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59
00458 선택. 대 영웅? 아니면 마그나카르타? =========================================================================
“이이이익! 저, 절대로 안 쓸 거야! 맹세의 검? 웃기지 말라 그래! 이거 절대로 쓰지 않을 테니까! 아니, 아니지. 두고 봐. 응? 기적이 돌아오면 싹 다 처음으로 돌려버릴 거니까, 어디 한 번 두고 봐!”
“차, 참아라. 안솔. 그래도 명색이 구원자이지 않은가. 이런 모습은….”
“구원자고 나발이고! 아 놔봐요, 좀 놔보라고요. 왜 아까부터 다들 내 팔을 잡지 못해서 안달들이에요? 네?”
“어, 어헉.”
안솔의 반항은 매우 거칠었다. 말투나 행동이 어찌나 험하고 거세었는지, 어지간한 허준영조차도 몇 걸음 물러서게 만들 정도였다.
이윽고 양팔을 거세게 털고 나온 안솔은 씩씩거리며 다급히 허리춤을 더듬기 시작했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안솔을 보며 나는 머리를 갸웃했다. 정작 당황한 건 나인데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진 안솔의 말을 들은 순간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오, 오라버니의 키스인데! 그것도 무려 첫 키스인데! 내가 괜히 행운을 올린 줄 알아? 어?! 먼저 뺏으려고 수백 가지 계획을 세워놨단 말이야!”
뭐? 첫 키스? 아, 아니. 수백 가지 계획?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곧바로 연례 행사를 떠올렸다.
일년 중 단 하루. 안솔과 내가 매우, 그리고 유난스러울 정도로 자주 부딪치는 날.
사실 이루어지는 상황이 아주 절묘해 지금껏 별다른 말은 못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 모든 게 의도된 계획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안솔의 행운 능력치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하지만 극심한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이 무슨 말을 꺼냈는지도 모르는지, 안솔은 소중히 간직하겠다던 맹세의 검을 우악스럽게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앙증맞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마구 때리기 시작한다.
콩콩콩콩!
“나빠! 나빠!”
그래도 그렁그렁한 눈동자와 울먹울먹한 목소리를 보고 듣자니, 정말로 분하기는 한 모양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이미 나와 수 차례 입을 맞춘 전적이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다은이와 한나. 두 여인은 매우 뜨끔한 얼굴로 안솔을 쳐다보더니 사이 좋게 등을 돌려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별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둘을 쏘아본다.
상황은 삽시간에 일변했다. 주변을 가득 채우는 소란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와, 일단 생각을 정리할 요량으로 연초 한 대를 꺼내 들었다.
그때였다. 막 불을 붙이려는 찰나, 쓴웃음을 흘리는 신재룡이 터벅터벅 걸어왔다.
“역시 안솔양은 안솔양인가 봅니다. 처음 요새에 들어왔을 때는 정말 걱정했는데, 이제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그렇군요. 그런데 왜 그렇게 씁쓸한 얼굴이시죠.”
“그러는 클랜 로드님의 얼굴도 만만치는 않으십니다. 하하하.”
“…아마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겠지요.”
그래. 저래야 안솔답지.
입안을 감도는 향이 무척이나 쓰디써 나는 얼른 연기를 뱉어내었다. 이내 한 대 피우겠냐는 뜻으로 눈짓을 보내자 신재룡이 차분히 머리를 가로젓는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 클랜 로드. 먼저 축하하겠습니다. 이로써 현과 의뢰인들도 구출했고, 더불어 용이 잠든 산맥도 공략했으니까요. 아마 돌아가면 북 대륙이 깜짝 놀랄 겁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약간 이르다고 생각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클랜원은 거의 끝났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으음. 구출한 사용자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깨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던데요.”
“오랫동안 정신을 잃은 상태라 그렇습니다. 차후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일단 현재 몸 상태는 매우 양호합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저 정체 모를 물질을 조금 담아두었습니다.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나오면 이 물질을 연구해 치료제를 만들 생각입니다.”
“역시 철저하시네요. 잘하셨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하하….”
멋쩍게 웃는 신재룡을 보며 나는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 당연한 일을 왜 쟤는 못하는 걸까요?
진지하게 묻고 싶었지만 간신히 속으로 삼킬 수 있었다.
이윽고 한두 번 목을 가다듬은 신재룡은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클랜 로드. 이제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 말에 나는 공터를 감싸는 황토 빛 벽면을 면밀히 둘러보았다. 동시에 나는 사내의 말을 떠올렸다.
‘지하 1층에서 볼 일을 마치시면, 지하 2층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사내는 어디에 있다는 말을 자세히 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이 장소에 지하 2층으로 향하는 통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
그렇게 주변을 쭉 둘러보다가 나는 하나씩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지하 2층은 용을 봉인한 장소다. 용은 지하 2층에서 지면을 뚫고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들어온 구멍의 더욱 아래쪽에 그 장소가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위쪽으로 시선을 올렸다.
우리가 공중 부양으로 내려오기 직전 서 있던 장소. 그곳에서 아래쪽 방향으로 쭉 시선을 내려보자, 확실히 볼 수 있었다. 나는 절반쯤 태운 연초를 튕겼다.
“클랜 로드?”
“사용자 신재룡. 클랜원을 모아주세요.”
의아한 물음에 가볍게 대꾸해준 후, 나는 지체 않고 걸음을 옮겼다.
벽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확실히 멀리서 봤을 때보다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손을 누르듯이 대고 문질러보자, 역시나.
벽면에서 약간이기는 했으나 네모난 모양으로 볼록하게 두드러진 감촉이 느껴졌다. 아마 만들었을 때는 미닫이 식으로 문을 만든 모양인데, 세월이 흐르며 그대로 굳어버린 모양이다.
간신히 찾은 틈 안으로 나는 억지로 손가락을 우겨 넣었다. 틈은 손끝도 채 안 들어갈 정도로 굳은 상태였으나, 어떻게든 걸칠 수는 있었다. 이내 그대로 힘을 주어 옆으로 밀자 빠드득, 균열이 생기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단단하다. 하기야 수천 년이 흘렀으니 어지간힌 근력 정도로는 열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바로 마력을 일으켜 오른팔로 흘려 보냈다. 그리고 한층 상승한 근력으로 있는 힘껏 문을 밀어젖혔다.
빠드득! 빠드드득!
끼이이이이이이익!
그러자 틀을 따라 벽면이 갈라져 터지기 시작하더니, 곧 거친 소음을 울리며 벽이 오른쪽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세를 따라 완전히 문을 밀어버리자 캄캄한 공간과 안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어느새 공터에 일었던 소란은 사그라져있었다. 신재룡이 내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는지 등 뒤로 클랜원들이 색색 내뱉는 숨소리가 들렸다.
잠시 구출한 사용자들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으나 어차피 모두 자고 있는 상황이었다. 얼른 다녀오면 되겠다고 생각해,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직 남은 장소가 있는 것 같네요. 구출한 사용자들은 잠시 이 장소에 놔두기로 하고,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후, 나는 먼저 한 걸음 내디뎠다.
*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깊었다. 처음 계단을 밟은 지 약 30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물론 함정이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천천히 내려가는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그러나 그것도 이제 슬슬 끝이 보이려는 걸까. 어느 순간, 앞에 둥둥 떠 있던 라이트 구체가 어딘가에 가로막힌 듯 더는 나아가지 않는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안력을 돋워 불빛이 비추는 곳을 응시하자, 어둠이 스며든 칠흑 빛 색이 보였다.
앞으로 바짝 다가가 살펴보자, 녹이 심하게 슬어있는 온갖 기하학적 문양이 그려진 커다란 철문을 볼 수 있었다. 혹시 함정 마법 진인가 해서 제 3의 눈으로 들여다봐도 떠오른 정보에는 아무 이상도 없다.
나는 조용히 손을 들어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을 앞으로 굽혔다. 문을 열어 안으로 진입할 테니,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각자 준비하고 있으라는 신호였다.
이번에 철문은 다행히 둥그런 고리가 달려있었다. 나는 속으로 숫자를 세며 쇳기가 묻은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셋을 센 순간, 두어 걸음 물러서 단번에 문을 잡아당겼다.
끄그긍! 끄그그긍!
꽤 저항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결국 육중한 철성과 함께 문은 삐거덕삐거덕 열리었다.
그와 동시에 비로소 지하 2층의 내부, 마그나카르타가 봉인된 장소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빛이 비쳐들고 있었다. 시선을 들어보자 뻥 뚫려있는 거대한 구멍과 푸른 하늘이 보였다. 예상대로 이곳에서 마그나카르타가 뚫고 올라간 모양이다.
다시 시선을 내려보자, 거의 공터와 비슷할 정도의 크기를 지닌 내부가 눈에 들었다. 마그나카르타가 꽤 난리를 쳤는지 천장이 완전히 부서지기는 했지만, 주변 벽면이 회색 벽돌로 이루어진걸 보니 마치 커다란 회관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바닥에 그려진 마법 진은 엄청난 크기를 보이고 있었다.
일곱 개의 원이 올림픽 마크처럼 겹쳐져 홀 전체를 가득히 메우고 있을 정도였다. 그 안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의 무수한 문양도 각인돼있었으나, 당연히 내가 모르는 문양이었다.
다은은 살짝 가늘어진 눈으로 내부를 훑더니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꼭…. 소환의 방을 보는 느낌이네요.”
그 말도 맞다. 홀에 둥글게 퍼져있는 일곱 개의 비석. 그리고 비석들을 중심으로 그려진 웅대한 마법 진은 달랐으나, 중앙에 높게 솟은 단은 흡사 천사가 앉은 제단을 보는듯했다.
또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은, 제단 위쪽에 각각 검은빛과 하얀빛을 내뿜는 두 개의 구체가 고요히 떠 있다는 것.
나는 잠시 동안 홀을 지켜보다가, 제단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김수현. 조심해라.”
“괜찮으니까 대기하고 있어.”
허준영의 경고에 나는 기다리고 있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머셔너리라는 클랜에서 내가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위험한 일이 나올 때마다 도맡아 나서는데 있었다.
실상은 제 3의 눈으로 하나하나 확인하고 움직이는 거지만, 아무튼 사정을 모르는 클랜원들이 보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이윽고 목표했던 지점에 도착한 순간 나는 머리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물씬 풍겨오는 한기는 둘째 치고서라도, 거의 가슴팍까지 올라올 정도로 제단의 길이가 높았기 때문이다.
아니. 제단이 아닌가?
마주보는 면을 자세히 보니 예리한 칼로 그어낸 듯 긴 선이 그어져있다. 마치 뚜껑을 덮은듯한 형상이라, 이대로 들어내면 안쪽에 무언가가 들어있을 것만 같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단의 윗면 또한 이상했다.
두 구체가 떠 있는 위치에는 자그마한 홈이 패여 있었으며, 중앙 윗면으로 가지런히 나열된 일곱 개의 구슬이 있었다. 조막만 한 크기의 구슬이 연한 초록빛을 띠고 있는 게, 심상찮은 기운을 뿌리는 중이었다.
아마 어설프게 만졌다가는 좋은 꼴은 못 보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앙 아랫면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두 개의 부분이 있었다. 형체는 사람의 손 모양과 비슷했는데,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찍힌 부채꼴과 비슷한 형상을 띠고 있다. 각각 방향이 향하는 곳은 바로 검은 구체와 하얀 구체가 떠 있는 지점이었다.
나는 제단에 찍혀있는 손바닥 모양의 형상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러다가, 차분히 손을 올려 안으로 들어가도록 손을 맞추어 대었다. 그리고 일어날 반응을 기다렸다.
‘…….’
하지만 생각했던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곧 크게 마력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 안 회로를 따라 양팔로 흘려 보낸 후, 마찬가지로 안으로 투사하듯이 벽면으로 흘려 보내었다.
그렇게, 약 10초 정도 마력을 꾸준히 흘려 보냈을 즈음.
비로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화아아악!
한순간 손바닥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지더니, 손을 대고 있던 형상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와 시야를 하얗게 물들인다.
반사적으로 손을 떼려고 했지만, 나는 곧바로 생각을 고쳐 침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계속해서 눈을 두드리던 빛이 서서히 사그라졌다 싶을 즈음, 나는 살그머니 눈을 떠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볼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일변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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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참 애매하게 자정에 못 맞추네요. 오늘은 볼 일이 있어 약간 늦게 시작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조금 아깝기는 합니다. 하하.
아. 제 뜰에 고장난선풍기 님이 올려주신 고연주 팬 아트가 있는데, 자꾸만 눈이 가네요. 뭔가 제가 생각했던 고연주는 물론이고, 평소 제 이상형(?)인 여인을 그려주신 것 같습니다. 실은 제가 연상의 누나를 좋아하거든요. (__ )*
그리고 보상은…. 아마 지금까지와는, 꽤 특이한 보상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
PS.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을 주신 분들께는 항상,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넙죽.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