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72
00471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
어느 도시에도 밤은 찾아온다.
그리고 어느 도시에도 밤의 거리는 존재한다.
밤의 거리. 사실 홍등가나 노예 시장 등 여러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지만,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도시 내 밤이 되면 열리는 시장을 밤의 거리라고 부른다.
밤의 거리는 어느 것 하나 딱 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나, 그래도 공통적인 특성만 짚어낸다면 한 단어로 요약할 수는 있다.
바로 욕망.
앞서 말했듯이 처음에는 사창가나 도박장이,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가면 암거래나 청부 살인이, 거기서 또 들어가면 아레나나 노예 시장 등등. 즉 낮에는 드러날 수 없는 사용자들의 어두운 욕망이, 밤에는 실제로 구현화돼 서로 오가는 거리인 것이다.
기실 어느 도시도 밤의 거리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정도의 차이는 있다. 허용과 비 허용의 차이라고나 할까. 밤의 거리를 허용하는 도시도 있는 반면 허용하지 않는 도시도 있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큰 상관없는 제재에 불과하다. 각 도시를 거미줄처럼 잇는 워프 게이트가 있는 만큼, 하나라도 허용되는 도시가 있다면 이동하면 그만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북 대륙 내 밤의 거리가 가장 성황을 이루는 도시는 바로 코란, 남부 소 도시 코란이다. 가령 모니카가 철저히 밤의 거리를 배척하는 도시라면, 코란은 처음으로 용인한 도시였다.
이따금 들어오는 비 허용 도시의 비난에도 오히려 ‘우리 도시 일이니 이러쿵저러쿵 말라.’는 말로 대응한 코란은, 현재 북 대륙 내 가장 활성화된 밤의 거리를 갖고 있다.
남부 소 도시 코란.
붉은빛이 흘러 야릇한 기운이 감도는 거리에 여러 건물이 경쟁하듯이 자신을 과시하고 있었다. 외관의 화려함으로 사용자들을 끌어당기기도 하고, 또는 직접 나서 음란한 자세나 동작으로 유혹한다. 물론 스스로 들어가는 사용자도 적지 않다.
“이 아이 좀 괜찮은데? 나이도 어려 보이고, 피부도 매끈매끈하고. 마음에 들어. 얼마야?”
“예? 하지만 이놈은 아직 교육이 덜된 놈이라…. 사용자 아카데미에서 나온 지 3달도 채 안된 놈입니다.”
“아 삼촌! 왜 이래. 나랑 한두 번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이런 애가 좋아. 봐봐. 막 창피해하는 거. 아직 풋풋한 현대의 향기가 물씬~. 호호호.”
“에이…. 쯧! 그럼 금화 100개, 아니 200개! 그 이하로는 절대로 안됩니다.”
한 뚱뚱한 사내가 혀를 차더니 손으로 V자를 그리며 말했다. 금화 200개 이하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무언의 단호함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사내는 곧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흥정을 포기할 줄 알았는데, “응? 좀 비싼데?”라 중얼거린 여인이 선뜻 백금화 2개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이내 강제로 손에 쥐어지는 금화와 여인 쪽으로 끌려가는 앳된 사내를 보며, 뚱뚱한 사내는 멍한 기색을 비쳤다.
“헤~.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 사랑스럽네. 오늘 하루 재미있게 놀고 곱게 보내줄 테니까, 너무 걱정은 말고. 그럼 간다? 호호, 호호호!”
여인이 가는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잡아 끌었다. 앳된 사내는 싫어하는듯하면서도 은근히 기대하는 얼굴로 끌려갔다. 자신을 처음 산 여인의 미모가 상당했던 탓이다.
그러나 멀어지는 둘을 보는 뚱뚱한 사내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왜냐하면 방금 앳된 사내를 사간 여인은 단골이었고, 그런 만큼 어떤 취미가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인은 남색을 즐기는 매우 이상한 성벽이 있었다. 말인즉슨, 조금 전 앳된 사내는 일종의 수비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였다.
“염병할. 정작 하지도 않을 년이 곱게 보내기는 개뿔! 아오, 재수도 없으려니….”
아마 가는 길에 어디 한 군데 더 들러, 공격 역할을 할 우락부락한 사내 한 놈 더 구하겠지. 집으로 돌아가면 강제로 남색을 시키고 자신은 말 그대로 재미있게 구경할 테고. 아마 내일 아침 그놈은 어기적어기적 기어올 거다. 그렇게 생각한 뚱뚱한 사내는 침을 탁 뱉고는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가는 도중 입구에서 수줍게 호객하는 여인의 뺨을 세게 후려친 것으로 보아, 화풀이를 한 듯싶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한쪽에서 조금 전 풍경을 조용히 구경하던 또 다른 사내는, 뚱뚱한 사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지체 않고 걸음을 옮겼다. 빛 바랜 로브를 깊숙이 덮은 상태라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키는 훤칠하리만치 커 보였다.
어느 사용자나 이상하다고 생각할 옷차림이었으나 밤의 거리에서는 예외였다.
아니. 사실 이런 홍등가에서는 이런 옷차림의 사용자 또한 그리 환영 받지는 못한다.
차라리 암거래나 청부 살인이라면 모를까. 누가 봐도 ‘나 수상한 사람이요.’라는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어, 성매매를 주업으로 삼는 거리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상한 옷차림을 한 사용자에게는 웬만하면 호객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하나의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스스로 들어가는 경우였다. 그럴 때는 성매매 업소도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거절하지 않는다. 정체를 숨기고 싶어하는 사용자도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윽고 뚱뚱한 사내가 들어간 건물 안으로 따라 들어가자, 어딘가 야릇한 음악과 시끌벅적한 소음이 입구를 웅웅 울렸다.
사내는 잠깐 주변을 살피다가, 옆으로 통하는 문을 살그머니 열어보았다.
쿵, 쿵, 쿵, 쿵!
“잘한다~!”
“어이~! 엉덩이 좀 더 흔들어봐!”
안쪽에는 커다란 공간이 있었다. 연한 붉은빛을 조명한 중앙에는 무대가 서 있었는데, 거의 알몸과도 다름없는 서너 명의 여인이 천박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으로는 무수한 사용자가 이리저리 환호하며 무언가를 던지는 중이었다.
잠시 고소를 지은 사내는 바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주저 않고 몸을 돌려 정면의 카운터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역시나 카운터에도 야한 복장을 입은 여인이 있어, 카운터로 걸어오는 사내를 보며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영업용 미소였다.
“어서 오세요 오빠! 우리 이브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브에는 처음이신가요?”
“…처음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말은 듣고 왔으니, 설명은 괜찮아요.”
“그러시구나~. 알았어요 오빠. 그럼 무대 입장을 원하세요? 아니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룸을 원하세요?”
“룸으로 하지.”
사내가 간단히 대답하자, 여인은 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Ok. 룸으로 하시고…. 룸의 기본 가격은 금화 50골드이며, 조건이 붙을 때마다 추가 금액 있어요~. 아. 혹시 원하시는 스타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으음. 얼굴은 섹시하면 좋겠고, 몸은 약간 마르면서도 가슴이 큰 스타일이면 좋겠는데.”
“…그런 스타일이 너무 많은데~.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는 게 초이스에도 좋아요!”
“음~. 그럼 한 번 보면, 다시는 잊을 수 없을 정도의 끈적끈적한 여인으로 골라주겠어? 밤에 생각나서 자기 위로를 할 정도로 말이야.”
“…….”
언뜻 들어보면 사내의 말은 꽤 마니악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사내를 보며 싱글벙글 웃던 여인의 눈동자에, 한순간 이채가 스쳤다.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으나 재빠르게 사내를 살펴본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음에도 사내 또한 여인이 자신을 주시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윽고 삽시간에 원래의 얼굴을 회복한 여인은 품속에서 작은 수정 하나를 꺼내주었다. 사내는 군말 않고 수정을 받아 들었다.
잠시 후, 여인이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2층. 왼쪽 끝에서 세 번째 방이에요. 기다리고 계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아, 그쪽 예쁘네요.”
여인이 코웃음을 치는걸 확인한 후 사내는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방음이 괜찮으니 올라가는 계단은 조용했으나, 올라선 복도에는 뜻 모를 뜨거운 바람이 맴도는 중이었다.
사내는 조용이 좌우를 둘러본 후 여인이 가르쳐준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왼쪽에서 세 번째 방 앞에 서서, 심호흡과 동시에 수정구를 문고리에 붙였다.
이윽고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사내가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이었다.
“으읍!”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의 부드러운 손길이 사내의 입을 틀어막고, 가슴을 끌어당겼다. 사내는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간신히 옆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내가 시선을 돌린 곳에는, 시커먼 그림자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
“박환희를 만났습니까?”
“네. 그 편이 일이 더 쉬우니까요. 흥.”
조용히 입을 열자 고연주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가 곧바로 흘러들었다. 다만 말끝에 끼어있는 콧소리가 제법 아니꼬운 게, 보자마자 일의 경과를 물은 게 굉장히 열이 받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나는 고연주의 서운한 눈초리를 애써 무시한 채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지. 아주 똑똑해. 그리고 역시나 다들 알고 있었네? 그래 맞아. 머셔너리 사건은 내가 주도했어. 그런데 너희도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건 똑같이 눈감았다는….)
책상에는 두 개의 수정구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둘 다 말간 빛을 흘리며 어떠한 영상을 재생하는 중이었다.
어떠한 영상이라 함은, 바로 남부 자유 연합의 회의 내용이었다.
아까 고연주가 알아낸 것들을 들으며 한 번 돌렸고, 이번이 두 번째로 돌리는 것이었다. 물론 돌릴 때마다 내 심기를 거스르는 말들이 족족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미친놈들이군요.”
결국 이어지는 말들을 참지 못해 뇌까리자, 몇 번 입맛을 다신 고연주가 말을 이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김수정과 송희선의 관계를 알아내자, 절로 남부 자유 연합에 의심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수현이 박아놓은 그놈도 있겠다. 얼씨구나 연락을 넣었지요.”
“…그놈이 군말 없이 도와줍디까?”
“줍디까? 뭐예요, 그 마흔 살은 넘은 것 같은 말투는. 아무튼 이래저래 말이 많기는 했는데, 결국에는 하라는 대로 했어요. 그런데 지가 뭐 어쩌겠어요? 수현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빌빌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을 텐데. 안 그래요?”
“으음.”
“그나저나 수현은 정말 대단하네요. 사실 처음에 그놈을 밀어줄 때만 해도 왜 도와주는지 이해를 못 했는데,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지 알고 미리 대비를 해놓은 건가요?”
“…글쎄요.”
나는 일부러 애매하게 답했다. 고연주의 질문은 1회 차와 관련된 것이기도 했거니와, 사실 보험의 일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기실 남부 자유 연합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는 익히 알고 있다. 실제로 춘추 전국 시대가 오게 된 것도 그놈들이 크게 일조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마침 내 눈에 띈 사용자가 박환희였다.
박환희는 연합군과의 전쟁 이후 동료도 기반도 모두 잃어버린, 소위 쫄딱 망한 상태였다. 사용자 아카데미에서 보였던 태도나 성향을 떠올린 나는, 장고를 거친 후 박환희를 밀어주기로 결심했다. 물론 우리 클랜이 아니라 남부 자유 연합을 통해서.
확실히 고연주의 말대로, 1회 차를 대비해 들어둔 박환희라는 보험은 빛을 발했다. 지금 이 수정구만해도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뭔가 부족한 기분을 지울 수 없어 나는 머리를 갸웃하고 말았다. 지금 눈앞에 해답이 있는데, 해답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기분이랄까?
‘모든 공격에는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살문의 말을 떠올린 나는, 책상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머셔너리와 남부 자유 연합은 그동안 크게 친하게 지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나쁜 관계도 아니었다.
애당초 도시가 다른 만큼 서로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나 해야 할까? 더구나 우리의 행보를 싫어하는 사용자들은 많아도, 연합의 세력을 생각하면 사실 크게 아쉬울 것도 없을 터.
“…….”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나마 접점이라고 해봤자, 조금 전 수정구에서 확인한 이제 곧 서부 도시에서 일어날 대표 클랜 선발에 관련한 일이 있을 뿐.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상하다. 왜냐하면 마법 도시 마지아에 신경을 쏟을 예정이라, 헤일로에 큰 관심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놈들이 귀머거리가 아니라면….
“아.”
“왜요?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어요?”
그때였다.
스치듯 지나가는 한 생각에, 나는 책상을 두드리던 걸 멈추었다. 그리고 고연주의 의아한 목소리를 흘려 들으며 입을 꾹 깨물었다.
설마 이놈들….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건가?
생각이 미친 순간, 문득 까닭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하하하하!”
나는 실로 오랜만에, 신나게 웃을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근래에 꽤 중요한 결정을 한 터라, 요새 마음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네요. 제가 제 길을 잘 걸어가고 있는지 스스로 결심이 안 선달 까요? 아무래도 마음을 추스르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