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596
00595 웃으며 안녕. =========================================================================
우직, 우지직!
구덩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뻥 뚫린 구멍 아래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사용자들이, 하나같이 불안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곧 서너 줌의 흙 가루가 후드득 떨어지는 동시에, 얼기설기 얽힌 조잡한 밧줄들도 우수수 흘려내려 허공에서 대롱거린다. 그제야 밧줄을 바라본 이들의 안색이 확연히 밝아졌다.
“이스탄텔 로우 로드. 이제는 가셔야 할 때입니다.”
잠시 후, 밧줄을 힘껏 부여잡은 사내가 조금은 급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아직은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 한소영은 미동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먼저 올라가도록 하세요.”
“이스탄텔 로우 로드.”
“저는 조금 더….”
사내가 간곡한 목소리로 연거푸 권했으나 한소영은 차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득이 먹히지 않을 것임을 알았는지, 사내는 결국 한숨을 흘리며 밧줄을 두어 번 세게 잡아당겼다. 이내 바깥에서 여러 명이 밧줄을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사내의 몸이 빠르게 허공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로써 구덩이 아래 남은 사용자는 한소영을 제외해도 10명 남짓한 정도였다. 붕괴 현상이 시작된 직후, 빠른 대응으로 대다수의 사용자를 무사히 올려 보낸 한소영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아직 구덩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까? 처음 밧줄이 내려왔을 때부터 몇 번이나 기회가 있었음에도 거절한 건, 다름 아닌 한소영 자신이었으니.
한소영은 잠시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가, 도로 시선을 내려 달려온 통로를 응시했다.
그저 어둡기만 한 통로.
아무도 보이지 않고,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사실은 한소영의 가슴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언제 오는 걸까라는, 오랜만에 맛보는 초조감에 한소영이 살그머니 이를 짓씹은 찰나였다.
탁탁탁탁!
“……!”
하염없이 통로를 쳐다보던 무감정한 동공에 별안간 이채가 스쳤다. 한소영은 자동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안력과 청력을 한층 드높여 통로를 더욱 유심히 응시한다.
탁탁탁탁, 탁탁탁탁!
들려온다.
통로를 밟아 울리는 나지막한 발소리들이 들려온다.
들려오는 발소리는 1명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최소한 2명. 그리고 무척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는 한소영의 눈동자에 비로소 설렘이라는 감정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내 서서히 모습을 보여오는 여러 그림자들까지 확인한 순간, 가슴을 짓누르던 초조감이 사라지고 기다리기를 잘했다는 안도감이 내려앉았다.
“후.”
가벼운 한숨을 흘린 한소영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덩이는 여전히 붕괴 현상이 진행 중이었으나 아직까지 무너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아까 줄을 잡은 사용자들의 구조가 끝났는지, 마침 새로운 밧줄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좋다. 가히 나쁘지는 않은 상황이다. 저들이 도착했을 때 바로 이 밧줄을 잡고 올라갈 수만 있다면, 올라가는 데 시간적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한소영이 아주 살짝 미소 띤 얼굴로 통로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사용자들을 확인한 순간, 그 미소는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아…?”
없다.
아니, 보이지 않는다.
통로로 달려오는 사용자는 총 3명. 정확히는 사내 1명과 여인 1명, 그리고 사내의 등에 업혀 오는 여인 1명. 3명은 각각 기공창술사 안현, 광휘의 사제 안솔, 거주민 헬레나로 한소영도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작 한소영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머셔너리 로드, 김수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달려오는 3명의 사용자를 보는 한소영의 낯에 도로 시름이 깊어졌다.
*
덜컹덜컹, 덜컹덜컹! 덜컹덜컹, 덜컹덜컹!
광산 열차에 서 있는 안현은 후방으로 머리를 돌린 채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형?”
신재룡이 보이지 않는다. 고오환도 보이지 않는다.
죽을 힘을 다해 열차를 밀어주던 두 사내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안현이 광산 열차를 안정시키는데 집중하는 사이 홀연히 떨어져 나간 것이다.
“아….”
깊은 생각에 빠져있기는 했다. 그런데 도와달라는 말은커녕,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조용하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열차를 잡은 손을 놓았다.
신재룡이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모를 안현이 아니다.
“아…!”
사실 열차를 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조금이나마 직감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안현은 그 직감을 애써 외면했다.
왜냐하면, 약속했으니까.
절대로 죽지 않겠다고, 어느 정도 열차를 밀면 무조건 타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아아아악!”
그러나 신재룡은 약속을 어겼다. 같이 살겠다는 말을 지키지 않았다.
희생이 아니었다.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이상 짐이라고 생각했고, 거기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안현은 그 모든 것을 알 것 같음에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거짓말쟁이!”
결국에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물이 차올라 시야도 뿌옇게 흐려졌다.
“거짓…! 말쟁이…!”
울먹임 가득한 목소리가 빠르게 지나치는 통로에 메아리 친다. 당연하게도 회답은 없다.
“크흑…. 크흐흐흑….”
결국 안현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창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전방을 확인하려 애썼다.
그런데, 그러기가 힘들다.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
이제는 신재룡이 없다는 현실을 인지했는데.
울고 싶지 않은데…. 정말로, 정말로 울고 싶지는 않은데.
이렇게 된 이상 자신과 헬레나의 탈출에 집중하고 싶은데.
그러는 게 정답이거니와, 신재룡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실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신재룡을 되찾고 싶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당초 어디서 사라졌는지도 모르거니와, 이미 가속이 붙을 대로 붙은 열차는 레일을 한참이나 달려온 상태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속이 붙기를 원해 마지않았던 열차가, 지금은 한없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크흑흑흑….”
눈물은 닦아도, 닦고 또 닦아도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덜컹덜컹, 덜컹덜컹! 덜컹덜컹, 덜컹덜컹!
그러는 와중에도 광산 열차는 맹렬히 레일을 치달렸고, 어느새 균열과의 거리를 거의 좁힌 상태였다.
그때였다.
쩌저저저저저저적!
마침내 광산 열차가 붕괴의 균열을 거의 따라잡았을 즈음, 돌연히 갈라짐이 커다랗게 이어졌다. 마치 이대로 간단히 따라 잡힐 수는 없다는 듯 앞쪽으로 쭉쭉 뻗어나가며 저만치 앞서나간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으로 조각난 흙 암석들이 그대로 아래로 하강하려는 듯 흔들거리는 폼을 잡는다. 아니, 실제로 몇 개는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 속도대로라면 저 낙석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명백히 위험한 상황. 열차에 직격하는 건 물론, 스치거나 아니면 철도에 내리 꽂혀 진로를 방해하는 이 모든 게 생명과 직결된다. 아무리 열차를 강화했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창으로 쳐낸다고 하더라도, 빗줄기처럼 쏟아질 모든 흙 암석을 감당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 상황에서 안현이 기대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간신히 속도가 붙은 열차를 멈출 수도 없거니와, 애당초 조작 방법도 모른다. 그저 이대로 무사히 돌파하는, 열차가 영향권을 돌파하기까지 흙 암석이 늦게 떨어지는 요행 등을 바랄 뿐.
우직, 우지직!
그러나 낙하 영향권까지 어느 정도 거리를 남겨두고, 천장은 안현이 기대를 보기 좋게 배신했다.
최악을 넘어서는, 어쩌면 이대로 끝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 정말로 최악까지 간다면 광산 열차도 버릴 것이다.
그렇게 각오한 안현이 이를 질끈 악물었을 때였다.
번쩍!
느닷없이, 안현의 시야에 한 점의 빛이 번쩍였다.
그 빛의 발광에 한순간 안현의 낯에 의아한 빛이 스쳤다.
건너편에서 반짝인 빛은 삽시간에 거리를 줄여왔다. 때마침 천장에서 떨어진 흙 암석들이 어딜 들어오냐는 듯 중구난방으로 하강을 시작한다.
그러나 빛은, 아무렇지도 않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흙 암석의 한복판에 파고들었다.
이어지는 광경에, 안현은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번쩍!
안현이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거리를 줄여온 빛무리를 볼 수 있다.
번쩍! 번쩍! 번쩍! 번쩍!
한 번 번쩍일 때마다, 빛은 지금껏 안현의 걱정이 우습다는 듯 화려한 움직임으로 흙 암석 사이를 물 흐르듯이 누비며 통과한다. 흙 암석은 빛을 털끝만치도 건들지 못했다. 오히려 빛이 지나갈 때마다 흙 암석은 절반으로 쩍쩍 갈라지며 하릴없이 좌우로 굴러 떨어진다.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저렇게나 쏟아지는 흙 암석을 피하는 것도 모자라, 모조리 갈라내고 쳐낸다? 그것은 안현이 정상적인 상태라도 절대로 자신할 수 없는 일.
그러나 그 순간 안현은 아차 한 기분을 느꼈다.
‘클랜 로드라면, 분명히 우리를 구조할 여지를 남겨두셨을 게다.’
신재룡이 확신하며 했던 말. 지금껏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음에도 꾸역꾸역 걸어왔던 원동력.
안현은 혹시나 하는 기분으로 자동적으로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번쩍!
또다시 빛이 번쩍였다. 큼지막한 흙 암석이 반으로 동강난다. 그리고 갈라진 틈으로 새하얀 빛을 발하는 검광이 새어 나와 안현의 시야를 가득히 물들였다. 그 빛은 마침 안현의 정수리로 낙하하는 흙 암석을 추가로 잘라내고서 빙글, 공중제비를 돌았다.
공중에서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사용자는, 안현이 기억하기로는 단 한 명.
“…혀엉!”
비로소 빛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안현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랬다.
마침내 빛이, 아니 김수현이 나타났다. 정말로 신재룡의 말대로 자신들을 버리지 않고 구원하러 와준 것이다.
“형!”
안현이 재차 외쳤다.
이 급박한 상황에도 일견 무덤덤해 보이는 얼굴이 보였으나, 오히려 안현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김수현이 와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제껏 자신을 괴롭혀온 모든 감정이 일거에 눈 녹듯 사그라지며, 그 자리에 뜻 모를 환희가 차오르고 대체한다. 절망만이 남았던 구덩이에 갑자기 모든 것이 변화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윽고 그대로 허공을 지나치는 김수현의 시선이 흘끗 아래로 떨어졌다. 안현도 머리를 한껏 젖히며 김수현을 보려고 애썼다.
그렇게 한 명은 아래에서, 다른 한 명은 허공에서.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는 찰나의 순간.
김수현이 잠시 열차를 훑는가 싶더니 앞으로 쭉 이어지는 통로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신재룡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안현은 본능적으로 반대쪽 통로를 가리켰다.
그렇게 서로가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것과 동시에.
덜컹덜컹, 덜컹덜컹!
열차는 흙 가루 묻은 레일을 무리 없이 지나쳤다.
번쩍!
빛이 번쩍이며 김수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김수현과 안현은, 서로를 스치듯이 지나쳤다.
*
때는 몇십 분 전.
덜커덩! 덜커덩덜커덩! 덜커덩! 덜커덩덜커덩!
당장에라도 레일을 이탈할 듯 비명을 지르는 광산 열차와, 그 후면을 부여잡고 밀어붙이는 두 사내가 있었다.
신재룡과 고오환.
두 거한의 사내는 진심으로 있는 힘껏 힘을 짜내 열차를 밀고 있다. 그럴수록 열차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더욱 심해졌지만, 신재룡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힘을 빼는 순간, 그대로 무너지고 말 것 같았으니까.
사실 신재룡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아까 지면에 한 번 넘어졌을 때부터 자신은 끝났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찬연하게 타오른 회광반조의 불길조차, 이제는 서서히 사그라져가는 중이라는 것을.
말인즉, 안현에게는 거짓말을 한 셈이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았다면 안현은 절대로 광산 열차에 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신재룡은 더더욱 열차를 미는데 힘을 주었다. 그리고 앞에서 무언가를 하는 듯한 안현의 등을 바라보며 미안한 기색을 비췄다.
열차는, 점차 속도가 붙고 있었다. 어느덧 씽, 칼날 같은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이, 사제 형씨!”
이내 차차 쫓아가기도 힘들 지경으로 속도가 오른 순간, 문득 고오환의 외침이 신재룡의 귓전을 울렸다.
“예!”
신재룡은 여전히 앞만 응시하며 회답했다.
“죽기 전에 하나 궁금한 게 생겼는데! 사실대로 말해주쇼!”
“말씀하시죠!”
마지막임을 직감한 걸까? 열차를 밀어붙이는 두 사내가 거의 발악하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그런 두 사내는 똑같이 미소 띤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까, 거기서! 나를 동료라고, 버리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는 참 고마웠는데 말이지! 진짜로 감동했다고!”
“별말씀을! 그런데, 그게 궁금한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실은, 우리 말이야!”
“……?”
잠깐, 고오환의 목소리가 끊겼다.
하지만 침묵은 길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일찍, 다른 상황에서 만났더라면! 서로 꽤나 괜찮게 지냈을 것 같지 않아?”
비로소 들려온 뜻밖의 질문.
하지만 신재룡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도리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곧장 입을 열었다.
“그랬겠죠!”
“정말?!”
“예! 무사 로드와 같은 성격! 딱히 싫어하지는 않아서요!”
“…크흐흐큭!”
고오환의 웃는지도 우는지도 모를 웃음이 돌아온다.
그리고.
“…그래, 고맙수다.”
별안간 약간 낮아진 목소리가 신재룡의 귓가로 흘러들었다. 그에 입을 열려던 신재룡은 돌연 도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왼쪽에서 휑한 느낌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열차를 미는 부담감이 일시적으로 강해졌다. 가속이 붙고 있어 바로 나아지고는 있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굳이 머리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애당초 예상하고 있던 만큼 별일은 아니었다.
그저…. 고오환의 체력이 먼저 다했을 뿐.
“…정말로 재미있었을 겁니다.”
이내 조용히 중얼거린 신재룡은 차분히 머리를 들었다.
이제는 시야마저 흐릿해질 대로 흐릿해진 상태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초점이 잡히지 않는다. 온몸이 천근만근으로 무겁게 느껴졌고, 자꾸만 머릿속으로 어둠이 내려앉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몸이, 다리가 더 이상 열차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끝이 다가온 게 아니라, 끝에 다다랐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신재룡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신재룡은 마지막 힘을 짜내었다. 잠깐 잡힌 시야에 보석에 손을 대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 안현이 보였다.
그것이 정말로 마지막, 최후의 힘이었다.
이내 곧바로 시야가 가물가물해지며 갑자기 전신이 툭 끊기는 듯한 기분이 엄습했다.
그러기 전에, 신재룡이 서글픈 미소 지었다.
서글프게 웃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현아.”
거의 동시에, 지금껏 끈덕지게 잡고 있던 열차를 놓았다.
갑작스럽게 주변의 모든 게 느려지는 듯한 착각도 잠시.
풀썩!
덜컹덜컹, 덜컹덜컹! 덜컹덜컹, 덜컹덜컹!
열차는 한층 안정된 소리를 울리며 삽시간에 레일을 통과했다.
끝까지 열차를 바라보려고 하던 신재룡은, 결국 머리를 툭 떨구고 말았다.
이내 광산 열차가 저 멀리 사라지고, 소리마저 완전히 사그라질 즈음.
통로에 어둠이 지긋이 내려앉았다.
계속 이어지는 붕괴 현상으로 땅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으나, 신재룡은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누웠다는 사실이, 볼에 닿는 보드라운 흙의 감촉이 끝없는 아늑함과 홀가분함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신재룡은 문득 온몸이 가라앉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러한 기분 속에서, 지금껏 자신이 지나쳐온 시절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회상하기 시작했다.
일전에, 안현이 물은 적이 있다.
‘그럼 형의 빛나는 시절은 언제였는데요?’
그때는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몰라서 말하지 못한 게 아니라, 쑥스러워서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럼…. 저를 구하려고 구조대에 참가하신 겁니까?’
‘제 목숨을 구해주셨으니까요.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은인이 곤경에 처한 것을 알고서도 모른척하는 건 금수만도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맺게 된 인연이….
‘그럼 마음의 결정은 내리신 겁니까?’
‘예. 어제 비로소 마음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머셔너리 클랜에서 지내면서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느꼈고, 이 기회를 놓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입을 받아주신다면 최대한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머셔너리 클랜원으로서의 시절이….
‘머셔너리 클랜의 가입을 환영합니다.’
다름 아닌, 신재룡이 생각하는 자신의 빛나는 시절의 시작이었으니까.
우르르르르르르릉!
마침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던 회상이 끝났을 즈음, 주변을 찢어발길 듯한 어마어마한 소음이 귓전을 강타했다. 동시에 얼굴로 부스스 쏟아져 내리는 적잖은 흙 가루까지도.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완전한 붕괴의 전조(轉調).
긴장이 차오르고, 숨이 막힌다.
이제 곧 이어지고 맞이해야 할 미래가 보인다.
이 어두컴컴한 구덩이 안에서, 홀로 흙에 압사당할 미래가.
무섭지 않다면, 슬프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러나, 적어도….
‘후회는…. 없다….’
“하하하….”
그래서 신재룡은 웃었다.
적어도 지금 후회하지 않기에, 신재룡은 웃을 수 있었다.
쿠르르르르르르릉!
이내 그 웃음을 기점으로, 무수한 흙 암석이 낙하한다.
간신히 뜬 실눈의 어둠 반 흐릿함 반이던 시야에도, 무언가 큼지막한 것들이 한꺼번에 가득히 메워오고 있었다.
신재룡의 눈이 초연이 감기고, 무너진 흙덩이들이 수직으로 하강한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번쩍!
한 줄기 빛이, 통로를 가로질렀다.
빛살처럼 치고 들어온 반사된 검광은 하강하는 흙 암석들은 물론.
화아아악!
“사용자 신재룡!”
통로에 들어찬 모든 어둠까지, 모조리 새하얗게 반전시켰다.
============================ 작품 후기 ============================
으어어어. ㅇ<-<
죄송해요. 오늘 어떻게든 끝낼 생각이었는데…. 네. 용량 조절에 했습니다. OTL
이 불민한 저를 매우 치세요! ㅜ.ㅠ
내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조건 구덩이를 끝내겠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오해가 있는 것 같아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신씨한테 사기 당한 전력이 있나?
Sol ) 아닙니다. 그런 적 없어요.
2. 신씨 성을 가진 사람한테 10번 이상 차인 적이 있나?
Sol) 연애요? 흠. 신xx. 강xx. 김xx. 오xx. 김xx. 아. 그러고 보니 중학교 3학년 때 신xx한테 이별 통보를 들어보기는 했네요.
3. 연애하다 신씨한테 차였나?
Sol) 으음. 엄밀히 말하면 없는 건 아닌데, 그것 때문은 아니라고요!
4. 신씨만 골라 죽인다?
Sol) 아니에요. 제발. OTL
5. 작가 님께서 고오환을 죽이는 것은 복선입니다. 본인은 고오X이 없음, 즉 자신은 로유미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Sol) ㅡㅡ.
PS. 오늘 구조는 역순에서 다시 역으로 꼬았습니다.
*를 기점으로 따져보면 3, 2, 1의 진행이 나왔으며, 1에서 시간이 흐른 이후로 4의 진행이 나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