌다. 이어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중으로 몸이 천천히 떠오른다. 이내 서서히 목이 조여오는 느낌과 함께 호흡이 막혀오기 시작.
이제 이 상태로 한참 동안 고통 받다가, 나는 다시 기절하겠지. 그리고 다시 눈을 뜨게 되면 회색빛 세상을 마주할 테고.
덜컥!
그때였다. 이제 곧 다가올 고통에 아무 생각 없이 눈을 감으려는 찰나, 천천히 올라가던 풍경이 갑자기 멈춘다. 그 탓에 이리저리 흔들려 목의 압박이 느슨해져, 나도 모르게 설핏 눈을 뜨고 말았다.
‘벌써 멈출 리가 없을 텐데?’
이윽고 시선을 한 바퀴 빙글 돌렸을 때, 나는 소스라칠 정도로 놀라버렸다. 누군가 내가 매달린 장소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나는 꾹 눈을 감았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고통만 받다가 죽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껏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가슴에서 심장 고동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혹시 꿈은 아닐까?
약간이 시간이 흐르고, 나는 살그머니 눈을 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어느새 아래쪽에 서 있는 형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형님!’
형님이었다! 얼굴이 자세히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언뜻 보이는 모습은 확실한 형님이었다.
아니. 비단 형님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동료들도 서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마음속으로 말 못할 기쁨이 차 올랐다.
이제 곧 구출 받을 수 있다. 몇 십, 몇 백 번을 반복한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
문득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고통과 절망만 남은 속내에서, 사라졌다 생각한 희망이 조금씩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컥!’
그때, 잠시 느슨해졌던 목의 압박이 느닷없이 크게 조여 들었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고통 속에서 나는 다시 형님을 쳐다보려 애썼다. 그리고 간신히 시선이 닿은 순간, 돌연 이상한 위화감이 내려앉았다.
‘형님…?’
까닭 없이 속이 착 가라앉는다. 얼른 구해줬으면 좋겠는데. 한시라도 빨리 이 반복되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은데. 그런데, 형님은 왜 아까부터 가만히 있는 걸까?
아니 그전에. 아예 나를 쳐다보지조차 않는다. 그러고 보니 형님의 얼굴도 확인하지 못했다. 모습은 분명 형님의 모양새였지만, 나를 마주하는 게 아니라 조용히 전방만 응시하고 있다.
‘설마….’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이 떠올랐지만 나는 곧바로 아닐 거라 부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씩 기지개를 펴던 희망이 일순 고개가 꺾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마침내 형님이 서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일순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교차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따로 선택지가 없었다. 자꾸 목이 조여오는 와중에도 나는 있는 힘껏 눈길을 내려 형님의 시선과 마주치려 발버둥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보게 되었다. 무덤덤한 형님의 얼굴을.
‘저건…. 형님이 아니야….’
한순간 형님의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졌다. 피부가 흉측하게 일그러지더니 썩어 문드러져 버렸다. 입은 귓불까지 쭉 찢어져 검붉은 피를 흘러내렸다.
그래. 나를 올려다보는 건 형님이 아니었다. 저것은 지금껏 나를 괴롭히던 망인이었다. 말인즉슨, 지금 이러한 상황도 망인이 조작했다는 소리였다.
‘…하.’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한참 동안 나를 비웃던 망인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떠나가기 시작했다. 이내 한 쪽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양은 영락없는 동료들의 모습이었다.
속으로 연신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분명 아닐 거라고, 망인이 조작한 상황이라고 파악했음에도. 그럼에도 저들이 떠나가는 모습에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왜 일까?
‘하…. 하하하…. 하하하….’
이윽고 완전히 모습이 사라졌을 때, 볼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지금껏 간신히 이어오던 뭔가가 툭 끊어지는 게 느껴졌다. 간신히 살아났던 희망이 철저히 짓밟히자, 미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
이제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모든걸 내려놓고 죽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 정말로?
그러한 찰나,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온 한 줄기 속삭임. 그와 동시에 눈앞으로 하나의 형상이 나타났다. 무척이나 끔찍한 형상이었지만, 이제는 무섭다고도, 놀랍다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형상을 응시했다. 뭐든 좋으니 이제는 그만 단념하고 편해지고 싶었다.
‘그래. 이제 그만 죽여줘. 제발.’
– 히히! 히히히! 히히히히! 됐다, 됐어!
그 순간 망인의 찢어진 입이 쩍 벌려지더니, 나를 삼키려는 듯 다가오기 시작한다. 됐다고? 도대체 무엇이 됐다는 걸까?
잠시간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곧 생각하는걸 관둬버렸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 번만 참으면 된다. 이제 곧 망인에게 잡아 먹히면, 그리고 다시 눈을 뜨게 되면. 다시는 이런 상황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겠지.
‘이제…. 다 끝났다….’
끝났다는 생각에 나는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
그러나 생각했던 고통이 찾아오지 않는다. 고통스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어떤 감촉도 느껴지지 않는다.
설마 벌써 끝난 걸까? 나는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혹시 눈을 뜨면 또 반복되지 않을까?
여러 복합적인 생각이 떠올라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하지만 그냥 고개를 저었다. 다시 눈을 떴을 경우 또 똑같은 상황의 반복이라면, 그때는 정말로 버틸 자신이 없었기 때문…?
“어?”
목의 압박이 느껴지지 않는다. 목소리도 나온다. 조금 전 고개도 가로저었다. 구속돼있던 몸이 다시 자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 순간.
– 끼아악! 끼아아악!
“휴, 한 발 늦을뻔했군. 다행이다.”
낮고 사늘한 음색.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목소리가, 확실히 귓가로 흘러들었다.
– 억울해! 거의 다됐는데! 바로 직전이었는데! 억울해애애애!
“시끄러워, 임마.”
빠득! 빠드득!
이윽고 뭔가를 갈기갈기 우그러뜨리는 소리와 함께 망인의 비명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 넘기는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이 감촉은….
“안솔! 신재룡!”
나는 곧바로 눈을 떴다. 그러자 더는 회색이 아닌, 찬연히 비쳐오는 세상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
“와….”
“오….”
안솔과 비비앙이 미약한 탄성을 터뜨렸다.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자못 신기한 모양. 사실 신기할 것도 별로 없다. 한결이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이었으니까. 즉 둘이서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이랄까.
‘그나저나…. 상태가 가히 좋지는 않아 보이는데.’
“으음….”
한결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일말의 걱정을 뒤로한 채 바닥에 눕힌 한결을 응시했다. 눈앞이 가물가물한지 실눈 틈으로 보이는 눈동자가 미미하게 일렁인다.
“한결아. 정신이 드니?”
“흐어헉!”
막 가까이 다가서려는 찰나, 한결이 눈을 번쩍 떴다. 그러더니 기겁하며 비명을 내지른다. 고개를 반대쪽으로 비튼 것으로 보아 자기도 모르게 나에게서 떨어지려 했던 모양이다.
유정은 옆을 기웃기웃 거리더니 한결의 뺨을 찰싹찰싹 두들겼다.
“얘는 또 왜 이래? 야! 백한결!”
“시, 싫어! 오지마! 오지마아아아!”
“어머 얘 좀 봐. 기껏 구하러 와줬더니만…. 대답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리고 안현은 어딨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계속 이딴 짓 할거면…. 차라리 죽여! 죽이라고!”
계속되는 뜻 모를 반응에 유정의 아미가 찌푸려졌다. 다른 클랜원들도 이상하게 느꼈는지, 조금 더 다가와 한결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한결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더니, 결국 눈을 꼭 감은 채 몸을 웅크렸다. 자신을 방어하려는 모습이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신재룡은 약하게 숨을 내뱉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뭔가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 혼란에 빠진 것 같은데…. 난감하군요. 일단은 치료를 해보겠습니다.”
“…신성 주문으로 치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요.”
“외부의 자극에 의해 내부서 발생한 거라면 그렇겠지요. 생각하기는 싫지만…. 정신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건 외부 자극을 제거하는 것과 체력을 회복하는 것. 그리고 절대적인 심신의 안정입니다. 차후 한결군의 홀 플레인에서의 활동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클랜 로드. 사용자 원혜수를 기억하십시오.”
“흠.”
신재룡의 어조는 자못 진중했다.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라, 나 또한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걸 느꼈다.
하여, 나는 조용히 한결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싫어. 오지마. 계속 이딴 짓 할거면. 차라리 죽여.
‘어색하지 않아. 하나로 이어지는군.’
그렇다면, 하나씩 되짚어보자.
계속 이딴 짓 할거면, 차라리 죽여.
이 말은 망인에게 어떠한 짓을 당했고, 결국 참지 못해 죽이라고 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리고 싫어, 오지마.
방금 추측과 연결해보면, 망인에게 한 말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를 망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진짜 난감한데…. 그렇다고 여기서 안정을 취할 수도 없고. 안현도 찾아야 하고.’
솔직히 건강하게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한결의 상태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아직 초기에 불과하다는 걸까? 아무튼 신재룡의 말대로, 지금 한결을 어떻게 안정시키냐에 따라서 차후 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단의 생각이 정리됐다. 나는 안솔과 신재룡에게 치료 주문을 준비하고 있으라 일러둔 후, 차분히 한결에게 다가섰다.
“흐윽…. 흐으윽….”
여전히 덜덜 떨고 있는 한결은 이제는 눈물까지 흘리는 중이었다. 나는 잠시 동안 한결을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레 한 쪽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머리에 부드러이 손을 얹었다.
“한결아.”
“제발…. 제발….”
“한결아. 형이야. 형. 구하러 왔으니까, 눈 떠.”
“거짓말하지 마…. 아니야…. 더는 안 속아….”
연신 말을 걸어보았지만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정신이 엄청나게 피폐해졌다는 방증이었다. 도대체 망인이 어떤 짓거리를 했는지는 몰라도, 한결은 홀로 있는 동안 상상도 못할 만큼 고통을 받은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우선은 최대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나는 한결의 머리를 슬쩍 받쳤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강제로 눈을 뜨게 만들었다.
“잘 봐.”
나와 한결이 바라보는 곳에는 얼굴이 반으로 갈라진 망인이 있었다.
“흐어억! 흐어어억!”
“한결아. 똑바로 봐. 너를 괴롭히던 망인은 죽었고, 너는 구조받았어. 꿈이 아니라, 현실이야.”
“거짓말이야…. 안 속아….”
“왜 거짓말이라 생각해? 뭘 속는다는 거야?”
계속 달래며 고갯짓으로 신호를 주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안솔과 신재룡이 다가와 한결의 몸에 손을 대었다.
“안젤루스여, 방황하는 자에게 빛을 인도하소서….”
“───. ───. ───. 대상 지정 사용자 백한결. 앱노멀 스테이트, 리커버리!”
안솔은 안젤루스 주문을, 신재룡은 상태 이상 회복 주문을 걸었다. 이내 각각 하얗고 노란빛이 흘러 들어가는걸 확인한 후, 나는 머리에 얹은 손을 통해 화정의 힘을 일으켰다. 마력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고 내부를 다듬어줄 생각이었다.
“으윽…. 으으윽….”
조금은 효과가 있던 걸까? 한결의 흐느낌이 서서히 잦아드는 게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한결은 촉촉히 젖은 눈을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동자에는 아직도 불신이 가득했지만, 아까처럼 현실 부정은 하지 않는다. 세 명의 치료를 동시에 받자 조금이지만 정신을 차린 듯싶었다.
한결은 힘겨운 얼굴로 입술을 떼었다.
“…형님?”
“그래. 이제 정신이 좀 드니?”
“형님…. 형님…! 죄, 죄송해요…. 제가, 제가…. 죄송해요…!”
“…네가 죄송할거는 없다.”
나는 괜찮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히 처음 하연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굉장히 화가 났지만, 이런 상황에서까지 다그칠 마음은 들지 않는다. 또한 한결은 하연과 안현에게 휘둘렸을 뿐이라 실제로 거의 죄가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여기서 잘잘못을 따지는 건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거기다 구조는 아직 절반만 이뤘을 뿐이다. 어떻게 한결은 구조할 수 있었지만, 주변에 안현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렁그렁한 한결과 시선을 맞춘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결아.”
“혀, 형님. 이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아니, 아니야. 상황은 이미 알고 있어. 아까도 말했지만 망인은 처치했고, 너는 구출 받았어. 이제는 마음 놓아도 좋아.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않을 테니까…. 응?”
“…끅.”
“좋아. 다만, 한 가지만 말해주렴. 안현이 너와 함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주변에서 보이지가 않아. 혹시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니? 아니면, 안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줄 수 있니?”
한결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저 멍한 눈길로 입만 뻐끔거렸다.
“아 진짜 답답해 죽겠네! 야….”
그러자 자꾸만 어물쩍거리는 한결이 답답했는지, 유정이 빽 소리를 지르며 나섰다. 그러나 바로 바라보자 조용히 말을 흐렸다.
“사용자 이유정.”
“아니 그게…. 안현이 보이지 않는데.”
“조용히 해. 그러니까 지금 찾으려고 하고 있잖아. 네가 회의실에서 한 말을 기억해.”
“죄송해요….”
나는 짧게 숨을 뱉었다. 물론 나 또한 갑갑하기는 매한가지였지만, 현재 한결의 상태는 무척이나 불안정하다. 이대로 놔두면 정신적인 후유증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니 최대한 안정하도록 만들어주며, 스스로 입을 열도록 하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나는 가만히 있으라 신호를 보내고 나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으니까, 천천히 떠올려봐.”
그렇게 10초의 시간이 흘렀을 때, 한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한결은 몸을 벌떡 일으키려다가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혀, 현이 형님!”
“기억났어?”
“어, 어디 있어요? 설마 없어요?”
“없어. 여기서 발견한 건 너뿐이야.”
나는 빠르게 대답했다. 어느덧 안솔과 신재룡의 치료 주문은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화정의 힘을 유지하며 한결을 보듬었다. 그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결은 더는 혼란 상태를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상황을 이해하고 내 말을 받아들이려 애쓰는듯한 모습이다.
“한결아 말해봐. 안현은 어떻게 됐지?”
“죄, 죄송해요…. 같이 도망쳤다가…. 길을 잃어서….”
“괜찮아. 그러면 어디 있는지는 너도 모른다는 거지?”
“네….”
한결은 시무룩이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여기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는 대로 말해줄 수 있어?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까.”
약간 움찔했지만 한결은 이내 끄덕끄덕 머리를 주억였다. 그러더니, 잠시 후 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용의 잠든 산맥에 들어오고….”
“들어오고?”
“들어가고…. 계속 들어가서…. 아! 가, 갈림길에서…!”
“잠깐만. 갈림길?”
상당히 띄엄띄엄 말을 잇고 있었지만, 일단은 좋다. 나는 바로 말을 멈추게 했다. 한결은 미간을 약간 일그러뜨리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네, 네. 갈림길…. 뭔가 특별해 보이는 길이었어요.”
‘갈림길이라…. 쯧.’
나는 잠시 클랜원들을 돌아보았다가, 한결의 귀에 바짝 얼굴을 붙였다. 그리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혹시 다른 나무보다 커다랗고, 바짝 말라 비틀어진 나무가 있는 장소를 말하는 거야?”
“어…. 마, 맞아요…!”
“…젠장. 왼쪽으로 갔어, 오른쪽으로 갔어.”
“오, 오른쪽이요. 맞아요. 분명히 오른쪽이에요.”
오른쪽으로 갔다 함은, 결국에는 들어갔다는 소리였다. 순간 욕이 목구멍 끝까지 치솟았지만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한때 용이 잠든 산맥을 연구했던 나는, 지금 한결이 말한 갈림길이 어떤 장소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친놈들…. 도대체 어떻게…. 아니 어쩌자고….’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도대체 거기까지는 어떻게 갈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었지만, 갈림길 안으로 들어갔다면 더더욱 문제였다. 이로서 안현의 실종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갈림길은….
“일단 다시 출발하는 게 좋겠습니다. 한 장소에 오래 있는 것도 안 좋으니까요. …후방 인원들은 한결이를 부탁합니다.”
바로 유적이 있는 장소로 들어가기 직전의, ‘분기 지역’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이었으니까.
============================ 작품 후기 ============================
하하. 예상보다 많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술은 술대로 마셨는데, 케이크는 두 개나 꾸역꾸역 넣어서 토만 두 번을 했습니다. 아직도 속이 느글느글하네요. 아…. 진짜 무식한 녀석들…. ㅋㅋㅋㅋ. 2차를 친구 집에서 중국집을 시켰는데요, 제가 삼선 자장면을 시켰거든요. 그런데 포장도 뜯지 않고 자장면 소스를 부어서 놀림만 실컷 받았습니다. 헤헤. 망할냔.
이로서 한결의 구출 파트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라는 말은, 한결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었지요. 후기를 쓰는 지금이 오전 7시 29분 이네요. 아침 해가 떠오릅니다. 그래도 오늘 펑크를 내지 않아 많이 뿌듯합니다. 하하하. 아, 죄송합니다. 지금 한결이처럼 저도 제정신이 아니네요. 말이 두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일단 한 숨 자고, 다음 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회 소제목은 ‘증오’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소제목입니다. ‘갈등’을 두고 고민하다가, ‘증오’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 고르게 되었네요. 분기 지역을 주목해주세요! 여러분 알러뷰 쏘 머취! 저 지금 기분 좋아요. 그럼 뾰오오오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