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84
00683 왕의 귀환. =========================================================================
돌이켜보면.
현재의 사용자 정보를 갖추지 못했던 1회 차에서 나는 무수한 생명의 위기를 겪었다. 지금 회상해봐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건 그야말로 기적과 우연의 산물일 것이다.
아무튼 차마 셀 수 없을 정도의 사선을 넘은 만큼 겪은 상황 또한 다양한데, 그 중 가장 비참했던 상황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않고 ‘아사(餓死)할 뻔 했을 때.’ 라고 말할 수 있다.
굵어 죽기 직전까지 몰렸던 상황은 딱 두 번. 한 번은 요정의 숲에서였고 다른 한 번은 지옥에서 돌아왔을 때였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두 상황 중 조금 더 특별했던 상황을 고르라면 아무래도 후자일 것이다. 요정의 숲에는 그냥 식량이 부족했을 뿐이니까.
그러나 지옥에서 귀환했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완전히 다르다.
생각해보면 나와 김한별은 지옥에서 꼬박꼬박 잠은 잤어도, 식사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허나 그래도 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고, 그건 1회 차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정작 이상함을 느낀 건, 어느 순간 몸 내부에서 일어난 변화를 인지했을 때였다.
인간 세상으로 돌아온 이후, 나는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심한 공복감과 탈력감을 느꼈다. 그 감각은 한순간 폭발적으로 찾아온 건 아니었지만, 특히 공복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끝없이 크기를 키워갔다.
당연하지만 그냥 ‘배고프다.’ 수준이 아니다. 공복감이 커질수록 자연스레 탈력감도 심해지고, 종래에는 하늘이 누렇게 보일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지옥에서 깨어난 첫날 오래 있을수록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그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원리에 관해 말해보라면 정확하게 설명할 자신은 없다. 그저 차원 법칙과 관련 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만 가능하지 나도 상세한 사정은 모르니까.
단, 만일 지옥이 식사가 필요 없는 세상이라 가정해보면, 몸이 잠깐 새로운 차원 법칙에 동화됐다가, 원래 차원으로 돌아오면서 동화가 풀렸다고 예상할 수는 있다. 아마 그 과정에서 반대급부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닐까.
여하튼 모로 봐도 절대로 좋은 현상이 아니다. 그 당시 나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지만, 어그러진 몸의 균형을 맞추는데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다.
‘그나마 공복감이 아직 덜 왔을 때.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생각대로였다. 지금 한가로이 귀환의 기쁨을 나눌 때가 아니었다. 지옥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닐 것이니만큼 한층 마음이 급해졌다.
우선 급한 대로 현지 조달이라도 할 생각에 주변을 둘러봤으나 역시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애초 황무지에 뭘 기대한 것 자체가 에러였다.
“윽…!”
그 순간 돌연 괴로워하는 신음이 귓가로 흘러들었다.
김한별이 더욱 심하게 낯을 찡그리며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공복 현상의 전조가 찾아온 것이다. 아마 방금 복부가 찌릿찌릿 쑤시는 듯한 격통을 느꼈을 것이다.
조금 이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 김한별의 사용자 정보를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애초 클래스가 마법사니 내구나 체력이 나와 비교해 현저하게 낮지 않은가. 그러니 현상이 빠르게 찾아오는 것도 당연지사.
“이, 이상하다? 아직 그날은 아닐 텐데….”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는 김한별의 말을 들으며 나는 결심을 굳혔다. 현지 조달이 불가능한 이상 남은 방법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도시에 도착하는 수밖에 없다고. 우선은 그러고 나서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망설임 없이 다가가 김한별을 잡아 일으켰다.
“오, 오빠?”
“괜찮으니까 우선 업혀.”
“아니. 괜찮아요.”
“어서 업히라니까.”
“가, 갑자기 왜 그러세요. 조금 전까지는….”
“빨리 도시로 들어가고 싶어서 그래.”
김한별은 처음에는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으나 결국에는 못 이기는 척 등에 업혔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영리한 아이인 만큼, 지금 자신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내 말대로 얼른 도시에 들어가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오빠. 그럼 자루는 제가…. 아니 저 진짜 걸을 자신 있는데.”
김한별은 이렇게 등에 업혔으니 자신이 지옥에서 가져온 자루라도 들겠다고 했지만, 그 자루마저 내가 들어버렸다. 비단 김한별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마법사들의 신체 능력치는 상당히 낮다.(물론 형은 예외로 두자.)
나야 아직 버틸만하다고 해도, 김한별은 이제부터라도 최대한 체력을 보존해야 한다.
최대한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나서, 나는 방향도 가늠할 겸 잠시 하늘을 응시했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는 오직 달 하나만이 고고하게 떠올라 있었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가자.”
그렇게 달빛이 비추는 밤의 황무지서, 나는 한 손에는 자루를 다른 한 손으로는 배고픔에 굶주린 여인을 받친 채, 아틀란타가 있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력으로.
이윽고 주변 풍경이 물 흐르듯이 스치기 시작하자 내 목을 감고 있던 팔이 더욱 강하게 옥죄어온다.
“꺅! 오, 오빠. 왜 이렇게 빠르게 달리시는 거예요?”
“말했잖아. 한 시라도 빨리 도시로 들어가고 싶다고.”
“그, 그래도요. 이건 너무 급하잖아요!”
“네가 아프니까.”
별로 생각하고 꺼낸 말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도시를 발견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건성으로 말했다. 지금 김한별의 투정을 받아줄 만한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김한별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그냥 등과 맞닿은 신체가 살짝 경직된 탓에 혹시 죽은 건가 걱정했지만, 목덜미에서 들려오는 색색거리는 숨소리는 김한별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잠시 후. 등에 깊숙이 고개를 파묻는 감촉이 전해진다.
“그, 그래도 엉덩이가….”
이어서 귓가로 속삭여오는 무언가 창피해하는 음성까지.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응? 엉덩이?”
“…지금 제 엉덩이에 손 대고 계시잖아요.”
“아. 그런데 한 손에 이걸 들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남은 한 손으로 너를 받치려면.”
“그렇기는 한데 너무 들썩거려서…. 조, 조금 천천히 가셔도 괜찮을 것 같은데….”
자루를 살짝 들어올리자 김한별이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큰일날 소리.’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으나 나는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물론 김한별은 사정을 모른다. 허나 여기서 의도적으로 속도를 줄이는 건 거의 자살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이다. 지금이야 그럭저럭 견딜만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제 곧 공복감은 기하급수적으로 크기를 불릴 것이다. 한 번 터지기 시작한 공복감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타오른다.
“걱정 마. 네 엉덩이에는 관심 없으니까. 정 그러면 네가 내 목에 매달린 채로 가던가.”
“…열 받아.”
응? 방금 무슨 말을 들을 것 같은데. 스치는 바람 소리에 파묻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이후 김한별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가끔 목을 살짝살짝 조르는 듯한 감촉을 느꼈으나 착각이라 치부하며 얼른 도시가 나오기를 빌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이건…?’
나는 달리는 와중에도 주변을 살피는걸 늦추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황무지에 새겨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야영의 흔적이었다. 즉 원정대는 도시를 발견하고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야영지를 건설하고서 어느 정도 기다렸다는 소리였다.
‘좋다.’
아틀란타. 아무리 마법적 처리가 가미되고 튼튼하게 지어진 도시라도, 못해도 수백 년간 방치된 상태였다. 거기다 도시 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니, 정말 멍청한 총 사령관이 아니라면 곧바로 진입했을 리가 만무하다.
그러한 점들을 감안해보면 야영 흔적을 발견한 건 확실한 호재였다. 애초 내가 이 장소에서 길을 잃을 리는 없으나, 어쨌든 도시가 가까이 있다는 방증은 되니까. 이제는 정말로 거의 도착해가는 상태였다.
그러자 내 생각이 맞는다는 듯, 이내 한결같이 이어지던 풍경이 약간이나마 변화를 보였다. 그냥 황무지에 불과하던 지면에 어느 순간부터 잡초 비슷해 보이는 것들이 드문드문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자연스레 내딛는 발걸음에 더욱 힘이 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아…!”
나는, 작은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아직 거리가 있기는 했지만, 시야 정면 방향으로 하나의 거대한 도시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이라서 그런 걸까. 차마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좌우로 길게 이어진 드높은 성벽은, 새하얀 빛을 띠고 있어 더욱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드디어 아틀란타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별아. 아틀란타다. 아틀란타…!”
삽시간에 아틀란타가 가까워진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나는 김한별을 들쳐 업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별아?”
허나 아틀란타가 보임에도 불구하고, 김한별은 일말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2, 30분 전부터 갑자기 조용해진 것 같은데….
‘혹시?’
문득 이상한 기운이 전신을 엄습했다. 확실히 가끔 목을 죄어오던 팔은 어느새 느슨하게 풀려 있었고, 들려오는 호흡은 상당히 약해진 상태였다.
불안하다. 다급한 마음에 나는 손을 이리저리 더듬다가, 돌연 가운뎃손가락을 세워 받친 엉덩이 사이로 쿡 찔러 넣었다.
그러고 나서도, 아주 잠깐은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정확히 3초가 지났을 때.
“…힉?!”
김한별이 몸을 펄떡거리며 반응했고.
“지,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이내 등에서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아마 처음에는 제대로 몰랐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다.
“하, 한별아. 가만히 있어. 힘들다.”
“제가 가만히 있게 생겼어요? 아까는 관심도 없다…. 아니. 갑자기 왜 이러는 거예요? 어디 말만한 처녀의…!”
“…처녀의? 이어서 말해봐.”
“의…. 이익! 오빠!”
김한별의 벌컥 소리를 질렀다. 등을 마구마구 두드리는 게 꽤나 화가 난 듯싶다. 나는 가슴 한 켠으로 안도하며 바로 사과했다.
“알았어. 미안해. 그런데 네가 반응이 없으니까….”
“힘드니까 반응을 못하는 거잖아요!”
“걱정되니까 그렇지…. 아무튼 많이 힘들어?”
“거, 걱정….”
그 순간 김한별은 또다시 갑자기 침묵했다. 그리고 앓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양 어깨를 꽉 쥐었다가, 곧 매달리듯 힘없이 몸을 무너트렸다.
“아직은 견딜만해요. 그리고 힘들기는 오빠가 더 힘드실 테니까….”
이어서 맥이 풀린 듯한 음성으로 나직이 말하기까지. 나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김한별은 그냥저냥 견딜만하다고 했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어느덧 나도 상당히 선명한 공복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94의 내구 능력치와 101의 체력 능력치가 이 정도라면, 김한별이 느끼는 공복감과 탈력감은 굳이 듣지 않아도 뻔하다. 아마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일부러 괜찮다 말한 것이리라.
그렇게 아옹다옹하는 사이, 아틀란타는 어느새 눈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운이 좋게도 따로 입구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지금 달리는 방향의 성벽 아래 뻥 뚫린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끙끙 신음을 참는 김한별에게 정신 단단히 잡으라고 격려한 후, 나는 그대로 터널과도 같은 입구를 지나쳤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꿈에나 그리던 아틀란타로 입성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후후. 저는 이제 조금이라도 자야겠네요. 코멘트는 일어나서 읽을게요. 🙂
오늘은 금요일. 학생분들, 직장인분들 모두 즐거운 금요일을 기다리시며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