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44
00643 게헨나(Gehenna). =========================================================================
우리는 마침내 강철 산맥을 통과하고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이제는 굳이 주변 풍경을 볼 필요도 없다.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가 가장 명백한 증거였으니까.
이 메시지는 비단 나뿐만이 아닌, 원정대에 소속된 모든 사용자들에게도 출력됐을 것이다.
‘하나, 둘, 셋….’
나는 속으로 하나하나 숫자를 셌다.
그리고 정확히 3초를 센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새로운 대륙이 떠나갈 듯한 엄청난 환호가 귓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려왔다. 사용자들의 합창이 땅을 울리고 하늘 저편으로 멀리멀리 퍼져나간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동서남북 가릴 것 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함성을 지르고 있는 듯했다. 강철 산맥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그만큼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이리라.
“머셔너리 로드! 총 사령관의 전언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함성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에는 한소영이 전령을 보내왔다. 마침 점심 식사 시간이 됐으니 적당한 장소를 찾아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기꺼이 그 요청에 응해주기로 했다. 마침 부근에 적당한 장소를 알고 있거니와, 후방에 있는 사용자들도 얼른 새로운 대륙의 풍경을 보고 싶을 것이다.
나는 곧바로 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정렬하고, 출발하겠습니다!”
그리고 재개된 진군은, 약 30분 후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지점에 이르고 나서야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다.
전 원정대의 분위기는 아직도 떠들썩했다. 아마 한소영도 이 분위기에서는 정상적인 진군이 어렵다고 판단, 그래서 최대한 빨리 적당한 장소를 찾으라는 전령을 보냈을 것이다. 식사 시간을 통해서 어느 정도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의도였다.
‘하기야 도시를 발견할 때까지는 원정이 끝난 게 아니니까.’
이 상황에서도 냉정한 이성을 유지하는 한소영에게 감탄하면서, 나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클랜원들은 식사 준비에 들어간 상태였다.
김한별은 풍경을 구경하려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백한결은 주먹 쥔 손으로 눈을 닦으며 울었고, 정하연은 달래는데 여념이 없었다.
안현, 이유정, 진수현, 사샤 네 명은 만세를 부르고 강강술래를 돌며 기뻐했고, 표혜미, 아니 제갈 해솔은 어색이 웃음 짓는 차소림의 손을 붙잡고 빙글빙글 춤을 추었다.
식사를 준비하던 고연주는 스튜를 살짝 찍어 먹어보고는 아쉬워하는 얼굴로 “우유가 있으면 참 좋겠는데….”라고 중얼거렸다. 마침 옆을 지나가던 원혜수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더니 양팔로 가슴을 가리며 도망갔다. 고연주가 고개를 갸웃하자 옆에서 식사 준비를 돕던 임한나가 쓰게 웃었다.
김동석과 박다솜은 무에 그리 즐거운지 키득키득 웃고 있었고, 남다은과 비비앙은 서로 꼭 붙어 앉은 채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박현우는 홀로 주먹을 불끈 쥔 채 남쪽을 바라보며 “으아아아!” 괴성을 질렀다.
선유운, 우정민, 허준영 세 명은 서로 등을 맞대고 앉은 채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신재룡이 자리에 침낭을 깔고 안솔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구예지가 살금살금 다가와 안솔의 볼을 콕콕 찌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연초를 꺼내 물어 불을 붙인 후 남쪽을 바라보며 연기를 흘렸다. 하늘에는 뭉게구름들이 떼를 지어 흘러가고 있었고, 그 아래 구름 그림자가 드리운 풀빛 초원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참으로 한가로운 풍경이요 경치였으나, 사실 내 입장에서는 아픈 기억이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제 4지역.’
이곳은 1회 차에서 제 4지역으로 명명된 지역으로 아틀란타 탈환전이 벌어진 장소였다. 그 당시 거의 승리 직전까지 몰아붙인 찰나, 적군이 거의 자폭 격으로 마녀를 이용해 소환한 지옥 대공에 엄청난 피해를 입고 물러나야만 했다. 이후 지옥 대공이 역 소환되기 전까지는 아틀란타에 얼씬도 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조금 우울해지기는 했지만, 나는 곧 털어버리고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른 사용자들처럼 이 상황을 즐기기로 결심했다. 마녀였던 차희영은 지금 내 손아귀에 있거니와, 1회 차는 1회 차일 뿐이니까. 지금은 2회 차니까.
그래, 현재 지옥 대공이 소환될 건더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좋았어! 내가 첫 번째다!”
“무슨 소리! 내가 첫 번째야!”
그렇게 생각한 나는 돌연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아까 강강술래를 돌던 네 명이 하나같이 시냇물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시냇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는지, 번쩍 머리를 치켜든 안현이 “캬!” 탄성을 지르며 입을 쓱 닦는다.
“물 맛이 장난이 아닌데? 전신으로 청량감이 스며드는 기분이야!”
“맞아! 은근히 톡톡 쏘는 맛이 있는 게, 뭔가 몸 안에 활력이 도는 것 같아!”
이어서 고개를 들어 올린 이유정이 끄덕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이내 진수현이 내부의 변화를 느껴보겠다고 자세를 잡는 걸 보며 나는 속으로 웃었다. 고작 시냇물에 뭘 기대하는 걸까?
하기야 새로운 대륙에 들어온 만큼, 뭔가 특별한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이후 네 명은 ‘치료에 효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로 의견을 모아 안솔을 시냇물에 담그려는 시도를 했으나, 신재룡이 아픈 사람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엄한 목소리로 주의를 줌으로서 무산되고 말았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사용자들은 킥킥 웃었고, 나는 한적한 곳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바보 네 명이 자꾸만 시냇물에 특별한 효능이 있기를 강요하니 창피한 기분을 억누를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냇물도 상당히 억울하겠군.’
스스로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나는 적당한 곳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한동안 그러고 있자 지난 3년간의 기억이 하나하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드디어 아틀란타로 왔다.’
그것도 단 3년 만에. 만일 나 말고 다른 1회 차 사용자가 있다면 거짓말이라고 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해냈다. 해내고야 말았다. 1회 차 때 걸렸던 시간보다 훨씬 단축된 시간에 아틀란타로 오는데 성공했다.
말인즉, 그동안 흐릿하게만 느껴왔던 집에 돌아간다는 목표가, 이제야 눈에 잡힐 듯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
잿빛 세상.
하늘도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고, 황폐화된 대지도 재색으로 일색 된 척박한 세상. 생기는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오직 죽은 기운만이 드리운 칙칙하기 짝이 없는 세상. 모든 것이 고정된,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세상.
이 공간의 실존을 아는 존재들을 해당 세상을 가리켜 ‘무간 지옥.’ 이라 부른다.
무간 지옥(無間 地獄).
언뜻 보면 악마들이 활동하는 마계와 비슷한 부분이 있으나, 실상은 그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다. 팔열 지옥(八熱 地獄) 중 최하층의 구간으로, 한 눈에 봐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잿빛만이 눈에 들어올 뿐 그저 허무한 공허밖에 보이지 않는 죽은 공간이다.
그러나 딱 하나 눈에 띄는 게 있다면, 바로 무간 지옥 정중앙에 배치된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어탑(御榻). 사방을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이기는 했지만, 오직 어탑 하나만큼은 멀리서 봐도 보일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잿빛 세상에 보이는 거라고는 오직 우뚝 솟은 어탑 하나뿐이었으나, 그곳에서…. 정확히는 어탑 아래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은, 무간 지옥 전체를 채우고도 남음이 있었다.
철그렁, 철그렁….
그때, 잿빛 세상 어딘가에서 기분 나쁜 쇳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했다.
소음의 근원은 다름 아닌 어탑을 향해 걸어가는 해골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냥 해골이 아니다. 크기는 보통 성인 남성만 했으나, 연신 불쾌한 소음을 내는 시꺼먼 갑옷과 탐스러울 정도의 반사광을 내뿜는 검으로 미루어보면 전사 혹은 기사가 분명했다. 무엇보다 뾰족한 뿔 투구 아래 퀭한 동공에서 흘러나오는 악기는 그 해골이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해골 기사가 목적지에 다다랐다. 어탑에 도착한 후, 이어지는 해골의 행동은 굉장히 이상했다.
차마 눈도 마주칠 수 없다는 듯 동공을 내리깔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어 부복한 것이다. 그것도 머리가 땅에 땋을 정도로.
“등활 구간이 점령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흡사 쇠를 가는 듯한 거슬리는 목소리.
해골 기사가 부복하는 방향에는 어탑이 있었고, 어탑 아래는 분명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아까 무간 지옥을 채우던 존재감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해골 기사의 말을 듣지 못한 걸까? 기록이라도 읽고 있는지 그저 사락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골 기사는 미동도 보이지 않고 그대로 부복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침략자 중, 예전 초열 구간까지 들어온 놈이 포함돼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사락, 사락….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와 비슷한 힘을 지닌 존재가 추가로 3개체가 감지됐으며, 또한 이전에 섭취하신 개체와 동급의 존재도 여럿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사락, 사락….
“저번 침략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이대로 있으면 저번처럼 대규환 구간까지는 단번에 뚫릴지도 모릅니다.”
사락, 사락….
“대공이시여, 결단을. 저희 토벌대에게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탁!
그 순간이었다. 마침 기록을 모두 읽었는지 세차게 덮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르르르!
이어서 무언가를 불태워버리는 파괴적인 기운까지.
해골 기사는 곧바로 입을 다물고는 반사적으로 온몸을 움츠렸다.
그때였다.
“기다려라.”
마침내 어탑에 앉은 존재, 아니 대공이라 불린 존재에게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이한 마력이 담긴 음성이었다.
일견 듣기로 해골 기사가 보고한 침략 사실은, 대공이라는 존재에게 어떤 감흥도 주지 못하는 듯보였다. 목소리 자체는 여성 특유의 톤이 들어간 무척 아름다운 음색이었으나, 낮은 음성은 조금도 관심 없다는 듯 일말의 고저도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기다리면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한 번 더 목소리가 들려오자 한순간 뻥 뚫린 눈구멍에 안광이 번쩍였다.
해골 기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오면….”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여기까지였다. 대공의 목소리가 곤두선 순간, 해골 기사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허리를 숙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해골 기사는 몸을 돌렸고 어딘가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철그렁, 철그렁….
그렇게 쇳소리도 서서히 사라져갈 즈음.
“차원 이동진이라…. 흑염 녀석, 제법 재미있는 일을 꾸미는구나.”
한 손으로 턱을 받친 채 한참 동안 앉아 있던 대공이 돌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탑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양손을 올려 천천히 머리를 쓸어 넘겼다.
“원래는 상대할 가치도 없는 저급한 녀석이지만….”
그것은 한 폭의 그림 같은 광경이었다. 눈부실 정도로 새하얀 살결에 연한 불빛이 덧대어진 손. 그리고 섬섬옥수를 연상케 하는, 옥을 깎아지른 듯한 매끈한 손가락은 일견 보기에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풍성하게 넘어가는 머리칼은 타오르는 불꽃과도 같이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용암 폭포가 콰르르 쏟아지는 것처럼 폭발적인 마력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심심하니, 한 번 어울려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도톰한 붉은 입술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 작품 후기 ============================
띠링!
『2. ?? ??(??? ??)의 참가 예정이 확인됩니다!』
『2. 지옥 대공(지옥의 겁화)으로 확인됐습니다!』
『수성 중인 한소영이 혼란에 빠집니다!』
『공성 중인 정하연, 고연주, 남다은, 임한나, 비비앙 라 클라시더스가 혼란에 빠집니다!』
『유현아는 팝콘을 먹으며 구경합니다!』
『곧 참가 예정 인원 : 1. 김한별 2. 지옥 대공(지옥의 겁화) 3. ?? 4. 이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