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71
00670 3. 한편, 같은 시각. =========================================================================
– 1주일 전.
북 대륙. 남부 소 도시 모니카.
머셔너리 클랜 하우스.
강철 산맥 공략이 시작된 이후, 머셔너리 클랜 하우스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주력 인원이 대거 공략에 참가해 사람이 없음은 물론, 임무를 수행할만한 사용자도 없어 용병 의뢰를 받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남은 사용자들은 공략이 끝날 때까지 무기한 휴가를 받은 상태로, 하루하루 잡무를 처리하거나 수련을 하는 등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러나 오늘 1층 로비는 때아닌 발길들로 북적거렸다. 늦은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10명이 넘는 사용자들이 로비에 모여 앉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평소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마주칠 시간이 없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어르신. 요즘 식사 때도 잘 보이지 않으신 것 같은데요. 그러다 몸 상하십니다.”
“요즘 들어 입맛이 없어서…. 쿨럭쿨럭! 아무튼 괜찮네. 딱히….”
“도도야아. 나는 먹는 게 아니야아.”
“삐삐?!”
서로 적당한 곳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용자들. 박상남은 건강이 걱정된다는 말로 말을 붙이고, 이만성은 거센 기침을 토하면서도 머리를 가로젓는다. 아기 페가수스 도도는 누군가의 머리를 앙 깨물고 있었으며, 아름다운 은발을 찰랑이는 소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도도를 떼어내려 애쓰고 있다.
누가 봐도 한가로운 풍경.
그러나.
뚜벅뚜벅…. 뚜벅뚜벅….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사용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조용해졌다. 허나 예전 같았으면 신나서 달려왔을 걸음 소리는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힘이 없는 듯했다. 사용자들도 그걸 느꼈는지 하나같이 의아한 기색을 비췄다.
그렇게 로비에 뜻 모를 긴장이 감돌 즈음, 계단에서 내려온 누군가가 천천히 모습을 보였다.
“…모두, 바쁜 와중 제 호출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사용자는 다름 아닌 조승우였다. 어딘가 멍해 보이는 낯에서 이상한 기색을 느낀 걸까. 망연한 얼굴로 로비 중앙으로 걸어 들어오는 조승우를 보며 사용자들은 서로만 번갈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 거 조승우씨? 가오 좀 작작 잡아요. 저번에도 비슷하게 장난쳤다가 그렇게 한 소리 들어놓고서는….”
이윽고 걸음을 멈춘 조승우를 보며 박상남의 옆에 앉은 노노가 투덜거렸다.
현재 북 대륙에 남은 사용자들은 강철 산맥 공략 경과를 꼬박꼬박 전해 듣는 입장이었다. 물론 실시간까지는 아니었고, 각각 지역 공략이 끝날 때마다 한 번씩 전해 듣는다. 이후 원정대가 공략 완료 보고를 올리면, 입구 전초 기지에서 그 보고를 받고 정리해 북 대륙 사용자들에 전하는 경로였다.
이렇게 계속해서 경과를 전해들은 만큼 남은 사용자들도 어느 정도 돌아가는 사정은 알고 있었다. 즉 머셔너리가 2 지역 공략을 무사히 마치고, 형을 도우러 3 지역 공략까지 참가했으며, 그 3 지역 공략 마저 완벽하게 완수했음을 들어 알고 있다. 그리고 3 지역을 떠나 이제 아틀란타로 돌입했다는 사실까지. 사실상 강철 산맥 공략은 이제 완전히 끝났다고 봐도 좋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금 노노의 투덜거림은 이유 있는 투덜거림이었다. 이제 도시만 찾으면 된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저렇게 요상한 태도를 잡는 조승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물론 아틀란타 돌입 후에도 괴물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 조승우에게는 전력이 있다. 일전 3 지역 공략 결과를 발표할 때, 침통한 표정을 가장해 모두와 연락이 끊겼다는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말인즉 양치기 소년이 됐다고나 할까. 마르가 곧바로 ‘거짓말쟁이!’ 라고 외쳐 장난임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그 당시 전멸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모든 사용자가 심장이 멎는 기분을 느꼈다. 이후 이만성이 드물게도 크게 화를 냈고, 조승우는 정중한 사과와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약속으로 넘어가기는 했지만….
“그럼 중앙 관리 기구가 전달한….”
이윽고 조승우가 나직한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믿을 수 없다는 기색과 괴로운 기색이 절반씩 섞인 표정은, 누가 봐도 좋은 소식을 듣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아 승우씨.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어르신 또 화내시는 거 보고 싶어서 그러세요?”
“그냥 빨리빨리 얘기해요~. 어차피 다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전과가 있어서 그런 걸까. 사용자들은 조승우의 말을 끊고 핀잔을 주었다. 오죽하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아기들은 물론, 유미와 도도도 소리 내어 야유를 보낼 정도였다.
“…….”
그러는 와중 홀로 차분함을 유지하는 이만성만이 복잡하고도 미묘한 얼굴로 조승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거짓말이기를 바라며 크게 혼낼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말하는 태도나 목소리가 이전과는 다르게 굉장히 심상치 않다. 무언가 이상한 촉을 느끼고 있었다.
“제, 제 4 지역 공략 결과를 여러분께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곧 조승우가 말을 이은 순간, 사용자들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4, 4 지역이라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미를 한껏 찌푸린 노노가 왈칵 성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강철 산맥은 제 3 지역이 끝 아니었어? 그런데 왠 4 지역?”
“그, 그러니까…. 아틀란타 돌입 이후….”
“아 말 좀 제대로 해봐요! 아니 아니. 이 사람 또 장난치는 거….”
“…도시 발견 직전에서! 새로운 괴물이 출현했다는 말입니다!”
그때, 결국 참지 못했는지 조승우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마주 고함을 질렀다. 이어서 찾아온 잠깐의 침묵. 이 정도면 이제 장난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조승우 또한 입을 닫은 채 씩씩 숨을 흘리다가, 노노를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약간의 불편한 시간이 흐르고, 조승우가 입을 열었다.
“비록 강철 산맥은 아니지만…. 중앙 관리 기구에서는, 새로운 괴물이 출현한 장소를 제 4 지역이라 정의한다고 전해왔습니다.”
“그, 그게….”
이제야 농담이 아님을 깨달았는지 노노가 깜빡깜빡 눈을 감았다 뜨며 되물으려 했다. 그러나 박상남이 “여보. 일단 앉아요.” 라고 말하며 달래자 자리에 앉고는 한층 복잡해진 얼굴로 조승우를 응시했다.
이내 원래의 근엄한 얼굴로 돌아간 박상남은 침착히 숨을 고른 후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우선 계속 말씀해주십시오.”
“…예.”
그러자 간신히 머리를 끄덕인 조승우는 손에 들고 있던 기록을 느릿하게 들어올렸다. 자세히 보면 기록을 잡은 손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은 박상남은 혹시 모를 소식을 대비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우선 경과를 듣기로는…. 도시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새로운 괴물이 출현했다고 합니다….”
이윽고 조승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을 잇는다.
“새로운 괴물은…. 중앙 관리 기구에서는….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괴물이라 추정하고 있으며….”
“……?”
“그 괴물이 입힌 피해는…. 아직도 집계 중이며…. 현재 실종과 사망자 수를 합쳐, 약 2000명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 중이라 합니다….”
“……!”
그러자 여기저기서 예상치 못했다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제껏 총 3번의 공략 중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이 바로 3 지역 공략 때였다. 거기서도 사망과 실종을 모두 합쳐 2000명이 안될 정도였는데, 제 4 지역에서 2000명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아직도 집계 중이다?
어느덧 사용자들은 다른 차원에서 괴물이 등장했다는 말도 까맣게 잊은 채 멍하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머셔너리 클랜이 입은 피해는….”
왜냐하면 바로 이게 가장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사망 5명에 실종 2명으로….”
그 말이 나온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헛바람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사망자 5명에 실종자 2명. 머셔너리 클랜으로서는 강철 산맥 공략 중 처음으로 피해가 났다. 그것도 7명이나. 결국에는 설마 설마 하던 예상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물론 공략 도중 사망자나 실종자가 나오는 경우는 다반사였다. 그러나 이번 강철 산맥 공략의 머셔너리 클랜의 참가 인원은 약 30명. 그 중 7명이나 명단에 올랐다는 소리는 거의 2할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소리였다.
어느덧 로비를 감돌던 두근두근한 긴장감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불안한 기운이 한 가득 메워오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조승우가 말을 이었다.
“사망자 명단은…. 사용자 엄백현…. 박효찬…. 서지훈…. 이우석…. 그리고 거주민 헬레나…. 이상 5명이며….”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사용자들의 낯에 안타까움의 빛이 스친다. 호명된 사람들은 모두 이름 높은 사용자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엄연한 한 명의 용병으로 제 몫을 해주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실종자 명단은…. 먼저 사용자 김한별과….”
“무, 무어라고!”
그때였다. 김한별의 이름이 거론된 순간, 누군가 탕, 탁자를 세차게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린 이들은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뜬 이만성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이만성은 뒷방 늙은이 처지까지는 아니었지만, 비 전투 사용자의 처지는 어디를 가도 비슷하다. 클랜 내 중심은커녕 큰 관심을 받을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런 이만성에게 지속적으로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사용자가 바로 김한별이었다.
보석에 관한 심도 깊은 지식을 전수 받은 이후, 김한별은 이만성을 거의 스승 그 이상으로 모시고 있었다. 의뢰를 수행할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하루걸러 방문해 안부를 물을 정도였다. 그래서 김한별이 실종됐다는 사실에 이만성이 이리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크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한별이가, 한별이가…!”
“어, 어! 어르신! 우선 진정하시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박상남이 빠르게 일어나 이만성을 달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직 박상남뿐이었다. 다른 사용자들의 반응도 이만성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확실히 그럴 만도 했다. 김한별이 누구인가. 머셔너리 초창기 때부터 활동해온 여인이며, 시크릿 클래스까지 보유한, 클랜 내 나름대로 한 축을 담당하던 명성 있는 사용자였다. 아니. 그것을 떠나서라도, 오랫동안 활동해온 만큼 같은 클랜원으로서 친분을 맺은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런 만큼 앞서 호명된 사용자들 보다 더욱 커다란 충격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조승우가 처음 말을 할 때 실종은 2명이라고 했다. 그 말인즉 아직 1명이 남아 있다는 소리였다.
“그, 그리고….”
망연히 자신을 바라보는 사용자들을 보며 조승우는 암담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평소의 세련된 필체가 아닌, 이리저리 휘갈긴 필체가 적힌 기록을 꾸기듯이 쥐었다. 잠시 동안 과연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이 들었지만, 언젠가는 말을 해야 할 사항이었다.
결국 마음을 정한 조승우는 애써 입을 열었다.
“크, 클랜 로드가….”
문득 ‘클랜 로드’ 라는 말이 나온 순간이었다.
이제 갓 6살은 되었을까. 마치 여신과도 같은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은발의 소녀가, 갑자기 푹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글썽였다.
모두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느닷없이 조용한 정적이 찾아 들었다. 모두가 저도 모르게 호흡을 멈춘 탓에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이만성과 박상남까지도 행동을 멈춘 채, 한껏 놀란 눈으로 조승우를 보고 있었다.
클랜 로드.
머셔너리 클랜 로드.
이게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두 번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니까….
“사, 사망 및…. 실종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조승우가 간신히 경과 보고를 끝맺었을 때였다.
“쿨럭, 쿨럭! 쿨럭쿨럭!”
돌연히 이만성이 거센 기침을 토하며 자리에 무너지듯이 주저앉고 말았다.
“어, 어르신!”
그리고 크게 기함한 박상남이 얼른 일으켜주려는 순간.
우당탕!
“마, 마르야!”
의자가 거세게 나동그라지는 소리와 동시에, 은발의 소녀가 등에 달린 13쌍의 날개를 움직이며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삽시간에 점이 돼 사라졌다. 그리고 사라진 소녀의 뒤를 유미가 급하게 뒤쫓기 시작한다.
잠시 후.
“삐이이익!”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온몸의 털과 꼬리를 빳빳이 세운 채 자신을 노려보는 아기 페가수스를 보며, 조승우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마치 거짓말하지 말라는, 빨리 다시 말하라는 듯 느껴지는 태도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야! 그럴 리 없네! 그럴 리 없어!”
“이미 끝났습니다. 어르신. 이미 끝났다고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하, 한별이가! 크, 클랜 로드가!”
“아직 실종이래잖아요. 우선 진정하시고 기다려봅시다. 어르신마저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예?”
이윽고 이만성의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박상남이 애원하는 음성도 들렸다.
분명 조승우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죄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낀 조승우는 살그머니 머리를 떨궜다.
그리고.
“…이상입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조승우가 쥐고 있던 기록이 너울너울 떨어져 바닥에 닿았다.
노노는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득달같이 달려가 기록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제 4지역 공략 경과 보고.』
(사망자 5명, 실종자 2명. 총 7명.)
1. 사망자 : 엄백현(5년 차, 궁수, 사용자), 박효찬(4년 차, 마법사, 사용자), 서지훈(5년 차, 사제, 사용자), 이우석(3년 차, 사제, 사용자), 헬레나(-, 마법사, 거주민).
2. 실종자 : 김한별(3년 차, 보석 마법사, 사용자), 김수현(3년 차, 검술 전문가, 사용자).
============================ 작품 후기 ============================
오늘 코멘트 예상.
1. 씬은 더 안 나와요?
Sol ) 더 나와요~. 그나저나 이번 씬은 평가가 갈리네요. 아직도 약하다! 고 말씀하시는 분과, 그래도 발전했네? 라고 말씀하시는 분으로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 우선 평가는 겸허히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예전에 이구동성으로 씬 별로에요! 라고 말씀하시던 때와는 달라졌네요. 하하하. 🙂
2. 외전 언제 끝나요?
Sol) 외전은 4 파트까지 예정돼있습니다. 그러나 4 파트의 주제는 ‘**(스포 방지!)’ 로, 그렇게 긴 파트는 아닙니다. 사실상 이번 3 파트가 팔부능선을 넘는 단계라고 보심이 옳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