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80
00479 작전명 : 광대놀음. =========================================================================
그때였다.
“조용히 하지그래. 이년이랑 똑같은 꼴 나기 싫으면 말이야…. 박환희.”
한없이 낮은 목소리가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을 울렸다. 언뜻 듣기로는 부드러운 저음이었으나, 음색은 명백한 적의를 포함하고 있었다.
경고가 먹혔는지 커져만 가던 사내, 아니 박환희의 비명이 뚝 멎었다. 이어서 덜덜 떨리면서도 당혹함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가 로브에서 새어 나왔다.
“누, 누구십니까? 도대체 누구 시길래 저를 이렇게 대하시는 겁니까?”
스르릉.
처음에는 겁에 질려있었으나, 끝에는 애절함마저 묻어나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똑같은 말이 아닌 사늘한 검 소리로 되돌아왔다. 차가운 검광이 허공에서 번들번들하자 박환희의 목울대가 꿀꺽 움직였다.
시퍼런 날이 바닥을 비스듬히 겨누었다. 목 부근을 찌르는 예리한 감촉을 느꼈는지 박환희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자 괴인은 칼끝으로 턱을 받치고선 강제로 고개를 추켰다.
이윽고 시선이 허공으로 향하는 순간, 박환희는 볼 수 있었다. 자신을 이 장소로 데리고 온 장본인을. 자신을 지그시 내려다보는 괴인의 얼굴을.
괴인의 정체는 바로 신혁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박환희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혀, 혁이 형….”
“환희야. 나는 말이다.”
의도성이 다분한 말 끊기였다.
이윽고 신혁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이 세상에서 배신자가 제일 싫어.”
“혀, 형님. 그게 무슨….”
“그리고 두 번째로 싫어하는 건, 거짓말하는 거. 예를 들면, 배신자가 자기는 죽어도 배신자가 아니라 발뺌하는 거?”
“오해…. 헉!”
박환희는 채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한껏 빼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간당간당 목을 찌르던 칼끝에 일순간 힘이 들어옴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 가만히 있었다면 틀림없이 목에 구멍이 났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박환희는 아니라는 듯, 절대로 아니라는 듯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
“미안미안.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네. 아, 상관없나? 어차피 죽일 건데 말이지.”
그러나 그런 박환희에 비해, 신혁의 태도는 태연하기 그지없다. 곧 반쯤 고개 돌린 신혁은 두어 번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러자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어둡기만 했던 공간에 환한 빛이 밝혀졌고, 줄에 걸려있던 목과 시체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르릉…. 그르릉….
그르릉…. 그르릉….
그리고 잠시 후, 지금껏 어둠에 숨어있던 것들이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아닌 짐승의 울음소리. 그리고 벌겋게 충혈된 눈과 네 발 달린 그것은, 틀림없는 늑대 아니면 개였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박환희는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저 다가오는 공포에 몸을 떨며 눈앞 털 달린 짐승들을 하염없이 응시할 뿐.
그러나.
애당초 목적이 달랐는지 짐승들은 박환희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바닥에 떨어진 시체를 향해 느릿느릿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곧 시체에 다다른 짐승들이 주둥이를 쩍 벌리며 시체에 고개를 파묻었기 때문이다.
우득, 우드득! 쩝쩝….
우득, 우드득! 쩝쩝….
이윽고 뼈가 부러지고 살을 씹으며, 육신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보였다.
그렇게 멍하니 앞쪽을 응시하고 있을 무렵. 박수를 치느라 잠시 올라갔던 검이 도로 내려와 흙 묻은 볼을 쓰다듬었다.
“저년, 참 독한 년이더라. 말을 안 해요, 말을. 하다못해 별 짓거리를 다해봤는데, 그래도 입을 다물더라니까. 누가 교육시켰는지, 참 대단해.”
“…….”
“그래도 나름 재미있는 시간이었어. 독한 만큼 건드리는 맛도 있어서 말이지. 가끔 사람이 개랑 섹스하면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흐흐.”
“…….”
나름대로 친근하게 말을 걸고는 있었으나 정작 듣는 당사자는 그렇지 못했다. 앞에서 벌어지는 참상도 있거니와, 자꾸 얼굴을 비벼오는 시퍼런 날의 감촉에 무한한 긴장감이 샘솟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짐승들이 여인의 시체를 남김없이 먹어 치웠을 무렵, 박환희는 정수리에 얹힌 냉랭한 손길을 느꼈다. 어느새 신혁이 쭈그려 앉아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박환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환희는 아마 내 성격 알 거야. 귀찮은 건 딱 질색한다는 거. 그렇지?”
“혀, 형님.”
“그러니까 우리 좋게 좋게 가자고. 응? 지금부터 내가 서너 개 질문을 할 거야. 그리고 네 답 여하에 따라서, 그냥 고통 없이 죽을지. 아니면 저년처럼 온갖 고통을 당하다가, 시체까지 개밥이 될지. 이건 완전히 너한테 달린 거다. 알겠지?”
“큭….”
과정은 달라도 결국 죽는 건 똑같다는 소리였다. 결국 견디지 못한 박환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걸 포기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체념이라고 생각했는지. 신혁은 박환희의 머리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그리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사실 너를 처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어. 네가 우리 연합에 들어왔을 때부터 말이다. 왜인지 알아? 서부 전쟁에서 쫄딱 망한 놈이. 아무 연고도 없는데 갑자기 승승장구해서 세력을 일으키고, 스스로 연합에 합병을 신청했다?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그래서, 분명히 배후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
그 순간 박환희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아, 신혁은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는 하는 것 같아 두고 보려고 했는데…. 결국에는 이렇게 돼버렸네. 아주 멋지게 뒤통수를 쳤어.”
“혁이 형님! 이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아니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오 그래? 똑똑하네. 우리 환희.”
“하지만, 오해입니다. 확실한 오해입니다.”
“아 왜 그래. 나 거짓말 싫어한다고 했잖아.”
“거짓말이, 거짓말이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억울하다고 외친 찰나 박환희의 앞으로 무언가 털썩 떨어져 내렸다. 가방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발길질로 가방은 힘차게 내용물을 토해내었다. 번쩍번쩍한 것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이야. 백금화에 보석에…. 이거 장난이 아닌데? 한낱 염탐꾼한테 이 정도로 보상을 해주다니. 역시 부자라고 소문난 머셔너리 클랜인가. 통이 아주 크네.”
그때였다. 그러니까, 신혁의 입에서 머셔너리 클랜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박환희는 뜨끔한 얼굴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건…. 그러니까….”
“왜. 내 말이 틀렸나? 너 조금 전에 창관에서 머셔너리 로드 만나고 온 거 아니야? 응?”
“…마, 만났습니다. 예. 그건 인정합니다.”
“거봐, 그럴 줄 알았어. 아무튼 인정하니까 좋네.”
그와 동시에 신혁은 손을 힘껏 오므려 쓰다듬던 머리칼을 한 움큼 움켰다. 박환희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졌고, 그 탓에 기껏 감았던 눈을 저도 모르게 뜨고 말았다. 그러한 와중에도, 박환희는 힘겹게 입을 떼었다.
“큭…! 하, 하지만 형님. 아닙니다. 저는 형님이 생각하시는 스파이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발, 제발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십시오. 정말로 오해란 말입니다!”
“오해라고…. 환희야. 우리 인간적으로 생각해보자. 과연 누가, 자기 클랜원도 아닌 남 클랜원에게 이런 보상을 해주겠어? 그것도 이런 야심한 새벽에 몰래 만나서까지 말이다.”
“그러니까….”
“이것뿐만이 아니야. 지금 상황은 알고 있지? 하물며 상황도 이러한데, 머셔너리의 행동은 더더욱 석연치가 않다고. 그럼 내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까. 응?”
“상황이 애매한 건 인정합니다.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형님. 도대체 몇 번을 말씀 드려야 합니까. 정말로, 정말로 아니란 말입니다!”
“그럼 이건 도대체 뭐냐고!”
순간 부드럽게 이어지던 목소리가 일변했다. 거친 목소리로 고함친 신혁은 휙 가방을 잡아채 세차게 위로 올렸다. 흡사 잡아 던지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그 탓에 가방이 거꾸로 들려, 안쪽 깊숙이 있던 내용물이 마저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이었다.
탁! 탁, 탁! 데구루루….’
가방에서 동그란 물체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그것은 말간 빛을 띠는 조막만 한 구슬이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기는 했지만, 신혁의 시선이 구슬을 향했다. 그리고 눈동자에 강렬한 이채가 스쳤다. 이내 가방을 대충 던진 신혁은 몸소 손을 뻗어 구슬을 잡았다. 음침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허. 이건…. 진실의 수정이잖아?”
그랬다. 떨어진 구슬은 바로 진실의 수정이었다. 물론 금화나 보석은 아니었으나, 가방에 있는 게 딱히 이상한 건 아니었다. 수요도 높고 물품 자체가 희귀한 터라 판매하려고만 하면 비싼 값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참. 이거 무슨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어쨌든 괜찮네. 아주 좋아. 어이, 박환희.”
“끅….”
“억울하다고 했지? 그럼 어디 한 번 증명해봐. 마침 여기 좋은 것도 있으니까, 나에게 네 진심을 보여달라고.”
“자, 잠시!”
박환희는 몸을 비틀었으나 몸이 묶인 상태로는 역부족이었다.
이윽고 신혁의 검이 차분히 허공을 갈랐고, 박환희의 손목을 묶은 줄이 잘라졌다. 그러나 어떻게 할 틈도 없이, 신혁은 진실의 수정을 활성화하는 것과 동시에 박환희의 손을 끌어 구슬에 강제로 손을 얹게 만들었다.
“이러면 빼도 박도 못하겠지. 자 그럼 답해보라고. 박환희.”
잠시 중얼거린 신혁은, 곧 매우 기대하는 얼굴로 박환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아까 인정했지? 창관에서 머셔너리 로드를 만났다고. 그럼 말해봐. 둘이서 거기서 뭐했어? 밤의 꽃들 불러다가, 사이 좋게 떡이라도 쳤나? 서로 스와핑이라도 하면서?”
박환희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혁의 검이 서서히 올라갈 낌새가 보이자, 곧바로 입을 달싹였다.
“사, 사용자 박환희는….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박또박하려고 애쓰는듯했으나, 누가 들어도 긴장에 덜덜 떨리는 목소리였다.
원하는 답이 나왔는지 신혁은 살그머니 웃었다. 그리고 발끝으로 박환희를 톡톡 두드렸다. 물론 진실의 수정구 안에 피어오른 불꽃은, 여전히 처음의 색깔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하. 그렇게 딱딱하게 말할 필요는 없어. 네가 사용자 박환희인 건 알고 있으니까. 아무튼, 좋아.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지? 내가 계획한 사건을 실토했나?”
“아닙니다! 저는 창관에서 형님의 계획을 실토하지 않았습니다!”
한순간 신혁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뜻밖의 대답이기도 했거니와, 불빛이 색깔도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곧바로 안색을 회복한 신혁은 허탈이 웃으며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야. 이놈 역시 머리 좋다니까. 수 쓰는 거 봐. 창관에서? 그래. 생각해보니까 오늘은 그냥 격려차 만났을 수도 있네. 그럼 다시 말해봐. 그럼 오늘이 아니라 예전에, 내 계획을 실토한 적이 있나?”
“아니요. 저는 오늘은 물론이거니와, 예전에도 머셔너리 로드에게 계획을 실토한 적이 없습니다! 억울합니다!”
절절한 외침.
불빛은, 여전히 똑같은 색으로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그러자 여태껏 시종일관 차분한 얼굴을 보이던 신혁의 얼굴에, 비로소 변화가 찾아 들었다.
신혁은 한껏 굳은 얼굴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탓에 박환희의 몸이 약간 굴렀지만, 도로 손을 뻗어 구슬을 잡았다. 마치 이게 자신의 생명이라도 되는듯한 손놀림이었다.
쉬지 않고, 박환희는 절박한 어조로 외쳤다.
“형님! 저는 머셔너리 클랜의 스파이가 아닙니다. 머셔너리 클랜에 스파이 지령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또한 머셔너리 로드에게 계획을 실토한 적도 없거니와, 단순히 부탁을 들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뭐…. 뭐라고? 부탁?”
신혁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하여 본능에 따라 구슬을 확인했으나, 아래 진실의 수정은 박환희의 말을 진심이라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 무슨….”
자신의 예상이, 자신의 감이 빗나갔다는 생각에 신혁의 머릿속은 삽시간에 헝클어졌다. 어떻게든 다른 질문을 해보려고 했으나,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만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계획을 실토하지 않았다.
스파이가 아니다.
갑작스레 말문이 막힌 탓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오직 주변에서 웅성대는 소리만이 들려와, 한 명 한 명이 신혁의 옆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박환희를 이 장소로 데려온 사용자들이었다. 그들 또한 진실의 수정을 확인했는지, 하나같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형님…. 뭔가 조금 이상한데요.”
“계획도 실토하지 않았고, 스파이도 아니다…. 혁이 형. 진실의 수정 불빛이 그대롭니다. 아무래도 실수한 것 같습니다.”
어수선한 소음 속에서 신혁은 가까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부탁이라고?”
“예. 부탁입니다. 그냥, 단순한 부탁이라고요.”
이제는 거칠 것도 없는지 박환희는 신혁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앞선 증명이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당당해진 상태였다.
신혁은 난감한 기분을 느꼈다. 직감은 아직도 끈임 없는 의심을 보내고 있었지만 현실은 의심을 거두라고 말하고 있었다.
“머셔너리 로드가 무슨 부탁을 했지?”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어….”
그때였다. 마침 손이 풀려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던 박환희의 몸이 순간적으로 휘청거렸다. 그러자 골목서부터 끌고 온 사용자들이 반사적으로 달려들어 부축했다.
“환희. 미안해. 우리가 조금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정말로, 정말로 미안하다. 의심하는 게 아니었는데….”
사용자들은 아까와 판이하게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박환희는 공식적으로 수 클랜의 소속이며 박태진이 항상 데리고 다니는, 즉 2인자나 다름없는 사용자였다.
차라리 스파이라고 밝혀졌다면 모를까. 아무 죄도 없는데 이런 사실이 알려진다면 과연 이들은 어떻게 될까? 신혁의 입장은 차치하고서라도, 오늘 이 장소에 참가한 사용자들은 틀림없이 불이익을 받으리라.
이윽고 사용자들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박환희는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그러다 여전히 물끄러미 보고 있는 신혁을 확인해, 도로 몸을 굽혀 진실의 수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리어 사용자들이 제지했다.
“아니. 환희야. 이제 괜찮다. 네 진심은 충분히 들었어. 혁이 형도 이제 아실 거다. 너는 확실히 우리 가족이야.”
“아니요. 그래도 주세요. 이런 건 확실하게 하는 게 좋습니다.”
“환희야…. 아 혁이 형. 뭐라고 말씀 좀 해보십쇼.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아 괜찮습니다. 오비이락이라고, 혁이 형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말씀대로 상황이 이러할진대, 제가 의심받을만한 행동을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맞아도 싸죠. 하하하.”
사용자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제 괜찮다고 했음에도, 오히려 나서서 진실의 수정을 잡으려는 박환희를 보니 할 말을 잃어버린 탓이다. 거기다 아까 정말로 억울하다고 외치던 기억을 떠올리자 더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 구슬이랑 저 가방도 함께 주시겠습니까?”
이윽고 박환희가 바닥을 가리켰다. 사용자들은 앞다투어 내용물을 담고, 가방을 줍고, 그리고 구슬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는 찰나였다.
화륵, 화르륵!
파삭!
미약한 소음과 함께, 여태껏 타오르던 불빛이 꺼지고 진실의 수정이 쩍 갈라졌다. 약간 길었던 침묵과 사용자들이 부산을 떨면서 사용 시간이 다한 것이다.
막 구슬을 집으려던 사내는 잠시 손을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한 줌 재로 변한 수정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어차피 상관없지 않나. 안 그렇습니까 형님?”
“…으음.”
신혁은 떠름히 머리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괜한 의심을 한 것 같군. 뭐라 할 말이 없어. 명백한 내 실수야. 미안…. 하다.”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제 실수도 있고, 그리고 살다 보면 사내자식이 몇 대 맞을 수도 있죠.”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하지.”
“아 괜찮습니다. 자꾸 그러시면 제가 다 민망하지 않겠습니까…. 아차, 그러고 보니 부탁이 궁금하다고 하셨죠? 이것까지 확실히 밝히고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박환희는 구변 좋게 답했다. 그리고 천연덕스레 웃으며 가방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신혁은, 여전히 꺼림칙한 눈동자로 박환희를 응시했다. 입안이 떫은지 조용히 입맛을 다시면서.
============================ 작품 후기 ============================
오늘 이야기를 잘 기억해주시면, 차후 최종 해답을 적은 회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실 거예요. 🙂 진실의 수정에 대한 설정을 여담으로 적고 싶었으나, 추리가 날카로운 분이시라면 스포일러가 가능하니 말을 아끼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PS. 2014년 2월 26일 06시 21분을 기점으로 479회 부분 수정 완료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내용을 쭉 읽어보는데, 차후 이야기전개상 매우 심각한 오류가 발견된 상태입니다. 하여 7 Page ~ 8Page를 일부 수정했고, 11 Page 또한 일부 수정한 상태입니다. 독자 분들께 혼란을 드려서 죄송하며, 깊은 양해를 구합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