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08
00607 북부, 진군하다. =========================================================================
그 순간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공찬호는 어느새 눈동자를 이글이글 불태우며 나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공찬호는 나를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1회 차에서는 천하무쌍이라 우러름을 받은 사내가 나를 넘어보겠다는 도전을 선언한 것이다. 정말로, 정말로 기분이 묘하다.
기분에 휩쓸린 탓일까? 나도 모르게 무검을 뽑아 자세를 잡고 말았다. 이러면 안 된다고, 마인트 트레이닝으로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면서도, 공찬호를 보고 있으면 한 번 해볼까? 라는 생각이 자꾸자꾸 치솟는다.
그러나 나는 결국 본능을 억누르는데 성공했다. 다시금 머릿속에 들어앉은 이성은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또 궁금한 게 생겼는데. 사용자 성하얀은 지금 어떻게 지내지?”
뜬금없는 물음이라서 그런 걸까? 공찬호의 자세가 살짝 흐트러지는 게 보였다.
“하, 하얀이? 그건 왜…. 그, 글쎄. 아무튼 잘 지내고 있겠지.”
“말을 더듬는군.”
“…아마 저주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저주?”
“엉. 총 사령관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 하얀이가 엄청나게 반대했거든. 하지만 결국 수락해버렸으니까.”
“고작 그것 가지고 저주를….”
“그런데 이후로 계속 따라오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출발하는 날 강제로 기절시켰어. …위험한 건 나 혼자면 족하잖아?”
“…….”
출발하는 날 강제로 기절시켰다 라. 그거 참 화끈한 방법이군 그래.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저렇게 말한다는 건 더 이상 예전처럼 맞고 살지는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느 정도 속을 가라앉힐 수 있어, 나는 차분히 무검을 집어넣었다. 공찬호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알겠다. 그럼 이쯤에서 관두지.”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천천히 창을 늘어트린 공찬호가 의외라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눈을 두어 번 끔뻑끔뻑 감았다 뜨는 게, 맥이 빠졌다는 기색을 다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왜?’라는 무언의 눈빛에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여주었다.
“글쎄. 내키지 않는다기 보다는…. 나는 입만 산 놈들은 별로 신뢰하지 않아서.”
그러자 공찬호의 얼굴의 와짝 일그러졌다. 나름 진심을 말한다고 말했는데, 입만 살았다고 매도 당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으리라.
“그러니까. 어디 한 번 증명해봐.”
“증명?”
“아까 네가 그랬잖아. 너는 싸우면서 강해지는걸 느낀다고. 이번 공략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욱 강해져 있을 거라고.”
“…아.”
이제야 의도를 알아챈 걸까? 불만으로 가득 찬 낯에 미묘한 이채가 스쳤다. 찌푸렸던 얼굴이 서서히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싸우는 건, 아니 도전은 그 이후에 받아주도록 하지.”
공략이 끝나면 도전을 받아주겠다는 일종의 약속.
공찬호는 그제야 완전히 창을 거두고는 자세를 풀었다.
“흠…. 좋아.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아직도 아쉽다는 감은 없잖아 있는 듯했으나 납득 못한 기색은 아니었다. 하기야 예전에 사용자 아카데미에서 벌인 짓거리를 생각하면 스스로도 찔리는 게 있으리라.
나는 가볍게 숨을 흘리고 몸을 돌렸다. 잠깐 머리라도 식히려고 나왔는데 까닥 잘못하면 분위기에 휩쓸려버릴 뻔했다. 괜히 입맛만 버린 기분이랄까? 이게 무슨 꼴이람.
“잠시만. 머셔너리 로드.”
그때였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할 생각에 천막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조금은 낮아진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나는 고개만 반쯤 꺾어 시선을 돌렸다. 공찬호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문득 공찬호가 저렇게 정상적으로 부르는 게 자못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용자 정보라도 한 번 봐볼까?
“왜?”
나는 반문하는 동시에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1. 이름(Name) : 공찬호(5년 차)
2. 클래스(Class) : 일반 창술사(Normal, Lancer, Master)
3. 소속 국가(Nation) : 바바라
4. 소속 단체(Clan) : 아수라(Clan Rank : A Zero)
5. 진명 • 국적 : 수라마창(壽拏魔槍)의 주인 • 대한민국
6. 성별(Sex) : 남성(36)
7. 신장 • 체중 : 191.3cm • 95.3kg
8. 성향 : 열혈 • 노력(Hot Blood • Effort)
[근력 101(+6)] [내구 87] [민첩 91] [체력 92(+2)] [마력 81] [행운 73]
1. 김수현 : 574 / 600~
(잔여 능력치 포인트는 0포인트입니다.)
[근력 96(+2)] [내구 94(+2)] [민첩 98] [체력 100(+2)] [마력 96] [행운 90(+2)]
2. 공찬호 : 525 / 600~
(잔여 능력치 포인트는 0포인트입니다.)
[근력 101(+6)] [내구 87] [민첩 91] [체력 92(+2)] [마력 81] [행운 73]
“보아하니 뇌제에게 얘기는 들은 것 같은데…. 이번 북부 원정에 참가할 생각인가?”
오호라. 열혈, 노력이라. 나름 괜찮은 성향이라고 볼 수 있거니와, 예전 오만, 열등감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 아니. 잠깐만.
“뭐?”
“음? 아직 듣지 못했나?”
“아니 아니. 북부 원정에 참가할 생각이냐고? 왜 그런 생각을 했지?”
“내가 생각한 건 아니야. 하지만 서북 동맹 내부에서는 확실히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이지. 너와 뇌제의 관계나, 아니면 머셔너리가 용병 클랜이라는 것 등등…. 여하튼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놈들이 많거든.”
확실히, 아주 경우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차피 남부는 공략도 끝났겠다, 의뢰 형식으로 도와달라는 말이 나왔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공략을 위해서만 나온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현재 동부와 북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가능성은 더더욱 높아진다. 어쨌든 머셔너리는 현재 남부 소속이며, 남부가 북부를 도와주는 행동은 동부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즉 고립감을 느낀다고나 할까? 북부도 바로 그 점을 노리는 것일 테고.
그러면 북부는 왜 지금껏 나한테 접촉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혹시 내 형도 그랬나? 나한테 도움을 구하겠다고?”
“아니.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뇌제가 가장 극렬하게 반대했다. 참가 요청이든 정식 의뢰든, 너한테 도와달라고 말을 꺼내는 그 순간, 자신은 지휘권을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더군.”
그렇군. 그럼 형은 나한테 참가가 아닌, 단순 정보만을 원한다는 말인가? 나머지는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는 소리고?
“그래서 네 생각이 궁금한 거다. 머셔너리 로드.”
“으음….”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아무래도 좋다. 참가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참가해도 공사 구분은 확실하게 해주지.”
“…….”
공찬호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고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마치 무조건 이 자리에서 답을 듣겠다는 듯이.
하지만 여러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지라, 쉽게 생각하고 결론을 내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단 어떻게든 진군 시기를 늦춰봐. 하루, 아니 최소한 이틀 정도.”
*
밤새 몸을 뒤척이며 생각해본 결과, 우선은 참가해보자는 방향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물론 걸리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동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고, 클랜원들의 양해도 구해야 하며, 한소영의 허락도 받아야 한다.
이 모든 걸 북부가 진군하기 전에 처리해야 하니 사실상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생각하든 간에 무조건 참가는 해야 한다. 그렇게 결론이 나왔다.
아무리 모든 상황을 최상으로 가정하고 생각해봐도, 서북 동맹이 제 3지역을 공략할 가능성은 5할도 채 되지 않는다. 반대로 모든 상황을 최악으로 가정하면 공략 가능성은 2할로 떨어진다.
차라리 형이 없으면 미련 없이 잘 가라고 손 흔들어주기나 했지. 형이 죽을 가능성이 높은데, 사지로 걸어 들어가려는 걸 빤히 보고만 있으라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이다. 이럴 거라면 애당초 2회 차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아침이 밝자마자 곧바로 형을 찾았다. 아니, 찾을 필요도 없었다. 이제 슬슬 진군을 해야 하는 만큼 형이 직접 나를 찾아와 3지역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으니까.
그러나.
내가 아는 한의 모든 정보를 건네고, 끝으로 머셔너리도 참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살그머니 꺼내려는 순간.
“절대로 안 돼.”
형은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딱 잘라 끊어버렸다. 그것도 무척이나 단호한 목소리로.
“혀, 형?”
나는 한순간 당혹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공찬호에게 극렬하게 반대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갑자기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형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내가 적어준 기록을 차곡차곡 정리해 품에 넣더니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태도.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끼면서도, 나는 재빠르게 형을 붙잡았다.
“형! 잠깐만…?”
이윽고 형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붙잡았던 팔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
지금 나를 바라보는 형은, 예의 따뜻한 눈동자가 아닌 차가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다른 사용자를 대하는 것처럼. 돌연히 서운한 감정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형이 확고하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어지간해서는 나한테 져주는 편이지만, 일단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양보는커녕, 일절 용납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마는, 나 또한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형이야말로 갑자기 왜 이래? 내 말 들은 거 맞아?”
“들었어. 그런데 안 돼.”
“미치겠네. 말했잖아. 3지역은 1지역, 2지역과는 차원이 다른 지역이라고. 그러니까….”
“김수현.”
재차 설득에 들어가려는 찰나, 형이 엄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살며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완전히 몸을 돌려 나를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찾아온 고요한 정적.
“너는 진짜 네가 다 나서서 해야만 직성이 풀리나 보구나.”
이내 형의 목소리가 곧 정적을 깨트렸다.
“그게 아니라….”
“알아. 네 마음이 어떤지는. 하지만 고마운 마음은 들지언정, 네가 이러는 게 딱히 달갑지만은 않아.”
“왜? 왜 달갑지 않은 건데? 내가 지금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잘못됐지. 그것도 엄청나게 잘못된 행동이지.”
나는 잠깐이지만 형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후.”
내 표정을 읽었는지 형이 미약한 한숨을 흘렸다. 그리고 곧바로 말을 잇는다.
“물론 나는 네가 1회 차의 끝을 봤다는 것도 알고 있고, 네 능력도 인정해.”
“그러니까 왜….”
“잘 생각해봐. 지금은 1회 차가 아니잖아. 모든 게 리셋 된 2회 차잖아.”
“…….”
모든 게 리셋 된 2회 차.
형은 과연 무얼 말하고 싶은 걸까?
잠시 후, 형이 품 안에서 기록을 꺼내 서너 번 약하게 흔들었다.
“쉽게 가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래서 너를 찾아와 이 정보를 요구한 거고.”
“그런데?”
“여기서 또 네가 앞장서서 모두 해결해버리면…. 물론 편하기야 하겠지. 하지만 나는, 지금보다 더 성장할 여지가 사라져 버려. 너는 그걸 원하는 거야?”
“…그러면. 형은 지금, 이번 공략에서 활약을 해보고 싶다는 거야?”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지금 목숨을 걱정해서 꺼낸 말인데, 형은 명성이나 성과를 생각하고 있다는 건가?
그러나 형은 그게 아니라는 듯 머리를 가로젓더니 더욱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기록을 도로 품 안으로 집어넣더니 별안간 나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 그렇게 자신 있어?”
============================ 작품 후기 ============================
아. 야한 거 적고 싶다아.
고연주랑 꽁냥꽁냥하는 거 적고 싶다아.
남다은이랑 잤잤하는 거 적고 싶다아.
비비앙 막막 괴롭힌 다음, 엉엉 서럽게 우는 거 달래주는 장면 적고 싶다아.
아~. 야한 거 적고 싶다아아아아~.
…그냥 그렇다고요.
저도 엄연한 한 명의 사내라고요.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