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514
00513 Vs 101. =========================================================================
어느덧 사용자 아카데미도 7주차 교육에 접어들었다. 주가 늘어날수록 교육은 더욱 타이트하게 진행되었고, 교관들은 그만큼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그것은 특별 교관인 나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바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도 나는 진수현에 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꼭꼭 숨은 병아리와 기약 없는 숨바꼭질을 하는 것보다는, 보증 수표나 다름없는 진수현의 영입을 우선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병아리 탐색을 아예 포기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진수현과는 아직까지 직접적인 접촉을 한 건 아니었다. 현재의 진수현은 가망성 하나만 보고 평가하는 유망주가 아니니까. 말인즉슨, 진수현은 이미 1인 투자자가 아닌 거대한 기업이라 봐도 좋은 사용자였다. 그런 만큼 개인 대 개인의 영입이 아닌 M&A의 개념으로 다가가야 한다.
또한 그러한 의미에서, 우선 진수현이라는 사용자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야 했고.
진수현.
높은 잠재성과 검술 전문가라는 시크릿 클래스, 그리고 마법사의 악몽이라 불릴 정도로 명성 높았던 사용자.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외적인 요인에 불과하다. 이미 영입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더는 볼 필요가 없는 것들. 즉 그런 것들보다는 조금 더 내적인 요인을 파고들어 영입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우선 진수현의 영입 가능성을 높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는 현재 진수현의 신세가 낙동강 오리 알이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1회 차 때 진수현이 지금처럼 클랜 로드가 아닌, 수하 사용자로써 활약했다는 것이다.
우정민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우정민은 1회 차 때 붉은 송곳니라는 매우 유명한 클랜을 이끌었지만, 2회 차에서는 머셔너리 클랜원으로써 활약하고 있었다. 우정민도 그러한데, 하물며 진수현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세라프의 말에 따르면, 진수현은 2회 차에서 소설의 주인공처럼 살아왔다고 한다. 지금껏 성공 가도를 걸어왔으며 수하 동료를 이끄는 입장에 있는 엄연한 클랜 로드였다. 세라프가 말한 선장이라는 표현은 그런 의미였다.
세라프의 걱정은 알고 있다. 한 배에 선장이 두 명일 수는 없다. 요지는 내가 진수현이라는 사용자를 품을만한 그릇이 될까, 라는 것. 결국 영입 작업에 앞서 진수현의 자존심, 혹은 자존감을 꺾는 게 선결 과제였다.
“김수현 교관님 오십니다!”
그때, 앞쪽 복도에 보이는 강의실에서 내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우당탕 요란한 소음이 울리고, 곧 빠르게 소란이 잦아드는 기척이 느껴졌다.
상념이 너무 깊었던 걸까. 진수현 생각을 하며 하염없이 걷고 있자니 어느새 강의실 앞에 도착한 모양이다. 이내 창문 너머로 급히 자리에 앉는 교육생들을 확인한 후, 나는 차분히 문을 밀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 교육할 인원은 약 50명 정도로 검사 클래스를 가진 교육생들이었다. 사실 딱히 볼 일이 없는 놈들이기는 했다. 이미 제 3의 눈으로 관찰한 결과 영입할만한 사용자는 없다는 판단을 내렸으니까.
그러나 일정이 바빠짐에 따라 가끔씩 어느 교육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고는 한다. 바로 오늘처럼. 사실 꼭 맡아야 할 의무까지는 없으나, 그래도 주변 평판을 생각해서라도 하는 게 좋았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오늘 일정은…. 근접 계열들 전체가 야외 교육으로 잡혀있네요. 맞습니까?”
뒷짐을 진 채 물어보자 “예~.” 하는, 약간 힘이 빠진듯한 목소리가 돌아온다. 그도 그럴 것이, 야외 교육은 다른 말로 체력 훈련 또는 실전 교육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주말에만 하던 생사결이 사라진걸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타 교육이 녹록하다 말할 수 있는 건 결코 아니었다.
방금 교육생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야외 교육이라 함은 십중팔구 체력 훈련을 하는 경우가 많아 지금 저렇게 울상을 짓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벌써부터 허벅지를 두드리는 교육생도 보일 정도였다.
나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오늘 야외 교육은 체력 훈련이 아닙니다. 다른 실전 교육을 할 생각이니, 다들 표정 풀고 밖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미 다른 근접 계열들 모두가 운동장으로 나간 것 같으니까요.”
그러자 이번에는 “오~.” 하는, 생기 도는 감탄이 들려온다. 이어서 한층 의욕적인 얼굴로 장비를 챙기는 교육생들을 보아하니, 정말 체력 훈련이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다. 이렇게 체력 훈련을 등한시했다간 나중에 후회할 텐데.
나는 쓰게 웃으며(사실 체력 걱정은 3년 전만 해도 남 일이 아니었다.), 들어온 지 채 5분도 되지 않은 강의실을 벗어나 복도로 나섰다.
“김수현 교관님. 검술 교육생 57명 전원 준비 끝났습니다.”
“그럼 출발하죠.”
이윽고 교육생 대표가 준비를 마쳤다 보고하자, 나는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근접 계열들은 벌써 나갔는지 가면서 보이는 강의실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후. 살았다. 체력 훈련 하는 줄 알고 완전 절망했는데.”
“아직 좋아할 때는 아니야. 혹시 아냐. 체력 훈련보다 더 힘든 훈련이….”
“에이 설마. 그래도 교관이 김수현이잖아. 그래도 공찬호 그 새끼보다야 낫겠지.”
“하긴. 그나마 얘 교육이 재미있기는 하지. 공찬호 걔는 진짜 무식의 극치를 달리잖아? 킥킥.”
가는 도중, 교육생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들을 듣고 있자 싱거운 웃음이 나온다. 설마 내가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나저나 공찬호에 대한 얘기가 꽤나 재미있다. 무식의 극치를 달린다 라. 도대체 어떤 식으로 교육을 했길래 저런 말들이 나오는 거지?
아무튼 조금 더 듣고 싶은 마음에 나는 살그머니 청력을 높였다. 그와 동시에, 입구를 지나 햇볕이 비치는 밖으로 한 걸음 나선 순간이었다.
쾅….
흡사 폭탄이 터진듯한, 무언가가 거대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리를 감안하면 폭음이라 봐도 좋을 울림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걸음을 정지했다. 그러자 교육생들도 갑작스럽게 걸음을 멈춘 탓에, 잠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나는 온몸의 감각을 한껏 올리고, 발을 구르며 마력 감지를 최대한으로 퍼트렸다.
쾅…. 쾅….
연이어 들려오는 폭음. 방향은 북서 방향으로 약 300미터. 장소는 운동장으로 추정.
나는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무언가 좋지 못한 일이 터졌다는 것을. 더구나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라면, 현재 다른 클래스의 근접 계열 교육생들이 있다는 소리였다.
나는 곧바로 교육생 대표를 호출했다.
“교육생 대표. 지금 당장 교육생들을 인솔해서 강의실로 돌아갑니다.”
“…예? 하지만 오늘 야외 교육을 하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무언가 일이 터진 것 같은데,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좌우간 우선은 인솔해서 강의실로 돌아갑니다.”
“으, 으아악! 도, 도와주세요!”
그때였다.
교육생 대표가 입이 열리는 찰나, 한쪽에서 누군가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들을 수 있었는지, 우리는 바로 구조 요청이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약 열댓 명의 교육생들이 있는 힘껏 달려오는 중이었다. 운동장이 있는 장소를 등지고서.
“아,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교육생 대표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듯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교육생들이 주춤주춤 돌아가는걸 확인한 후 나는 바로 몸을 돌려 입구 쪽으로 달려오는 또 다른 교육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또한 교관을 찾고 있었는지 나를 보며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헐떡거리면서도 굉장히 다급해 보이는 얼굴이다.
“기, 김수현 교관님!”
이윽고 지척까지 다가온 교육생은 거의 무너질듯한 모습으로 나를 부여잡았다.
“예. 무슨 일입니까?”
“크, 큰일났습니다! 지, 지금 바로 운동장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진정하시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차분히 말씀해보세요.”
“교, 교관 두 분이. 두, 두 분이 잠깐 말다툼을 했는데! 아, 아니. 그러니까 갑자기 대련을 보여준다고 했는데! 그런데 대련이…. 아후! 이게 아닌데!”
지금 이 사태가 너무나 황망스러운지, 교육생은 허둥지둥 횡설수설 말을 하다 스스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얘는 절대 영입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교육생의 말을 차분히 곱씹어보았다. 두 분이. 말다툼. 갑자기 대련. 그런데 대련이.
“두 교관이 말다툼을 하다가 갑자기 대련을 했는데, 그 대련이 대련 같지가 않다. 그래서 제가 가봐야 한다. 이 말입니까?”
몸을 덜덜 떨던 교육생은, 한순간 나를 멍하니 응시했다. 그리고 아차 하는 얼굴이 되더니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알겠다는 의미로 어깨를 한 번 쳐주었고, 지체 않고 땅을 박차며 달렸다. 그러자 정지돼있던 풍경이 삽시간에 물 흐르듯이 지나치는 풍경으로 변한다. 전쟁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있는 힘껏 달려보는 것 같다.
쾅. 쾅. 쾅. 쾅.
운동장까지는 약 300미터.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은 길이였다. 하지만 민첩을 한껏 끌어올린 터라 거리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폭음이 더욱 확연히 들려온다는 게 그 방증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린 걸까?
잠시 후 저 앞에서, 서서히 목적지가 모습을 드러낼 즈음. 나는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 그 교육생이 왜 대련이 대련 같지가 않다고 말했는지, 운동장을 보자마자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운동장에는 외곽을 둘러싸고 기백 명이 넘는 교육생들이 멀리멀리 퍼져있었다. 그러나 절반 이상이 두 다리로 서 있지 못한 채 바닥에 주저앉아있다. 그럴 만도 했다. 나조차도 눈살을 찡그릴만한 불길한 살기가 뭉클뭉클 퍼져 나오는데, 교육생들이라고 버틸 도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흙먼지가 자욱이 일은 운동장 중앙은, 흡사 수십 개의 클레이모아 지뢰를 터뜨린 듯 보기 싫게 쩍쩍 갈라진 상태였다. 홀 플레인에 지뢰가 있을 리는 없고, 누군가 강력한 근력이나 마력으로 바닥을 내려친 게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중앙 부근을 자세히 주시했다.
범인은, 생각보다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공찬호?”
최대한 높인 안력은 자욱이 흩날리는 흙먼지를 뚫고 들어가 바로 공찬호를 발견했다. 눈을 크게 뜬 채 눈동자를 번득이던 공찬호는 이내 양팔을 하늘로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모은 양손에 짙은 마기를 흘리는 수라마창이 들려있다. 그것은, 누군가를 내려치려는 모션이 분명했다.
자세한 상황은 모른다. 하지만 공찬호를 보아하니 더는 어물쩍 거릴 틈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곧바로 온몸을 웅크렸다.
궁신탄영(弓身彈影)의 준비 자세였다.
*
꽝!
강력한 돌진이 청년의 몸을 후려쳤다.
“크악!”
반사적으로 방어하기는 했지만, 이내 청년은 정신 없이 허공을 날아가 바닥으로 거칠게 처박혔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짙은 빛을 흘리는 창 날이 청년이 처박힌 부근을 폭풍처럼 후려갈긴다.
꽝! 꽝! 꽝! 꽝!
청년은 본능에 따라 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그러면서 분하다는 듯 지그시 입을 깨물었다.
한 대. 딱 한 대였다. 공찬호의 압도적인 근력을 이기지 못해 최대한 회피하면서 틈을 노릴 생각이었는데, 일부러 드러낸 함정에 걸려 되레 한 대를 맞고만 것이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몸을 굴러 피하고는 있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빗겨 맞은 일격임에도 불구하고 하체는 후들거리다 못해 감각을 거의 상실해가는 중이었다.
“후. 피하는 것 하나는 발군이군. 아주 도사야 도사.”
네 번의 일격 중 하나도 걸리는 것이 없자, 공찬호는 창을 땅에 질질 끌면서 청년과의 거리를 줄였다. 땅을 긋는 창에서는 불길하기 그지없는 칠흑 색 아지랑이를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큭.”
이윽고 바닥에 주저앉은 청년을 마주한 공찬호는 느닷없이 히죽 웃어 보였다. 그것은 마치 너는 역시 네 상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듯한, 명백한 도발이었다.
청년의 가슴 한 켠으로 기이한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치솟아오르는 굴욕감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청년은 알고 있을까? 그런 표정을 지을수록 공찬호가 더욱 기뻐한다는 사실을.
청년이 외쳤다.
“미, 미쳤어? 이게 대련이야?”
“음? 그럼. 대련이지.”
“웃기지…!”
“우리가 병아리는 아니잖아. 그래도 교관으로 들어온 북 대륙 내 정예 급 사용자인데, 그에 걸맞은 수준을 보여야지. 안 그런가? 수현 교관?”
그러자 청년, 아니 진수현의 눈에 불꽃이 튀겼다. 이내 어떻게든 일어나려는 듯 양손이 땅을 짚었지만, 상체만 들썩일 뿐이었다. 아까 창대로 얻어맞은 두 허벅지는 잠시지만 감각을 상실한 상태였다.
“아니면. 설마 이 정도 대련도 못 버틸 실력인데, 꼴에 교관이랍시고 들어온 건가? 하하하!”
그런 진수현을 보며 느물거린 공찬호는 크게 웃어 젖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무나 즐거워하는 얼굴. 보이는 그대로, 지금 이런 상황이 공찬호에게는 너무나 즐거웠다.
하나같이 두려워하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병아리들. 그리고 땅에 주저앉아 일어나지도 못하는 주제에, 분한 기색으로 노려보는 진수현. 이 모든 게 공찬호 내부의 흥분하게 만들고 있다.
이윽고 뚝 웃음을 그친 공찬호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공찬호의 시선에는,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는 청년의 얼굴에 누군가의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공찬호는 생각했다. 2년 전, 똑같은 사용자 아카데미에서 자신에게 커다란 자괴감을 안겨준 사용자를.
감히 자신을 품평하듯 거만하기 짝이 없던 눈동자를 떠올리자, 공찬호는 비틀린 웃음을 내었다. 그리고 처음 봤을 때부터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심지어 그 누군가와 이름마저 똑같은 청년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어때. 항복인가? 수현 교관?”
“개소리하지 마! 대련에 무슨 항복이야!”
그러자 호오, 감탄하며 과장된 몸짓을 보이는 공찬호.
“그럼 이번 기회에 똑똑히 알려주마! 수라마창의 진정한 주인이 누군지를 말이다! 크하하하하하하하!”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받아 치려던 진수현은 한순간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공찬호의 눈에서 섬뜩한 빛이 뿜어지더니 양손을 하늘 높이 번쩍 들었다. 곧이어 창의 주변으로 무지막지한 죽음의 기운이 게걸스레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일순 진수현의 낯에 아연한 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상태로 창을 까닥까닥 흔들자 곧바로 검을 거머쥔 진수현이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도발에 넘어간 것을 확인한 공찬호는 킬킬 웃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진수현이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있는 힘껏 수라마창을 내리쳤다. 기습적인 공격이었다.
뒤늦게 마주 검을 찔러 올리는 진수현을 보며 공찬호는 광소했다. 죽일 생각까지는 없다. 하지만 어디 한 군데 정도 짓이기는 건 상관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공찬호였지만, 창에 담긴 마력은 강철도 일거에 터뜨릴 정도의 기운이 모여있었다.
그렇게, 오른팔을 노리는 창과 가슴을 찌르려는 검이 서로 교차하기 직전의 순간.
휘잉.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공찬호의 머리칼이 휘날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콰드득! 콰드드득!
꽝!
날카로운 철성과 땅을 헤집는 폭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공찬호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분명 자신이 한 발 앞서 내리쳤을 터인데, 애초 목표했던 팔을 짓이기기는커녕 되레 무언가와 부딪치는 느낌과 함께 엇갈리는 감각을 느낀 것이다.
동시에 온몸을 엄습해오는 무지막지한 충격. 마치 자신이 내려친 힘이 그대로 되돌아오는듯한 느낌이었다.
“우욱?!”
공찬호는 입을 꽉 다물며 창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엇갈린 수라마창이 땅에 깊숙이 박힌 탓에 간신히 몸을 가눌 수 있었다. 겨우 신물을 삼킨 공찬호는 겨우 정신을 차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말았다.
은은한 빛이 보였다.
아니.
한 사내가 은은한 빛을 흘리는 검을 비스듬히 세워 든 채, 공찬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언제 들어왔는지는 모른다. 비단 공찬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사용자들이 사내의 속도를 인지하지 못했다. 차마 눈 한 번 깜빡이기도 전에, 사내가 공찬호와 진수현의 사이를 바람처럼 파고들었던 것이다.
또한, 단순히 공찬호의 공격을 빗겨 막은 것만이 아니었다. 어느덧 아래에서 마주 찔러 올라오던 진수현의 검도 사내의 왼손에 잡힌 상태였다. 그것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오오오오….
재차 일었던 흙먼지가 가라앉은 후, 주변 교육생들 사이로 안도와 감탄이 뒤섞인 탄성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공찬호에게는,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까는 진수현의 얼굴에 겹쳐 보이던 누군가의 얼굴이, 지금은 실제로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찬호의 입에서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짐승과도 같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2년 전, 그 잊지 못할 차가운 눈동자.
그 시선과 마주한 순간, 공찬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기분이 삽시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걸 느꼈다.
============================ 작품 후기 ============================
다음 회는, 공찬호가 어디까지 찌질해질 수 있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굉장히 중요한 후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꼭, 꼭, 꼭, 꼭 끝까지 읽어주세요.
우선 독자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정신은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앞으로 더는 어제와 같은 후기는 없고, 정 심하다 싶으면 제가 코멘트로 말리는 방향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음음.
그리고…. 독자 분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혹시 모래가 울면 뭔지 아십니까?
흙흙….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예. 제가 정말로 잘못했습니다.
이게 진짜는 아니고요, 실은 오늘 여러분들께 고백할게 하나 있지 말입니다.
하…. 도대체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지금도 조금 고민은 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 말씀 드립니다.
실은 저는 말이죠.
(후기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