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552
00551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
강철 산맥을 넘어 아틀란타로 가는 길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조금 오래된 기억이라고는 해도, 처음 공략을 시작으로 이후 안정화 작업에 이르기까지 수십, 수백 번을 들락날락한 지역이다.
이 지경에 이르면 길이 눈에 어느 정도 잡히기 시작한다.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되는지, 또는 어디서 괴물들이 출현할 가능성이 높은지.
즉 굳이 사실을 확인하지 않아도 그런 것들이 저절로 눈에 보인다고나 할까. 아마 탐험에 구르고 구른 베테랑 사용자들이라면 내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이다.
“킁!”
그래서, 나는 남부 원정대를 이끌고 빠른 속도로 행군했다. 그러나 지금 이끄는 길이 가장 빠르게 아틀란타로 갈 수 있는 길이라 말하기는 힘들다. 거의 엇비슷하기는 하나, 애초 내가 가려는 길과 비교해보면 약간 틀어진 상태였다.
“킁킁!”
왜냐하면 나흘 전 동부 요새를 떠난 이후, 방향을 가늠하고 길을 정하는 과정에 두 명의 클랜원을 새롭게 추가시켰기 때문이다. 한 명은 오른쪽 앞에서 매서운 눈길로 근처를 탐지하는 고연주. 그리고 또 한 명은….
“킁킁킁!”
…왼쪽 앞에서 세찬 콧소리를 내며 열심히 코를 벌름거리는 사샤 펠릭스였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흘리며 건들건들 걸어가는 사샤의 뒤통수를 응시했다.
저 콧소리. 정말로 거슬린다. 하루 이틀은 참을만하다손 쳐도, 나흘 내내 듣고 있자니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계속 이어지는 콧소리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참을 인을 되뇌었다. 생각 같아서는 적당히 좀 하라고 한 대 힘껏 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사샤 입장에서는 내가 내린 지시를 열심히 수행하는 중이니 그렇게 하기도 애매하다.
아무튼.
내가 내린 지시라 함은, 물론 생존자 수색이었다.
사샤의 말에 따르면 뱀파이어의 코는 개 코가 아니라고 한다.(사샤는 이 말을 굉장히 강조했다.) 뭐라고 하더라? 대상의 역사를, 인생을 느낄 수 있는, 뱀파이어 중에서도 혈족에게만 허락된 후각 능력이라고 했었나?
좌우간 아무래도 좋다. 그 말이 맞는다면 생존자의 수색도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사샤는 강철 산맥이 죽음의 냄새로 진동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와 반대되는 생존과 연관된 냄새를 찾으면 된다. 예를 들면 희망이라던가, 아니면 구조에 대한 바람 등등.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중천에 떠오른 해가 서서히 저물어갈 무렵, 선봉대는 어느새 수림이 무성한 지역으로 접어든 상태였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동서남북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심하게 우거진 상태였다. 사실 아직 사용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만큼, 어디를 가도 거의 비슷한 풍경일 것이다.
1회 차 때도 그랬다. 가도가도 계속 똑같은 풍경이 나와 정말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절로 의구심이 일게 만든다. 하지만 그 의구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강철 산맥의 행군 법칙 중 하나가 절대로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방향을 한 번 정했으면 무조건 밀고 나아가야 한다. 자칫 잘못해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다가는 십중팔구 강철 산맥에 잡아 먹히게 된다.
말인즉슨, 괴물만 조심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지역을 점령한다는 의미는, 강철 산맥 자체를 적으로 봐야 한다는 소리였다. 또 그게 옳은 말이기도 했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행군하던 도중, 문득 평평하던 지면이 조금씩 조금씩 높아지는 게 느껴졌다. 시선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저 멀리서 하늘을 뚫을 듯 솟아오른 거대한 산봉우리 하나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선봉 부대에 포함된 클랜 로드들을 호출했다. 현재 선봉 부대의 인원은 총 전투 인원의 6분의 1정도로, 약 600명 가량이었다. 구성 클랜은 머셔너리 포함 총 일곱.
호출을 받은 클랜 로드들은 대부분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이내 늘그막이 나타난 무사 로드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후,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오늘은 저기 보이는 산봉우리를 넘을 생각입니다.”
“예? 저 산봉우리를요?”
누군가 질린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선을 돌리니 이마에 살짝 땀이 맺힌 잿빛 로브를 입은 사내가 보였다.
라이트 클랜이었나? 선봉 부대 중 마법사와 사제의 인원이 가장 많은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체력이 낮은 사용자들이 반 이상이다 보니 저러는 듯싶다.
“그렇습니다. 지금 지면이 조금씩이나마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마 경사가 꽤 높을 거라 생각되니, 다들 배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저기 머셔너리 로드. 그럼 행군 속도를 조금만 줄여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어려울 것 없다. 어차피 오르는 도중에는 행군 속도를 줄일 생각이었으니까. 나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요. 최소한 오르는 와중에는 쫓아오는데 큰 부담은 없으실 겁니다.”
“후유. 다행입니다.”
“다만 그만큼 경계를 철저히 해주셔야 합니다. 주변을 보면 아시겠지만, 수림이 워낙 울창해 좌우는 물론 전후까지 시야에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딱히 걸리는 건 없으나, 언제 어디서 괴물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행군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클랜원들에게 탐지 마법을 활성화하도록 전하겠습니다.”
행군 속도를 줄인다는 사실이 그리도 좋은지, 라이트 로드는 옅은 미소를 띠며 머리를 끄덕였다. 이내 모든 클랜 로드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확인한 후, 나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샤.”
“불렀나.”
사샤는 곧바로 회답했다. 언제 서 있었는지 어깨너머로 얼굴을 쑥 들이밀었다. 그런 사샤의 얼굴을 멀찍이 밀어내며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상황은 어때.”
“조금 이상하다.”
“이상하다고?”
“아아.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질적인 냄새가 맡아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희미해지기 시작했어.”
“방향에서 멀어져서 그런 거 아닌가?”
“그러다 싶다가도, 또 갑자기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맡아졌다가, 희미해졌다 가를 반복하고 있다. 나도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다.”
사샤는 담담히 말을 맺었다. 고연주 또한 딱히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설레설레 고개를 저을 뿐.
확실히 수상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정한 방향으로 가는 게 낫겠다 생각. 나는 곧바로 행군의 재개를 알렸다. 수색은 부가되지 주가 될 수는 없으니까.
행군을 재개한 가운데, 또다시 킁킁거리기 시작한 사샤의 콧소리를 무시하려 애쓰며 산봉우리를 향해 걸었다.
지금 저렇게 육안으로 보이는걸 보면 금방 다다를 것 같지만, 실제 거리를 따져보면 그렇게 가깝지는 않다. 오히려 보이는 것보다 훨씬 멀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별다른 낌새를 느끼지 못한 채 계속 행군하다 보니, 주변에 황혼 빛이 깔리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깎아지른 듯 높이 솟은 산맥을 앞에 둘 수 있었다.
확실히 멀리서 볼 때와 바로 앞에서 볼 때의 느낌은 다르다. 어찌나 높이 솟았는지, 흡사 하나의 절벽을 보는듯한 기분이었다.
“사샤. 고연주. 잠시 정시.”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따라오는 원정대가 잠시 추스를 시간을 주려는 것도 있지만, 이 거대한 산맥 앞에 선 순간 뭔가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엄습했기 때문이다.
아까 생각한 느낌.
무언가 있을 거라는 느낌.
지형만 봐도 그렇다. 산맥이란 여러 개의 산이 선상으로 길게 연속돼있는 지형을 의미한다. (어디를 가도 그렇겠지만.) 괴물이 습격하기 딱 좋은 장소라고나 할까.
지금까지는 화계 공략 계획의 덕을 봤거나 아니면 운이 좋았다고 해도, 더는 그런 행운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제부터는 정말로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무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돌연 이상한 광경이 눈에 밟혔다.
“흐음. 흐으음.”
“왼쪽에서 두 걸음. 아니 세 걸음인가?”
나보다 조금 앞쪽에서 걷고 있던 사샤와 고연주가 갑작스럽게 기괴한 말과 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아니. 기괴한 게 아닌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둘의 얼굴이 상당히 진지하다.
고연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계속 왔다갔다하며 한쪽을 주시하고 있다. 사샤 또한 어느새 킁킁거리는걸 멈췄다. 그 대신 한 자리에 가만히 서, 한쪽을 지그시 노려보고 있다. 둘의 공통점을 똑같은 방향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
돌연 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나는 반사적으로 마력 감지의 밀도를 높였다. 하지만, 딱히 걸리는 건 없다.
“사샤? 고연주? 갑자기 왜 그럽니까?”
“수현. 보이는 풍경이 달라요.”
먼저 회답한 사용자는 고연주였다.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
“왼쪽이요. 거기서는 어떻게 보여요?”
나는 고연주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보이는 거라고는 예의 심하게 우거진 수림뿐. 그때였다.
“이상하군. 확실히 이상해.”
지그시 노려보던 사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거의 희미해지던 냄새가…. 갑작스럽게 강해졌어. 그 어느 때보다.”
“그 어느 때보다?”
“그래. 그런데.”
“……?”
입을 닫은 사샤는 앞쪽 방향으로 한 걸음 더 이동했다. 그리고 여전히 노려보는 채로 말을 이었다.
“여기서는 또 갑자기 사라졌다.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르게 보이는 풍경. 그리고 딱 한 걸음에 심한 차이를 보이는 냄새.
결계다.
거기다 마력 감지에 걸리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대응 결계의 종류가 아닌 진로 결계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나는 곧바로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그러자 예상대로 근처에 진로 결계가 존재하는걸 확인할 수 있었다. 단 한 걸음으로도 전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진로 결계. 고연주와 사샤는 이미 외적 영역 안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진로 결계네요. 선유운! 후방으로 대기 명령을 전파해라!”
듣고 있었는지, 선유운이 빠르게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제 3의 눈으로 주변을 샅샅이 훑으며 입구를 찾기 시작했다. 예전 비비앙의 던전을 찾을 때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겪은 적 있다.
하지만 그때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보이는 진로 결계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 마치 유리창에 돌멩이가 날아와 박힌 것처럼, 결계의 군데군데가 쩍쩍 갈라져 있었다.
고연주가 나를 돌아보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면 아예 결계를 파괴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진로 결계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고연주의 의견은 정론이었지만, 나는 가만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함부로 파괴하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모를뿐더러, 갑작스럽게 괴물들이 우수수 출현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 억지로 뜯어내기보다는, 직접 들어가 길을 찾는 게 위험 부담이 덜할 것이다. 또 어차피 반파 상태나 다름없지 않은가. 어찌어찌 형태는 갖춘 상태라고 쳐도, 결계 내 기능이 상당히 떨어졌을 거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가장 큰 균열이 일어난 곳에서 살며시 안을 들여다보았다.
“지금부터 소수의 인원으로 진로 결계 안으로 들어갑니다. 고연주, 사샤, 신재룡, 김한별, 우정민. 부른 순서대로 일렬로 따라올 것.”
세세한 오더는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진로 결계의 특성을 알고 있는 만큼, 곧 등 뒤로 옷깃을 부여잡는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대로 지면에 고정한 채, 나직이 입을 열었다.
“고연주. 지금부터 안으로 들어갈 테니, 부탁합니다.”
“걱정 말아요. 눈 역할은 확실해 할 테니까.”
고연주의 회답이 들려온 순간, 나는 일단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하나의 선을 그리는 길을 주시하며 천천히 진로 결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길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었다. 나는 최대한으로 집중한 채 정확한 부분만을 밟았다.
가장 중요한 건 무조건 정확한 부분만을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순간….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정말로 수준 높은 결계사일 경우 아예 다른 장소로 이동시켜버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들었으니까. 특히나 이런 지역에서는 절대로 지양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결계가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거진 반파 상태였다는 것. 그리고 제 3의 눈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내가 꽤나 빠르게 그리고 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결계 내에 흐르는 특유의 이질적인 공기가 차차 옅어지고 있다는 게 명백한 증거였다.
그 순간이었다.
걸음을 내디디는데 한창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문득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등이 휑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옷깃을 잡은 감촉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고연주?”
나는 멍하니 시선을 들었다.
============================ 작품 후기 ============================
후기 적다가 깜빡 졸았네요. 후후. 후후후.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3분. 33입니다. 네. 33이에요. 우후후후.(?)
아. 내일, 아니 오늘 오전에 약속만 끝나면 조금 시간이 한가해질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일단 자고 싶네요. 하하. 하하하. 푹, 푸욱, 푸우욱, 푸우우욱 자고 싶어요. 아. 요새 잠이 부족해서 정말 미는 아니고 파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롤 올스타 결승이 있었네요? 3:0으로 이겼어요. 아. 나도 보고 싶었는데. 흐규흐규. 아. 죄송해요. 오늘 좀 횡설수설이죠? 아마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후기를 지울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저는 갈대니까요! 꺄하하하! 아. 저번처럼 캡쳐는 거부하겠습니다. 흑 역사는 만들고 싶지 않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