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21
00620 Night Of Theater. =========================================================================
회상(Reminiscence).
“기록은 사실로 밝혀졌어.”
거신 전쟁부터 고대 무녀 대화록까지.
너무 오래 입을 놀려서일까? 일장 연설을 마친 김수현이 턱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김유현이 반문했다.
“사실로 밝혀졌다고?”
“응. 제 3지역을 공략한 후 고대 무녀의 증표를 발견했거든.”
“고대 무녀의 증표?”
“아까 말했잖아. 제 3지역에서 고통과 굴욕의 시절을 보내던 거인들은, 고대 무녀를 만난 이후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할 수 있었거든. 바로 그 증표가 거인들의 힘을 회복시켜주는 하나의 촉매 역할을 하는 거지.”
“촉매라. 그러면….”
“맞아. 이건 공략이 끝나고 나온 얘기이기는 하지만, 아마 그때 증표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우리도 조금 다르게 접근했을지도 모르지.”
그 순간 김유현의 두 눈에 이채가 스쳤다.
탐험이든 원정이든, 모든 사용자는 해당 과정을 기록하고 보고할 의무를 갖고 있다. 해당 괴물에 관한 정보는 물론, 차후 비슷한 괴물이 나왔을 시 한 번 되짚어 볼만한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했으면 우리는 조금 더 쉽게 공략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사용자들도 더러 있는 편이다.
“고대 무녀의 증표라…. 그럼 그것만 어떻게 조작할 수만 있다면, 회복된 거인들의 힘을 도로 떨어트릴 수 있지 않을까? 예전 수준으로 말이야.”
“그렇지. 사실 방법 자체는 간단해.”
“간단하다고?”
“생각해봐. 고대 무녀의 증표는 일종의 신물이라고 볼 수 있거든? 그런데 신물이라는 게 아무데서나 발동하는 건 아니잖아. 무녀의 힘을 지닌 이가 갖고 있거나, 아니면 지정된 장소에 있어야 하지. 아니 신역이라고 해야 하나? 예를 들면 무녀가 신과 접촉하려고 만든 제단이라던가.”
부적 혹은 신주를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한 이야기였다.
곧바로 알아들은 김유현은 기쁜 빛을 감추지 못하며 활짝 미소 지었다. 아까 거인의 특징을 들을 때만 해도 방법이 없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게 공략할 길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불가능해.”
“그럼 그 증표를 훔치거나 제단을 파괴하면…. 뭐, 뭐라고?”
신나게 말을 잇던 김유현은, 동생의 부인에 저도 모르게 말을 멈추고 말았다.
문득, 김수현은 얼굴을 딱딱히 굳히고는 심각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연초를 하나 꺼내 들었다. 마치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듯이. 그러나 김유현의 눈이 한껏 가늘어지자 투덜투덜거리며 도로 집어넣었다.
“어쨌든, 형 말이 틀린 건 아니야. 그래도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해.”
“왜? 아, 물론 그 증표가 거인들에게 중요한 물건이기는 하겠지. 그만큼 경계도 심할 테고. 하지만 거인은 마력을 느끼지 못한다며? 그러면 은신 능력이 절정에 오른 사용자들을 투입하면 되는 일 아니야?”
그러자 김수현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하나를 말해도 전혀 알아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두 개, 세 개 이상을 알아먹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김유현은 당연히 후자에 속한다. 가만히 입만 벌리고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밥상을 차릴 방법을 찾으려고 하니 나름 기분이 괜찮은 것이다.
“일리는 있지만 힘들어. 왜냐하면 증표가 있는 장소는 신역으로 구분되거든. 신의 힘이 미치는 영역인 만큼 출입 또한 제한되지.”
“신역?”
“그래, 신역. 거두절미하고 말하면, 그 장소는 인간은커녕 거인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이야. 오직 고대 무녀, 아니면 거인들의 제왕인 쿠샨의 피를 이어받은 거인만이 들어갈 수 있어.”
“…그럼 1회 차에서는 어떻게 증표를 얻었는데?”
“글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신역을 유지하는 건 신물이거든. 그때 쿠샨 일족 중 누군가가 신물을 건드렸거나, 아니면 거인들의 멸망과 연관 지을 수 있겠지.”
“…그래?”
김유현이 살짝 갸웃하며 말하자 김수현은 그렇다는 듯이 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으음….”
아까 기뻐하던 빛은 금세 사라져버리고, 김유현은 무거운 침음을 흘리며 시름에 잠겼다. 고대 무녀의 증표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방법을 찾았다 싶었는데, 김수현이 저렇게 말한 이상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 것과 진배없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정면 승부밖에는 답이 없는 건가?”
“힘들걸? 동부, 서부, 남부, 북부가 모든 힘을 합친다면 몰라도.”
김유현이 거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으나 김수현이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
그리고 나서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아주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빤한 눈초리로 김유현을 응시했다.
“혹시….”
*
사용자와 거인의 대련. 공식적이지 않은 만큼 큰 의미는 부여할 수 없으나 그래도 은근한 자존심 싸움은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게 30명의 사용자들이 조용히 지켜보는 가운데, 사내가 은색으로 빛나는 창을 움켜쥐고는 서서히 쿠샨에게 다가갔다.
“하!”
그러다 어느 순간, 사내가 힘찬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나갔다. 일직선 돌격이 아닌, 풋 워크(Foot Work)로 지면을 밟으며 지그재그로 이동해 쿠샨의 시선을 어지럽힌다.
겉으로는 담담히 사내의 움직임을 쫓는 쿠샨이었으나 속으로는 살짝 놀란 상태였다. 짓쳐 들어오는 사내의 속도가 생각보다 상당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살짝 몸을 웅크리고는 움켜쥔 주먹으로 갈비뼈 부분을 살그머니 가렸다.
잠시 후, 현란하게 움직이던 사내의 발이 느닷없이 왼쪽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쿠샨의 시선이 사내의 발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차분히 움직인다.
그러한 찰나, 사내의 발이 급작스럽게 오른쪽으로 선회해 커다란 반원을 그렸다. 쿠샨이 왼쪽으로 머리를 돌린 틈을 타서 있는 힘껏 창을 내뻗었다. 창은 바람을 시원하게 가르며 뻗어나가 여지없이 쿠샨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아니, 틀어박히려는 순간이었다.
탁!
한순간, 사내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쿠샨의 머리는 여전히 왼쪽을 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할진대, 갈비뼈를 가렸던 왼쪽 주먹이 내려와 보지도 않고 창 끝을 잡아챈 것이다. 사내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당혹감이 서서히 차오른다.
“어, 어?”
창을 꽉 잡은 상태서 쿠샨은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사내는 반사적으로 창을 빼려고 용을 쓰고 있었지만, 거인의 손아귀에 잡힌 창은 미동도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창대를 잡은 손이 옆으로 뿌리치듯이 움직이자, 그제야 사내는 해방된 창을 들고 지면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동그라졌다.
“시, 실수였다! 다시!”
화가 난 걸까, 아니면 창피한 걸까? 사내는 번쩍 몸을 일으키고는 다시금 다급하게 달려들었다. 쿠샨은 코웃음을 쳤다. 실수라는 말이 웃기기도 했거니와, 방금 전의 공세 교환으로 서로의 실력은 명백하게 갈린 상태였다. 속도가 빠르기는 하지만 대응 못할 정도는 아니고, 근력은 하잘 것 없는 수준이다.
‘에이, 시시해.’
그렇게 생각한 쿠샨은 황소처럼 치고 들어오는 사내를 응시했다. 조금 전과 똑같은 움직임. 아까는 몰라서 허용했다고는 해도, 한 번 경험한 이상 두 번 당하지는 않는다.
예상대로, 사내는 빠른 속도로 경로를 틀어 측면에서 공격을 가해왔다. 쿠샨은 그 커다란 몸집에도 불구하고 민첩하게 반응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창을 왼손으로 걷어내고는 그대로 몸을 절반쯤 돌려 오른손으로 사내의 복부를 밀어낸 것이다.
퍽.
말 그대로 친 게 아니라, 밀어냈다. 허나 약간이라도 회전력이 가미된 거인의 근력은 절대 무시 못할 수준이다. 사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공중으로 붕 몸을 날았다가, 거칠게 땅에 나동그라졌다.
우당탕, 우당탕!
한순간 구경하던 사용자들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느 사용자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입을 쩍 벌렸고, 또 어느 사용자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서 가벼운 소란이 일었다.
(마, 말도 안 돼! 어, 어떻게 된 거야?)
(이, 인간 최고의 용사 중 한 명이….)
웅성웅성, 웅성웅성.
번역되는 말들 중에서 몇 가지가 쿠샨의 귀로 흘러 들어온다. 사실 잘 들어보면 거의가 비슷한 말이다. 종합해보면, 저 사내가 당한 게 믿을 수 없다는 정도. 그러나 그런 말을 듣는 쿠샨의 생각은 단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 이게 인간 최고의 용사 수준이라고?’
확실히 김유현도 그러지 않았는가. 상당히 강한 인간을 준비했다고. 그런데 결과는….
‘이건 너무 약하잖아….’
거드름 피우는 인간들을 이겼다는 고소한 마음도 잠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딱딱히 굳은 김유현을 확인한 순간, 쿠샨은 도리어 미안해지는 마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어느 정도 싸움이 되야 통쾌함을 느끼지, 이건 이겼다고 보기도 미안한 수준이었다.
(그, 그만. 모두 조용히.)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김유현이 더듬더듬 말을 꺼내 주변의 소란을 진정시켰다.
(이번에는 3명으로 해보도록 합시다.)
*
일대일, 삼대일, 오대일, 십 대일. 총 4번에 걸친 거인과의 대련이 끝났다. 결과는 인간들의 처참한 패배였다. 분명 수가 늘어날수록 버티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쿠샨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유효타를 성공시키지 못한 것이다. 결국 더 해봐야 의미 없다고 판단한 김유현은 대련의 종료를 알렸고, 쿠샨을 데리고 다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거의 압도적으로 이기기는 했지만, 쿠샨의 기분도 썩 좋은 건 아니었다. 인간이 개미를 이겼다고 자랑스러워하지 않듯이, 쿠샨 또한 비슷한 입장이었다. 오히려 전투가 끝나고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인간들의 눈초리가 마음에 걸릴 뿐.
(헤헤, 어때요. 저 엄청 강하다고 했죠?)
쿠샨은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보았다. 그러나 김유현의 말은 들려오지 않는다. 그저 크게 충격 받은 얼굴로 멍하게 걸어가고만 있었다. 이따금 비틀거리기도 하는 게, 온몸의 힘도 없어 보인다.
(저…. 아까 얘기해주신다는 건….)
그러나 계속 반응을 보이지 않자, 쿠샨은 그냥 입을 다물기로 결정했다. 눈에 보이는 김유현의 얼굴이 워낙 심각했거니와, 왠지 모르게 인간들의 기분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최고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무참히 깨졌으니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둘은 기둥이 있던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 도착했다.
(어? 저거는….)
두리번거리며 기둥을 찾던 쿠샨은 눈앞에 놓인 큼직한 천막을 보고 미약한 탄성을 질렀다. 어찌나 커다란지 자신을 수용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돌연히 쿠샨의 안색에 화색이 돌았다.
(이, 이건 뭐예요? 저를 위해 만들어주신 거예요?)
그리고 김유현을 돌아보며 한 발짝 다가간 순간이었다.
(허억!)
문득, 김유현이 불침이라도 맞은 양 크게 놀라며 쿠샨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그러다 아차 한 얼굴을 하더니 억지가 다분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낯에 서린 숨길 수 없는 공포심을 확인하자, 쿠샨은 말문이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어, 어. 그, 그렇지. 일종의 선물이랄까?)
(……)
(하, 하하. 저건 네 천막이고 옆에 천막이 내가 사용하는 천막이거든…. 그게 더 편할 것 같아서.)
(……)
(무, 물론 안에 기둥은 따로 있고, 그냥 비바람을 피하는 정도겠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꿀까? 조용한 곳에 따로 설치해줄 수도 있는데.)
(…아니요. 괜찮아요.)
천막을 선물 받았다는 기쁨도 잠시에 불과했다. 간신히 대꾸한 쿠샨은 시무룩한 기분으로 천막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만약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랬다면, 쿠샨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김유현과 쿠샨은 행군 중에서든 야영지에서든, 함께 식사는 물론, 서로 틈만 나면 대화를 해왔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서로 나름 깊은 교감을 나눠온 관계였다. 또 결과적으로 지금에 이르러서는 상당히 친해진 상태이기도 했고.
그러할진대, 차라리 처음부터 무서워했다면 모를까. 이제 와서 대련 한 번 했다고 이런 태도를 보인다는 건, 쿠샨 입장에서는 상당히 서운하게 생각할만한 일이었다.
(…제가 실수한 거라도 있어요?)
결국 천막에 들어간 후, 입을 뿔뚝 내민 쿠샨이 자못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주문을 외워 속박을 걸고 있던 김유현이 당황한 낯으로 머리를 들었다.
(으응? 아니. 없어.)
(그럼 다들 왜 이러는 건데요.)
(어? 뭐, 뭐가?)
(거짓말하지 말아요. 저도 보는 게 있고 느끼는 게 있다고요. 진짜 너무해요.)
(으음.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하다.)
(치…. 이래서 하기 싫다고 한 건데….)
쿠샨이 시무룩이 말끝을 흐리자 김유현은 짧은 한숨을 흘렸다. 그리고 서둘러 주문을 마치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대련 결과가 조금, 아니 많이 예상외였어.)
그러자 ‘정말 그 사내가 인간 최고의 용사에요?’라고 물어보려던 쿠샨은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삼킬 수 있었다. 김유현의 얼굴을 보니 왠지 물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에.
그때, 김유현이 살그머니 입을 열었다.
(우선은 하나만 물어보자. 너, 강하지?)
(네?)
갑작스러운 물음에 쿠샨이 반문했다.
(너 쿠샨이라며. 거인들의 제왕이 일족이라며. 그럼 후계자인 거 아니야? 거인들 중에서도 엄청 강한 거 아니야? 응? 그렇지? 네가 최고로 강한 거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게 마치 ‘네.’를 바라는 듯한 물음처럼 느껴졌다. 잠시 김유현을 물끄러미 응시한 쿠샨은 곧 도리도리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아니라고?)
(네, 아니에요. 저는 오히려 약한 편이에요.)
(약한 편이라고?)
(성인식을 치르고 토르의 힘을 받으면 비약적으로 강해지겠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제가 제일 어리고, 저보다 강한 분들은 훨씬 많아요.)
(…총 몇 명이나 있는데?)
쿠샨은 800명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유현의 얼굴이 확실하게 보일 정도로 일그러졌다.
(800명…. 800명이라….)
마치 혼이 빠진 것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린 김유현은 이내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그래…. 알겠…. 다….)
예전 같았으면 다른 이야기라도 나눴을 텐데, 그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쓰러질 듯한 걸음으로 천막을 나섰다. 쿠샨은, 김유현이 나간 천막을 하염없이 응시하다가, 돌연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몸을 비틀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단단히 묶인 밧줄이 자못 거슬리게 느껴진 탓이다.
그리고.
“후.”
천막에서 나온 김유현은 가볍게 숨을 흘리며 기지개를 폈다. 그와 동시에 죽겠다는 얼굴로 머리를 좌우로 꺾고 마사지 하듯이 안면을 주물렀다. 말은 물론, 간만에 표정이나 행동에 신경을 쓰려니 여간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내 힘없어 보이던 걸음걸이 또한 곧바로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그때였다.
“아, 뇌제!”
갑자기 전방에서 서너 명의 사용자들이 김유현을 발견하고는 신속하게 다가왔다. 아까 대련 장소에 서 있던 지휘관급 사용자들이었다.
“어, 어떻습니까. 이제 슬슬….”
“쉿.”
그리고 무언가 물으려는 찰나, 김유현이 돌연 검지를 입에 대며 소리를 내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사용자들이 서로를 떨떠름히 바라보며 입을 다물자, 김유현은 날카로운 눈으로 천막을 한 번 흘기고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당연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입 모양으로 의사를 전달한다.
김유현의 말은 단 두 마디에 불과했다.
‘거인은 귀가 밝습니다.’
‘자리를 옮기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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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분들 모두 편안한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