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85
00484 The Downfall Of The Koran Union. =========================================================================
문을 닫고 나오자 앞으로 쭉 이어지는 일자형 통로와 좌우로 가지런히 배치된 감옥이 보였다. 지금이야 거의 텅텅 비어있으나, 2년 전만 해도 부랑자나 서 대륙 인으로 가득 차있던 감옥이었다. 듣기로는 전쟁에서 포로로 붙잡은 이들을 노예로 판매하려고 이렇게 만들었다는데, 사실 감옥보다는 방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으아아악! 으아아아아악! 박태지이이이이인!”
면회실 안에서는 여전히 고함이 들려오고 있다. 한 번 흘끗 뒤를 보았다가, 나는 입구 방향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러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또 한 명의 내가 보였다.
“아직도 그러고 있었나?”
“사내의 몸으로 변한 게 오랜만이라. 잠시 기분 좀 내고 있었사옵니다. 어머니.”
“몇 번을 말해. 너 같은 자식 둔 적 없다니까? 아무튼 이제 나가야 하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호호호.”
또 한 명의 나는 여성스러운 웃음소리와 함께 몸을 똑바로 했다. 아, 이게 바로 자기 혐오라는 감정인가?
물론 저게 진짜 내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겉모습이 너무 똑같으니 절로 불쾌한 감정이 생긴다. 내가 싫어하는 기색을 느꼈는지, 이내 앞에서 환한 빛 무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칠흑 색 머리칼을 물결처럼 늘어뜨린 여인이 잔잔히 웃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헬레나 루 에이옌스였다.
*
홀로 남은 신혁의 행태는 자못 볼만했다. 힘없던 눈동자는 붉게 충혈돼있고 얼굴은 한껏 일그러져있다. 상을 잡은 두 손은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로 떨리고 있었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듯 입은 쉴 새 없이 달싹였다. 오죽하면 다시 데리러 온 간수가 흠칫 놀랐을 정도였다.
다 큰 어른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사뭇 우습게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모르게 살벌하게 보였다. 그리고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어쩌면 지금의 신혁을 말렸을지도 모르리라.
“크크큭…. 대단해…. 아주 대단해…. 정말 제대로 외통수를 맞았어…. 크크크큭….”
상황은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아주 간단하다.
머셔너리와 협의해 장비를 넘겨받았을 때만 해도 계획대로였다. 이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 이후 박태진의 개입으로 모든 게 어그러졌다. 박환희를 이용해 의심을 가라앉히고 신경을 돌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일이 이루어지기 바로 직전, 멋지게 외통수를 때렸다.
왜 박태진을 염두에 두지 못한 걸까? 그럴만한 동기도 행동력도 모두 갖춘, 범인에 최고로 근접한 놈인데.
그래. 박태진이라면 이 모든 게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다. 박환희의 말도 설명이 가능하다.
‘아닙니다! 저는 계획을 실토하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박태진이라면 계획을 말할 필요가 없다. 이미 알고 있는 놈이니까.
‘형님! 저는 스파이가 아닙니다!’
상대가 박태진이라면, 역시나 이 말도 가능하다. 자신이나 박태진이나 같은 연합에 속해있으니까. 비록 자신에게 스파이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박태진을 위하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연합이 결부된다. 진실의 수정이 반응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사실 김수현의 말만 들었을 때는 연합 내 제 3의 인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박태진이 흑막임이 확실해졌다. 왜냐하면, 저 수정구는 그 무엇보다 확실하고 강력한 증거였으니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박태진이 무슨 말을 했는지 추측할 수 있다.
마침내 기나긴 생각을 마친 신혁이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했다. 머릿속은 처음보다는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들끓고 있었다. 꼭 터지기 일보직전의 화산처럼.
‘예.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연합은 한 가족인데요.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간에 깔끔하게 승복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주제에…!”
꽉 움킨 손에서 멎었던 핏물이 도로 흘러내린다. 어느덧 조용해진 신혁은 뭔가에 홀린듯한 얼굴로 한참 동안 눈앞을 응시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돌연히 창 아래 덩그러니 놓여있는 수정구가 눈에 들어왔다. 박태진, 백두산과 조승우의 영상이 찍혀있는 녹화용 수정구였다. 김수현이 가져가지 않고, 오히려 놓고 간 것이다.
그때였다.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신혁의 머리를 빛살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
어쩌면, 혹시.
일부러 놓고 간 게 아닐까 하는.
막 수정을 잡으려던 손이 멈칫했다. 어떻게든 잡으려는 듯 오므려졌다가, 이내 덜덜 떨며 벌리기를 반복한다. 왜 놓고 간 걸까? 이걸로, 나한테 원하는 게 있는 걸까?
그렇게 주저주저하기를 약 10분. 신혁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앞에는 박태진이 앉아있었다. 물론 실제로 앉아있는 건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복잡한 심경이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환영은 자못 엄숙한 얼굴로 말을 걸고 있었다.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라도 있냐! 애당초 사태가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네 같잖은 욕심 하나 때문에 말이야! 모든 게 헝클어졌다고! …아무튼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라. 우리도 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너라면, 너였다면…. 어떻게든 이 사태를 책임졌을 것이다. 연합을 위해서 말이야.’
그리고 그 순간, 한없이 침잠한 눈동자에 강렬한 이채가 스쳤다. 이어서 더는 주저하지 않고 수정구에 손을 얹는 것과 동시에, 신혁은 소리 높여 간수를 불렀다. 부름을 받은 간수는 곧바로 달려왔다. 그리고 신혁을 보자마자 약간이지만 놀라고 말았다.
“간수. 개인적으로 면회를 하고 싶은 사용자, 아니 사용자들이 있는데.”
“으음. 죄인의 신분으로 딱히 면회를 요청할 수는 없는데….”
“그럼 내가 말하는 사용자들에게 조만간 면회를 한 번 오라고 얘기해줄 수 있나?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 크게 사례하지.”
“…그러면 상관이 없기는 합니다만.”
이윽고 불러주는 사용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받아 적으며, 간수는 흘끔 신혁을 살폈다. 처음 안 된다고 했을 때는 이래저래 난리 칠 줄 알았다. 밖에 있기는 했지만 고함치는 소리는 전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리는커녕 오히려 조곤조곤 한 목소리로 타이르듯이 말을 한다.
그런데, 이게 더 무서웠다. 얼굴이나 목소리는 차분하기 그지없으나 눈동자에 번들번들한 빛이 흐르고 있다. 이따금 희번덕거리기도 하는 게, 흡사 미친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내 꼭 부탁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들은 후에 간수는 빠르게 몸을 돌렸다. 까닭 없이 불안한 기운이 온몸을 엄습하는 것만 같았다. 왠지 이번 일에 엮여서는 안 되는 기분이랄까. 그러니 일단 부탁은 들어주고, 조만간 발령 신청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며 신혁을 감옥으로 인도했다.
시간은 화살처럼 흘렀다.
간수가 신혁의 부탁을 코란 연합으로 소식을 전하기까지에는, 약 나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발령 신청을 하고 허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느라 약간 시간이 걸린 탓이다. 그래도 성실히 자신의 직무를 다한 간수는 새로운 간수, 그리고 새로운 사용자들이 오는 걸 확인한 후 미리 챙겨둔 짐과 함께 감옥을 떠났다.
새로 온 사용자들은 죄인이 아닌 바로 신혁의 부하들로, 예전 박환희를 납치한 이들이기도 했다.
기실 현재 연합 전체가 흔들리는 중이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클랜은 바로 남벌이었다. 신혁이 클랜 로드로 있는 만큼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아야 했으며, 김수현이 뿌린 기록은 남벌이 연합 내 다른 클랜을 공격한 현황이 적혀있었다. 물론 다른 클랜도 오십보백보이기는 했지만, 우선 드러난 상황으로는 내외로 버림받은 낙동강 오리 알 신세였다.
그런 만큼 가장 많은 사용자가 탈퇴했고 가장 많은 산하 클랜이 등을 돌렸으나,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사용자들도 있었다. 이들이야말로 신혁과 처음부터 함께해온 충복이었다.
그들은 클랜 로드가 찾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두말하지 않고 달려왔다. 그리고 면회실에 앉아있는 신혁을 확인했을 때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감옥에 들어가기 전과 후를 비교해 모습이 너무나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눈만은 살아있어, 강렬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형님….”
“안부는 됐다. 지금 내 모습 보면 알 거니까. 그나저나, 내가 알아오라는 사실은 알아왔나?”
“예? 예, 예. 알아왔습니다.”
“그럼 말해봐. 지금 박태진은 뭘 하고 있지?”
“그…. 용이 잠든 산맥으로 간다고 합니다. 정확한 진상 조사를 한다고요.”
“용이 잠든 산맥? 정말로?”
신혁이 눈을 번뜩였다. 그러자 사내는 약간 주저하는가 싶더니, 이내 한껏 낮춘 목소리로 소곤소곤 말을 이었다.
“실은 제가 몰래 알아본 바로는…. 진상 조사는 어디까지나 명분이라고 합니다. …그냥 보여주는 행동에 불과하고요. 실제로는 같은 방향에 있는 유적을 발굴하러 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디서 정보 하나 물은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진상 조사는 개뿔이고 머리나 식히러 간다는 소리네? 겸사겸사 칼질도 좀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였구먼. 박태진 그놈은 나를 실망하게 하지를 않아. 머셔너리의 선물이라고? 끝까지 나를 농락했어! 하하하! 그래. 어떻게 보면 틀린 말도 아니지. 겉으로는 놀고 있는 게 아니니까.”
신혁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내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내 웃음을 뚝 그친 신혁은 긴 한숨과 함께 수정구 하나를 꺼내놓았다. 그리고 바로 영상을 재생해 앞으로 들이밀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일단 봐.”
사내들은 충실히 명에 따랐다. 건장한 사내 수 명이 옹기종기 모여 수정구 하나를 보는 모습은 꽤 웃겼다. 그러나 녹화 내용이나, 영상이 흐를수록 변화하는 사내들을 본다면 절대 웃을 수는 없을 것이다.
길다고는 하지 못할 시간이 지나고 나서, 수정구의 빛이 탁 꺼졌다. 끝까지 본 사내들은 하나같이 침묵했다. 그러나 곧, 모두 일제히 머리를 들며 부릅뜬 눈으로 건너편을 응시했다. 신혁은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그러자 한 사내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거렸다.
“형님! 설마 태진이 형이…!”
“그래. 형은 무슨. 그놈이 이번 사태의 주범이다.”
“아니…. 왜? 도대체 왜입니까? 우리는 가족 아닙니까? 같은 가족이면서 어떻게 이런 짓을…!”
“왜냐고? 뻔하잖아. 내가 헤일로를 먹을 것 같으니까. 내가 일인자로 올라가는 게 두려우니까. 그래서 이런 더러운 짓거리를 벌인 거라고. 나하고 남벌을 몰락하게 만들려고. 선의의 경쟁? 가족? 너희가 보기에 이게 선의의 경쟁이고, 가족처럼 보여? 개뿔!”
“…….”
“나,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되냐?”
신혁의 마지막 말은 상당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당혹해 하던 사내들은 서로만 번갈아 보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혁이 쾅, 상을 후려갈기며 이를 갈았다.
“그래. 이제 와서, 사실 나는 어떻게 되는 상관없어. 그런데 박태진이나 너희는 아니야. 나 죽고 나서 그놈이 가족가족 외치며 연합을 이끄는 꼴도 못 보겠고, 연합에서 버림받을 너희도 못 보겠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거 터뜨립니까?”
“아니, 아니지. 그 정도로는 부족해. 완전히 엎어야 해. 명분도 충분하니까, 박태진이랑 연놈들을 모두 조져야 한다고. 이길 수만 있다면 최소 연합 내에서는 자리잡고 살아갈 수 있을 거다.”
“…예?”
사내가 반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남벌 클랜의 상태가 무척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세렌게티는 그렇다 치더라도, 수는 연합 내 가장 전투력이 높은 클랜이었다. 남벌 또한 아르테미스라는 우군이 있었으나, 둘 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모를까. 현재 상태로 클랜전을 선포한다면? 패배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상황이 어떤지는 알고 있어.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나한테도 생각이 있으니까.”
그러나 이미 그런 상황을 예상했는지 신혁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내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부터 내 말 똑똑히 들어. 전면전으로 붙으면 승산이 없다. 그러니 우선….”
*
어두운 밤. 사막의 밤은 무척 고요하고 을씨년스러웠다. 낮에는 그 어떤 식생도 보이지 않는 붉은 모래벌판에 불과했다면, 밤에는 칠흑이 내려앉아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 같았다. 오직 하늘에 떠오른 달이 지면을 비추고,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이 간간이 야영지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어~이. 환희야. 환희야? 박환희!”
한 사내가 야영지 외곽을 돌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사내의 정체는 백두산으로써, 세렌게티의 클랜 로드이며 박태진과 호형호제 사용자였다.
현재 백두산이 붉은 사막에 있음은, 바로 얼마 전 박환희의 요청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한 번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한 박태진은 사건 이후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말인즉슨, 외부로는 자세한 진상 조사를 목적으로 용이 잠든 산맥에 다녀온다고 밝힌 것이다. 물론 속내는 시간을 끌고 행동을 보여주며, 겸사겸사 유적을 발굴하려는 것이었으나, 아주 경우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 사용자들은 대체로 납득했다.
박태진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부하들에게는 아주 관대하다. 그날로 수와 세렌게티 클랜에서,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사용자들만 선발해, 이번에 도시를 나서는 목적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용이 잠든 산맥으로 가는 척을 하며 몰래 김수현이 알려준 장소로 빠진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박태진도 반신반의했으나, 도시를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그들은 정말로 유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박환희! 이놈 도대체 어디간 거야?”
“그냥 먼저 들어가서 자고 있겠죠. 그만하고 형님도 이만 들어가 주무시오.”
기실 백두산이 이렇게 박환희를 찾는 원인은 조금 전까지 함께 불침번을 섰기 때문이다. 서로 주변을 경계하며 농담 따먹기를 한 게 10분전이었는데, 교대 시간이 돼 잠깐 다음 불침번을 깨우러 다녀오는 사이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백두산은 약한 침음을 흘리며 머리를 마구 돌렸다.
“아닌데. 그놈이 그럴 리가…. 야. 혹시 먼저 유적으로 들어간 게 아닐까?”
“그건 또 무슨 헛소리. 환희가 형님도 아니고, 아무리 궁금하다고 해도 그럴 리가 있겠어요. 그리고 태진이 형이 유적 공략은 내일 아침에 시작한다고 했잖소. 아니면 잠시 볼 일을 보러 갔다던가….”
“아아. 그럴 수도 있겠군. 내가 그 생각을 못했어. 하하하.”
“하여간…. 아무튼 이제 우리가 볼 테니까, 형님은…. 응?”
백두산은 이마를 탁 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하품하며 입을 두드리던 사내가 문득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살그머니 미간을 좁혔다.
“이상하네? 누가 다가오는 기척이….”
“환희겠지.”
“아니, 아니야. 한 명이 아닌 것 같은데…?”
“응?”
말을 흐린 사내는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려는 듯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이밀었을 때였다.
피융!
푹!
한순간, 어둠 속에서 날아온 화살이 사내의 머리를 꿰뚫었다. 마력이 깃들어있었는지 화살은 머리를 뚫다 못해 그대로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퍽 소리와 함께 피 분수가 터지며 사내의 몸이 쓰러졌다. 모래를 덮친 몸은 서너번 후들후들 떨리더니 이내 조용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
“…….”
백두산도, 그리도 다른 사내도. 모두 멍하니 쓰러진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워낙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라,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퍼벙! 퍼버벙!
슈슉! 슈슈슉!
돌연히 컴컴한 어둠을 밝히는 무수한 불덩어리들이 하늘을 날았고, 주변으로 적잖은 수의 화살들이 따라오고 있다. 그것들은 정확히 야영지를 노리며 낙하하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백두산이 걸걸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습격! 습격이다!”
하지만 너무 늦은 걸까.
잠시 후,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야영지에서 거대한 불길이 솟아올랐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속도에 최대한 집중해보았습니다. 기타 내용 진행 및 이해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 부분은 아예 쳐내고, 부분부분 심리 묘사도 깡그리 압축해보았지요. 적으면서 아 너무 빠르게 가는 게 아닐까 등 어색한 기분을 지울 수는 없었는데, 독자 분들은 어떻게 받아들이셨을지 궁금하네요. 오늘 속도는 어땠나요? ☞☜
아. 그리고 어제 코멘트를 읽었는데, 정말 심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언급 정도만 하고 넘어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특정 내용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신 분들이 보여서요. 사실 그다지 좋은 내용이 아니기도 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