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578
00577 Predator. =========================================================================
고통의 강도는 삽시간에 크기를 키웠다. 처음에는 아릿하게 아프던 것이 갑작스럽게 쇄골이 끊어질 듯한 고통으로 변해 온몸을 엄습했다.
당장에라도 비명을 내지르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주현호는 주춤 서너 걸음을 물러났다. 사실상 자상(刺傷)의 고통보다는 지금 자신을 노려보는 청년의 눈초리가 더욱 커다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주현호는 느꼈다. 아니, 느낄 수 있었다. 생존에 대한 남다른 갈망이 본능적으로 직감하게 만들었다.
저놈에게 맞서는 순간 나는 죽는다!
무조건 죽는다!
“히, 히이이익!”
결국 참지 못한 주현호는 허둥지둥 거리면서도 재빠르게 벽 쪽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급해 보이는 손놀림으로 몇 번 벽면을 더듬은 순간이었다.
그르르르르르르릉!
그르르르르르르릉!
사방에서 돌이 끌리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아니, 실제로 돌이 마찰되는 소리였다. 주현호가 모종의 조작을 했는지 광장의 사방을 감싸던 육중한 문들이 일제히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내 커다란 문들이 모두 올라가 어두운 공간이 보일 무렵, 입구 너머로 수십 개의 번쩍이는 안광들이 모조리 사용자들을 응시했다.
그리고.
“모두 나와! 어서, 빨리!”
주현호가 발악적으로 외친 순간 사방의 열린 문에서 일련의 무리가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괴물들의 모습은 가지각색이었다. 사용자들이 그동안 숱하게 보아온 괴물의 모습도 있었지만 수상한 기운을 흘리는 인간화된 괴물의 모습도 간간이 섞여 있다. 지금껏 구덩이 깊은 곳에 꽁꽁 숨어있던, 아끼고 아껴온 괴물들조차 모조리 끌어낸 것이다.
괴물들의 수는 못해도 3백은 넘어 보였다. 딱 한 방향, 사용자들이 들어온 입구를 제외하고는 모든 방향을 점거했다. 퇴로는 있으나 어떻게 보면 거의 포위된 형국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한소영도 퇴각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
이것 봐라?
허겁지겁 물러나는 주현호를 보며 나는 조금이지만 머리를 갸웃하고 말았다. 무검을 돌리는걸 멈추었다. 이죽거리기는 했지만 팔 하나는 확실히 가져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깨 부분을 정확히 노려 검기를 날렸는데, 그냥 베이는 선에서 그쳤다.
– 조심해.
그때였다. 이제껏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화정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조심하라니?’
나는 곧바로 반문했다.
– 저놈을 보고 있으면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아. 그러니까 방심하지마.
‘그럼 저놈이 나보다 강하다는 말인가?’
– 그게 아니라. 너보다 강하고 안 강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저 쓰레기 같은 자식 자체가 문제라고.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닌 무언가 거대한 것과 연결돼있는…. 아무튼 기분이 그래.
‘호.’
화정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그래도 범상치 않은 놈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지체 않고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1. 이름(Name) : 주현호
2. 클래스(Class) : 일반 마법사(Normal, Mage, Master)
3. 소속 국가(Nation) : ?
4. 소속 단체(Clan) : ?
5. 진명 • 국적 : 새로 태어난 돌연변이 • 강렬한 생존의 열망 • 홀 플레인
6. 성별(Sex) : 남성(3)
7. 신장 • 체중 : 172.4cm • 67.5kg
8. 성향 : 악 • 안전(Evil • Safety)
* 처음에는 사용자(Player)였지만, 이제 더 이상 사용자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똑같은 사용자 고은솔을 모체로 새로 태어났지만, 임신 및 산란 과정에서 어둠의 기운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실상 이제는 인간으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종으로, 돌연변이로 정의합니다.
* 인간이었을 적 자아는 살아있으나 어둠이 몸의 통제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대가로 주현호는 신체 능력의 비약적인 상승을 이루었습니다.
내구 능력치가 98포인트. 그제야 아까 어깨가 완벽히 베이지 않은 것이 이해가 갔다. 그와 동시에 조금이지만 감탄하고 말았다. 마법사가 이런 어마어마한 능력치를 갖고 있다니. 마치 형을 보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1회 차에서 구덩이를 공략할 때 사용자를 엄청 죽인 놈이 한 놈 있다고 하던데….
“전투 준비.”
그때 한소영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사용자들이 사방을 경계하는 형태로 방진을 형성하는 것을 보며 나는 무검을 고쳐 잡았다. 새로 등장한 인간화된 괴물들 중에서도 괜찮은 기운을 흘리는 놈들이 있지만, 우리도 강한 사용자들이 있다. 놈들의 처리는 그 사용자들에게 맡기면 된다. 나는 저 돌연변이를 맡는다.
“모, 모두 공격해!”
이윽고 주현호가 외친 순간, 괴물들이 우르르 달려드는 것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잠시 후, 사방에서 산만한 소리들이 들려왔지만 나는 오롯이 한 놈에 시선을 집중했다. 주현호는 괴물들을 앞세운 채 멀찍이 떨어지더니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꼴에는 마법사라 이건가.
그래도 화정의 경고가 있었으니 나는 조심스럽게 주현호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놈을 막아라! 어떻게든 막아!”
그러나 살기를 느꼈는지 돌연 주현호가 나를 가리키며 꽥꽥 소리를 질렀다. 원래는 기습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었는데 저놈이 저렇게나 나를 경계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한 번 혀를 찬 후 곧바로 땅을 박찼다. 빠른 기습으로 단번에 승부를 볼 생각.
그러나 미처 주현호에게 닿기도 전, 앞쪽으로 무수한 괴물들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다.
“막아! 아니, 버텨! 무조건 버텨!”
주현호의 명령과 동시에 괴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해 들어온다. 무검을 가로로 크게 휘두르자 마침 한꺼번에 들어오던 네 놈이 일거에 목이 잘려나갔다.
하지만 놈들은 방패에 불과했다. 베어낸 놈들의 몸이 허물어지고 후방의 공간이 드러난 순간, 좌우 방향으로 열 가닥의 촉수가 내 온몸을 꽁꽁 묶었다. 그와 동시에, 왼쪽 시야가 커다란 불덩어리로 메워졌다.
쾅!
『염화(炎火) 계열의 마법을 확인합니다. 하늘의 영광, 태양의 영광이 대응하여 발동합니다. 일부 방어로 판정합니다!』
『일부 방어 판정을 받았습니다. 전장의 가호(Rank : EX)가 추가로 발동합니다. 완전 방어로 판정이 상향됩니다!』
살짝 머리를 털자 눈앞으로 사그라진 불씨가 흩날린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을 뻗은 채 멍한 얼굴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주현호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또다시 돌격해 들어오는 괴물들로 인해 주현호의 모습은 금세 가려졌다.
나는 힘주어 몸을 비틀어 촉수들을 끊어낸 후 일단 두어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길을 뚫는 게 아닌, 전력을 다해 방어하기 시작했다.
촉수와 이빨 공격이 주를 이루고, 그 사이로 인간화된 괴물들의 공격이 연달아 짓쳐 들어온다. 정신이 산만해질 정도의 공격들을 받아내고 쳐내며, 나는 입을 질끈 깨물었다.
무척, 거슬린다.
힘든 게 아니었다. 높은 진화를 이룬 놈들이니 어쩌니 해도 크게 관심은 없다. 어차피 적이나 다름없는 놈들이고, 내 상대가 되지 못하는걸 알고 있으니까. 그냥 보이는 족족 죽이면 그만이다.
문제는 이놈들이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마구잡이로 나를 노리고 있다는 것.
사실, 마음만 먹으면 이놈들을 한 번에 뚫고 주현호에게 다가갈 수는 있다. 높이 점프를 하거나 아니면 이형환위를 연속으로 사용하면 되는 일.
그러나 지금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잖은가. 우리는 포위된 형국이었고 하나의 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거기다 주현호가 나를 경계하고 지목하는 바람에 근처로 더욱 많은 괴물들이 몰려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멋대로 빠져버린다면?
괴물들이 몰려든 만큼 진이 뚫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번 뚫린 진은 겉잡을 수 없는 속도로 무너진다. 더구나 근처에 한소영이 있는 이상 그러한 가능성을 외면할 수는 없다.
결국 하나하나 정리하는 방법으로 가야 하는가.
물론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 오히려 정공법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차분하게 가기에는 아까 버티라는 말이 묘하게 신경 쓰인다. 특히나 화정의 경고를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형!”
안현의 목소리에 이어 허공을 예리하게 가르는 바람 소리가 흘러들었다. 그 바람은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 마침 내 옆으로 들어오던 괴물의 머리에 명중했다. 구슬픈 울음만 남기며 괴물이 무너진 자리에 한 번듯한 청년이 훌쩍 뛰어들었다. 역시나 안현이었다.
“형. 여기는 제가 맡을게요.”
“…네가?”
“아니 아니. 저와 다은이 누나가요.”
“……?”
안현이 왼쪽으로 고갯짓을 한 후,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 놈을 추가로 처리하면서 빠르게 시선을 돌리자 온몸에 기이한 기운을 두른 채 시원하게 검을 휘두르는 남다은이 보인다. 남다은의 기운에 모종의 능력이 있는지, 파상공세를 퍼붓던 놈들은 어느덧 주춤주춤 거리는 중이었다.
…기공창술사와 검후라.
“그럼 부탁한다.”
나는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돌아서 있는 안현의 등을 한 번 쳐주고 나서, 적당히 힘을 주어 땅을 박차 올랐다. 너무 힘을 주면 천장에 부딪칠 테니까.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흘긋 아래를 내려다보자 얼마나 많은 괴물들이 몰려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흡사 개미떼를 보는 듯하다. 이내 허준영이 안현과 남다은을 지원하는걸 확인한 후, 주현호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
“으아악, 으아아악!”
주현호 또한 나를 확인한 모양이다. 비명이 주문이라 생각될 정도로 주현호는 계속 주문을 외워 마법을 쏘아 보냈다. 지그재그로 뻗어오는 번개부터 뾰족한 얼음의 창까지 종류는 다양했으나 그 어느 것도 내 항마력을 뚫을 수준은 아니었다.
잠시 후, 공중에서 몸이 뚝 떨어지며 주현호와의 거리가 삽시간에 줄어들었다.
“사, 살려!”
주현호는 급히 몸을 피하려 했지만, 나는 그보다 빠르게 무검을 내리쳤다. 일직선으로 그어진 무검이 어깨를 후려치듯이 베어 들어가 기어코 끊어버렸다.
무언가 잘리는 감촉과 함께 한쪽 팔이 하릴없이 날아간다. 나는 입맛을 다셨다. 이번 공격으로 정수리를 쪼개려고 했는데, 주현호의 움직임이 궤도를 비틀게 만들었다.
그래도 충격은 있는지 등을 보인 주현호의 몸이 한순간 비틀거렸다. 그러나 너덜너덜해진 어깨를 붙잡으면서도 계속 도망가려고 한다. 나는 주현호가 완전히 몸을 추스르기 전 끝낼 생각으로 달려들었다.
“씨발! 도대체 왜 나만 갖고 이러냐, 이 개새끼야!”
그래도 자존심은 있는지, 아니면 도망가기가 글렀다고 생각하는지. 돌연히 주현호가 훌쩍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하나만 남은 팔을 들어 나를 향해 난타하기 시작했다.
“흠?”
확실히 능력치가 좋아서 그런지 속도는 제법 빠르다.
그러나 결국 근본은 마법사. 근접 계열의 눈으로 보기에는 엉성하기 그지없는 놀림에 불과했다.
…하기야, 마법이 통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인가?
나는 조용히 웃으며 머리를 틀었다. 내 웃음을 보았는지 주현호의 얼굴이 한없이 일그러졌다. 주먹이 엇갈리며 스쳐 지나간다. 나는 지나치는 팔을 잡고서는 있는 힘껏 끌어당겼고, 동시에 미끄러지듯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끌려오는 주현호의 복부를 향해 마력은 듬뿍 담은 발차기를 선사했다. 퍽, 경쾌한 타격 감이 느껴졌다.
“키에에엑!”
주현호는 기괴한 비명을 쏟아내며 발라당 나동그라졌다. 그러나 곧 눈을 부릅뜨며 이를 악물고는 나동그라지는 그대로 땅을 손으로 짚었다. 그리고 그대로 훌쩍 공중제비를 돌더니 빠르게 간격을 벌리며 나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이형환위를 사용했다. 주현호의 옆으로.
“개 같은…. 어?!”
주현호의 시선은 여전히 앞을 향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조금 전 내가 서 있던 자리로. 그러나 발출한 마법이 내 환영을 그대로 투과하고 하릴없이 사그라지자 새된 소리를 내었다. 이내 주현호의 머리가 서서히 나를 돌아보는 찰나,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침착히 목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푹!
살을 파고들어가는 섬뜩한 감촉. 무검은, 주현호의 목젖을 정확히 찌르고 들어가 목을 완전히 꿰뚫었다. 시꺼먼 두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망연히 나를 응시한다.
이윽고 나와 주현호 사이로 일어난 한 줄기 피 분수가, 마치 물감이 번지듯 허공에 물보라처럼 흩어졌다.
============================ 작품 후기 ============================
오늘 한 번 김수현의 전투력을 점검해봤는데요…. 마법사들이 수현을 상대로는 답이 없겠더라고 요. 초반 설정이 마법사 킬러를 설정으로 잡아서 그런가 봐요. 주현호가 근접 계열 사용자였다면 나름 멋진 전투력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요. 하하.
그래도, 여기서 끝나면 살짝 아쉽겠죠? 그래도 나름 설정(?)을 들인 캐릭터인데요. 자세히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그저 다음 회를 기다려달라는 말씀밖에는 못 드리겠네요. 🙂
벌써 2시가 다 되어가네요. 기다려주신 독자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부디 편안한 밤 보내시기를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