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528
00527 홍보 주차. 그리고 다가오는 수료식. =========================================================================
“그럼 오늘 교육은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아아아~.
강의실 중앙에 선 채 교육 종료를 알리자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들이 흘러나온다.
주변에는 기백 명에 이르는 교육생들이 몰려있었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고 있지는 않다. 오직 단상에 올려 놓은 마르와 도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으로만 싫다고 아우성을 친다.
“어떡해 어떡해. 얘 좀 봐. 내 손 꽉 물고 있는 거. 완전 귀엽잖아~.”
“보여? 보여? 저 작은 날개 파닥파닥하는 거?”
여인들은 대다수가 도도에게 몰린 채 앞다투어 손을 내밀고 있었고.
“하아…. 하아…. 오…! 마르 님…! 오 나의 여신 님…! 그대는 어찌 이리 아름다우십니까…? 하아…. 하아….”
“미, 미친놈?! 김수현 교관님! 얘 좀 보세요! 얘 마르 보고 침 흘리고 있어요!”
사내들은 대다수가 마르에게 몰려 우쭈쭈 어르고 있었다.
이내 흘끗 시선을 돌리자, 눈이 그렁그렁한 채 한껏 불안한 얼굴을 한 마르와, 그 옆으로 양손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며 더운 숨을 내뿜는 앳된 청년이 보인다. 이상한 성향을 가진 시크릿 클래스 교육생이던가.
아무튼 그 간절한 눈초리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나는 마르를 데려와 번쩍 안아 들었다.
“자자. 모두 그만. 교육 시간이 끝났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데려올 테니 오늘은 이만하죠.”
“하아…. 하아…. 결혼…. 결혼하고 싶다….”
…이놈 병 있는 거 아니야?
이윽고 내 품에 꼭 안은 채 몸을 부르르 떠는 마르를 토닥이며 몸을 돌리자(도도는 어느새 돌아와 내 발목을 깨물고 있었다.), 갑자기 어느 교육생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나는 바로 걸음을 멈추었다. 시크릿 클래스인가 싶었지만, 처음 보는 교육생이었다.
교육생이 말했다.
“저. 김수현 교관님!”
“무슨 일이죠? 교육생?”
“다름이 아니라, 실은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요.”
“궁금한 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교육은 홀 플레인에 살고 있는 특이한 생물(?)들로 삼은 만큼, 딱히 질문할 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내는 한동안 주저주저하더니 곧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이제 몇 주 후에는 수료식을 하잖아요?”
“예. 그렇죠. 그런데요?”
“그러니까…. 그 머셔너리 클랜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어서요.”
“흠?”
그 말이 들려온 순간, 나는 비로소 질문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그러니까 왜 머셔너리 클랜은 홍보를 하지 않느냐는 말이지요? 다른 클랜은 전부 홍보를 하는데?”
교육생은 잠깐 흠칫하더니 끄덕끄덕 머리를 주억였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간단합니다. 왜 그러느냐면, 머셔너리 클랜은 따로 홍보 계획이 없으니까요. 이미 영입 계획은 잡힌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 교육생은 따로 스카우트 할 예정이고요. 어디까지나 일대일로 말이지요.”
“예? 자, 잠시만요! 그러면 스카우트 받지 못한 교육생은 머셔너리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인가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저 사용자 아카데미에 한해서만 스카우트 제를 취할 뿐이지, 머셔너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거든요. 그러니 원하신다면 직접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려주세요. 물론 가입 전 간단한 테스트는 봅니다.”
“아….”
“아무튼 그렇습니다. 더 할 말이 없다면, 이만 가보도록 하죠.”
“마, 마르 여신 님!”
이윽고 비통하게 울부짖는 시크릿 클래스를 젖히고 나서, 나는 곧바로 강의실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복도를 걸으며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모두의 관심을 모았던 사용자 아카데미도 마침내 홍보 주차에 접어들었다.
중앙 관리 기구는 애초 공약했던 것처럼, 10주차가 시작된 순간 홍보에 관한 일체의 제한을 풀어주었다. 교육 시간에 자 클랜을 언급하는 건 물론. 도를 넘지만 않는다면 식사를 사주거나 계약 조건을 제시하며 오퍼를 넣는 것도 허락해준 것이다.
그 결과, 지금껏 이리저리 눈치만 보고 있던 교관들은 미리 점 찍어둔 교육생들에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비로소 사용자 아카데미에도 본격적인 영입 전쟁의 막이 올랐다…. 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클랜의 상황이고.
머셔너리는 치열한 영입 전쟁에서 한 발짝 비껴서 있는 상태였다. 왜냐하면 홍보 주차로 들어가며 클랜원들에게 그 어떤 홍보나 오퍼도 하지 말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반발이 없는 건 아니었다. 현재 머셔너리 클랜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적은 인원수라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하연은 이 좋은 기회를 날릴 거냐며 베갯머리 송사까지 동원해 속살거렸지만, 나는 이번 결정은 절대로 철회하지 않을 거라 단단히 못을 박아두었다.
그냥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닌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첫 번째는 내가 구상한 머셔너리 클랜만의 고유한 색깔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사실 홍보를 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정확히는 아직 홍보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나 할까.
그 엄한 교육 주차에도 몇 번이나 언급이 된 만큼(교육 목적에 한해서 클랜 언급을 하는 건 가능하다.), 교육생들은 이미 머셔너리가 어떤 클랜인지 알고 있다. 엄청 자세히는 모르더라도 어느 정도의 힘을 갖고 있는지, 대강은 짐작은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사용자 정보에 자신이 있는 사용자라면. 어중이떠중이가 들어가는 클랜보다는, 뭔가 좀 있어 보이는 클랜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겠는가.
누구나 받아들이는 클랜이 아닌 가리고 가린 정예 사용자들만 받아들인다. 즉 우리가 교육생들을 끌어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게 바로 내 전략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구경만 하는 건 옳지 않다. 챙길 건 챙겨야 한다.
진수현과 차희영. 적어도 이 둘은 예전부터 영입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적당한 틈을 봐서 스카우트 할 것이다.
그리고 제갈 해솔은….
우선은 조금 더 두고 볼 생각이다. 이스탄텔 로우와 이야기한 것도 있고, 적어도 수료식 까지는 시간이 있을 테니까.
그래. 적어도 수료식 까지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후, 나는 빠르게 복도를 걸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12주차 주말이 다가왔다. 이번 주말을 보내고 나면 사용자 아카데미도 이제 2주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다가오는 수료식을 생각하기 전에, 지금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9주차에 첫 시작을 끊은 이후, 이제는 사용자 아카데미 내 가장 큰 행사로 자리잡은 이벤트 매치 전이었다.
나는, 이번 12주차 주말에 참가 신청을 해둔 상태였다. 이벤트 매치에 참가한 이유는, 사실 홍보 효과를 노렸다기보다 심심풀이 삼아 참가한 것에 불과했다. 9주차, 10주차, 11주차에 벌어진 경기를 보다가 한 번쯤 출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여겼기 때문이다.
“빨리 시작합시다~!”
“저번 주차는 별로 재미없었는데. 이번 주차는 괜찮으려나?”
대 강당은, 어느덧 속속히 모여든 교육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비단 교육생들뿐만 아니라 모든 교관들도 모인 것이다.
사실 이번 이벤트 매치에는 사용자 아카데미 내 거의 모든 인원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아마 오늘 경기가 그만큼 흥미를 돋구는 경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 김수현 교관님. 준비되셨으면 중앙으로 이동해주십시오.
허공을 울리는 신재룡의 음성.
이윽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기대 어린 환호를 들으며 나는 차분히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오늘 나와 이벤트 매치를 벌일 상대는….
– 김유현 교관님. 준비되셨으면 중앙으로 이동해주십시오.
바로, 형이었다.
사실 이건 나도 좀 의외기는 했다.
이벤트 매치는 3일 전 미리 참가 신청을 받는 만큼 명단은 모든 교관들이 알게 된다. 그리고 이번 12주차 이벤트 매치의 참가자는 나와 형 둘뿐이었고. 그런데 내가 가장 먼저 신청한 것을 감안하면, 형은 내가 참가했다는 것을 알고서 신청했다는 소리였다.
– 두 교관님이 나오신걸 확인했습니다. 그럼 곧 경기를 시작할 터이니, 두 분 모두 나름의 준비를 해주십시오. 가벼운 도발 정도는 허용하겠습니다.
이윽고 중앙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오는 형을 보며 나는 빅토리아의 영광을 손에 쥐었다. 그러자 형 또한 나를 지그시 노려보고는, 두 손을 상단으로 들어올렸다. 전투 직전에 나오는 형만의 준비 자세였다. …가벼운 도발은 허락한다고 했지?
“설마 형이랑 싸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무리 이벤트 매치라고는 해도.”
“나 또한.”
“흠. 과연 형이 제대로 싸울 수는 있으려나?”
“걱정 마라.”
“호.”
“아무리 친동생이라고는 하지만, 사석과 공석은 구분한다. 그러니 너도 형이라고 봐줄 생각은 말고 전력을 다해라. …나도 그럴 테니.”
형의 말투는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나를 계속 노려보고 있는데…. 왜 저러는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흠. 구구절절 옳은 말이긴 한데. 오늘따라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하. 아~니?”
아니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싸늘하기 그지없다.
이어서 두 손에서 황금빛 전류를 뿜어내는 형을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려면 어떠랴. ‘나는 동생을 때리지 못해!’ 라며 꼴사나운 경기를 펼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전투적으로 나오는 게 백 배는 낫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원하던 바였다.
매우 기꺼운 마음이 들어, 나는 경직된 분위기를 풀 겸, 그리고 도발 겸 입을 열었다.
“아하. 그렇구나. 난 또. 형을 오해했지 뭐야.”
“…오해?”
– 그럼 경기를 시작합니다!
마침 경기 시작을 알리는 음성이 고막을 왕왕 울린다. 그와 동시에 나는 살며시 자세를 굽혔다. 형의 얼굴 표정부터 행동 하나하나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인다. 차후 싸울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형을 적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까다로운 존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는 게 싫었다. 오늘 경기는 한소영이 가장 앞쪽에서 관람하고 있으니까.
좌우간 이것 또한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하며, 나는 앞을 응시했다.
“오해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아~. 저번에 형이랑 같이 밥 안 먹고 이스탄텔 로우 로드랑 약속 잡았다고 크게 삐친 적 있잖아. 그래서 아직도 화나 있는 줄 알았거든. 하하하.”
“……!”
“뭐, 아니라니까 됐어. 아무튼 잘 부탁해?”
그때였다.
“어, 어….”
당장에라도 마법을 발출할 듯 보이던 형이, 갑작스럽게 몸을 움찔했다. 싸늘하던 눈동자가 당황한 빛으로 물들어간다. 거기에 주춤대며 두어 걸음 물러서기까지. 흡사 예상치 못하게 정곡을 찔린듯한 모습. 마치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순간 아차 한 기분이 들어, 나는 반신반의하며 입을 열었다. 물론 교육생들이 듣지 못하도록 최대한 조용히.
“…형.”
“어, 어.”
“설마…. 진짜야?”
“…어?”
“…아니지?”
“…….”
형은 아무런 말도 않았다. 그저 어만 연발하더니 한껏 당혹한 얼굴로 시선을 회피할 뿐. 형의 반응은 단 하나를 의미한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진짜야? 정말로?”
별안간 뜻 모를 허탈한 기분이 들어, 나는 말 그대로 어이없는 기분으로 자세를 풀었다. 그러자 객석에서도 이상한 기류를 느꼈는지, 경기장을 울리던 소음과 환호가 사뿐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잠시 후.
계속 옆을 쳐다보던 형이 갑작스럽게 입을 질끈 깨물었다. 거세게 방전하던 전류가 삽시간에 사그라진다.
이윽고 형은 분연히 손을 떨쳐 내리며, 뭔가 굉장히 분해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그렇다면 어쩔 건데?”
“…뭐?”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사실대로 말하마. 수현아. 너 형한테 정말 그러는 거 아니다. 나 근래에 너한테 진짜로 서운했다고. 어?”
“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무슨.
어처구니가 없어 반문하려 했으나, 형은 그럴 틈을 주지 않고 되레 쏘아붙였다.
“너. 저번 주말에 이스탄텔 로우 로드랑 데이트했다며?”
그리고 형의 말이 이어진 순간, 나는 크게 기함하고 말았다.
잠시,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
“…….”
하지만 그건 정말로 잠시였다. 형의 목소리가 거의 소리치는 정도라, 주변에 보고 있던 사용자들이 모두 들어버린 것이다.
오오오오오오오오.
이내 대 강당을 왕왕 울리는 나지막한 환호성.
나는 다급히 한소영이 있는 쪽을 살폈다. 그리고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앉아있는 한소영을 볼 수 있었다.
…아니. 담담한 게 아니었다. 마치 군대에서 이등병이 TV를 볼 때 정좌로 앉아있는 것처럼, 허리를 딱딱히 세운 채 양손을 무릎에 놓고 있었다. 그것도 주먹을 꼭 쥔 채로. 시선이 바닥을 향하는 게, 완전히 얼어버린 것이다.
문득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도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에 그리 억울한지, 형은 이제는 서글프다는 얼굴로 하소연을 토로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한 번 정도는 찾아와줄 줄 알았어. 그런데 끝끝내 나한테는 한 번도 안 찾아오더라?”
오오오오오오오오~.
머릿속이 삽시간에 헝클어졌다. 어질어질한 현기증이 이마를 엄습한다. 이건 새로 개발한 신종 공격인가?
아니. 지금 모두가 보고 있는 마당에, 이 무슨 해괴한 짓거리란 말인가?
“저, 적당히 좀 해.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참고 기다리고, 또 참고 기다렸는데! 그런데 너는 누구랑 주말에 만나서…!”
오오오오오오오오~?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정말로 이상한 소문이 날 것 같아,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며 외쳤다.
“데이트가 아니라 공무 때문에 만난 거라고!”
그리고 그 순간.
“그럼 선물은 왜 줬는데?”
형이 그 말을 꺼낸 순간.
오오오오오오오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새하얀 백지처럼 말문이 콱 막힌듯한 기분이었다.
“선물까지 줬으니까 데이트지. 아니야? 그리고…!”
이윽고 재차 말이 이어지려는 순간, 나는 지체 않고 빅토리아의 영광을 뽑아 들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느냐는 호기심도, 그리고 한소영의 반응도. 지금은 그 어떤 생각도 나지 않는다. 오직 형의 입을 다물게 하여야 한다는 생각뿐.
나는 곧바로 땅을 박차 올라, 형을 향해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 작품 후기 ============================
김유현의 질투심 폭발!
이 모든 게 다 빗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