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47
00646 위험한 소개팅(?). =========================================================================
김한별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러나 낯빛이나 태도와 매치가 되지 않는데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정말 별게 아니라면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말하자, 김한별은 할 말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푹 고개를 숙였다.
“3년 전 일이잖아. 이제 와서 탓하겠다는 게 아니야. 그냥 순수 호기심이라 봐도 좋아. 설마 네가 나쁜 짓을 해서 얻은 건 아니잖아?”
결국 이렇게까지 덧붙이자,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김한별이 비로소 스리슬쩍 얼굴을 보였다.
잠시 후, 서너 번 달싹달싹하던 말문이 천천히 열린다.
“…통과의례에서 얻은 거예요.”
그리고 이어진 목소리는 약간은 머리를 갸웃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통과의례? 어디서?”
“트랩 포인트에서요.”
트랩 포인트. 우리가 숲을 벗어난 다음에 머무른 장소로, 함정 도시를 일컫는 말이었다. 김한별도 이제 3년 차 사용자인 만큼 그 지점의 정체를 어디선가 들어본 모양이다.
그나저나 그곳에서 보석 마법사를 얻었다고?
“언제? 어떻게?”
“…오빠가 없을 때였어요. 제대로 된 휴식 공간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가, 우연히 붉은 보석을 발견할 수 있었죠. 그게 시크릿 클래스였고요.”
지금 이 자리가 자못 불편한 걸까. 김한별의 말투에서 얼른 이야기를 끝내고 싶어 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사실 나는 별로 큰 감흥은 없는데 말이다.
어쨌든 김한별의 말은 사실처럼 들렸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통과의례에서 레어, 시크릿 클래스를 얻는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 모든 의문이 풀린 건 아니었다. 그 당시 통과의례를 통과하고 홀 플레인으로 입장한 후, 나는 몇 번이고 김한별의 사용자 정보를 확인했다. 아마 통과의례 6주차까지는 김한별의 클래스가 일반 마법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수료식 전날 보석 마법사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렇다면 최소한 한 달 이상의 시간 동안 일반 클래스로 있었다는 말인데….
“그러면 그때 바로 시크릿 클래스를 계승한 거고?”
“아니요. 그러지 않았어요.”
완곡히 돌려 묻자 김한별은 곧바로 해답을 말해주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사용자 아카데미가 10주차를 넘어갔을 때였을 거예요.”
“그럼 그때까지 계속 가지고만 있던 거야?”
“네.”
“왜?”
이 물음에 김한별은 도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마치 올 것이 왔다는 듯이 눈을 꼭 감았다. 나는 참을성 있게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이윽고 3분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 김한별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는…. 그 누구도, 아무것도 믿지 못했으니까요.”
“응? 그 누구도, 아무것도 믿지 못했다?”
갑자기 초점이 어긋난 들려와 나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네. 말 그대로 모든 것들이요. 천사가 하는 이야기도, 통과의례에 떨어진 것도, 주변 사람들도…. 아니, 그냥 저를 제외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의심했어요.”
그 순간이었다.
잠깐 말을 멈춘 김한별이 돌연 눈을 똑바로 뜨며 나를 직시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걸까? 여기는 어디야? 이 사람들은 누구지? 저 괴물은 또 뭐야? 이 보석은 도대체 뭘까? 집에는 갈 수 있을까?”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키더니.
“그래요. 제 성격이 조금 날카롭고 의심이 많은 건 인정해요. 하지만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약해보이지 않으려고 애는 썼지만, 속으로는 불안해 미칠 것만 같았다고요.”
그동안 쌓아온 무언가를 토해내듯이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허나 그러는 와중에도 무언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는 뉘앙스가 전해졌다. 마치 변명하려는 사실을 숨기려는 듯이.
“그러니까 제발 왜냐고 묻지 말아요. 그때의 저는, 남자 친구한테 차이고 꼴사납게 울면서 돌아오는 길에 소환된…. 고작 21살의 여대생에 불과했으니까요.”
…방금 뭔가 재미있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하지만 캐묻기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그냥 머리나 끄덕여야겠군.
“그래그래. 알았어. 그러니까 결국 불안해서 그 보석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는 말이지?”
말 그대로였다. 김한별은 그 당시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걸 믿지 않았다고 했다. 말인즉, 아마 스스로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보석의 사용을 보류했을 것이다.
“…비슷해요.”
김한별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거의 데카르트를 방불케 할 의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면 나름 이해는 간다. 김한별은 안현, 안솔, 이유정 이 3명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오두막에서나 사용자 아카데미에서나 참 어지간히도 의심했었지. 김한별 성격이 그랬어. 이 의심쟁이 같으니라고.
이윽고 그간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흘려낸 김한별이 자포자기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된 거예요. 아무튼 저는 다 말했으니까 욕이든 비난이든, 마음대로 하세요.”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어? 뭐라고?”
“…네?”
“아니, 내가 왜 너를 욕하고 비난해?”
“……?”
그러자 김한별은 도리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왜라니…. 화 안 나세요?”
“그러니까 내가 왜 너한테 화를 내야 하는데.”
“그, 그거야…. 어쨌든 저는 그 사실을 숨긴 입장이고…. 또 어떻게 보면 오빠를 배신….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더듬더듬 말끝을 흐리는 김한별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나 참, 뭔 생각을 하는 가 했더니. 설마 아직도 그 일에 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었던 건가?
“애초 네가 발견한 거잖아. 그리고 그때 우리는 단순한 협력 관계에 불과했고. 소유권이 너한테 있는 이상 숨기든 말든 네 마음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저,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사실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조금 찔리기는 했다. 수료식 전날, 김한별이 보석 마법사인 걸 보고 일말의 배신감을 느끼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고방식에 변화가 생겼고, 방금 김한별의 해명을 들으며 나름 이해를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현 상황에서 ‘그래! 너는 못된 배신자야!’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잖은가.
나는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김한별은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래도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은 있는지, 흡사 악단 지휘자처럼 이리저리 손을 젓더니 결국에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우리 이만 다른 이야기하면 안 돼요?”
“안 될 거야 없지.”
어차피 궁금한 건 해결했다. 그리고 시무룩해하는 김한별의 모습을 보고 있자 꼭 내가 괴롭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화제를 돌리는 게 나을 듯싶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또 하나 궁금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Amor Nuntios : 이것은 사용자 김한별이 사용자 김수현만을 오롯이 생각해 말한 염원의 효과입니다.’
“아, 맞다.”
갑작스레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에 나는 가볍게 손뼉을 쳤다. 예전 이브의 혈통 조건이 갱신될 때 나온 메시지인데, 당시 ‘Amor Nuntios’ 라는 단어를 몰라 궁금해 하던 기억이 있었다.
흘끗 시선을 돌리자 조금은 불안해 보이는 김한별이 보였다.
“왜 그렇게 좌불안석이야?”
“이번에는 또 어떤 질문을 하실까 불안해서요.”
“…저번에 가네샤 때 사건 기억해?”
“네.”
다행히 정상적인(?) 질문이라고 느낀 걸까? 김한별은 한결 풀어진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혹시 Amor Nuntios,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그러나 말을 꺼낸 순간 김한별의 얼굴은 또다시 급변했다. 온몸을 이용해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이고는, 이내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때 갱신된 정보 중에서 그런 단어가 있었거든.”
뭔가 또 잘못한 기분이 들어 얼른 말을 덧붙였지만, 김한별은 어이없다는 눈초리로 나를 응시했다.
“오빠. 그냥 솔직히 말해주세요.”
“응? 뭘?”
“아까도 그러셨고, 지금도 저 곤란하게 하려고 놀리시는 거 맞죠?”
“아니?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거, 거짓말!”
“야! 갑자기 왜 소리를….”
삐이이이이익!
그렇게 김한별의 앙탈에 맞받아치려는 찰나, 갑작스레 어디선가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펑, 펑!
이어서 무언가 두어 번 폭발하는 소음까지. 반사적으로 시선을 올리자,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는 새하얀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위급 상황을 알리는 신호.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김한별. 지금 당장 클랜원들 깨워.”
“네, 네!”
마침 김한별도 몸을 일으켰는지 바로 달려가는 기척이 전해졌다. 그리고 나는 허공에 떠오른 신호를 보며 거리와 방향을 가늠한 후, 최대한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
어느새 동이 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선선한 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전 원정대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밝고 쾌활하던 사용자들은 오늘 아침 곳곳에 모여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혀 좋지 못한 낯빛으로.
잠시 주변 분위기를 살피다가 나는 조용히 앞쪽을 응시했다.
“씨발, 어떡할 거야! 네놈 클랜원 하나 때문에 지금 전부 좆 되게 생겼다고!”
“그, 그게…. 일단 주변을 수색하고는 있는데….”
“개소리 집어치워! 수색한지 벌써 30분이나 지났다며!”
“윽…!”
전방에는 시뻘게진 얼굴로 고함치는 공찬호와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 머리를 푹 숙이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 감히, 감히 도망을 쳐?”
“사, 사용자 공찬호. 아직 아무것도 확인된 건 없습니다. 우선 진정을….”
공찬호는 진정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흘끗 시선을 돌리자 옆에 담담한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형이 보였다. 또한 무표정한 인상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한소영도.
애써 평정을 가장하고는 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가라앉은 상태였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흘렸다.
오늘 새벽, 신호탄이 터진 지점으로 달려간 나는 의외의 상황을 보고받고 말았다. 다름 아닌 탈영을 확인했다는 보고였다.
탈영병의 사용자 정보는 서북, 아니 정확히는 북부 소속 사용자 이정필. 올해 7년 차 사용자로 주변에서 꽤나 실력을 인정받는 궁수였던 모양이다. 특이 사항은 거인들의 터전에서 갑자기 기절했다가, 진군 하루 전 회복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전무.
사건 경위는 대강 이렇다. 경계 교대를 하려고 찾아간 사용자가 이정필이 자리에 없는 걸 확인, 처음에는 볼 일을 보러 간 줄 알고 10분 가량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 기다려도 모습이 보이지 않아 찾아 돌아다녔으나, 어디에서도 이정필을 발견할 수 없었다…. 고는 하는데.
사실 아직 강철 산맥 안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커질 일은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탈영은 즉시 처형이 당연하지만, ‘목숨이 아까워서 도망갔구나.’ 라고 암암리에 이해라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철 산맥을 벗어난 이상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안 그대로 업적이나 보상에 예민한 사용자들인데, 탈영 사건이 발생한 이후 별의별 추측이 나오는 중이었다.
개인의 능력으로 도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아니면 독식하려는 욕심에 무모한 결정을 내렸는지. 이정필이 어떤 의도를 갖고 탈영했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사용자 대다수가 아틀란타의 사정을 모르는 만큼, 그래도 한 번 지켜보자 라는 설이 지배적이기는 했다. 허나 도시가 목전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까지는, 아주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이정필이 독식을 목적으로 한 탈영이 아닌, 정찰 등의 ‘순수한’ 개인 목적으로 이탈해 도시를 발견했을 때는 누구나 똑같이 업적을 받을 수 있다. 그런 경우는 설정이 이정필을 원정대 소속으로 판단하니까.
허나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결국 지금으로서는 이정필이 방향을 잘못 잡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이거 이거, 분위기가 상당히 심각하군요?”
그때였다.
한창 상념에 잠겨 있던 와중 별안간 천연덕스러운 목소리가 귓전으로 흘러들었다.
천천히 등을 돌리자 한껏 여유로운 태도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사내의 모습이 눈에 잡혔다.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은 채 다가오는 사내는, 동부 총 사령관 조성호였다.
============================ 작품 후기 ============================
『Q & A』
Q 1.
Reader : 도대체 지옥 대공은 언제 인간 세상에 출현하나요?
로유진 : 다음 회에 출현합니다.
Q 2.
Reader : 거짓말. 또 분량 조절 실패했다고 할 거잖아요.
로유진 : 이정필은 예전에 뿌려놓은 복선이니 제외하고, 오늘 김한별과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지옥 대공 파트 마지막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무대는 준비됐습니다. 다음 회에 나오지 않으면 완결 전까지 무조건 하루 2연참씩 하도록 하죠. 후훗.
Q 3.
Reader : 그런데 너 오늘따라 묘하게 말투가 건방지네. 야, 그럼 스탯 포인트 1은 언제 얻냐?
로유진 :하, 강철 산맥을 벗어나고, 도시로서의 아틀란타를 발견하면 얻을 수 있는데?
Q 4.
Reader : 어디서 반말질이야. 죽고 싶냐? 로리 전쟁 한 번 더 할래?
로유진 : 죄, 죄송해요. 잠깐 컨셉 좀 잡느라요. ㅜ.ㅠ
Q 5.
Reader : 후. 좋아. 한 번 봐준다. 그나저나 왜 저번에 먹은 잠재성 높여주는 영약은 효과를 보지 못했지?
로유진 : …김수현은 원래 안 먹으려고 했습니다. 다만 마르가 억지로 먹이고 화정의 설득으로 먹었을 뿐이지요. 그 부분에 관한 설정을 다시 읽어보시면 이해가 가시리라 생각해요.
Q 6.
Reader : 그럼 업적 설정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로유진 : 아, 간단해요. 기본적으로 분배 원칙을 따른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번에 강철 산맥을 벗어나고 개인당 100,000 GP를 얻었지요? 그때 벗어난 인원을 15,000명으로 가정해보겠습니다. 만일 김수현 혼자서 강철 산맥을 돌파하고 벗어났을 경우, 1,500,000,000 GP를 얻었을 거라는 뜻이지요. 🙂
Q 6.
Reader : 오빠,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왕이 뭐게~?
로유진 : 최저임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