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520
00519 떠난 101, 숨어있는 101. =========================================================================
이 교육생들과 대면한 첫 소감은, 그냥 개판 5분전이라고만 느꼈다. 그저 그뿐이었다.
내가 교육생이었을 때처럼 군대 같은 분위기를 바란 건 아니다. 그래도 이건 자유분방함을 넘어, 아예 도가 지나쳤다고 볼 수 있었다. 아니.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확실하다.
이윽고 안솔이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보더니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교육생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큰 목소리로 외친다.
“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버릇없어요!”
그러나 교육생들은 여전했다. 오히려 “우~.” 야유하며 계속 웅성웅성 지껄인다.
“조용히들 하시라니까요!”
“에~이, 빡빡하시네. 너무 그러지 마시고 좋게좋게 가요. 어차피 상부상조하자는 건데.”
“사, 상부상조?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상관 있죠. 김수현 교관님이 머셔너리라는 클랜의 클랜 로드시라면서요. 그럼 우리가 클랜에 관한 질문을 하면, 답변 겸 클랜 홍보도 되는 거고. 흠~. 안 그런가?”
처음 말을 꺼낸 앳된 청년이 재차 동의를 구하려는 듯 교육생들을 돌아본다.
그에 발끈한 안솔이 입을 열려는 찰나, 나는 차분히 손을 들어 안솔을 제지했다. 그리고 교육생들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까이, 더 가까이.
“질문은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교육생들은 모두 조용히 하시길.”
“아니 왜요?”
“…저는 여러분들을 교육하러 온 교관입니다. 홍보는 아직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설령 교육생들이 먼저 질문을 해 그에 관한 답을 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교육에 한정한 내용이어야 합니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홍보성이 짙은 말을 꺼내는 순간 원칙에 어긋나게 됩니다.”
“어? 그래요? 이상하네. 다른 교관님들은 잘만 대답해주시던데?”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었음에도 앳된 청년은 오히려 머리를 갸웃해 보였다.
그리고, 조금은 소란이 가라앉은 순간이었다.
“알겠어요. 그럼 그런 것들 말고 다른 질문은 해도 되죠? 김수현 교관님은, 혹시 한소영 교관님이랑 무슨 사이세요?”
그 말이 나온 순간, 잠시 조용해졌다 싶은 강의실은 도로 커다란 웃음소리로 가득 차 버렸다.
아하하하!
깔깔깔깔!
손뼉을 치며 허리까지 꺾어가며 웃는 교육생들. 나는 그런 교육생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사실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상하리만치 높은 적응력.
시크릿 클래스나 통과의례의 괴물을 물리친 전적.
이전 여느 기수들보다 높은 평균 성적.
그리고 어디 한 번 우리 앞에서 클랜을 홍보해보라는, 뭔가 알고 있다는듯한 말투.
지금껏 들어온 교육생들의 정보나 방금 말하는걸 들어보면 뻔하지 않은가.
활성화 전부터 시작된 과도한 경쟁이 문제였다. 말인즉슨, 눈앞의 교육생들은 현재 자신들의 입장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 수료 후 자신들을 영입하려는 클랜들이 줄을 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까지 된 원인에는 아마 교관들의 태도가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확신하건대 직접적으로 말로 꺼내지만 않았을 뿐이지, 은연중에 드러낸 교관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마력 재능 계열 최상위권이라는 타이틀은 그러한 자부심을 더욱 고취시켰을 것이고.(마력 재능 계열 사용자들은 비단 사용자 아카데미뿐만이 아니라, 홀 플레인 자체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
한 마디로, 이놈들은 자신들이 벌써부터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강의실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나는 차분히 마력을 일으키며 느릿하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건 완전히 개판인데….”
그렇게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력이 충만하게 들어간 목소리라, 교육생들의 고막은 확실히 흔들었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 왁자하던 소음이 약간이나마 잦아든 게 바로 그 증거였다.
“헐~. 김수현 교관님. 개판이라니요. 그게 아니라요. 실은 제가 시크릿 클래스거든요.”
그때, 처음 말을 꺼낸 앳된 청년이 약간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시크릿 클래스?”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그러자 청년이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의기양양이 말을 잇는다.
“예. 그런데 김수현 교관님도 시크릿 클래스고, 머셔너리 클랜도 그런 사용자들이 많다고 들었거든요?”
말을 들으며, 나는 제 3의 눈을 활성화한 후 앳된 청년을 지그시 응시했다.
1. 이름(Name) : 고영우(0년 차)
2. 클래스(Class) : 영혼 명령자(Secret, Soul Commander, Beginner)
3. 소속 국가(Nation) : -.
4. 소속 단체(Clan) : -.
5. 진명 • 국적 : Pedophillia • 대한민국
6. 성별(Sex) : 남성(18)
7. 신장 • 체중 : 174.7cm • 62.8kg
8. 성향 : 푼수 • 변태(Idiot • Lethargy)
아아. 이놈이 그 4차원에 오지랖 넓다는 교육생인가. …그런데 성향이 왜 저래?
좌우간 별 볼일은 없다. 나는 보자마자 바로 제 3의 눈을 해제했다. 절로 코웃음이 나왔기 때문이다.
혹시나 또 초반 능력치가 엄청 좋다면 모를까. 이 정도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수준이다. 영혼 명령자라는 시크릿 클래스를 제외하면 전혀 끌리지 않는 사용자 정보였다.
“어험. 그래서….”
“교육생. 그만.”
“…예?”
“말을 못 알아들으시는 것 같군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나는 헛기침을 하는 고영우의 말을 중간에 끊어버렸고, 곧바로 마인드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교육생들의 얼굴에 증오스러운 악마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살그머니 오른발을 들며 나직이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의 질문을,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그와 동시에, 적당히 마력을 폭발시키며 힘껏 바닥을 내리찍자.
쾅!
한순간 바닥을 타고 맹렬한 기세로 흘러간 마력의 파도가, 삽시간에 강의실을 점거했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이내 크게 솟구친 무형의 기운이, 스무 명 남짓한 교육생들을 모조리 찍어 내린다.
강의실에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
“…….”
감지, 점유에 이어 위압 효과를 받은 교육생들은 누구 하나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아니. 못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지 않을까. 하나같이 하얗게 질린 얼굴에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을 떨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적당히 조절했기에 이 정도지, 작정하고 했다면 지금쯤 강의실은 온통 비명으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나저나 어째 약간이라도 저항하는 놈들이 한 명도 없나. 그래도 한 명쯤은 기대했는데, 정말 수준 높은 거 맞아?
나는 교육생들을 한 번 쭉 둘러본 이후, 풀었던 마력을 일거에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절반 이상의 교육생들이 격한 숨을 뱉으며 책상에 널브러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 교육생들을 보며 나는 세심하게 손을 풀었다.
아무래도, 이번 시간에는 진정한 정신 교육을 해야 할 듯싶었다.
*
3시간의 정신 교육을 마친 후.
“거기서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냐.”
“죄송합니다. 형님.”
식당으로 가는 도중 핀잔조로 입을 열자, 진수현은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머리를 긁으며 헤헤 웃는다.
…얘는 곤란하면 꼭 머리를 긁더라.
사건은 이랬다. 정신 교육을 빙자한 기합 교육을 마칠 즈음, 나는 선심이라도 쓰는 양 질문을 허락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3시간 내내 기합을 받은 놈들이 무슨 질문을 하겠는가. 그걸 예상해 그냥 던진 말에 불과한데, 거기서 진수현이 덜컥 나서버린 것이다.
‘저 형님. 혹시 저도 질문해도 됩니까?’
아까 전 팔을 번쩍 들던 진수현을 회상하며, 나는 한숨과 함께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형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하셨어요?”
“응? 그런 생각이라니?”
“이번 정신 교육이요. 오늘 걔들 기합 주시는 거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요.”
“아아. 별거는 아닌데. 그거 나도 당한 거거든.”
나는 싱겁게 웃었다. 진수현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보였으나, 정말 거짓말이 아닌 사실이었다.
아주 예전, 그러니까 홀 플레인에 넘어오기 전으로 막 군에 입대했을 무렵.
군생활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기억을 꼽으라면, 나는 유격도 화생방도 아니었다.
바로 신병 교육대에서 받았던 기합이었는데, 나를 제외한 동기들이 기합 받는걸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기합 아닌 기합이었다. 어느 조교가 나와 동기가 몰래 떠드는걸 확인한 후, 나 그리고 떠든 동기를 제외하고 다른 동기 전부를 기상시켜 기합을 준 것이다.
너희는 편히 있으라는 조교의 명에 따라, 앉아서 동기들을 지켜봐야만 했던 입장은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그때 동기들이 나를 노려보던 눈빛은 아직도 잊혀지지를 않는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방금 교육에서 똑같은 기합을 주었다. 고영우와 한소영과 어떤 관계냐는 질문을 던진 교육생을 제외한 전원에게 기합을 준 것이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나는 둘에게 날씨도 좋은데 야외 교육 겸 산보나 하자고 했고, 다른 교육생들은 오리 걸음을 시키며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 탓에 다른 사용자들의 구경거리가 된 교육생들은 3시간 내내 사용자 아카데미를 돌아다녀야 했다.
아마, 지금쯤 허벅지를 두드리면서 방정맞게 입을 놀린 두 명을 원망할 테지….
아.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식당에 도착했다.
“저 형님. 그런데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급한 거야?”
이내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진수현을 향해 나는 식당을 가리켰다. 급한 게 아니면 밥 먹으면서 얘기하자는 소리였다.
진수현은 상관없다는 양 머리를 끄덕였고, 나는 곧바로 교관 전용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실 딱히 배가 고픈 건 아니나, 그래도 웬만하면 식사는 거르지 않는다. 요정의 숲 탈출 이후로 들은 일종의 습관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영양가 높은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 그릇을 들고 빈 테이블에 앉은 찰나.
“여~!”
“어머?”
누군가가 양 어깨를 툭 치는 게 느껴졌다.
“머셔너리 로드! 오랜만이야!”
“오랜만에 보네요.”
동시에 들려오는, 걸걸한 목소리와 색스러운 목소리.
이윽고 건너편으로 털썩 주저앉는 두 사용자는, 다름 아닌 김덕필과 선율이었다. 그 중 나는 김덕필을 향해,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연초 없습니다.”
“…우리 오랜만에 보는데. 그게 보자마자 할 말이야? 응? 자기?”
“무슨 개…. 오랜만입니다. 사용자 김덕필. 그런데 연초는 없습니다.”
“…….”
한동안 김덕필은 망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 입을 막고는 무지 슬퍼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와 김덕필은 동시에 실소를 흘렸다.
“에라이. 달라고도 안 한다. 정말 치사하고 더러워서.”
“좋은 결심이네요. 그나저나 사용자 아카데미에서는 처음 보는군요.”
“아. 그렇지. 실은 네 말은 많이 들었는데, 요즘 바빠서 말이야. 나 교육 교관인 건 알고 있지?”
“머셔너리 로드? 대화 중에 죄송한데, 혹시 저는 안 보이시나요?”
교육 교관인 건 알고 있었다는 말을 하려는 찰나, 서운해하는 기색이 가득 깔린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선율을 한 번 바라본 후 “안녕하세요.” 인사를 던졌다. 그리고 김덕필에게 도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선율은 침울해하는 얼굴로, 들고 온 접시에 젓가락을 깨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라니요?”
의아히 되묻자 김덕필은 한동안 배를 잡고 웃어대더니, 품에서 연초를 하나 꺼내며 말을 이었다.
“소문 벌써 쫙 퍼졌어. 이번에 교육생들 한 번 제대로 잡았다며?”
“아.”
응? 벌써 퍼진 건가?
하기야 그럴 수도 있겠네. 3시간 동안 광고하듯이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으니까.
“사실 나는 그쪽을 안 맡아서 모르겠는데, 고소해하는 교관들이 꽤 있는 것 같더라고…. 그나저나 괜찮겠어?”
“뭐가 말입니까?”
“이번에 기합 준 거 말이야. 이번 기수 중에서 그놈들이 가장 주목 받는 놈들이라고. 마력 재능 계열 중 가장 성적이 높은 20명이잖아. 거기다 시크릿 클래스도 있고. 이러다 괜히 반감만 사는 거 아니야?”
“상관없습니다. 어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나요. 아닌 건 아닌 거죠.”
나는 딱 잘라 대답했다. 동시에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제 3의 눈으로 샅샅이 훑어본 결과, 역시나 입맛에 맞는 교육생은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있었어도 기합을 주지 않았을 리는 없으나, 중요한 건 내 눈에는 성에 차지 않는 놈들이라는 것.
어쩌면 하연의 말대로 내 잣대가 필요 이상으로 엄격하거나, 아니면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해도 영입하고픈 교육생은 없었다.
그때였다.
“어머? 수현아?”
갑작스럽게 선율이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갑자기 이 여인이 미쳤나 싶어 시선을 든 순간, 나는 잠시 멈칫하고 말았다. 선율의 시선이 나를 보고 있지 않은 탓이다.
그런 선율의 시선은, 바로 내 옆쪽을 보는 중이었다.
이에 시선을 따라 옆을 보자 접시를 든 채 멍하니 서 있는 진수현이 보인다. 아마 주문한 음식이 약간 늦게 나왔던 모양.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서, 선율 누나?”
망망히 서 있던 진수현의 입에서, 돌연 사시나무 떨듯 바르르 흔들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는 사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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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반응이 없다. 아무래도 죽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