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34
00633 낯 뜨거운 전조(?). =========================================================================
『필요할 때를 위한 작은 행운을!』
안솔이 기적을 사용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떠오른 하나의 메시지.
안솔은…. 사실 미약하게나마 느꼈는지도 모른다. 쿠샨 토르가 묠니르의 번개를 소환할 때부터 누군가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피하지 않은 건, 그 사실이 미미한 감에 불과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왠지 자신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도 아니었다.
묠니르가 미처 대응할 틈도 없이 궤도를 틀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큰 이유는….
“디펜시브 매트릭스(Defensive Matrix)!”
“안젤루스여! 우리를 보호하소서!”
푸른빛을 뿌리는 번개가 한순간 김수현을 지나쳐 쇄도해올 때, 곧장 앞으로 나선 한 사용자 때문이라 볼 수 있었다.
뇌제(雷帝) 김유현.
어쩌면.
백한결과 안솔이 한 발 앞서 가로막는 동안, 적어도 김유현은 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아마 김유현도 쿠샨 토르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늘만 무려 3번째로 뇌신의 힘을 발동한 채 방어막 선두로 걸어간 것이다.
반신의 전력이 담긴 묠니르의 번개는 김수현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힘을 품고 있었다. 백한결과 안솔이 펼친 두 개의 방어막은 압도적인 힘 앞에서 종잇장처럼 찢겨버렸다. 결과적으로 힘을 약화시키는데 그쳤을 뿐, 짓쳐 들어오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바로 거기서, 김유현이 나섰다.
비록 방어막으로 힘을 떨어트렸다고는 하나 근소한 정도에 불과했다. 묠니르의 번개는 여전히 주변을 모조리 날려버릴 정도의 위력을 보이며 밀려들어 오고 있었고, 그에 반해 김유현의 뇌신은 처음 위력의 절반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럼에도 김유현은 피하지 않았다. 여기서 물러나버리면 백한결과 안솔이 위험해지는 건 당연지사. 기억하기로는 두 명 모두 김수현이 끔찍이도 아끼는 사용자였다. 그런 만큼 동생이 슬퍼하는 얼굴 따위는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시작된 뇌(雷)와 뇌(雷)의 대결.
콰콰콰콰!
비록 100%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확실히 뇌신의 힘은 녹록하지 않았다. 김유현의 두 손에서 뿜어지는 노란 전광은, 지상을 시꺼멓게 태우며 달려드는 묠니르의 번개를 한순간이나마 정면에서 막아내고 있었다. 황금빛 전류와 푸른빛 전류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물고 물리는 접전을 펼치는 광경은, 장관이라 봐도 좋을 정도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적어도 안솔의 눈에 비친 광경은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눈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직접 마주한 김유현은 극심한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그 차이는 곧 결과로 나타났다. 김유현이 묠니르의 번개를 가로막은 것은 단 3초에 불과했다.
3초의 다음, 돌연 커다란 방전 현상이 발생했다. 푸른 번개가 무시무시한 불꽃을 튀기며 뇌신의 힘을 불살라버렸다. 그리고 마치 이대로 먹어 치워버리겠다는 듯이 서서히 전진해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김유현은 본능적으로 옆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피하려는 게 아니었다. 막아내는데 실패했으니 궤도라도 비틀어 지면으로 흘려내려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심한 타격은 피할 수 없겠지만, 어떻게든 목숨이라도 건질 생각이었다. 최소한 이대로 직격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한 찰나.
부웅.
한 걸음 옆으로 옮긴 지점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허공을 건너온 쿠샨 토르가 나타났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상태에서도 작열하는 안광은 아래를 똑똑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절대로 살려두지 않겠다는 듯 오른팔을 힘차게 휘두르며 강하한다.
그것을 김유현은 모르고 있었다. 오직 묠니르의 번개를 비틀어버리는데 전신전력은 물론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볼 수 있는 사용자가 있다면 두 명.
앞서 튕겨 나간 백한결과 안솔, 그중에서도 안솔은 확실하게 보고 있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사선으로 떨어지는 솥뚜껑만한 주먹을.
몇 초 후에 일어날 누군가의 죽음을.
그 순간이었다.
“안 돼!”
입술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자동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아직 반발력의 여파에 괴로워하면서도 안솔은 달려가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머릿속에 죽음이라는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딱히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굳이 이유를 대보라고 한다면, 김유현과 똑같은 이유라 볼 수 있다. 안솔도 김수현이 얼마나 자신의 형을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오라버니가 슬퍼하는 얼굴 따위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
이 모든 건, 바로 김수현을 위해.
잠시 후.
간신히 궤도를 비틀어낸 순간 안솔이 김유현을 있는 힘껏 부딪쳐 밀어냈다. 김유현의 몸이 밀려나고 안솔이 그 자리에 대신해 들어갔다.
지면을 파고들어간 묠니르가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고, 안솔의 갈비뼈에 쿠샨 토르의 주먹이 틀어박힌 것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후로 안솔은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다. 잠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시야에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밤하늘만이 들어올 뿐.
“으아아아!”
이윽고 김수현의 고함이 들려오는걸 마지막으로, 안솔은 그대로 까무러치고 말았다.
*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 마구잡이로 검을 날렸다.
그러나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것도 잠시. 쿠샨 토르는 바로 묠니르를 잡아채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고 나와의 거리를 벌렸다. 여전히 오른 방향을 바라보는 얼굴에는 아쉽다는 기색이 강하게 풍겨왔지만, 거인의 선택은 지독하다 생각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검은 하릴없이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이대로 놓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저놈을 죽여 버려야 이 끓어오르는 머리를 식힐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여 곧바로 쫓아가려는 찰나.
– 진정해!
화정의 애달픈 외침이 내 행동에 제지를 걸었다.
‘뭐라고?’
– 진정하라고! 지금 뭐하는 거야? 혼자 열 받아서는!
‘너 지금….’
– 너야말로, 이 정도밖에 안 돼?
‘…….’
– 그래. 네 동료가 당했어. 그랬다고 이성을 잃고 폭주하면 끝이야? 방금 저놈 행동 안 봤어? 반신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다른 말은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말만큼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 네가 지금 본능에 이끌려버리면, 그게 바로 저놈이 원하는 거라고!
그 순간 부글거리던 머릿속으로 한 줄기 차가운 이성이 찾아 들었다. 이어서 허공에 심안의 발동이 실패했다는 메시지가 눈에 밟혔다.
“…후.”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제야 심안이 정상적으로 발동됐다는 메시지를 확인한 후, 멀찍이 물러난 쿠샨 토르를 지그시 응시했다. 거인도 나를 마주보며 노려보는 눈초리를 빛내고 있었다.
그래,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선유운.”
“예!”
“3명의 상태는?”
“…….”
선유운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곧 등 뒤를 분주히 돌아다니는 소리와 약하게 헛바람을 들이키는 소리가 차례대로 들려왔다.
“…3명 모두 숨은 붙어있습니다.”
일단, 숨은 붙어있다라.
“하지만 안솔의 상태가 굉장히 심각하며, 또…. 어, 어?”
그때였다. 어둡게 말을 잇던 선유운이 갑작스레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이어서 후방으로 약한 침음이 들려오더니 누군가 내게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발소리만 들으면 정상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이윽고 누군가 내 어깨를 턱 짚음과 동시에.
“수현아.”
문득 형이 옆으로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흘끗 시선을 돌렸다가 형을 보고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에서 피를 흘리는 형의 모습이 가히 혈인을 연상케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형….”
“괜찮다.”
그러나 무어라 말하기 직전 형이 말을 도중에 끊어버렸다.
사실 하나도 괜찮아 보이지 않다.
허나 분명 그렇게 보임에도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 지금 형에게서 1회 차 때 형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형의 눈은 나를 보고 있지 않다. 핏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와중에도 두 눈을 형형히 빛내며 전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단호한 결심을 내린 것처럼.
나는 이를 세게 깨물었다. 그리고 외쳤다.
“선유운, 고연주! 지금 당장 각각 안솔과 백한결을 데리고 전장을 이탈합니다!”
전장 이탈 명령.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전까지 주변에서 느껴지던 두 개의 기척이, 곧 다른 두 기척과 서서히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얼마나 상태가 심각한지는 모른다. 그러나 숨이 붙어있다면 살릴 수 있다.
이로써 남은 인원은 3명. 나와 형, 그리고 공찬호.
…과연 이 인원 가지고 이길 수 있을까?
– 이길 수 있어.
그때, 내 생각을 읽었는지 화정이 말했다.
‘이길 수 있다고?’
– 지금은. 딱 지금이 이길 수 있는 기회야. 지금 저놈의 상태를 관찰해봐.
쿠샨 토르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화정의 말대로 나는 안력을 높여 거인의 상태를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곧 알 수 있었다. 왜 저놈이 지금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지.
사실상 형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금 내 상태도 굉장히 안 좋은 상태였다.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전투를 이어나갈 수 있는 마력이 극히 부족하다.
남은 양이라고 해봤자 약 한 줌? 어빌리티 하나를 겨우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만큼, 쿠샨의 상태도 굉장히 좋지 않았다. 강림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지쳐 보이는 기색도 역력하다. 아까까지 조금도 티를 내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상하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열화검으로 전신에 타격은 물론, 이후로도 지속적인 피해를 입었다. 마력 전부를 파동에 얻어맞은 가슴은 흉하게 박살 나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다.
무엇보다 허공에서 먹였던 치명타가 크다. 나는 왼쪽 어깻죽지 부근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데 성공했고, 공찬호는 오른쪽 허벅지에 주먹만 한 구멍을 뚫어 놨다.
저렇게 서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다른 괴물이었다면 이미 백 번은 넘게 죽었어야 정상이다. 그나마 쿠샨 토르라서 버티고 있을 뿐이지.
– 그래, 맞아. 저놈은 애초부터 네 형이 목표였던 거야.
문득 화정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저놈은 무조건 네 형을 죽일 셈이야. 그래서 아까 치명타를 허용하면서도 무리해서 들어간 거고. 너, 아까 네가 달려들었을 때 저놈이 급하게 물러난 거 기억나?
‘기억나.’
– 생각해봐. 아까 그 꼬맹이의 희생으로 한 번 실패하기는 했지만, 네 형은 가까이에 있었거든. 너한테 한 번 더 치명타를 허용하는걸 고려해보면, 분명히 한 번 더 죽일 기회가 있었다는 소리야. 그런데, 아까 허공에서와는 다르게 왜 이번에는 물러난 걸까?
‘…저놈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소리겠지.’
화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무언의 긍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 좋아. 잘 들어. 이상한 기교 부릴 생각은 하지도 마. 네가 해야 하는 건, 어떻게든 저놈의 급소에 검을 꽂아 넣는 일이야.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결심을 굳혔다.
화정의 말이 맞다. 서로가 한계에 다다른 이상, 화려한 기교도 화려한 능력도 필요치 않다. 그저 누가 먼저 상대에게 무기를 꽂아 넣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말로는 쉽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나보다 모든 게 뛰어난 이를 상대로 그저 순수 전투 능력만으로 이겨내라는 소리였으니까.
신체 능력에서는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수 싸움으로 기회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오른손에 든 무검은 왼쪽 겨드랑이 사이로 끼워 넣었다. 왼손에 든 빅토리아의 영광은 상단으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살짝 무릎을 굽혔다.
그러자 형도, 건너편의 공찬호도 동시에 자세를 잡는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이게 마지막 공격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 다들 표정이 신중하기 그지없다.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다 문득, 나직한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나도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다.”
“…죽지만 마.”
이어지는 목소리에 나는 조용히 뇌까렸다.
형은 싱겁게 웃으며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켰고, 곧 양손에서 환한 전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가자.”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잠시 형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다리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형이 그 말을 끝으로 먼저 앞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으니까. 동시에 건너편의 공찬호도 마주 달려오기 시작한다.
이로써 마지막 4회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바로 형을 따라잡고 오른쪽 옆에서 달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형의 신체 능력치는 어지간한 근접 계열을 뺨치는 정도. 근력은 70을 넘고, 민첩은 97을 넘는다. 그러니 괜히 근접전을 자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긴장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강하게 마음을 다잡으며 눈앞의 쿠샨 토르에 시선을 집중했다.
20미터.
수 싸움에 희망을 걸기는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기회를 만드는 선에서 그쳐버린다.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 생과 사를 넘어가는 와중에 잠깐 드러나는 틈을 잡아야 한다.
10미터.
비로소 쿠샨 토르가 움직임에 변화를 보였다. 앞뒤로 모두 달려오는 만큼 몸을 사선으로 비스듬히 틀었다.
오른손에 쥔 묠니르는 우리를 향하고, 왼손은 공찬호를 향한다.
5미터.
나와 형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땅을 박찼다.
몸이 살짝 허공으로 떠오르며 남은 거리를 삽시간에 줄인다.
그리고 발이 땅에 닿으려는 찰나, 드디어 쿠샨 토르가 오른팔을 움직였다.
묠니르가 뒤로 한껏 젖혀진다.
3미터.
부웅!
그리고 마침내, 묠니르가 바람을 갈랐다. 형과 나를 동시에 날려버리겠다는 듯 세찬 소리를 내며 왼쪽 횡 방향으로 들어온다.
어찌 보면 우직하다 볼 수 있는 공격이나, 그만큼 정교하고 정확한 공격.
그때였다.
“수현아!”
땅에 발이 닿은 순간.
그러니까 짓쳐 들어온 묠니르가 막 형의 주변까지 근접했을 때.
“가라!”
형이 갑작스럽게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들어오는 묠니르를 향해 양손을 내뻗는다.
의아한 기분을 느끼기도 전, 순간적으로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이 일었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분명히 볼 수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형의 손이 묠니르와 마주치는 것을.
허공에, 불꽃이 튀긴다.
나는 이제야 형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형은 쿠샨 토르가 자신을 노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끼를 자처했다.
나와 공찬호에게 더욱 확실한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그것을 인지한 순간, 나는 머리를 비웠다.
그저 본래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한 번 더 크게 도약했다.
그대로, 형을 지나쳤다.
바로 다음, 쿠샨 토르가 왼손을 꽉 주먹 쥐는 게 시야에 잡혔다.
그것은 거인이 공찬호를 포기하고 나를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2미터.
쿠샨 토르의 주먹이 움직인다.
아직은, 아직은 쿠샨 토르가 유리하다.
비록 묠니르는 형을 미끼로 묶었다고는 하나, 왼팔이 남아있다.
비록 속도를 높였다고는 하나, 팔의 길이는 거인이 훨씬 더 길다.
그런 만큼, 먼저 사정거리에 닿지 못한 이상 선공은 무조건 거인이 가져갈 수밖에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쿠샨 토르는 내가 들어오는 속도에 맞춰, 정확하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거대한 손이 내 머리통을 부숴버리겠다는 듯 빠르게 가까워진다.
1미터.
더욱 몸을 웅크리며 자세를 크게 낮췄다.
양손의 칼자루를 으스러지도록 쥐었다.
한 줌 남은 마력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그리고 주먹이 지척까지 다가온 순간.
나는 웅크렸던 몸을 활짝 펼치며, 남은 모든 마력을 터뜨리듯이 개방했다.
궁신탄영(弓身彈影).
배꼽이 쏠리는 기분과 함께, 몸이 앞으로 퉁 튕겨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뒤통수를 싹 스쳐 지나가는 섬뜩한 감촉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끝내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확실히 쿠샨 토르의 공격은 정확했다. 거인이 계산한 내 최대 속도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게 한계라고 생각한 게 패인이다.
신체의 한계 속도.
거기에 어빌리티로 가산을 붙여, 나를 노리고 들어온 타이밍을 흩뜨린 것이다.
이내 가깝게 다가오는 거인의 가슴을 바라보며, 나는 양손을 움직였다.
무검은 횡으로 휘두르고, 빅토리아의 영광은 일직선으로 눕혀 찌른다.
들어가는 검은 이미 맑은 불꽃을 머금은 상태였다.
사악!
무검이 쿠샨 토르의 복부를 깊숙하게 베고 지나갔다.
칼날에서 진득하면서도 익숙한 감촉이 느껴졌다.
푸욱!
빅토리아의 영광이 쿠샨 토르의 왼쪽 가슴 아래를 꿰뚫었다.
뼈를 부수고 들어간 칼끝에서 무언가를 터뜨리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쿠샨 토르는 어떤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장 난 장난감처럼 덜거덕, 잠깐 몸을 멈췄을 뿐.
그리고 잠시 후.
이글이글 작열하던 새하얀 눈동자가 서서히 빛을 꺼트렸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몸이 천천히 넘어가기 시작한다.
쿵!
그리고, 땅이 울었다.
거인들의 제왕.
쿠샨 토르의 최후였다.
============================ 작품 후기 ============================
하하…. 02시 00분에 업데이트하겠다고 말씀 드렸는데, 1시간 22분이나 늦어버렸네요. 정말 유구무언일 뿐입니다.
조심스레 변명을 하자면, 마지막 내용을 적는데 시간이 예상외로 많이 걸렸습니다. “젠장! 그냥 화정으로 바이바이 할걸!”이라고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르겠네요.(농담~.) 아무튼, 확실히 머릿속에 상상한 장면을 글로 옮기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거인과의 전쟁 파트는,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다음 회에는 예전 타로 카드와 관련한 비밀 하나를 풀어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