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46
00445 증오, 그리고 갈등. =========================================================================
생각해보면, ‘증오의 대지’에 출현하는 망인들은 굉장히 강하고 까다로웠던 걸로 기억한다. 정상급 수준을 자랑하던 이스탄텔 로우의 사용자들조차 약간은 애를 먹지 않았던가. 물론 실수였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망자 한 명이 발생하기도 했고.
당시 내가 맡았던 역할을 바로 키퍼(Keeper)였다. 물론 말뿐인 키퍼였고, 실제로는 후방으로 물러나 동료들의 전투를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그때의 나는, 망인과 맞상대는커녕 지원 전투를 해주기에도 부족한 실력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가히 하늘과 땅 차이라 부를 수 있는 사용자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이 정보로 악마 14군주 중 한 명인 마몬도 잡아내지 않았는가.
그런 만큼 나는 자신감을 갖고 땅을 힘차게 박차 올랐다. 그리고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왼손으로 무검도 꺼내 들었다. 오른손에 일월신검을 쥐고는 있었지만, 이번에는 두 개의 검을 아울러 사용할 생각이었다.
끄어어어어엉!
이윽고 아래로 시커먼 머리가 보이는 순간, 느닷없이 괴성을 지른 망인이 번뜩 얼굴(로 보이는)을 들어 나를 주시했다. 이어서 족히 수십은 넘어 보이는 검붉은 시선과 마주했을 때, 땅에 닿을 정도로 늘어진 망인의 팔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일월신검을 들어올렸다.
후웅!
역시나. 일월신검을 상단으로 들어 방어한 것과 동시에, 육중한 팔 덩어리가 바람을 가르며 짓쳐 들었다.
창졸간에 일어난 공격이었다. 그러나 미리 예감해 방어하고 있던 터라, 망인의 팔은 모세를 만난 바다처럼 태양 빛으로 이글거리는 칼날에 여지없이 갈라져 나갔다. 대번에 몸을 후려치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일월신검의 능력과 검술전문가의 권능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첫 공격은 가볍게 막아낼 수 있었지만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내 몸이 하강함과 동시에 망인의 남은 팔이 또다시 한 차례 구부러지듯 비틀어졌기 때문이다. 이내 재차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려는 찰나, 나는 망인의 후방을 목표로 이형환위(移形換位)를 발동했다.
츠팟!
잠시 후, 눈앞 시야가 일변했다. 조금 전까지 허공에 떠 있던 나는, 한순간 망인의 뒷골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방금 내가 있던 허공에는 수십 놈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망인의 팔이 후려친 사슬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이로써 두 팔을 모두 묶었다. 몸은 여전히 하강하고 있었다. 나는 무검과 일월신검을 일자로 세워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근력과 마력과 추가로 낙하하는 힘을 이용해, 있는 힘껏 팔을 휘둘러 망인의 머리를 찍어 내렸다. 내려친 두 검은 망인의 정수리를 깔끔하게 쪼개며 들어갔다.
뿌저저저저저저적!
처음 느낀 감촉은 단단히 굳은 살덩어리를 깎아 내리는 감촉이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걸림도 없다. 오히려 좌우로 갈라지는 망인의 몸에서 시커먼 것들이 분수처럼 솟구친다.
마치 막바지에 다다른 후룸라이드처럼, 두 검은 힘차게 망인을 갈라내려 가다가 발이 땅에 닿아서야 덜컹하며 멈췄다. 너무 강하게 힘을 준 탓인지 발이 흙 바닥 깊숙이 박혔지만, 나는 신속히 발을 빼어 몸을 물렸다. 물론 이대로 가면 섭섭하니 마력 폭발을 먹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꽈꽝!
폭음과 망인의 겉면이 울룩불룩하게 변하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서너 바퀴 공중제비를 돌아 후방으로 착지했다.
선 방어 후 이형환위로 후방을 점거, 이어서 정수리부터 베어 가르며 마력 폭발로 마무리.
이렇게 항상 애용하는 연속 공격은 완벽하게 들어갔다. 사용자건 괴물이건 웬만한 놈은 골로 보낼 위력을 지닌 공격이었지만, 상대는 수십 수백의 망인이 혼재된 증오 덩어리였다.
아까 까다롭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망인의 끝없는 재생력 때문이다. 이 망인은 체내에 섞인 모든 망인이 소멸하기 전까지 오직 맹목적인 증오를 불태우며 달려드는 괴물이었다.
얼마나 더 공격을 퍼부어야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무튼 시작은 좋다. 괜히 서두르지 않고 차차 깎아나갈 생각으로 나는 차분히 검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다시 망인을 바라본 순간 눈동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끄어어어어엉….
‘왜…. 저러지?’
예상대로, 어느덧 망인은 좌우로 갈라진 몸을 붙인 상태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복구 중이라고 해야 할까? 자세히 보면 갈라진 면에서 망인들이 흘러나와 물결처럼 넘실거리고 있다. 어떻게 떨어진 면은 연결한 듯싶었지만, 완벽히 이어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한 마디로 영 맥을 못 추는듯한 모습이었다.
‘혹시….’
나는 양손에 든 검을 내려다 보았다. 전 차원의 존재를 타격할 수 있는 무검. 마를 물리치는 일월신검. 그리고 모든 것을 잘라낼 수 있는 검술전문가의 권능. 혹시 이 삼박자가 어우러져 망인의 재생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일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곧바로 생각을 접었다. 예상이 맞든 틀리든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망인을 조금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다는 희소식이었으니까.
잠시 후, 어떻게 몸은 맞췄는지 망인이 비틀비틀 몸을 돌렸다. 역시 완벽히 재생은 못했는지, 서투른 바느질 솜씨로 억지로 기운듯한 단면이 눈에 밟혔다.
하지만 증오는 여전했다. 어느새 망인은 나를 향해 완전히 돌아선 상태였다.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검붉은 안광은 전보다 한층 가열된 적의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바로 양손을 마주 잡아 크게, 서서히 들어올렸다. 아마 내가 했던 대로 똑같이 내려찍을 모양이다.
하여, 나는 차분히 허리를 낮추어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지체 않고 안쪽으로 치고 들어갔다.
바야흐로 망인이 맞잡은 팔을 쭉 뻗어 추켜올린 찰나, 나와 같이 보조를 맞추는 한 날랜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살짝 눈을 돌려 기척이 감지된 곳을 응시했다. 그리고 1초 후, 망인이 차마 반응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힘껏 솟구치는 한 여인을 볼 수 있었다. 남다은이었다.
이내 망인의 양팔이 부르르 떨린, 극히 짧은 시간에.
남다은은 어떤 소리도 없이 고요히 10미터를 날아오르더니, 삽시간에 궤도를 비틀어 한 줄기 빛살처럼 내리 꽂혔다. 그리고 ‘설아’가 망인의 오른쪽 어깨를 세차게 베어 내리는 동시에 한 차례 비명이 터져 나오며 몸이 크게 기울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스치듯 지나가며,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다리를 힘차게 베었다.
쿵! 꽝!
첫 번째 소리는 망인이 주저앉는 소리. 두 번째 소리는….
풀썩!
우수수!
머리칼에 흙먼지가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걸로 보아, 땅을 내려친 소리인 듯싶었다. 쓰러지면서도 어떻게든 땅은 내려친 모양이다. 어쨌든 이렇게 헛된 수고가 되었지만.
나는 다시 동작이 굼떠진 망인을 응시했다. 이제 더는 무섭지 않다.
이후의 처리는 누워서 떡을 먹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쉬운 일이었다.
망인은 무너진 상태에서도 양팔을 무차별적으로 휘둘렀지만, 나와 남다은은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번갈아 망인을 공격했다.
나는 망인의 팔과 다리를 끊어내는데 주력해 추가적인 움직임을 봉쇄했다. 그리고 망인이 재생에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남다은은 이리 뛰어오르고 저리 뛰어오르며 상단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특히, 유독 목 부분만 집중적으로 찌르는 탓에 까닭 없이 간담이 서늘하기도 하였다.
결국 망인의 공격 주기가 차차 늦어지더니 종래에는 사지가 없어진 채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바람 빠진 비명만 흘리는 게, 입에서 뭔가를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끄어어엉…. 끄어어엉….
마침내 간신히 붙어있던 목마저 잘린 순간, 망인의 입에서 미약한 괴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이내 모든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어 버렸다.
“우리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요?”
제 3의 눈으로 망인의 죽음을 확인했을 무렵, 남다은이 생글생글 웃으며 이마를 닦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잘 어울리는 게 아니라, 잘 맞는 게 아닐까요.”
“그거나 그거나. 이렇게 손발도 잘 맞고, 또 속 궁합도 좋으니까….”
“그러고 보니 출현한 놈이 총 세 놈이었지요. 다른 클랜원들이 잘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킥. 다들 잘하고 있는 것 같은…?”
뒷말은 약간 낯부끄러운 말이라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남다은을 외면한 채 현재 전투를 벌이고 있는 클랜원들을 살폈다.
그리고 그 순간, 남다은이 말을 흐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건 도대체…. 뭐야?’
쿵!
생각과 동시에 한 망인이 몸을 허물어트렸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클랜원들의 전투가 이상했다. 분명히 조를 나눠 각각 한 놈씩 처리하라고 했는데, 지금 눈에 보이는 건 여덟 명이 한 번에 두 놈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즉 방금 한 놈을 처리했다는 소리였다.
“남다은.”
“바로 지원할게요.”
순간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생각했지만, 나는 일단 남다은과 함께 달렸다.
클랜원들이 전투 중인 주변 땅에는 칠흑 색 장막이 널찍하게 깔려있었다. 허준영이 시크릿 클래스 ‘침묵의 집행자’의 고유 능력인 ‘아포칼립스’를 사용한 듯싶었다. 아마 ‘전능 결계’의 권한으로 망인의 재생력을 억제한 것 같은데, 일단은 괜찮은 선택이었다.
이미 한 놈이 남았을 때부터 승기는 클랜원들에게 기울어 있었다. 거기다 나와 남다은이 동시에 후방을 후려치자, 간단히 남은 놈을 처리할 수 있었다.
똑같이 쿵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망인을 확인한 후 나는 클랜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후.”
“쯧….”
그리고 이내, 서로를 감도는 기류가 묘하게 이상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입을 꾹 문 채 씩씩대는 게 어떻게든 삭히려는 모양이지만, 한 명만은 아예 대놓고 상대 쪽을 흘겨보는 중이었다. 유정의 붉게 물든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뭔가 심상찮은 데?’
아무튼 우선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찰나, 갑작스레 유정이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참나.”
유정은 열 받은 얼굴로 머리를 크게 쓸어 올리더니 쥐고 있던 단검을 세게 내던졌다. 퍽 소리와 함께 단검은 땅속 깊숙이 박혔다.
“아, 짜증나…. 진짜 못해먹겠네.”
“…뭐라고요?”
대답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한별이었다. 한별 또한 무에 그리 화가 나는지, 평소 잘 참아왔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치 처음 통과의례 때 보였던 모습처럼 싸늘한 눈빛으로 유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너 지금 나한테 말한 거니?”
“네. 그런데요?”
한별이 도발적으로 대꾸하자 유정은 한 차례 어이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돌연히 땅속에 박힌 단검을 휙 걷어차 버렸다.
단검은 데구루루 굴러 한별의 발끝에서 멈췄다. 한별은 잠깐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마찬가지로 어이없다는 투의 헛웃음을 흘렸다. 차가운 웃음이었다.
“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하? 하? 미치겠네…. 야, 지금 몰라서 묻냐?”
“그렇다면요?”
“아…. 그냥 관두자. 오빠 있는데 싸우기도 싫고, 아무튼 다음부터 어그로 관리 좀 똑바로 해. 아까 전에 그쪽 때문에 다 뒤질뻔했으니까. 응?”
“지금….”
“됐으니까, 단검이나 내놔. 더 말하기도 짜증나.”
한별은 굉장히 억울한 얼굴이었다. 유정이 말을 자르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곧 나를 한 번 보고는 침착히 눈을 감았다. 한두 번 목울대가 움직이는 게 어떻게든 속을 가라앉히려는 것 같았다.
이윽고 눈을 뜬 한별의 눈동자는 여전히 싸늘했지만, 간신히 참는다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언니.”
“됐고, 단검이나 주우라고. 그리고 갑자기 왠 언니. 소름 돋네.”
한별은 입술을 꾹 짓씹었다. 그리고 미미하게 떨리는 손으로 발치에 떨어진 단검을 주우려는 찰나.
누군가 조용히 한별을 제지하더니 유정이 걷어찬 단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잠깐 유정을 쳐다보고는 알아서 받으라는 듯 공중으로 높이 던졌다. 부드러운 호선을 그린 단검은 이내 유정을 지나쳐 똑같이 발 부근으로 꽂혔다. 우정민이었다.
“사용자 이유정. 말이 조금 심한 것 같은데.”
유정은 아래를 흘끗 내려다보더니 나직이 말을 이었다.
“뭐가 심한데?”
“말은 똑바로 하지. 우리가 어그로 관리를 못한 게 아니라, 그쪽에서 필요 이상으로 우리 쪽으로 다가오지 않았던가? 아주 대놓고 말이야.”
“필요 이상? 아닌데? 응? 내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설령 서로간에 사소한 실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힘을 합쳐 처리하지 않았나. 우리는 동료가….”
“그래. 누가 뭐래? 아무튼 결국 그쪽에서 관리 못했다는 건 맞네.”
“…자꾸 그렇게 비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제 화가 나려고 하는군.”
유정이 어깨를 으쓱이며 비웃자 우정민이 매서운 목소리로 대응했다.
전후 사정은 모르지만 말하는 꼬락서니들을 보니 대충 짐작은 간다. 참 잘들 놀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어색한 얼굴을 한 신재룡이 양쪽 사이를 가로막았다.
“자, 자. 다들 왜 이러십니까. 전투도 끝났고 지금 클랜 로드도 보고 계십니다. 다들 그만하고 재정비나 합시다.”
그럼에도 누구 한 명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보면 갑작스러운 갈등이었지만, 나름 이해는 되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서 있는 지역의 필드 효과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또한 한 달이 넘은 여정과 연이어 치러온 전투. 다들 이곳까지 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쳐있고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였다. 어떻게 지금껏 내색 않고 잘 참는가 싶었는데, 결국 ‘증오의 대지’로 들어오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변했다. 그러던 것이, 조금 전 전투에서 사소한 실수로 불거진 것이다.
다들 어떻게 참으려고 노력들은 한 모양이지만, 결국 한 명이 참지 못해 터뜨렸다. 그에 덩달아 다른 사용자들도 터져 나왔을 것이고.
“후유.”
짧게 한숨을 내쉬자 클랜원들이 시선이 쏠리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는 연이어 입맛을 다시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대강 짐작이 갑니다. 아무래도 제 잘못이 가장 큰 것 같네요. 다들 미안합니다.”
“아, 아닙니다. 클랜 로드.”
신재룡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말했지만, 나는 더 말하지 말라는 의미로 머리를 흔들었다.
그때 안솔이 입을 오물거리며 유정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었고, 유정은 수 차례 눈을 깜빡이더니 허겁지겁 허리를 굽혔다.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그만.”
그러자 막 단검을 주우려던 유정의 손이 우뚝 멈췄다.
“급하다고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한 내 잘못이고.”
나는 허공섭물(虛空攝物)의 묘리를 일으켰다. 단검은 저절로 뽑혀 나오더니 핑그르르 돌아 내 손으로 들어왔다.
유정이 서서히 허리를 피어 올려 나를 조심스레 쳐다본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너를 데려온 내 잘못이고.”
“오, 오빠. 그게 아니라….”
유정은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주변 클랜원들도 다들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는데, 나도 지금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며 손에 쥔 단검을 내려다보았다.
스쿠렙프. 마족 벨페고르가 사용하던 단검으로, 잘못 사용하면 착용자의 정신을 미치게 만드는 일종의 마검이나 다름없다. 나는 잠시 동안 이것을 쳐다보다가, 붉은빛을 요요히 내뿜는 검신을 양손으로 지그시 부여잡았다.
“애초에 네게 이걸 준 것도 내 잘못이지.”
그리 말하는 것과 동시에, 있는 힘껏 힘을 주어 단검을 비틀었다.
콰득, 콰드득!
철이 강제로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스쿠렙프가 반으로 뚝 끊어졌다. 그 상태로 몇 번 더 우그러트리자, 꽈배기처럼 비틀린 감촉이 이내 수 갈래로 찢어져 조각으로 변하는 게 느껴졌다.
잠시 후, 나는 가볍게 손을 털어 고철로 변한 스쿠렙프를 내던졌다.
툭!
“어….”
그리고 아래를 보고 있던 유정은,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 작품 후기 ============================
아 죄송합니다. 오늘 조아라에 다녀왔는데, 한 분이랑 조금 늦게까지 이야기를 하느라 약간 늦었네요. 하하. 원래 오늘 사용자 정보를 한 명씩 올리려고 했는데, 시간이 상당히 늦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꿀맛 같은 휴식을 허락해주시기를 바라며, 독자 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하하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