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555
00554 폭풍의 시작. =========================================================================
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야영지 인근을 떠나가라 울렸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나 연달아. 나를 비롯해 회의에 참가한 클랜 로드들은 곧바로 회의를 중단하고 현장으로 달렸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앞서 달려온 사용자들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상황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사용자들이 오기 전에 도망쳤는지 괴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지면에 뿌려진 다량의 핏물만이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줄 뿐.
“이쪽 경계를 맡고 있던 사용자들이라면…. 아마….”
“제기랄!”
어느 사내가 바닥을 세게 짓밟으며 분노를 터뜨렸다. 나와 같이 달려온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이내 주먹을 꾹 움키며 부르르 떠는걸 보니 아마 당한 사용자들이 부하 클랜원인 듯싶다. 아니면 그냥 아는 지인이거나.
“젠장!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자자. 신 하늘지기 로드. 고정하세요. 심정은 이해하지만 보는 눈이 많습니다.”
“빌어먹을.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소? 부하 놈들이 습격을 당해 죽었는데…!”
“아.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잖아요. 정보가 없는데 그럼 어떡합니까.”
확실히 말 그대로였다. 현장만 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나마 추측할 수 있는 거라고는, 괴물들이 외곽 지역을 경계하는 사용자들을 습격, 그리고 목적을 달성한 후 재빠르게 물러났다는 것.
아마 머리가 좀 돌아가는 사용자라면 여기서 조금 더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괴물은 사용자를 먹이로 생각할 만큼 공격 성향이 강하지만, 그 성향을 억누를 수 있을 만큼의 지능도 갖췄다는 걸.
신 하늘지기 로드는 계속해서 광분을 터뜨렸고, 말리는 사용자들의 언성도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모인 이들은 모두 어색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현 상황을 생각하면 별로 좋은 행동은 아니었다.
…어차피 오늘 회의도 더는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잠시 현장을 살펴본 후, 나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천막으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잠을 자야 내일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다음 날.
하늘은 밤사이 있었던 일이 거짓말이라 생각될 정도로 맑고 화창했다.
나는 아침이 되자마자 간단한 세안을 마친 후, 빠르게 출발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별 소득 없는 아침 회의를 끝나고 나오자, 이미 야영지 대부분이 정리된 상태였다. 사용자들 또한 각자 포함된 부대에 맞춰 출발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출발 10분 전입니다. 모두 마지막 점검을 마치도록.”
선두로 이동해 몸을 풀며 말하자 약간은 침울해 보이는 진수현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형님. 이번 회의 때 무슨 중요한 이야기라도 나왔나요?”
그러자 진수현뿐만이 아니라 모든 클랜원들이 시선이 쏠리는걸 느꼈다. 나는 있는 힘껏 기지개를 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 별로?”
“괴물에 대한 이야기도 안 나왔어요?”
“나오기는 했는데 어제와 별로 다를 건 없더라. 그냥 사용자를 먹이로 생각하고, 지능이 높다는 것 정도?”
“…그렇군요.”
진수현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리고 큰 한숨을 흘리더니 힘없이 머리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원정대 전체를 훑어보았다.
“…….”
거의가 무표정한 얼굴이다. 물론 처음 시작 때부터 아주 활기찬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침침하다 생각될 정도로 상당히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좋다. 지금껏 흘러온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기조가 무조건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지금도 형성되는 과정에 불과하기는 하나, 조금씩이나마 내가 원하는 기조가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다.
– 선봉 부대. 출발.
이윽고 한소영의 출발 지시가 떨어져, 나는 둘러보기를 멈추고 앞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대로 시선을 들자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산봉우리가 시야로 들어온다. 어제는 넘지 못했지만, 오늘은 기필코 넘어야 한다.
그렇게 약간 침체된 기조 속에서 남부 원정대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흘렀다.
야영지를 떠날 때부터 시작된 침체된 기운은, 산맥을 오를 때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바로 긴장감으로.
그러니 행군 속도도 자연히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오르막 길을 걸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언제 어디서 괴물들이 튀어나올지를 모르니 경계심이 확연히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괴물의 정체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사용자들이 아무리 경계해봤자 100% 방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버릇 또는 습관의 함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제 출현하기 시작한 괴물들은 북 대륙과는 차원이 다른 괴물이다. 예를 들면 어지간한 마력 감지로는 기척을 잡을 수 없다는 것 등등.
좌우간, 그러면 그에 맞추어 새로운 방식으로 대비를 해야 하는데, 여태껏 해왔던 대로만 방비하니 뚫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걸어 올라가는 주변 지리도 우리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데 일조하는 커다란 요인이었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오르막 길과, 방향을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무성하게 돋아난 수림은 시야마저 제한하고 있다.
말인즉, 괴물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홈 그라운드나 다름없는 지역을 최대한 활용할 여건이 된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어차피 공략하러 들어온 이상 감안해야 하는 일. 나는 시시각각 불안해하는 원정대를 이끌고 계속해서 산을 올랐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수림은 더욱 우거진 상태로 나와 원정대의 진로를 방해했다. 거기다 구름 안개까지 근처에 깔리기 시작하자, 어느새 나조차도 살짝 머리를 갸웃할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정상까지 약 100미터 정도 남은 찰나였다.
문득, 마력 감지에 모종의 기척이 잡혔다.
“흠?”
그것은 정말로 갑자기 잡힌 기척이었다. 수백의 기척이 좌우 방향으로 은밀하게, 그러나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짓쳐 들어오고 있었다.
또한 매우 광범위하다. 이 정도라면 선봉 부대뿐만이 아니라, 중앙과 후방마저 위험할 정도였다.
온몸에 짜릿한 감각이 차오른다. 더 이상 생각할 틈은 없었다.
“적이 좌우로 몰려온다! 전원 전투 준비!”
그 순간이었다.
휘리릭! 휘리릭!
말이 끝남과 동시에 들려오는 허공을 찢을듯한 날카로운 파공음.
첫 타로, 가장 선두에 있던 나를 노리고 좌우로 두 개의 촉수가 날아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무검을 뽑아 간단히 쳐낸 후, 재빠르게 좌우를 훑었다.
그리고 2초 후. 아주 잠깐의 정적을 가르며, 이번에는 수십 개의 촉수가 수풀 속에서 폭발적으로 튀어나왔다. 괴물들이 사정 거리에 다다르는 족족 공격해 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간단히 당해줄 생각은 없어, 나는 지체 않고 외쳤다.
“한결아!”
한결 또한 산맥을 오를 때부터 바짝 긴장하고 있었던 만큼, 바로 대응해주었다.
“이지스 시스템!”
“보석 증폭!”
동시에 한별의 호응이 이어졌다.
이윽고 촉수의 비가 선봉 부대에 쏟아져 들어오려는 찰나, 허공에 큼지막한 정육각형 방패가 생성된다. 이어서 반짝이는 다량의 보석이 뿌려진 순간, 방패는 삽시간에 수를 늘리며 간발의 차이로 선봉 부대를 뒤덮었다.
터터터터터터터텅!
기세 좋게 날아온 촉수들은 한결의 방패에 모조리 가로막혔다. 그것도 모자라 날아온 방향 그대로 되돌아가기까지 했다. 아마 고유 능력인 되비침의 효능인 듯싶다.
“오, 오오오오!”
“사, 살았다!”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방패를 확인했는지, 일대 혼란에 휩싸일뻔한 선봉 부대는 바로 침착함을 되찾았다.
나는 추가로 지시를 내리며 최대한 신속하게 진형을 변경했다. 머셔너리는 선두를, 무사는 좌측을, 적심은 우측을. 그 사이 한 번 더 수십의 촉수들이 날아들었으나, 정신을 차린 사제들이 보호막을 마구잡이로 펼침으로써 별다른 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번의 공격을 막아내고 나서야, 간신히 텀이 생겼다.
“클랜 로드.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궁수들은 발사 직전 대기. 마법사들은 전부 지계 마법 준비. 나머지는 현상 유지로.”
신재룡의 요청에 빠르게 지시를 내리고 나서, 나는 무검을 꽉 쥐었다. 그리고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좌우를 점거했던 수백의 기척이, 곧 미끄러지듯이 후방으로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마치 선봉 부대에 더는 볼 일이 없다는 것처럼. 정말로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준비가 완료됐습니다. 발사합니까?”
“아니요. 잠시 대기.”
일단 괴물들이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알 것 같다. 어떻게 인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은 내가 자신들의 기척을 잡을 수 있다는 것과, 뿌리는 마력 감지의 형태를 알고 있다.
그래서 정면을 노리지 않은 것이다. 좌우 멀찍한 곳에서 잠복해있다가, 우리가 지나가는 순간 빠른 속도를 이용해 덮쳐들어 왔다. 설령 알아도 대응하지 못하도록.
…놈들은 오늘 우리가 이곳을 지나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괴물들은 여전히 모습을 숨긴 상태였다.
긴장된 가운데, 일단 적당히 반격해보려는 생각에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때였다.
콰쾅, 후방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붉은 불빛이 삽시간에 사방을 가득히 메우기 시작했다.
나는 화들짝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멀찍한 후방에서, 시뻘건 불길이 하나 둘 치솟기 시작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급작스럽게 멍한 기분이 들었다. 사방에 수풀이 돋아난 곳에서, 화계 마법을 실행했다고?
“멍청한 놈들!”
절로 욕설이 나왔다.
“클랜 로드?”
“마법사들! 준비한 마법을, 후방으로 사용하세요!”
“예, 예?”
“젠장. 후방 부대의 좌우 방향 수풀로 지계 마법을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수계 마법 준비를!”
마력이 담긴 충만한 목소리로 있는 힘껏 외쳤다. 선봉 부대 마법사들은 일순 떨떠름해하며 나를 바라보았으나, 곧 한 명 한 명 후방으로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 ───. ───. 디그 인 더 그라운드!”
“───. ───. ───. 어스 퀘이크!”
“───. ───. ───. 그라운드 오브 퓨리!”
“───. ───. ───. 록 블래스터!”
비로소 기백에 이르는 마법사들이 마법을 발출했다.
콰르르르르르르르!
땅이 파이고, 흔들리며, 갈라지고, 터져나간다. 이어서 멍멍할 정도의 굉음이 고막을 뒤흔들었다.
효과는 곧바로 볼 수 있었다. 애초에 후방으로 달려든 놈들은 물론, 이동하고 있던 놈들의 기척이 느닷없이 확실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껏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놈들은 갑작스럽게 퍼부어진 마법에 우왕좌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궁수들 발사!”
수십의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발사했다.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쏘아진 수많은 화살 비는, 점점 거세어지기 시작한 불길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비명과 함께 놈들의 기척이 도로 옅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방으로 빠르게 흩어지는걸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후퇴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한 놈도 남김없이 도망치는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무검을 칼집에 꽂아 넣었다. 남은 건 주변 수림을 게걸스레 삼켜가는 화마뿐.
“사용자 신재룡. 수계 마법이 준비되는 즉시 진화에 들어가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신재룡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회답했다. 워낙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런지, 아직 정신이 멍한 듯싶다.
“한결아. 한별아. 너희도 그만 해제하고.”
“그, 그래도 되요?”
어차피 괴물들은 도망갔다. 나는 가만히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여러 물줄기가 불길에 뿌려지는걸 확인한 후, 나는 후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건 몰라도 누가 화계 마법을 사용했는지는 확실히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건 적에 대한 정보를 아냐 모르냐를 떠나서, 상식의 문제였다.
그러나.
나는 막 중앙 부대로 넘어가기 직전, 우뚝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선봉 부대의 후미와, 중앙 부대의 선봉이 갈리는 지점에서.
“크아악! 내 팔, 내 팔!”
“우욱! 우우욱!”
주변은, 완전한 난장판이었다.
============================ 작품 후기 ============================
바로 다음 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