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74
00473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
방문한 사용자는 스물 중후 반은 돼 보이는 젊은 여인이었다. 적당한 키에 호리호리해 보이는 여인은 활동성이 좋아 보이는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상당한 미인이었으나, 약간 올라간 눈썹이나 야무진 눈빛은 꽤 드세 보이는 느낌을 주었다. 특히 오른쪽 눈가에 새겨진 옅은 자상이 인상적이다.
어떻게 보면, 이유정과 비슷한 사용자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르테미스 클랜 로드 우설희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머셔너리 클랜 로드 김수현입니다. 반갑습니다.”
여인, 아니 우설희는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손을 마주 잡자 거친 감촉이 느껴졌다. 아르테미스는 연합 내 전투를 담당하는 네 클랜 중 하나이며, 우설희는 그런 아르테미스의 클랜 로드이다. 그런 만큼 어느 정도 괜찮은 사용자 정보를 가지고 있는 듯싶었다.
잠시 후 약간의 탐색 시간을 거치고 나서, 우설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네. 명성은 익히 들어왔어요. 이렇게 불쑥 찾아왔는데도 방문을 허락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해요.”
“사실 조금 놀라기는 했습니다만, 이름 높은 연합의 인원이니까요.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어머? 심정을 되게 솔직하게 말씀하시네요?”
“돌려 말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그리고 저는 솔직함 빼면 시체인 사내라서요. 하하하. 아무튼, 머셔너리에 오신 걸 다시 한 번 환영합니다.”
나는 일부러 성미에 맞지 않는 너스레를 떨었다. 이야기에 앞서 기운을 부드러이 풀기 위해서였다. 우설희 또한 이런 환대는 예상치 못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떠 끔뻑였다.
이윽고 나는 손을 내밀어 자리를 권했다. 그러자 사양 않고 매끈한 엉덩이를 내리는 우설희를 보며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1. 이름(Name) : 우설희(5년 차)
2. 클래스(Class) : 빅토리아 정예 용병(Rare, Victoria Elite Mercenary, Master)
3. 소속 국가(Nation) : 바바라
4. 소속 단체(Clan) : 아르테미스(Clan Rank : A Minus)
5. 진명 • 국적 : 죽음 위에 피는 꽃 • 대한민국
6. 성별(Sex) : 여성(28)
7. 신장 • 체중 : 171.3cm • 58.4kg
8. 성향 : 첨예 • 음란(Sharp • Obscene)
레어 클래스 말고는 딱히 별다른 점은 찾을 수 없다. 성향이 조금 재미있기는 했는데, 우리 클랜원들을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예전에 처음 음란이라는 성향을 봤을 때는 자못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 말이다.
아무튼 이냥저냥 괜찮은 수준이라 생각하며 나는 깍지를 껴 우설희를 응시했다.
고연주가 가져온 정보에 의하면, 우설희는 신혁의 파벌에 속해있는 사용자였다. 그리고 신혁은 이번 사건을 계획하고 주도한 천인공노할 놈이고.
설마 나를 잡아 잡수라고 찾아오지는 않았을 터. 그렇다면 어떤 일로 이렇게 몸소 찾아왔는지, 한 번 물어봐 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러면 오늘은 어떤 일로 찾아오신 거지요? 사실 지금껏 연합이랑은 이렇다 할 관계를 맺지 못한 터라, 이렇게 방문하신 이유가 사뭇 궁금해지네요.”
“아…. 하기야 지금껏 머셔너리 클랜과는 거의 남남이나 다름없었죠.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같은 남부 클랜인데요. 호호.”
우설희의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웃을 수 있었다. 지금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신혁의 상태를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머셔너리를 용이 잠든 산맥으로 보낸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전원 생환한 것도 모자라 용이 잠든 산맥을 공략했고, 의뢰인을 제외한 다른 사용자들까지도 구출했다.
한 마디로 의도는 좋았는데 결과가 시궁창이라고 해야 할까. 말인즉슨 계획이 보기 좋게 실패함으로써, 신혁은 이번 헤일로 선발은 물론이요 차후 연합 내 입지가 상당히 약화될 거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아직 길이 없는 건 아니다. 신혁은 어떻게든 머셔너리가 헤일로를 포기하게 만들고,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현재 흐르는 상황을 반전시킬 묘수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차후 입장을 말할 때도 할 말이 아주 없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튼, 우선은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볼 요량이었다.
“흠.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지 상당히 기대가 되는군요.”
“으음…. 돌려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시니, 단도직입으로 말씀 드릴게요. 그런 만큼 어느 정도의 무례는 용서해주시길 바래요. 이번에 제가 찾아온 이유는 바로 용이 잠든 산맥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우리 연합에서도 그동안 용이 잠든 산맥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차차 정보를 모아나가는 중이었고, 곧 역대 최고 규모로 원정에 나설 계획이었죠.”
“용이 잠든 산맥이라…. 그렇군요. 하지만 말씀하신 지역은 이미 공략이 끝났습니다만. 그리고 아시다시피, 용이 잠든 산맥은 그 누구에게도 귀속된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알아요. 사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제 와서 그걸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일이죠. 하지만 이번에 연합, 아니 아르테미스에서 말씀 드리고 싶은 건 바로 용이 잠든 산맥에서 얻으셨을 성과에 대해서 에요.”
“…성과라. 설마 지금 머셔너리 보고, 성과를 나누자는 말씀이십니까?”
“어머. 머셔너리 로드도 참. 저희를 어떻게 보시고 그런 말씀을…. 사람이 염치가 있지, 절대로 아니에요.”
일순간 얼굴이 굳는걸 느꼈으나, 바로 이어진 우설희의 말에 곧바로 풀 수 있었다. 우설희의 방문 이후 계속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지만, 성과는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부분이다.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오롯한 권한. 이 권한을 건드림에도 사람 좋게 웃는다는 건, 그냥 호구도 아닌 개병신임을 인증하는 셈이었다. 그러기는 싫었다.
우설희는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내 얼굴을 살피더니,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번에 구조해오신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망한 사용자들의 장비를 전부 챙기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저희 쪽에서도요. 용이 잠든 산맥의 정보를 모으러 들어간 연합의 사용자들이 꽤 있거든요? 우리가 원하는 건 그 사용자들의 장비, 아니 유품이에요.”
“유품이요?”
“네. 유품. 우리 연합은 정말로 따뜻한 가족 같은 연합이에요. 한 명 한 명의 클랜원을 사용자가 아닌 가족으로 생각하죠. 실제 가족을 이룬 분들도 적지 않고요. 그런 만큼 최소한 그분들의 유품이라도 회수해, 가족을 잃은 분들의 슬픔을 달래고 싶어요. 아, 물론 회수할 때는 합당할 비용을 치르겠어요.”
“오…. 그렇군요.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차마 몰랐습니다.”
아주 경우 없는 말은 아니다. 사용자들 중에서 지인의 유품을 간직하는 이가 없는 것도 아니고, 비용도 치른다고 했다. 즉 명분이나 절차상에서는 하등 문제가 없는 것이다.
또한 머셔너리 입장에서도 이런 처리 방법이 나쁜 건 아니었다. 적어도 창고에 쟁여두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하지만 이게 연합의…. 아니 신혁의 본심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는 일환으로, 나는 슬슬 예민한 문제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어떠세요? 머셔너리 로드. 피차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닌 듯싶은데 말이죠.”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 확실히 괜찮은 의견 같군요. 하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저희 쪽 입장도 약간 애매한 터라.”
“애매하다니요? 제가 말한 것 중에 무슨 문제라도….”
“아니요. 서로 관행을 따르니만큼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말이라는 건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아니겠습니까? 사실 그동안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머셔너리를 비방하는 기록이 나온 게 한두 개가 아니라서요. 그런 만큼 이번 사건을 빌미로 또 어떤 기록이 나올지 모르겠네요. 그러느니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나는 눈을 가늘게 만들어 앞을 주시했다. 그러자 우설희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사실 조금 전 말은 저격이라는 의도가 들어간, 다분히 공격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록의 대다수가 코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코란을 관리하는 클랜이 연합이라면. 우설희는 분명 내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으리라.
이윽고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후, 우설희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깊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머셔너리 로드. 그동안 머셔너리를 비방하는 기록이 코란에서 나온 점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이기는 해요. 하지만 그것이 연합의 뜻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해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오해라. 일단은 부인하지 않고 시인했다는 점이 의외였다. 어디 어떤 변명을 할지 궁금했기에, 나는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알아요. 언짢으실 거라는걸. 그 점은 무척 송구스럽게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은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코란의 관리 방침은 바로 최대한의 자유 보장에 있죠. 그 점에 매력을 느껴 거주하는 사용자들도 적지 않고요. 저희가 그런 기사를 내지 못하도록 억압을 가한다면, 그것은 여태껏 이어온 방침을 위배하는 것과 진배없어요. 그리고 코란에서만 기록이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흠. 그렇긴 합니다만.”
변명을 하기는 했으나 속으로 코웃음이 나오는 변명이었다. 그래도 겉으로는 약간 수긍하는 척을 해주자, 나름 기회라고 여겼는지 우설희의 눈이 반짝였다.
“잠시만요. 머셔너리 로드. 그럼 이래 보면 어떨까요? 조금만 통을 크게 잡아서, 이번에 가져오신 성과를 저희에게 전부 처리하는 거예요.”
“…전부를 말입니까?”
“물론 저희도 한계는 있으니 어느 정도 가격은 맞춰주셔야 해요. 하지만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희는 남은 장비 전부를 무상으로 지인에게 돌려주도록 하겠어요. 하지만 겉으로는 연합의 부탁으로 머셔너리에서 무상으로 지급했다고 발표하는 거죠. 즉 일종의 대행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예? 아니 그걸 왜…. 왜 연합 쪽에서 대행하겠다는 겁니까.”
“사실 그동안 언짢으신 것에 대한 보상이라는 점도 있고, 저희 쪽에서도 연합 이미지와 동시에 머셔너리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으니까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머셔너리와 연합의 관계는 새롭게 정리될 것이고, 도시 내 악의적인 기록도 상당 부분 줄어들 여지가 있어요. 어때요? 서로 윈 윈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오…. 호라. 그, 그렇군요. 아주 좋은 생각 같습니다.”
그 순간, 나는 목구멍 끝까지 치솟은 욕설을 간신히 삼키며, 겨우겨우 말을 뱉을 수 있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참 웃기네요. 조금 전까지는 자유 어쩌고 하셔놓고 이제는 자기들이 알아서 자제시키겠다?
딱 까놓고 말한 건 아니었으나, 분명히 그런 뉘앙스였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머리채를 잡아 테이블에 처박거나, 아니면 조용히 구슬을 틀어 얼굴이 변화하는 과정을 감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가진 최대의 무기는 바로 적이 현 상황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한순간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3일 동안 밤낮으로 고민한 각본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 지금은 참자.
나는 잠깐 생각에 잠긴 척을 했고, 속으로는 눈앞의 여인을 한소영이라고 수없이 되뇌었다. 사실 이런 말을 한 상대가 이스탄텔 로우였다면, 나는 기껍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상대가 연합이라서 그렇지.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나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우설희 또한 예쁘게 눈웃음을 쳤다.
“이렇게까지 해주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요. 좋습니다.”
“그럼 이 손을 잡으면, 거래는 성립인가요?”
머리를 끄덕이자, 우설희는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내며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러다 문득, 우설희가 아차 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혹시 사실 저희 쪽에서 이번에 입장을 발표해도 될까요? 사실 이 계획은 연합 전원이 아닌 남벌의 클랜 로드인 사용자 신혁에게서 나온 생각이거든요. 저 말고도 그분의 이름도 넣고 싶어요.”
“큰 상관은 없습니다만. 하지만 머셔너리가 곧 공식적인 입장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 굳이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네? 공식적인 입장 발표요?”
“예. 이번 용이 잠든 산맥에 관해서 말할 것도 있고…. 어쨌든 다른 사항도 이것저것이 있습니다. 이번 거래에 관한 내용은 그때 끼어서 하면 될 것 같네요.”
우설희는 심유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끄덕 주억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더니 이내 흘리는듯한 말투로 살그머니 말을 걸었다.
“이것저것이면…. 아~. 그러고 보니 곧 있으면 서부 도시가 공석이 되는군요. 머셔너리도 이번에 대표 클랜이 된다는 말이 많던데, 이거 미리 경사를 축하해야 하나요? 호호….”
그리고 마침내, 우설희가 미끼를 물었다.
바로 이 말을 기다려왔었기에, 나는 속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예? 경사라니요?”
“아, 아닌가?”
“나 참. 저번에도 한 번 발표한 적이 있는데 오해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머셔너리는 서부 도시에 일절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이번 선발 과정 자체에 아예 참가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니, 왜요?”
“마법 도시 마지아 하나만 해도 벅찬데, 언제 다른 도시까지 관리합니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번 공식 발표를 통해 그 부분을 확실하게 밝힐 생각이며, 동시에 오늘 나눈 이야기도 말하겠습니다. 뭐, 적당한 각색은 들어가겠지만요. 아무튼, 그럼 오늘 이야기는 연합 전체가 아닌 그 신혁이라는 분과 우설희 님과 나눈 이야기로 말하면 될까요?”
“네, 네? 네! 꼬, 꼭 그렇게 해주세요. 아, 아니. 네, 네! 그렇게 해주시면야 정말 감사해요.”
우설희는 잠시 멍한 얼굴을 보였다가 이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리고는 벌떡 몸을 일으켜 손을 꼼지락거렸다. 눈을 빠르게 깜빡이고 있는 게, 한 시라도 빨리 나가서 이 소식을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하기야 나름 이해는 간다. 내가 돌아온 사실에 현실이 지옥처럼 변했다가, 갑자기 동아줄이 떨어졌으니.
“아니. 벌써 가시려고요?”
“네! 한 시라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기도 하고, 앞으로 바빠질 것 같으니 미리미리 준비도 해야죠. 호호호.”
“하하. 그래도 식사라도 하고 가시면 좋으실 텐데요.”
“호호.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호호, 호호호호! 그, 그럼 조금 바쁘니 먼저 일어나겠어요. 배웅은 괜찮아요.”
우설희는 나와 급히 인사를 나누더니 나는 듯 달려가 밖으로 나섰다.
이윽고 급하게, 그리고 점점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텅 빈 응접실을 둘러보았다. 동시에 나직이 웃어 젖혔다.
썩은 동아줄인지도 모르고 저렇게 반색하며 달려가는 우설희가, 자못 웃겼기 때문이다.
*
우설희가 떠나간 후, 나는 바로 집무실로 돌아왔다.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집무실에는 여전히 조승우가 서 있었다.
“그래. 영상은 잘 보셨습니까.”
“예. 두 개 모두 보았습니다.”
차분히 자리에 앉으며 말을 건네가 잔뜩 굳어있는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화난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조금 전 내가 연합 사용자를 만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내 얼굴만을 살필 뿐. 마치 이 사건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하기보다는, 내가 어떤 말을 하려는 지에 대해서 더욱 신경 쓰는 모습이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조승우를 선택한 이유였다.
잠깐 조승우의 성향을 떠올렸다가, 나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마 궁금할 겁니다. 사용자 정하연의 자리를 대신하는 클랜원으로, 왜 사용자 조승우를 선택했는지 말입니다.”
“…예.”
“사용자 조승우. 저는 말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그런 좋은 성격은 못됩니다. 아니, 오히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속담을 지론으로 삼고 있지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알 것 같습니다. 아니, 옳으신 말씀입니다.”
많은 말이 생략되기는 했지만 아마 조승우라면 알아들었을 것이다. 말인즉슨, 앞으로 일을 벌이는데 하연을 파트너로 하기에는 애로사항이 많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하연이 하지 못하는 일을 네가 대신할 수 있겠냐는 소리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조금 전 생각이 약간 변했습니다.”
“변했다 하심은?”
“원래는 되로 주고 말로만 받을 생각이었죠. 하지만 하는 꼬락서니들을 보니 적어도 가마니, 아니 석으로는 받아야 이 성미가 좀 풀릴 것 같네요.”
“…그렇군요. 그러면 제가, 무슨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조승우는, 할 수 있다고 답했다.
나는 의자를 빙글 돌렸다. 그리고 앞을 쳐다보자 환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문을 볼 수 있었다. 이내 품에서 느릿한 손놀림으로 연초를 꺼내며, 나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아마 당분간은 무척 바빠질 겁니다. 제가 들를 곳이 한두 군데도 아니고, 이런저런 밑밥도 뿌려놔야 하니까요. 하지만 사용자 조승우는 우선 바로 내일, 모니카의 광장에 공식적인 발표 자리를 준비해주십시오.”
“그럼…. 공식 발표를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나는 차분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불 붙인 연초를 한 모금 빨아들인 후, 나직이 입을 열었다.
“예. 그게 바로, 실질적인 복수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 작품 후기 ============================
오늘 김연아느님의 경기가 있습니다. 가장 기다려온 경기인 만큼 정말로 기대가 되네요. 부디 꼭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참 이번 파트는 조율이 힘드네요. 적당한 부분에 적당한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데, 적고 싶은 장면이 워낙 많다 보니 애로사항이 없잖아 있습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