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525
00524 혹시 갈림길이라고 아세요? =========================================================================
정말 신기한 일이지 않은가. 고작 수정구 영상 하나만 봤을 뿐인데 이렇게나 심신이 안정되다니.
…정말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힘이 작용한 걸까?
불현듯 조금 전 총 교관 실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항상 클랜 로드를 믿고 있으니까요.’
그 말이 이제야 조금이나마 와 닿는 듯싶었다.
잠시 후.
나는, 양손을 들어 두 뺨을 힘껏 쳤다.
짝!
살이 부딪치는 소리에 이어 볼이 후끈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어찌나 세게 쳤는지, 얼얼하다 못해 얼큰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흐린 안개가 서서히 걷혀가는 것처럼, 복잡했던 머릿속이 점차 가라앉는 게 느껴진 것이다.
그렇게 한결 맑아진 머리로 나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제갈 해솔과의 예상치 못한 첫만남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건 사실이다. 거기서 사용자 정보를 확인했을 때 그 충격은 더욱 배가됐고.
그뿐만이 아니다. 1회 차 시절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수송 마법의 개발과 비등비등했던 공터에서의 마력 겨루기. 그런 것들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제갈 해솔은, 사용자 공찬호와는 달리 자신의 특별함을 입증했다.
아마 그래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예전의 제갈 해솔이 어땠는지. 그리고 지금은 얼마나 특별한지. 또 앞으로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커나갈지.
나는 제갈 해솔이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친 후, 차후 무시무시하게 성장할 것을 두려워했다. 1회 차의 망령에 사로잡혀, 나도 모르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상상한 것이다. 한 마디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그것은 기우였다. 아니. 적어도 아직은 기우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지금은 1회 차가 아니니까.
2회 차를 새롭게 시작하며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녹화용 수정구에서 보았듯이 나는 이제 더는 혼자가 아니다. 나를 믿고 따라오는, 머셔너리 클랜원이라는 사용자들이 있다. 그것도 쉰 명이 넘는 정도로.
그에 반해 제갈 해솔은 이제 갓 홀 플레인에 들어온 상태이지 않은가.
물론 사용자 정보가 범상치 않음은 인정한다. 지닌바 재주가 높다는 것도 입증됐고 잠재성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말인즉슨, 결국에는 품을 수 있느냐, 없느냐.
혹은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렇게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걸 나는 도대체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한 걸까.
이렇게 된 이상 이야기는 확연히 달라진다.
우선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제갈 해솔을 죽이려 했던 것은 반성. 예전에도 생각했지만 무조건 죽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니까. 더구나 1회 차에서 제갈 해솔이 충성을 바쳤던 유현아는 지금 죽고 없어진 상태이다.
그런 만큼, 오히려 이건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더 없는 확실한 기회 말이다.
이제 제갈 해솔이 어느 누구에게 갈지는 알 수 없다. 경우의 수는 굉장히 무궁무진하다.
거기서 만에 하나라도 내가 품을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가히 최고의 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용자 정보는 두 말하면 입이 아프고, 죽기 전까지 족히 수백 번이 넘었을 영입 제의를 받았음에도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도 높이 살만하지 않은가.
물론 제갈 해솔이라는 사용자를 떠올려보면, 마냥 장밋빛 미래만을 상상할 수는 없다.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즉 내가 제갈 해솔을 영입하지 못하는 경우.
사실, 나는 제갈 해솔과의 첫만남에서 굉장히 기묘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교육생치고는 당돌하기 짝이 없는 태도와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화사한 웃음. 흡사 잡힐 듯 말 듯한, 그러나 언제라도 사라질 것 같은 기분?
말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밤이 늦었잖아요. 그리고 생활 교관님이라면 모를까. 교육 교관님이 밤늦게 교육생들 데리고 오면,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묘하다. 흡사 자신이 활동할 클랜은 자신이 고른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쪽의 의중이야 어찌됐건 아무래도 좋다. 조금 미안할 얘기일지는 모르지만, 선택권은 제갈 해솔이 아닌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무튼, 가장 중요한 건 제갈 해솔이 내게 오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
사실 그러한 경우는 상황이 조금 애매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은 있다. 이제 갓 홀 플레인에 들어온 병아리쯤 흔적도 없이 살해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뭐, 상대가 제갈 해솔이라면 적당히 미지근한 죽 먹기 정도는 될 수 있을지도.
좌우간 그렇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나는 있는 힘껏 기지개를 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맑고 푸른 날씨였다.
흘러가는 하늘을 보고 있자 돌연 싱거운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마 주말 내내 고민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
신재룡에게 들었듯이, 오늘 오후 일정에는 정신 교육이 잡혀있었다. 그것도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닌, 마력 재능 계열 교육생 전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었다.
그 말은 오늘은 제갈 해솔도 내 교육에 들어온다는 소리였다.
“후.”
“오라버니. 들어가세요. 오늘도 본때를 보여주시라고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자 쫄랑쫄랑 따라온 안솔이 강의실 문을 열어주었다. 눈을 한껏 부라리고 있는 게 교육생들이 나를 찔렀다는 말에 어지간히 분노한 듯싶었다.
나는 안솔을 향해 가볍게 웃어준 후 차분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강의실은 무척 조용했다. 뜻 모를 고요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주변을 돌아보니 약 200명은 돼 보이는 교육생들이 입을 꽉 다문 채 나를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 바로 왼쪽 창가에 제갈 해솔이 앉아있었다.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오직 홀로 태연한 얼굴. 그러다 돌연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안녕하세요.’ 입 모양을 그리며 살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내가 지긋이 보고만 있자, 이내 눈으로 가만히 웃어 보이며 한 손을 살랑살랑 흔들기까지.
나는, 그런 제갈 해솔을 마주보며 픽 웃어주었다.
사실 아직도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번처럼 다짜고짜 검에 손을 대는 건 사양이다. 보아하니 관찰이라는 성향이 매우 강한 것 같은데,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니까.
좌우간 내가 상대방을 읽을 수 없다면, 상대방도 나를 읽을 수 없게 만들면 된다.
이내 눈에 이채가 스치는 제갈 해솔을 뒤로한 채, 나는 중앙의 단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정신 교육 교관으로 들어온 김수현입니다. …뭐, 몇몇 분들은 반갑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한쪽을 주시하자 시선을 피하는 스무 명의 교육생들이 보인다. 저번에 나한테 기합을 받은 교육생들이었다.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눈을 질끈 감는 게, 속된 말로 “X 됐다.”라는 얼굴들이다.
사실 예전 같았으면 시작부터 기합을 주었겠지만, 이번에 그럴 생각은 없었다. 우선 지금 보이는 태도들이 나름 괜찮았기 때문이다. 물론 찌른 게 괘씸하다고는 하지만 그저 자그마한 반항 정도로 생각하면 그만이었고.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이번 영입 전쟁에서 나를 젖히려는 다른 교관들의 의도에 놀아날 생각은 없었다.
하여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라지만, 우선 저번의 기합 사건에 저 또한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시하겠습니다.”
그러자 번쩍 눈을 뜨는 교육생들. 그들의 얼굴에 혹시나 하는 빛이 떠오른다.
“사실 오늘 교관으로 들어온 것도 다른 교관들의 부탁을 받아서였습니다. 이번 교육생들. 특히 마력 재능 계열 교육생들의 태도가 근래 개판이라는 소리가 많아서요. 그런데 본인들이 통제하는 게 여의치 않아, 저보고 단단히 혼 좀 내달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말하면 어느 정도는 다른 교관들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개인적으로 하는 만큼, 보이는 만큼 대우해준다는 생각을 가진 터라. 그리고 오늘 여러분들의 태도는 아주 훌륭하거든요. 사실 이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우리 교관들이 여러분들을 존중해주는 만큼, 여러분들도 우리를 존중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렵지는 않지요?”
일단 틀린 말은 아닌지라 여러 교육생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게 보인다.
그 와중, 문득 한 앳된 청년이 눈에 밟혔다. 영혼 명령자라는 시크릿 클래스를 가진 교육생이다. 저번에 까불까불 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오늘은 한쪽 구석에 처박혀 한껏 주눅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보아하니 저번에 같이 수업 받던 교육생들과 한참이나 떨어진 자리인데…. 혹시 그때 일로 따돌림을 당하는 건가?
속으로 혀를 차며, 나는 잔잔히 말을 이었다. 이제 달래는 건 이쯤 해두고 정말로 교육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럼 바로 교육을 시작하죠. 아마 여러분들도 지금껏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우리 교관들은, 여러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주는 존재가 아니란 걸.”
교육생들이 조금은 멍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어쩌면 진부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이야기였다.
“홀 플레인은 게임이 아닙니다. 목숨이 하나에 불과한, 죽으면 그대로 끝나는 하나의 현실이죠. 그리고 교육생들은 사용자 아카데미를 수료한 후, 이 홀 플레인이라는 세상에서 기약 없는 활동하게 됩니다. 어쩌면 일생을 여기서 살아야 될지도 모르지요.”
일생이라는 말을 꺼내자 몇몇의 얼굴에 암담한 빛이 그늘지는 게 보였다. 이제야 조금은 심각해지는군.
“이 홀 플레인 세상은 사용자들의 사망률은 굉장히 높습니다. 통과의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어요. 당장 이 사용자 아카데미를 벗어나, 어느 도시든지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 누구도 목숨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말인즉슨, 여러분들의 목숨이 보호받는 기간도 이제 약 4주 남짓이라는 소리입니다.”
“…….”
“거짓말처럼 들리십니까?”
“…….”
“안타깝지만, 사실입니다. 지금 제가 여러분들의 앞에 서 있는 이 순간에서도, 어디에서 누군가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
교육생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나를 빤히 주시하거나 서로를 번갈아 보기만 할 뿐. 하기야 아무리 적응력이 높다고는 해도, 아직 이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이상 체감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조금은 화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이번에 들어온 인원이 약 400, 아니 500명 정도 되던가요?”
그러자 예, 하는 힘빠진 대답들이 들려온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저번 사용자 아카데미가 끝났을 때부터 이번 사용자 아카데미가 새로 활성화됐을 때까지, 딱 그 정도가 사망 또는 전력 외 판정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대체 인력으로 여러분들이 들어온 겁니다.”
“…저 교관님?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전력 외 판정이라니요?”
그때, 누군가 조용히 손을 들며 물었다. 약간은 허스키한 목소리였으나 들리는 어조로 보아 여성 교육생인 모양.
나는 질문이 들려온 쪽을 올려다보았다.
“말 그대롭니다. 사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하나의 가설입니다만…. 전력 외 판정이라는 소리는, 죽지는 않았지만 사용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기능…. 상실이요?”
“예. 탐험을 나가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도시를 나서는 순간 여러분들을 습격하려는 무리는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무작정 죽이려 달려드는 괴물도, 높은 지능을 갖춘 괴물도. 아니면 심지어 같은 사용자도…. 아. 이런 경우는 부랑자라고도 하죠.”
“네, 네. 그건 들었어요.”
“그렇군요. 아무튼 이 말은, 앞서 말한 적들이 여러분들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음을 뜻합니다.”
“다른…. 목적이요? 죄, 죄송해요. 이해를 잘못하겠어요.”
이해를 못하겠다는 말에 나는 팔짱을 끼며 입맛을 다셨다. 하긴 최대한 완곡하게 돌려서 말하기는 했다. 순간 이 얘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들었지만, 그래도 해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 교육이란 바로 이러한 부분들을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흠. 조금 잔인한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적나라한 예를 들어보죠. 사실 목적 자체는 간단합니다. 사내 같은 경우는 그 자리에서 먹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별로 쓸 데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여인들의 경우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단도직입으로 말해보면, 수태라는 능력이 있는 만큼 지능을 갖춘 괴물들은 바로 죽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태라면…. 임신이요? 서, 설마. 괴물의 아이를 배는 경우도 있다는 말씀이세요?”
“예. 정답입니다. 탁 까놓고 말해서, 모체 혹은 가축으로 전락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괴물의 종족 번식용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전력 외 판정이란 그런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여인으로 태어난 게 비운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마, 말도 안…!”
갑작스럽게 말이 끊겼다. 이후로 정확한 말들은 들려오지 않았으나, 여기저기서 자그마한 비명들이 속속이 터져 나온다. 아무래도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한 얘기를 듣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면 들어도 설마 라고 생각했거나.
이내 웅성거리는 소음이 한층 심해져 나는 책상을 탕탕 치며 소란을 진정시켰다. 교육생들은 곧바로 입을 다물며 내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이윽고 교육생들을 돌아보며 나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참고로, 방금 얘기는 본 교관의 경험담입니다.”
소음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
암울하기 그지없던 정신 교육이 끝난 후.
“오라버니. 수고하셨어요.”
곧바로 강의실을 나서자 안솔이 따라붙으며 수건과 음료수를 내밀었다. 나는 두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음료수만 집어 들었다. 내가 방금 링에서 내려왔던가?
“으음. 이로서 오늘 오후 일정도 끝났군요. 이제 다음 일정은…. 어디 보자.”
머리를 갸웃갸웃하고 있을 즈음, 안솔이 앙증맞게 헛기침을 하며 허리를 빳빳이 세웠다. 그리고 안경이라도 낀 것처럼 손을 놀리며 기록을 살피기 시작. …아무래도 요즘에는 비서 놀이에 빠진 모양이다.
나는 음료수를 들이키며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없는 기록은 왜 쳐다보냐? 그리고 다음 일정 없잖아.”
“아니요. 있어요.”
“?”
“안솔이라는 사용자를 찾아가서 놀아주는…. 으아앙. 때리지 말아요.”
안솔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으려 다가갔는데, 그새 눈치채고 도망간 것이다. 하도 맞다 보니 눈치가 는 걸까.
그렇게 종종종종 도망치던 안솔은 문득 우뚝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리고 정수리에 물음표를 동동 띄우는 게 왜 따라오지 않느냐 말하는 것만 같다. 그런 안솔을 향해 몇 번의 삿대질을 한 후, 이만 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저기~. 김수현 교관님~?”
돌연히, 간드러지게 올라가는 목소리가 나를 붙잡는다. 언뜻 시선을 돌리자, 기록 더미를 품에 꼭 안은 채 누군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 교육 정말 인상 깊었어요. 소문대로 말씀 재미있게 잘하시네요. 호호.”
나를 보며 정답게 웃으며 말하는 여인은 다름 아닌 제갈 해솔이었다.
참 잘 웃는 여인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잘 들었다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셨죠? 교육은 끝났습니다만.”
그때였다. 문득 누군가 옆으로 찰싹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거친 숨이 들려오는걸 보니 안솔이 도로 달려온 모양이다.
제갈 해솔은 잠깐 시선을 내려 안솔을 보았다가, 이내 나를 보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러자 바르게 있던 머리카락이 기울인 쪽으로 사르르 몰리며 찰랑 움직였다.
이윽고 제갈 해솔의 입술이 열렸다.
“네. 하지만 정말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 몇 가지 질문 좀 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교육에 관한 질문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으으응~. 이거 어떡하죠. 실은 교육에 관한 질문은 아니에요.”
“음? 그러면요?”
“약간 개인적인 질문이랄까요? 호호. 실은, 그날 밤에 관련한….”
“그, 그날 밤?”
안솔이 흠칫하며 내 허리를 꽉 붙잡는다. 나는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로 정수리를 꽉 눌러 내린 후, 차분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면 거절하겠습니다. 사적인 질문을 받는 건 허용돼있지 않으니까요.”
“어머. 너무 매정하세요.”
확실히 생각을 고쳐 먹어서인지 그때와는 다르게 말이 술술 흘러나온다.
…기실 그때는 내가 완전 찌질했지. 제갈 해솔을 앞에 둔 채 한 마디도 못하고 어버버거렸으니까.
하지만 이제 더는 아니다. 제갈 해솔은 두려움의 존재가 아닌, 하나의 커다란 먹이였다.
“저는 그 말이 더 놀랍군요. 그 부분은 오히려 더 잘 알고 있으실 텐데요…. 아차. 그리고 그 장소는 제가 앞으로 자주 순찰할 터이니, 더는 밤중에 몰래 오지 않으시는 게 좋으실 겁니다.”
“…흐응. 그거 참 아쉽네요.”
그러자 제갈 해솔은 낮은 비음을 흘렸다.
그리고 잠시 후.
웃음이 만연하던 얼굴에서 서서히 미소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어서 눈을 지그시 뜨며 나를 이모저모 살피는 게 흡사 관찰이라도 하는듯한 모습이다. 그 시선을 받으며 나는 미미하게 웃었다.
“소용없습니다. 그 눈은 확실히 좋은 능력이기는 하지만, 보이는 것만 보이는 능력이니까요.”
“…보이는 것만?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아까와는 다르게 상당히 가라앉은 목소리.
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소립니다. 저항 능력이 있는 사용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역으로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하하…. 아. 말이 길어졌군요. 아무튼 교육에 관한 질문이 없다면 이만.”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리려는 찰나.
“잠시만요.”
그 순간, 손에서 차가우면서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제갈 해솔이 내 손을 잡은 것이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오늘 부로 복귀한 로유진입니다. 🙂
역시 글은 하루라도 놓으면 안되겠네요. 고작 3일 놓았을 뿐인데 어찌나 이리 어색할까요. 하하하.
기다려주신 독자 분들께는 정말 감사합니다. 웬만하면 자정에 맞추고 싶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집에 돌아와서 적기 시작했네요. ㅜ.ㅠ
그래도 3일간은 정말로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메모라이즈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고, 또 상당 부분 정리할 수도 있었거든요. 우선 이 사용자 아카데미 파트를 어서 끝내고, 그 후를 진행하면서 하나하나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원래는 남은 회가 한 8회~10회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줄이고 줄여서 6회로 마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만큼 다음 이야기를 빠르게 적고 싶어졌다고 할까요. 😀
아무튼 다시 한 번 기다려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하며, 오늘부터 다시 열심히 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