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51
00650 마성(魔性) Vs 겁화(劫火). =========================================================================
힘껏 뻗어낸 주먹이 정확히 꽂힌 순간, 비스듬히 기울어진 지옥 대공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이내 풀썩 나동그라진 지옥 대공은 예상외로 바로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냥 상반신만 일으킨 인어 자세를 잡더니 맞은 부분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갖다 대었다.
“근래 수천 년간은…. 한 번도 맞아 본적이 없는데….”
그리고 멍한 낯빛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기까지.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지옥 대공이 이루어낸 태양을 사라지게 하는 데는 성공했으니까.
잠시 후, 지옥 대공은 차분히 몸을 일으켰다. 표정이나 태도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깊고 그윽한 눈동자는 나를 하나하나 살피고 있었다.
이윽고 지옥 대공의 시선이 아직 불타오르는 내 오른손에 닿았을 때였다.
“…아!”
갑자기 지옥 대공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자 아리송해 하던 기색이 확신으로 변하더니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화사하게 미소 짓는다. 흡사 꽃봉오리가 활짝 개화하는 듯한 아름답기 그지없는 미소였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대가….”
지옥 대공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대가…!”
지옥 대공이 더욱 높아진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양손을 맞잡아 가슴에 대었다.
“이제야, 이제야 찾았어!”
지옥 대공이 희열에 찬 목소리로 고함쳤다. 기쁨과 환희가 섞인 애틋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 시선을 노려보는 것으로 받아 쳤으나, 지옥 대공은 조금도 상관없다는 듯 반색하는 낯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지옥 대공의 혼잣말을 계속해서 이어졌다.
“정말, 정말 믿을 수가 없구나…. 이제껏 그토록 찾아 헤매도 보이지 않던 것이…. 어이하여 지금…. 이게 운명이라는, 아니. 그놈들한테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 하하하!”
이제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게 무척이나 흥분한 상태처럼 보인다.
“그래, 이제 좀 알겠구나. 너는 나와 동격의 힘을 지닌, 태고의 불을 지닌 존재였어. 그래서 너한테 그런 감정들을 느꼈던 거야.”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왼쪽 가슴 아래를 지그시 눌렀다. 어쩌면 지옥 대공이 화정을 노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화정이 왜 갑자기 자신을 숨겼을까.
스릉.
나는 천천히 무검을 뽑아 상단으로 세워 올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기는 했으나 어느 것도 변하지 않았다. 현실을 체감하니 오히려 암담한 상황이 더욱 크게 와 닿을 뿐.
사용자들은 여전히 지옥 대공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좀 힘을 느꼈는지 아까보다는 크게 물러난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마침 나도 벗어났겠다, 사방에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는걸 보니 집중 사격을 준비하는 것 같은데…. 나쁜 선택은 아니지만, 상대가 지옥 대공이라는 게 문제였다.
적은 오직 1명에 불과하고 아군은 1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 적이 마음만 먹으면 나조차도 1초 만에 격파할 수 있는데, 과연 그 누가 지옥 대공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수가 많다고는 하나, 지금 상황에서는 날개를 기름에 적시고 불덩이로 날아가는 불나방이나 다름없다.
지옥 대공은, 그런 존재였다.
“흠? 그건 절멸자의 검?”
그때 마치 나를 품평이라도 하듯이 하나하나 뜯어보던 지옥 대공의 눈동자가 이채를 발했다.
“그건 정령 차원에 존재하는 혼돈 왕의 검일 텐데…. 꽤나 재미있는걸 가지고 다니는구나.”
지옥 대공은 친근하게 말을 건네왔으나 나는 칼자루를 세게 움켰다. 행동 하나하나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엄습한다. 보고 있는 것만해도 눈알이 터질 것 같고,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러니 지금은 무조건 전투에만 집중해야 한다. 애초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도 덤비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고 또 살리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이윽고 지옥 대공이 다른 사용자들은 일절 신경 쓰지 않는 태도로, 오롯이 나만 바라보며 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다.
핑!
돌연 건너편의 궁수가 지옥 대공을 겨냥한 화살을 쏘았다. 아무런 전조도 없는 공격.
“수현! 물러나요!”
그러나 나를 제외하고 이미 얘기가 돼 있던 걸까?
궁수의 화살을 시작으로 갑작스레 무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 주문을 외웠는지 주변으로 수 겹의 보호막이 겹겹이 쳐졌다.
시선을 올리자 하늘을 빽빽이 가릴 정도의 마력 구체와 화살 비가 눈에 들어온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마법들과 마력을 품은 빛나는 화살들이, 오직 지옥 대공 하나만을 목표로 빗발치듯이 낙하한다.
그러나 지옥 대공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쯧.”
아니. 당황하기는커녕 혀를 한 번 차고는 잠깐 걸음을 멈춘 게 전부였다. 아직도 시선을 나한테 고정한 채 사방으로 짓쳐 들어오는 마법과 화살의 소나기를 향해 양손을 내뻗는다.
이어지는 광경은, ‘역시나.’ 라고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로 입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지옥 대공은 손을 한 번 내젓는 우아한 손놀림을 보였을 뿐이었다.
그냥 그랬을 뿐인데, 지척까지 다가갔던 모든 공격들이 갑작스레 변화를 보였다. 사용자들이 지정한 목표를 타격하는걸 멈추고, 지옥 대공이 손을 저은 방향을 따라 그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터라, 미처 어색함을 느끼지도 못했다.
회전(回轉).
그래, 말 그대로 대 회전이었다.
마치 춤을 추듯이 빙글빙글 돌아가던 회전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가속이 붙어 하나의 소용돌이를 형성했다. 사방을 몰아치는 여파로 다시 한 번 지면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으나, 정작 폭풍의 눈에 서 있는 지옥 대공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소용돌이를 흘끗 흘기고는 좌우로 힘차게 손을 뻗는다.
그 다음 순간, 무지막지한 압력이 폭발하며 소용돌이를 이루던 파편들이 총알같이 도처로 뻗어나갔다.
콰콰콰콰콰콰콰콰!
폭풍에 삼켜진 핏빛 황무지가 끓어오른다. 해방된 소용돌이는 한층 가속된 속도로 모조리 되돌아가, 땅에 깊숙한 크레이터를 남긴 채 사용자들의 비명을 이끌어냈다.
“…….”
거의 절규에 가까운 소리들을 듣고 있으면서도, 나는 차마 더 이상 둘러볼 생각을 못했다. 왜냐하면 지옥 대공은 오직 내가 있는 방향으로만 힘을 보내지 않았으니까.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조용해지겠군.”
비명이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와중, 고고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지옥 대공이 도로 나를 응시하며 옅은 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이 마치 ‘내가 너를 보고 있으니, 너도 나를 바라보거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어디 한 번….”
이윽고 지옥 대공이 재차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거리가 줄어들 때마다 인지하고 있던 절망도 커져만 갔다.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헤어나올 수 없는 깊숙한 수렁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싸우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모로 봐도 공격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런 존재를 상대로 어떻게 공격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화정만 믿고 싸움을 거는 게 가장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건 알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법밖에 생각나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사실 이대로 걸음을 물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억지로 참았다. 여기서 물러나 버리면, 차라리 도망가지 않느니만 못한 상황이 돼버리니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침착히 자세를 잡고서 회로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내 무검에 맑은 불꽃이 타오르며 백열(白熱)된 검신이 세상에 드러난다.
내 투지를 읽은 걸까?
그러자 지옥 대공의 표정에 아주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입에 걸린 연한 미소가 아찔하리만치 진해지고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휜다. 어디 한 번 네 마음대로 해보라는 듯이.
무언가 특별하기를 바라는 눈초리와 마주하자 왠지 모르게 시험 당한다는 기분이 들었으나, 지금의 나로서는 어떻게든 응할 수밖에 없다.
상대는 나보다 강하다. 어설픈 잔재주는 통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결국 아랫입술을 깨물며 땅을 박찬 순간.
“……!”
나는, 크게 놀라고야 말았다. 마치 내 행동을 알고 있었다는 듯 지옥 대공이 나와 똑같이 사뿐히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놀란 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지옥 대공의 움직임이었다. 아차 한 순간에 내가 뿌린 모든 감지와 경계를 뚫고 정면으로 접근해오는데, 절로 ‘억.’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오죽하면 움직임으로 일어난 바람결이 한 박자 늦게 스쳐왔을 정도였다.
아주 짧은 순간,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러면서 검을 비스듬히 기울여 빗겨 치려는 찰나, 느닷없이 시야로 시뻘건 빛이 번쩍였다. 내가 읽지 못한 무언가가 지옥 대공에게서 솟구쳤다.
그리고.
콰앙!
미처 대응할 틈도 없는, 한순간 무검이 구부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신음을 참으며 반사적으로 충격을 몸 전체로 퍼트렸으나, 나는 곧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마력 회로가 들끓는다. 최대한 완화하려고 분산시켰는데도, 분산된 충격에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내오는 것이다.
“버텨냈느냐~?”
그러자 기특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신경 쓸 여력은 조금도 없었다. 첫 공세를 교환하자 정신이 망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차이가 클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체감해보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아무튼 우선은 내부를 가다듬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나는 궁신탄영으로 거리를 벌리며 지면에 착지했다. 삽시간에 멀어지는 지옥 대공이 오른손을 빙글빙글 돌리는걸 보고 있자 아까 시뻘건 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 조심!
지금껏 침묵을 지키던 화정이 느닷없이 경고를 외쳤고.
꽝!
아까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폭음이 고막을 왕왕 울렸다. 화정의 경고를 듣자마자 이형환위를 사용한 탓에, 몸은 어느새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래를 쳐다보자, 1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이글이글 일렁이는 시뻘건 용암이 보였다.
방금 공격은 어떤 전조도 느낄 수 없었다. 아마 화정이 경고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예전 파더와의 전투 때 경험을 살렸기에 곧바로 반응할 수 있었다.
“호, 이걸 피해내?”
고개를 젖힌 채 나를 바라보는 지옥 대공의 표정에는 의외라는 기색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빨리 끝내고 싶어 다소나마 진심을 담아 공격했는데…. 회피 감지는 네가 그 여아보다 낫구나. 하하하!”
지옥 대공은 곧 정말 즐겁다는 얼굴로 웃어 젖혔다.
“아, 그나저나 방금 능력은 어떻게 한 것이냐?”
그 순간이었다.
“…이렇게 한 건가?”
무어라 입을 열 틈도 없이 귓가로 감미로운 목소리가 속닥속닥 흘러들었다.
거의 동시에, 지면에서 고개를 젖힌 채 웃고 있던 지옥 대공의 신체가 사르르 사그라진다. 잔영이 사그라지는 현상. 말인즉, 지옥 대공이 똑같이 이형환위를 사용했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내가 사용한걸 딱 한 번 보고서 완벽하게 구사한 것이다.
목소리는 바로 왼쪽에서 들려왔다. 멍하니 시선을 돌리자, 처음 공중에서 내려왔을 때처럼 허공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지옥 대공이 보였다. 그때와 하나 다른 게 있다면, 턱을 괴고 있던 손이 어느덧 내 이마에 닿아 있다는 것.
눈동자를 올리니 엄지가 반쯤 구부린 중지를 누르고 있는 모양새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딱밤이라도 때리려는 듯이.
그리고 잠시 후.
“그 표정은 심히 마음에 드는구나. 마음 같아서는, 질릴 때까지 핥고 싶을 정도야.”
지옥 대공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중지를 튕겼다.
딱!
이마에 둔중한 충격이 가해지고, 머리가 강제적으로 젖혀졌다. 이어서 몸이 기우뚱 기울어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아.”
그대로 몸이 떨어진다.
하강하면서 볼 수 있었던 건,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어깨를 떠는, 배시시 미소 짓는 지옥 대공의 얼굴이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어제 코멘트가 폭발했네요.
괜찮습니다. 저는 정신이 멀쩡해요. 정말이냐고요? 네. 저는 어제 후기를 지우지 않았어요. 그게 명백한 방증이지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저는 여러분들의 코멘트를 모두 여성으로 가정하고, 제 멋대로 입맛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말이죠.
1. 로유진이 남자라는 입장에서, 독자 분을 섹시하고 포근한 누나라고 생각하기로 한 경우.
Ex ) 플룻 로유미씨 또 바보같오…왠지 즐기는거같어…….음…. 또 댓글판이 난리났따… 귀엽다고.. (2014.08.16 09:03)
Sol ) 아이 우리 유진이. 또 장난치는구나? 정말, 너무 장난꾸러기라니까? 하지만 정말 귀여워~. 이리와. 누나가 한 번 꼭 안아보자~.
2. 로유진이 남자라는 입장에서, 겉은 새침하지만 속은 상냥한 동갑 여성으로 생각하기로 한 경우.
Ex ) aria2301 어머 이 언늬 겁도없이 독자들에게 선포하는거???? (2014.08.16 07:57)
Sol ) 야 이 멍청이야! 누가 네 멋대로 또 선포하는 거야? 겁을 상실했어? 거, 걱정되잖아! 흐, 흥!(피…. 바보….)
3. 로유진이 남자라는 입장에서, 사랑스러운 여동생이라도 생각하기로 한 경우.
Ex ) GLaDOSbird ♡ (2014.08.16 06:38)
Sol ) 유진이 오빠아…. 요즘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아서 걱정이 들어요오…. ㅜ.ㅠ 하지만 좋아해요오. 부디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오!
예.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하하. 기분 좋네요.
이거 그린 라이트 맞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