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6
00066 Mage and Alchemist(Rare)(2) =========================================================================
안현은 잔뜩 경계하는 얼굴로 거미를 노려보는중 이었다. 안솔은 말 없이 지팡이를 들었고 유정은 단검을 꼬나쥔채 스산한 살기를 뿌리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당장에라도 뛰어 나갈듯한 얼굴들 이었다.
그에 반해 인면 거미, 아니 비비앙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동생의 투정을 보듯 무른 미소를 흘리던 그녀는 이내 키득키득 웃으며 다시금 활기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론 말을 거는 대상은 바로 나였다.
“웃어? 웃는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인간 수컷아?”
“네 관점에서 본다면 일리는 있다고 봐. 거미 암컷.”
“요호호호! 거미 암컷 이라니. 깔깔깔. 농담 터지는구나 정말. 역시 너는 뭔가 달라 보여. 좋아! 오랜만에 선심좀 쓴다. 너는 죽이지 않고…음…생포로 결정!”
비비앙은 정말로 단단히 인심좀 쓴다는 얼굴 이었다. 앞에 있는 두 다리를 들어 팔짱(?)을 끼고 음음 고개를 주억이는데 보면 볼수록 웃겼다. 애들은 웃기지는 않지만 기가 막혔는지 헛바람을 흘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쨌든 내 기준에서 보면 상당히 유쾌한 괴물이었다. 나 또한 연한 미소를 머금은 후 살짝 장난기가 가미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궁금한게 있는데. 이왕 선심 쓴 김에 조금 더 쓸 생각 없어?”
내 말의 의도를 알아 차렸는지 비비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있어. 뭔데뭔데? 다른 애들도 살려 달라고?”
“그거 말고. 이곳으로 오면서 사용자 시체 두구를 봤는데…그 두명 전부 다 네가 죽인거니?”
내 물음에 거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내가 했지. 그런데 왜?”
“그래도 명색이 연금술사인데. 실험에 인간의 신체를 쓸 일도 있지 않아? 그렇게 버려두고 방치해둔게 이해가 안되서. 안그래 비비앙?”
“에~이. 그렇게 갈기갈기 찢어 놓은걸…오잉? 근데 내가 연금술사 비비앙인건 어떻게 알았어?”
비비앙의 반응을 본 후 나는 슬며시 나오려는 미소를 억지로 참으며 태연한 표정을 연기했다. 제법 상쾌하고 어느정도 지성을 갖추긴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예전 연금술사 시절 보였을지도 모르는 고등한 사고력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것 같았다. 일단 원하던 반응을 확인한 이상 거리낄건 없었다.
비비앙은 환한 얼굴로 폴짝폴짝 뛰어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있다는데 기쁨을 표시했다.(여담이지만 한번 뛸 때마다 땅이 들썩여 던전이 무너지는게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순전히 내 추측일지 몰라도 비비앙은 아마 더 살고 싶다는 욕심에 신체 개조 아니면 의도성이 다분한 감염 분야에 손을 댔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리치가 될 정도로 수준이 높지 못한 마법사 또는 연금술사들의 비참한 말로로 볼 수 있었다. 본인이 만족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보기 드문 유형이었다.
“처음 다른 인간 수, 암컷들이 들어오긴 했어. 하등한 놈들 주제에 그래도 한가락 하는 애들이 몇명 보이더라구. 덕분에 쓸모 있는 부하들을 잔뜩 잃었지. 너희들. 고블린들이 있는 공터를 통과했지? 원래 걔네들이 쓰던 공터가 아닌데. 원래 있던 놈들이 전멸하는 바람에 급하게 채울 수 밖에 없었지…에잇! 열받아!”
정말 화가 나는듯 볼을 부욱 부풀린 비비앙. 그녀는 이내 턱주가리에서 독액을 왈칵 쏟아내 자신의 분노를 증명하더니 이내 숨을 고르며 높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그걸 보고만 있어? 이대로 두면 안되겠다 싶어 바로 나섰지. 그런데 가관이더라. 딱 모습을 드러내고. 진짜 조금만 힘을 썼는데 한명이 바로 도망을 치는거 있지? 그 활을 들고 있던 놈! 다른 인간들은 버려두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치는데 보는 내가 다 열받더라. 나참. 뭐. 그래도 덕분에 나머지 놈들도 전의를 상실하긴 했지만.”
“그래서?”
“솔직히 그놈 먼저 죽이고 싶었지만 다른 인간들이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어. 특히 그 남자 사제. 마음에 들긴 했는데 자꾸 신을 들먹이면서 거슬리게 하길래 먼저 죽여줬지. 다른 애들을 챙기면서 도망가는데 뒤로 따라가 다리 하나 꽂은후 허리를 반으로 댕강 잘랐어. 음.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냥 그렇게 하고 바로 처음 도망친 수컷을 쫓았거든. 그래서 확인을 못했네. 걔 죽었지?”
비비앙은 이 모든 말을 아주 빠르게 얘기했다. 어지간히 얘기하는걸 좋아하는 성격인듯 싶었다. 애들은 내가 비비앙과 스스럼없이 대화하자 다들 벙찐 얼굴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안현이 갑자기 앗차한 얼굴로 진중한 얼굴을 짓더니 이내 애들을 향해 눈짓을 하는걸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대화로 시간을 끄는 동안 최대한 체력을 회복하라는 뜻으로 오해한것 같았다. 난 그저 정말 궁금해서 물은건데….
그래도 이런 오해는 하등 나쁠게 없기에 간단히 수긍한 후 비비앙의 물음에 답했다.
“응. 죽었어. 그럼 그 궁수 사용자도 결국 너한테 당한건가?”
“히히. 오랜만에 대화하니까 너무 즐겁다. 응응! 있잖아있잖아. 솔직히 그런놈들은 내가 봐도 썩 별로거든. 그래서 끝까지 쫓아갔지. 아주 목을 비틀고 뽑는데 비명을 꽥꽥 지르더라. 나 잘했지? 우히히히.”
비비앙은 진심으로 즐겁다는 얼굴 이었다. 그녀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듯 눈을 감고 음미하는 표정을 내보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안현은 차분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얘는 솔이 얘기만 나오면 답이 없는데 이럴때 보면 정말로 싹수가 보이는 놈 이었다. 밀고 당기고 마음에 들었다가, 안들었다가.
이윽고 눈을 반짝 뜬 비비앙은 신난다는 얼굴로 다리를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얘! 얘도 물어봐줘! 나 지금 이상하게 너랑 대화하는게 너무 즐거워~히히.”
“…그래. 천장에 매달린 여성 사용자는 어쩌다 저 꼴이 된거니.”
내가 자상한 목소리로 묻자 거미는 몸을 배배 꼰 후 발그레 볼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뒤에서 “저 썅년이….”이라는, 유정이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유정아. 지금 괴물을 상대로 질투하는 거니?
“꺄응. 위에 매달린 암컷은…그래. 처음 봤을때부터 되게 마음에 안들더라. 오연한 눈깔로 나를 내려다보듯 깔아보는데 정말 짜증났어. 결국 저렇게 될거면서 뭘 그렇게 거만을 떨어? 마음에 안들어안들어.”
“아무리 마음에 안들어도…저건 좀 심하다.”
친구와 담화를 하듯 말을 건네자 비비앙은 픽 웃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또다시 회상 모드로 들어간것 같았다. 이미 해치울 기회는 수십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말을 꽤 맛깔나게 해 듣는 재미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딱히 공격하지는 않았다. 물론 나 또한 계속 얘기를 듣는 와중 딴 생각이 슬슬 나고 있어 조만간 처리할 생각이었다.
“히히. 너도 같이 봤으면 재밌었을걸? 처음에는 꽁꽁 묶이고도 나를 날카롭게 노려보는데. 정말 부숴뜨리고 싶더라. 그래서 팍팍 돌렸지. 렌가도 받고~고블린도 받고~맨 처음 도망친 인간으로 변한 라믹도 받고~그리고 거미들의 씨받이 역할을 마지막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처음에 그렇게 당당하던 년이 혐오하는 괴물들한테 순결을 빼앗기는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해. 울부짖으면서 발악하던 그 모습…. 그 오연하고 담담하던 얼굴이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면서 용서해달라고 싹싹 비는데 어찌나 우습던지. 결국 임신하고 알을 낳으면서 이지를 상실해 버리더라. 히히히힛! 멍청한 년. 그러길래 처음부터 그랬으면 좋았잖아. 그러면 다른 수컷과 암컷처럼 일단 살려두기는 했을텐데 말이지.”
“…그럼 아직 살아있는 사용자는 있다는 소리군.”
“웅. 고치로 똘똘 말아서 잘 모셔놨지. 뭐 당분간은 살아 있을걸. 그런데 어디에 쓸지 걱정이 들어. 애들 양분으로 줄까…아니면 키메라로 만들까. 흐음. 후자가 더 땡기기는 하는데.”
어느새 애들의 호흡은 상당히 안정 되어 있었다. 나는 슬슬 대화를 마무리 해야겠다는 생각에 슬쩍 내렸던 검을 들었다. 검을 겨누는 나를 보며 비비앙은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에…싸우려고? 피차 귀찮은 일은 하지 말자~응? 너는 나쁘게 하지 않을게.”
“귀찮긴 한데. 그래도 널 쓰러뜨러야 할것 같거든. 우리 애들이 너를 그닥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것도 같고.”
“흥. 칫. 뭐 좋아. 굳이 벌주를 마신다는데. 그래도 나는 네가 마음에 드니까 죽이지는 않는다. 그리고…에라. 또 인심 썼다. 옆에 귀여운 숫컷도 살려준다.”
안현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그러나 나와 현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할수록 유정과 솔의 분노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굵은 땀방울을 조금 흘린후 나는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나머지 둘은?”
“으음…. 솔직히 모체는 사제년이 더 적합해보여. 마나가 풍부해 보이거든. 그런데 이래저래 너무 연할거 같아서. 그런애들은 모체로 만들기 전에 자살하는 경우도 왕왕 있거든. 그러니 옆에 기가 세 보이는 년으로 할게.”
“미친년.”
“응. 나 미친년 맞아.”
“좃 까는 소리 하네.”
“나 좃 없는데?”
“!@#$%^&*&^%$#@!”
비비앙의 유들한 대답에 유정은 뭔가 모를 언어를 구사하며 고함을 질렀다. 연신 쏟아지는 유정의 욕설을 빙글빙글 웃으며 듣던 비비앙은 이내 진심어린 얼굴로 순식간에 바꾸며 살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얘기를 할때마다 분위기가 확확 바뀌는 거미를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거미는 아니었다.
한창 걸진 말을 내뱉던 유정은 확연히 느낄 정도로 비비앙의 기도가 달라지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 사뭇 진지한 모습을 보이는 애들을 보며 나도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전적으로 애들한테 맡기기에는 조금 많이 무리인 감이 있다. 이번에는 실력을 드러내보이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나설 생각 이었다. 그렇게 마음 먹고 막 한걸음을 내딛는 순간. 묵묵히 우리들을 탐색하던 거미의 아래턱이 크게 열리며 폭포수 같은 실이 왕창 흘러나오는걸 볼 수 있었다.
“이왕 잡기로 한거 상처 입히고 잡으면 아까우니까. 한꺼번에 잡아줄게. 히히히히!”
거미의 웃음 소리와 함께 아랫입에서 번들거리는 은빛의 실들이 뿜어져 나온다. 지금껏 상대한 거미들이 뿜어낸 거미줄과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굵고, 엄청난 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바닥을 향해 쏟아진 실들은 이내 쫙 펴진 우산처럼 흐트러지더니 곧이어 우리들을 향해 화살처럼 휘어져 들어왔다.
너무나 빠른 속도에 나도 순간 앗차한 감은 있었다. 내가 그렇게 느낄 정도로 거미의 실은 창졸간에 우리들의 몸에 닿았다. 이윽고 진득한 실들이 우리의 몸을 휘감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만 있었다. 순간 하나의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지금 이 상황에 생명의 위협이 없다면 일단 이대로 자신의 비밀 기지로 데려간 후 다시 나오는게 좋을것 같았다.
“깜짝 놀랐지? 히히힛.”
나는 그다지 저항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애들은 필사적 이었다. 마음을 놓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내가 반응하지 못할 속도였다. 안현은 뒤늦게 창을 이리저리 휘드르며 실들을 걷어내고 있었지만 헛수고였다. 굵기과 점성도 문제였지만 워낙 양이 많아 중과부적 이었다. 안현이 그러할진대 유정과 솔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들이 용을 쓰자 비비앙은 발랄한 웃음을 터뜨린 후 약올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히히. 헛수고일걸. 내 실이 그런 병장기에 끊어질 만큼 약하게 만든건 아니거든. 연실을 얕보지 말라구. 그냥 담담히 받아들여. 맨 앞의 수컷처럼. 눈도, 입도, 귀도 막히긴 하지만 적어도 코는 막히지 않을거야.”
…응?
“야. 잠깐만. 코 빼고 다 막힌다고?”
“어? 어, 응.”
내가 반색하는 얼굴로 입을 열자 비비앙은 눈을 휘둥그래 뜨더니 말을 더듬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주억이는걸 확인한 후 나는 슬쩍 고개를 뒤로 돌렸다. 실이 몸을 감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애들은 마치 번데기 고치처럼 이미 온 몸에 실을 치장(?)하고 있었다.
고개를 아래로 숙이자 내 몸에도 또한 빠르게 감아오는 실이 보였다. 오감이 차단된다. 그말인즉슨 고치안에 있는 애들은 내가 무슨짓을 하든 보고 들을 수 없다는 소리였다. 문득 비밀이 보장된다면 굳이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정한 나는 바로 몸 안에 잠들어 있는 화정을 일깨웠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 입니다.
상은 무사히 치르고 왔습니다.
사람이 한 줌 재로 변해 유골함에 담겼습니다.
뜨거운 유골함을 들고 걸어가는동안 정말 수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위로 코멘트를 달아주신 독자분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코멘트를이 정말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오늘 10시에 집에 들어왔습니다.
평소대로라면 절대 2시간만에 글을 칠 수 없지만 전에 작업했던 양이 조금 있었고 궁지(?)에 몰리다보니 어떻게든 용량은 나오더군요. 2월 2일~2월 3일만 휴재하겠다고 공지했으니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본 회 글의 질이나 양이 마음에 안드시는 분도 있겠지만 오늘 하루 사정을 이해해주세요.
연금술사의 던전도 거의 끝을 보이고 있네요. 아마 3, 4회 안으로 마무리 하고 뮬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지루하신분들은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세요. 앞으로 더욱 재밌고 알찬 내용으로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일부터는 리리플도 재개될 예정입니다.
독자분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