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61
00660 1. 김칫국과 설레발의 차이점. =========================================================================
지옥 대공의 혀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입을 핥던 촉촉한 감촉은 곧 뺨으로 옮겨졌고, 또다시 코를 거쳐 눈에 닿았다.
이윽고 지옥 대공이 부드러운 손길이 내 앞머리를 젖히고 이마마저 핥을 즈음.
‘허?’
나는 그제야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왠지 꿈에서 빗방울이 자꾸 입으로만 떨어진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지옥 대공이 나를 핥고 있어서 촉촉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잖아.’
시선을 올리자 여전히 나를 맛(?)보고 있는 묘령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지옥 대공은 혀만 살짝 베어 문 채 아주 조신하게도 혀를 움직인다. 마치 어미 사자가 새끼 사자를 핥아주듯이 말이다. 그러니까….
“자, 잠깐만!”
버럭 소리를 지르자 쉬지 않고 움직이던 붉은 혀가 멈칫 정지한다.
“…응?”
이어서 눈을 동그랗게 뜬 지옥 대공이 왜 그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최대한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그러나 한 번 더 고개를 갸울인 지옥 대공은 도로 눈을 지그시 감더니 천천히 혀를 내밀어 오기 시작했다.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결국 나는 크게 고함치며 있는 힘껏 지옥 대공을 밀치고 말았다. 그러나 지옥 대공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되돌아온 반동력에 내가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서너 번 바닥을 구르자 멍한 기분이 내려앉는 동시에 목덜미에서 무언가 뜨끈뜨끈한 액체가 느껴졌다. 시야에 보이는 하늘은 그저 붉기만 하다.
‘여기는…. 지옥이잖아.’
나는 본능적으로 1회 차서 지옥에 떨어졌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물론 아직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하늘은 그때 보았던 지옥의 기억과 아주 흡사한 풍경을 보이고 있었다.
“움직이는걸 보니 확실히 몸은 괜찮아진 것 같구나.”
그러자 문득 들려오는 기품 있는 목소리. 시선을 돌리자 어느새 몸을 일으켰는지 지옥 대공이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여전히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아 나는 말을 흐리고 말았다. 도대체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곳은 정말로 지옥일까?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
나는 살아 있는 걸까, 아니면 죽은 걸까?
지옥 대공은 왜 나를 핥고 있었을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
그 순간 돌연 지옥 대공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나는 반사적으로 마력을 일으키며 자세를 잡았다. 아직 모든 것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기는 하나, 어쨌든 죽기 살기로 싸웠던 만큼 지금으로서는 지옥 대공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만두지 그러느냐?”
그러나 지옥 대공은 피식 싱겁게 웃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절로 긴장된 기분이 들어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의미지?”
“여기서는 싸워봤자 라는 소리다.”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 지옥 대공은 별안간 정색하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애당초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고 나와 싸우겠다는 거지?”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방금 지옥 대공의 말로 적어도 의문 하나는 해결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금 내가 있는 장소는 확실하게 지옥이라는 것.
잘 생각해보면 추론이 가능한 일이었다. 헬레나가 지옥 대공을 돌려보내는 진을 발동했다면 당연히 대상 좌표는 지옥일 수밖에 없잖은가. 애초 1회 차에도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만큼, 홀 플레인에 지옥이 있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도 않고.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곳이 정말로 지옥이라면 여기서 지옥 대공과 맞붙는 건 진정 무의미한 일이다. 인간 세상에서는 어찌어찌 상대할 수는 있었다. 지옥 대공 정도의 존재가 소환되면 크게 힘을 제한 받게 되며, 나는 그와 반대로 각종 버프를 받은 상태였으니까.
허나 지금은 다르다. 지옥은 인간 세상이 아닌 지옥 대공의 홈 그라운드나 다름없는 곳이다. 그런 만큼 전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은 물론, 마음만 먹으면 그 이상도 얼마든지 낼 수 있을 것이다. 말인즉 지금의 나로서는 수억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소리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아,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자세를 풀고 마력을 가라앉혔다.
“그래, 그래야지. 착하구나.”
그제야 만족했는지 지옥 대공은 바로 표정을 풀며 요염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뜻 들으면 기특하다는 투도 깔려 있는 게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는 어조였다.
비록 마력을 거두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지옥 대공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어떻게 된 일이냐니?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만.”
“말장난하지 마라. 왜 나를 죽이지 않았냐는 소리다.”
“…풋!”
그러자 지옥 대공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산드러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죽여? 내가 그대를?”
“말꼬리….”
“오히려 나야말로, 그대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
그렇게 말한 지옥 대공은 한층 높아진 소리로 까르르 웃어 젖혔다. 그리고는 서서히 진정하며 검지를 들어 나를 가리켰다.
“말이 나온 김에, 나도 그대에게 하나 묻도록 하지. …그러니 우선은 앉지 않겠느냐?”
이윽고 지옥 대공은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인어처럼 자세를 잡더니 어서 앉으라는 듯이 지면을 가볍게 두드린다. 그 엄청난 지옥 대공이 저런 점잖은 모습을 보이자 조금이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딱히 살기는 느껴지지 않는 말투라 나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 또한 궁금한 게 산더미처럼 쌓인 상태였거니와, 사실상 대화하자는 걸 거절할 처지도 아니었다.
잠시 후, 나를 빤히 응시하던 지옥 대공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 이 몸이 먼저 물어도 되겠느냐?”
나는 그러라는 의미로 가만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그대는, 왜 내가 그대를 죽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귀를 의심하고 말았다.
“지금 무슨….”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느니라.”
반사적으로 입을 열려고 했으나 지옥 대공의 제지에 도로 다물고 말았다. 이내 짧은 한숨을 흘린 지옥 대공의 말이 이어졌다.
“그때의 기억을 천천히 되짚어 보거라. 한 번 잘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그대는 정말로 이 몸이, 그대를 비롯한 인간들을 진심으로 상대했다고 생각하느냐?”
“…….”
“잠깐이라고 외친 나에게 먼저 달려든 것은 그대였다. 그런데도 그대가 죽을까 봐 전투 내내 걱정하고, 죽자 살자 달려드는 인간들도 적당히 상대하려 애썼고, 거기다 거의 죽음 직전까지 이른 그대에게 이 몸의 생명력을 나눠주기까지 했는데. …여기까지 들었는데도 모르겠느냐?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척을 하는 건가?”
“…어?”
그 순간 나는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무언가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래. 한 번 잘 생각해보자.’
나는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추스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지옥 대공이 소환된 직후부터….
그러자 여러 기억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자, 잠깐…!’
‘…그냥 누워 있지 그랬느냐.’
‘너무 걱정하지는 말거라.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는 차원에서, 어지간하면 죽이지 않으려 애썼으니.’
‘결심했어. 여기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대는 내가 품어버리겠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해보자 무언가 막연하던 것이 서서히 구체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나는 지옥 대공이 등장했을 때부터 명백한 적으로 규정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1회 차의 기억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1회 차의 지옥 대공은 정말로 지옥 그 자체를 재현했으니까. 그래서 당연히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미래는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 하에서.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2회 차의 지옥 대공은 사용자들에게는 가차 없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유독 나에게는 지나칠 정도의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말 그대로 몇 번이나 나를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냥 넘어갔을 만큼.
그럼 ‘왜?’ 그랬느냐가 또 궁금해지는데….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나는 일단 호기심을 접어두기로 했다. 우선 당면한 의문을 해결하는 게 좋거니와, 별안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엄습했다.
또한, 무엇보다.
“그럼 설마….”
“설마?”
시선을 들자 지옥 대공이 싱긋 웃으며 말을 따라 했다. 그러자 혹시나 했던 의문이 더욱 증폭되며 점차 몸이 떨리는걸 느꼈다.
“그럼 너는 도대체 왜 그곳에 소환된 건데? 뭔가 목적을 갖고 소환 의식을 치렀을 거 아니야?”
그 의문이 확신으로 변하기 직전, 나는 간신히 머리를 저으며 외칠 수 있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필사적이 돼버렸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면, 왠지 무척 서글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응? 딱히 목적은 없다만.”
“…뭐?”
그러나.
“나는 스스로의 의지로 그곳에 소환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의지로 강제 소환된 것인데.”
“누, 누군가에게 아틀란타로 강제 소환을 당했다고?”
지옥 대공의 말이 이어진 순간.
“그래. 그러니까…. 악마들이라고 했었나?”
“……!”
나는 망치로 정수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껴야만 했다.
============================ 작품 후기 ============================
김수현 : 설레발! 이것은 바로 설레발의 맛이구나!
X XX : 김칫국! 이것은 바로 김칫국의 맛이구나!
지옥 대공과의 격렬한 전투를 치러 굴복시키는 내용은…. 에이, 이제 다들 눈치채셨죠? 네. 그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아요. 제 머리로는 도저히 김수현이 눈을 뜨자마자 응응하는, 그런 상황을 만들 수가 없어서요. 하하하.
1. 남은 의문 해결.
2. 지옥 대공과 화정과 연관된 의문.
3. 김한별과의 만남.
4. 김수현의 정신적인(?) 각성.
이 4가지 관문을 거치고서야 적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3회 ~ 4회 후 정도가 되겠네요. 특히 4번 과정은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아틀란트로 들어가서 응응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터라, 독자 분들의 너른 양해를 부탁 드립니다.
그럼 독자 분들 모두 불타는 금요일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