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510
00509 하룻강아지들, 범 무서운지 모른다. =========================================================================
허공에 하얀 빛무리가 뿌려진다. 이어서 빅토리아의 영광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공찬호는 어이쿠 소리를 내며 걸음을 물렸다. 그러나 여전히 능글능글 웃고 있는 걸 보니 정말 놀란 것 같아 보이지는 않다.
“워워, 진정해. 장난이야. 장난이라고.”
“…….”
그런 장난기 어린 모습을 지그시 노려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2년 전 처음 공찬호를 만났을 때는, 정말 천하무쌍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 눈앞에 서 있는 공찬호는 그때와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모습 또한 1회 차 때 보았던 천하무쌍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것.
내가 기억하는 천하무쌍의 태도가 자신감에 의한 발로였다면, 지금 공찬호의 모습은…. 자신감이 아닌, 자만심이라는 느낌이 더욱 강하다.
의문은 물처럼 빠르게 차 올랐지만, 나는 우선 눈동자에 힘을 주었다.
제 3의 눈은 이미 활성화된 상태였다.
1. 이름(Name) : 공찬호(5년 차)
2. 클래스(Class) : 일반 창술사(Normal, Lancer, Master)
3. 소속 국가(Nation) : 바바라
4. 소속 단체(Clan) : 아수라(Clan Rank : A Zero)
5. 진명 • 국적 : 수라마창(壽拏魔槍)의 주인 • 대한민국
6. 성별(Sex) : 남성(36)
7. 신장 • 체중 : 191.3cm • 97.3kg
8. 성향 : 오만 • 열등감(Arrogance • Inferiority)
[근력 101(+6)] [내구 87] [민첩 91] [체력 92(+2)] [마력 81] [행운 73]
1. 김수현 : 574 / 600~
(잔여 능력치 포인트는 0포인트입니다.)
[근력 96(+2)] [내구 94(+2)] [민첩 98] [체력 100(+2)] [마력 96] [행운 90(+2)]
2. 공찬호 : 525 / 600~
(잔여 능력치 포인트는 0포인트입니다.)
[근력 101(+6)] [내구 87] [민첩 91] [체력 92(+2)] [마력 81] [행운 73]
일단 능력치는 근력과 행운을 제외하고 모두 조금씩 오르기는 했다. 확실히 명성이 높은 사용자였던 만큼, 잠재성도 상당한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은 능력치보다는, 성향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오만. 그리고 열등감…?
“알겠으니까 그만 좀 노려봐. …거참 까다롭기는.”
그때, 공찬호가 양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인다.
나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교육 방해 마시고 그만 나가시죠.”
“아, 예 예.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무려 총 교관을 수하로 두신 김수현 교관님의 말씀인데요. 바로 물러나 드리죠. 흐흐.”
결국 끝까지 이죽거린 공찬호는 음침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고, 이내 건들건들한 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그런 공찬호의 등에 매어진 수라마창은, 그 어느 때보다 짙은 마기를 뿌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가까이 있는 교육생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흠.”
문득, 뭔가 짚이는 바가 생겼다.
*
시간은 화살과도 같아, 어느새 6주차 교육을 시작한지도 5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남은 이틀이 교육 일정이 없는 개인 정비 시간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6주차 교육은 끝난 셈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나는 5주차 교육 일정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이번에 머셔너리에서 참여한 모든 교육 교관들을 호출했다.
사용자 아카데미의 특성상, 주가 지나갈수록 병아리들을 클래스뿐만 아니라 수준별로 나누어 교육을 시행한다. 그런 만큼 교관들 또한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 교육 주차 중에는 서로 시간을 맞추기 힘든 게 다반사였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 회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용자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유가 무료 봉사가 아닌 이상, 서로가 아는 정보를 공유할 필요는 있었으니까.
툭툭, 창틀에 떨어져 내리는 빗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늦은 밤.
오늘 호출에 응한 인원은 하연과 안현으로, 신재룡은 총 교관 일이 바빠 참석을 하지 못했다. 보조는 애당초 부르지도 않았고.
사실 모두 모이게 하는 데는 주말을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좋으나, 아직은 개인 정비 시간을 침해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주말은 각자 교육 때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으로 보내게 하고 싶었다. 나름의 배려라고나 할까.
그렇게 오후에 시작한 회의는, 이제 거의 끝나가는 상태였다.
“제 눈에는 그래도 괜찮은 병아리들이 몇 명 보이는데요. 수현의 기대가 너무 높은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초반에 경쟁이 과열된 것치고는 확실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요.”
나는 차분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하연은 고개를 살짝 갸웃하고는 기록 하나를 집어 들었다. 병아리의 성적이나 특이 현황 등이 적힌 기록이었다.
“시크릿 클래스가 있는데도요?”
“그것도 봐야 압니다. 아무리 클래스가 좋아도 능력치가 낮으면 헛일이에요. …아직 그쪽 계열은 보지를 못해서 모르겠지만 말이죠.”
확실히 하연의 말대로 괜찮은 병아리들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쳐줘도 통과의례 때 애들의 수준으로(물론 안솔은 제외하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딱히 끌리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그만그만한 수준이라는 것은, 결국 전력으로 끌어올리는데도 비슷한 시간이 들어간다는 소리였으니까. 보모 짓은 이제 정말로 사양하고 싶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대충 들을 건 들은 것 같으니 오늘 회의는 이만하도록 하죠. 8주차부터 정신 교육을 조금씩 실시한다고 하니, 그때 한 번 자세히 볼 기회가 있을 겁니다.”
“네. 혹시 성적이나 특기 사항 등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눈여겨보고 있을게요.”
“처음에 가져온 기록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연은 눈에 보이는 성적 말고, 특이 현황 쪽에 조금 더 집중해주세요. 혹시 사용자 신상용처럼 조화의 마방진 같은 특기를 가진 병아리가 있다면…. 영입도 고려해봄 직하니까요.”
“알겠어요. 아차! 수현?”
하연이 끄덕끄덕하며 탁자에 어질러진 기록을 정리하려는 찰나, 갑작스럽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혹시…. 그 일은 괜찮아요?”
“예?”
그 일?
나는 머리를 갸웃했다. 그러자 하연이 조금 수심에 젖은듯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찬호요. 그 사람, 수현이 교육하는데 와서 난동을 피웠다면서요?”
“아아. 난 또 무슨 일이라고. 난동까지는 아닙니다. 하여간 괜찮으니 걱정 말아요.”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그 사람 소문이 얼마나 안 좋은데요.”
“음? 소문이요?”
정말로 그렇다는 듯 하연은 크게, 아주 크게 고개를 움직였다. 그리고 매우 불쾌해하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 사람 성격 엄청 이상해요. 숙소가 바로 제 옆인데, 보조랑 같은 방을 쓰거든요?”
“보조라면….”
성하얀인가.
“성하얀이라는 여성 사용자에요. 아무튼 같은 방을 쓰는 건 좋은데 밤마다 신음이 들려온다고요. 그게 꼭 저 들으라고 그러는 것 같다니까요?”
“응? 신음이 들려온다고요?”
“네. 관계를 맺는 거죠. 그뿐만이 아니에요. 가끔씩 고함치는 소리도 들려오는데, 그럴 때마다 꼭 하얀씨가 우는 소리도 들려와요.”
“…미친놈이군요.”
맞장구를 쳐주자 하연은 “그렇죠?”라 말하며 눈을 흘겼다.
그나저나, 그렇게 아끼던 성하얀마저 막 대한다고?
나로서는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동시에 공찬호에 대한 의문이 더욱 증폭되는 걸 느꼈다. 그놈은 도대체 2년 동안 무슨 일을 겪었던 걸까?
“저…. 형.”
그때였다.
여태껏 시무룩이 앉아있던 안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흘끗 시선을 주니, 여전히 힘이 없어 보이는 얼굴이다.
“저…. 회의 끝났으면 그만 가봐도 될까요? 저 곧 순찰 돌 시간이라서요.”
“어 그래. 고생했다.”
“아니에요. 하하….”
“아, 안현. 순찰 돌다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알지?”
그러자 막 몸을 돌리려던 안현은 일순 쓰게 웃어 보였다.
“그럼요. 확실히 숙지했는걸요. 선 보고 후 조치. 그리고 걱정 마세요 형. 어차피 숙소 내 순찰이라 별일도 없을 거예요.”
나는 그런 안현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뜻 모를 한숨을 푹 흘리는 모습을 보며,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그렇게 싫으냐?”
“예?”
“차희영 말이다. 그때 내가 말을 잘못했다면, 미안하다. 다시 말해줄 수 있어.”
“아…. 아니요. 아니에요 형. 절대, 절대, 절~대로 그러지 마세요. 그러니까 싫다기보다는….”
“보다는?”
“…….”
무언가를 말하려던 안현은 돌연 입을 다물었다.
하연은 어떤 대화인지 모르겠다는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와 안현을 번갈아 보았다.
잠시,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창틀을 때리는 빗소리가 조금 거세어졌을 즈음.
안현은 갑자기 시답잖은 웃음을 흘리고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니에요. 생각해보니까 별로 큰일도 아니고, 사소한 일이잖아요. 이런 것까지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한 번 어떻게든 해볼게요.”
매우 기특한 말이기는 한데, 네 말처럼 그렇게 사소한 일은 아니라서 말이지. 마녀, 아니 차희영에 관한 일은 내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일이란다.
그러나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낼 수 없는 말이라,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었다.
이내 안현이 꾸벅 인사한 후 문을 나가자, 하연이 상체를 바싹 기울이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방금 나눈 대화가 너무나 궁금하다는 얼굴로.
“수현 수현. 무슨 일이에요? 현이, 혹시 연애해요?”
훌쩍 가까워진 하연을, 정면에서 지그시 응시한다. 시원하고 맑은 물 내음이 콧속을 물씬 찔러 들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하연을 보고 있자, 불현듯 도도록이 붙어있는 적당히 붉은 입술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침대를 돌아보아 마르와 도도가 자고 있음을 확인한 후, 나는 천천히 얼굴을 내밀어 하연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일순 하연의 눈이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렸지만, 그것도 잠시.
하연은 곧 서서히 눈을 감았다.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입을 맞춘 후, 나는 천천히 얼굴을 떼었다.
하연은 한동안 여운을 음미하는 듯 보이더니, 잠시 후 차분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잔잔한 미소….
“헉.”
를 지으려다가, 갑작스럽게 격한 헛바람을 들이켰다.
“히끅!”
이어서 히끅 딸꾹질을 하기까지?
그런 하연의 눈은 나를 보고 있지 않다. 시선으로 보아하니 어깨 너머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예상외의 반응.
하여 나 또한 시선을 돌려 침대를 바라본 순간, 나는 하연이 왜 그런지를 알 수 있었다.
“…삐삨.”
“…….”
언제 일어났는지, 침대에는 도도가 고개를 빠끔히 내민 채 나와 하연을 훔쳐보는 중이었다.
그것도 씨익 웃고 있는 채로.
*
다음날.
비로소 6주차 교육 일정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고, 개인 정비의 시간인 주말이 돌아왔다.
나는 아침 식사 내내 나를 보며 씨익 웃는 도도를 한 대 때린 후에, 안솔과 함께 총 교관 실로 향했다.(당연히 도도는 발작했지만, 한별에게 맡기고 나서 바로 식당을 나왔다.) 주말 동안 밖으로 나갈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실 병아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원칙적으로는 교관들도 교육 중에는 외출할 수 없다.
그러나 정 급한 사정이 생기면 총 교관의 허락 하에 주말에 한해서 외출이 가능했는데, 말인즉슨 신재룡의 재가가 들어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지금 신재룡을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고.
주말에 할 일은 원래 총 두 가지였으나, 어젯밤 하나로 줄어들었다. 한소영이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겨, 주말 동안 모니카에서 보내기로 했다고 연락을 보내온 것이다.
사실 나야 큰 상관은 없다. 한소영이야 추후에 아카데미 안에서 만나면 되고, 외출도 신전에만 잠시 들르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아니. 잠시일지 아니면 생각보다 오래 걸릴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동안 같은 장소에 있었다고는 해도, 아직 서로 만난 적은 없다. 나도 교육 첫 주차에는 나름 할 것들이 있어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제는 서서히 풀어야 하지 않을까.
진수현과 맹아라. 그리고 나와의 관계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더욱 빠르게 걸음을 놀렸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독자 분들의 배려 덕분에 하루 동안 머리를 식힐 시간을 가질 수 있었네요.(사실 주구장창 잠만 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아. 오늘 여러분께 한 가지 알려드릴 게 있다면, 메모라이즈를 조금 색다른 방향으로 만나보실 수 있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비주얼 노벨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하실 거예요. 스마트 폰 게임인 방 탈출이나 회색 도시처럼, 메모라이즈를 시각화한다고 보셔도 좋습니다.
얘기는 한 3달 전부터 오고 갔는데, 아마 4월 1일쯤에 확정될 것 같아요. 그때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