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85
00684 왕의 귀환. =========================================================================
“여기가…. 아틀란타…?”
이윽고 아틀란타 안으로 들어간 순간 목 부근에서 힘겹게 둘러보는 소리가 들렸다. 원체 힘없는 목소리였으나 어딘가 모르게 실망스럽다는 기색도 깔려 있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입구를 통과한 후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도시의 밤거리는 그야말로 을씨년스러움이 극에 달한 풍경을 보이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기저기 허물어진 건물의 잔해가 즐비하고 일부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심하게 낡아 있었다.
“으응…. 오빠. 도시를 처음 발견하면 원래 이래요?”
김한별이 깊은 신음을 삼키며 속삭였다.
“어쩔 수 없지 않을까. 그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니까.”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한편으로는 김한별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게, 사실 현재의 아틀란타는 거의 황폐화된 폐허와 엇비슷해 보일 정도였다.
아마 허탈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고작 이런 도시를 가지려 그 생고생을 한 건가 생각했으니까. 처음 발견했을 때는 드높은 성벽의 웅장함에 몸을 떨기도 했으나, 내부는 상상했던 것만큼 아름답지 않다.
내가 봐도 그렇다. 1회 차서 발전한 아틀란타는, 북 대륙 대 도시인 바바라조차도 소 도시 이하로 취급해버리는 어마어마한 위용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허나 현재로서는 그저 발전 가능성 높은 도시에 불과하다.
어찌 보면 이게 현실이기도 했고, 또 아틀란타의 현주소라고 봐야겠지만.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문득 공복감에 생각이 미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난감한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너무 애매한 시간대에 돌아온 걸까. 현재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어스레한 달빛이 스며든 더러운 거리뿐. 아무리 보아도 사용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도시에 식당이나 주점이 있기를 바라는 건 요원한 바람일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머셔너리 클랜원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드넓은 도시에서 과연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모래서 바늘 찾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금방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결국에는 어느 방향으로든 들어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김한별을 고쳐 업으며 입을 열었다.
“가자. 항별아.”
“네 오빠. 제 걱정은…. 네?”
“응? 왜?”
“아, 아니에요.”
왜 그러냐는 듯 천연덕스레 말하니 김한별이 말을 더듬는다. 나는 속으로 키득거리며 빠르게 거리를 가로질렀다.
그렇게 약 서른 걸음 정도 걸었을 즈음.
“……!”
“……?”
돌연 어디선가 누군가가 약간 높은 목소리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청력을 높이자 한 두어 명 정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방향은 정면. 그 소리는 우리 쪽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래도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나는 안도의 숨을 흘리고서 바삐 걸음을 놀렸다. 북 대륙이라면 모를까. 이제 막 발견한 도시에서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사용자를 찾았다는 건 그야말로 천운에 가까웠다.
“…아. 그러니까 지금 어디를….”
“오빠가 무슨 상관…!”
예상대로였다. 앞에서는 사용자로 보이는 듯한 두 인영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음성을 들어보니 이야기가 아닌 말다툼을 벌이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한 명은 사내고 다른 한 명은 여인인 듯싶었다.
“아 상관 좀 하지 말라고! 오빠가 뭔데 자꾸만…!”
저쪽도 우리를 느낀 걸까. 오른쪽의 여인이 벌컥 화를 내다가 나를 흘끗 보고는 눈을 찌푸렸다. 여인치고는 훤칠한 키를 가진 호리호리한 여인이었으나,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안 그래도 살짝 찢어진 눈을 찡그리니 더욱 불량하게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귀티가 흐르는 것도 그렇고, 분명 예쁘장한 얼굴이기는 했다.
“승윤아. 너무 화내지만 말고. 응? 오빠 말 좀….”
그리고 차분히 달래고 있는 왼쪽의 사내는 오른쪽 여인과 판이하게 다른 인상을 갖고 있었다. 외모나 체구는 평범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잔잔하게 가라앉은 눈동자와 약간 낮으면서도 차분한 음성은, 어딘가 모르게 사내의 침착한 기품을 드러내주고 있었다.
특히 첫눈에 보자마자 선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안솔의 멍함과는 다른, 뜻 모를 당당함이 느껴졌다.
여하튼, 왠지 말을 걸기 어려운 상황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머셔너리는 인지도가 굉장히 높은 클랜이다. 그러니 어느 장소에 자리잡았는지 대충이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먹을 것도 얻을 수 있을 테고.
그렇게 생각한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한 후 두 사용자를 향해 다가갔다.
“저….”
“한푼 줄 생각 없으니까 꺼져.”
그리고 조용히 말을 걸려는 찰나, 그때까지 나를 흘끗흘끗 흘기던 오른 여인이 곧바로 내 말을 끊었다. 거기다 자못 불쾌한 어조로 중얼거리기까지.
그 말을 들은 순간 화가 난다기 보다는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설마 내 얼굴을 모르는 건가? 아니. 밤이니까 잘 안 보일 수도 있으려나?
“하승윤!”
문득 왼쪽의 사내가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승윤이라. 이름은 예쁘네. 기억해야지.
“왜!”
“너 지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아 오빠는 척 보면 몰라? 지금 한 푼 달라고….”
“또, 또! 너 정말로 말조심 안 할래?”
“…….”
“이 멍청한 녀석아. 지금 이 도시에 있는 사람은 모두가….”
갑갑하다는 듯이 말하던 사내는 갑자기 내 눈치를 살피더니 꾸벅 머리를 숙이며 다가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 드리겠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냥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나는 천천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안색이 환해진 사내가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다른 건 아니고, 혹시 머셔너리 클랜을 알고 계시나요?”
“머셔너리 클랜이요? 예. 당연히 알고는 있지요. 모를 리가….”
“그럼 혹시 머셔너리 클랜이 도시 어느 곳에 자리잡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잠깐만. 그건 왜 물어보는데?”
대답은 사내가 아닌 여인에게서 나왔다.
무에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여인은 거만하게 팔짱을 낀 채 나를 깔아보고 있었다. 하승윤이라고 했던가?
“머셔너리 클랜 관계자입니다.”
나는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정석적인 말을 꺼냈다.
그냥 앞서 정체를 밝힐까도 했으나 먼저 말을 꺼내는 건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들키는 경우는 어쩔 수 없어도 우선은 돌아가는 상황을 고려해야만 했다. 말인즉 내가 없는 동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를 모르니, 우선은 최대한 정체를 숨기는 게 유리하겠다는 판단이었다.
“…관계자?”
하승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승윤아. 내가 이야기할 테니까….”
사내가 얼른 나섰으나 하승윤은 이번에는 밀려나지 않았다. 되레 사내를 물리치며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말도 안 돼. 머셔너리 관계자라면서 자기 클랜이 자리잡은 장소를 모른다고?”
…이런. 그래도 아주 멍청하지는 않은가 보네?
“승윤아 너 왜 그래. 그게 네가 무슨 상관이야.”
“오빠는 가만히 좀 있어봐. 나 저 사람들 되게 수상해. 지금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등에 업고 있는 건 또 뭐야?”
“우리도 돌아다니고 있잖아. 그리고 관계자라고 꼭 클랜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처럼 오리 알 신세일지도….”
“아니야. 저 사람들 오리 알은 아닐걸? 이번에 머셔너리 클랜은 외부 사용자들 참가 안 시켰잖아. 기억 안 나?”
“그건….”
“저놈들 혹시 몰래 들어온 새끼들 아니야? 아니면 부랑자 새끼들이던가.”
따따따따 말하는 하승윤의 논리에 할 말이 없는지 사내는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볼 일이 있어서 찾아가는 중입니다.”
사내와 하승윤의 시선에 내게로 향했다.
“볼 일이 있다고? 이 시간에?”
“예. 관계자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빙긋 웃으며 당당하게 말하자 하승윤이 약간 당혹한 기색을 비췄다. 그러나 곧 표독스런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는 게, 아무래도 말장난으로 놀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다.
“이…!”
“아아아아! 그만 그만. 제가 말씀 드리죠. 머셔너리 클랜은 이 도시에는 없습니다. 서쪽 터널을 지나고 새 도시로 들어가셔야 나올 겁니다.”
“오빠! 미쳤어? 저 사람들이 누군지 알고…!”
“조용히 있어.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 생각이라는 게 궁금했지만, 그보다는 이 두 사용자가 나를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얼른 벗어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쪽 터널이요. 정확히 어느 지역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간단합니다. 터널을 따라 난 길을 그대로 따라가시다 보면 중앙 광장처럼 보이는 곳에 도착하실 겁니다. 그 주변에서 그나마 가장 괜찮아 보이는 건물을 찾으시면 됩니다.”
사내는 무언가 상세하면서도 애매하게 알려주었다. 그러나 더 자세하게 말해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어쨌든 알고 싶었던 것도 알아냈다.
“그렇군요.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사를 건네고 바로 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꼬르륵!
느닷없이 배 끓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주변이 적막한 탓에 확실하게 들었는지, 사내와 여인이 동시에 떫은 빛을 비췄다. 소리의 범인은 내 목을 살며시 죄며 등에 고개를 파묻었다.
나는 반쯤 돌린 몸을 되돌리고 사내를 보며 쓰게 웃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 먹을 것 가지고 계십니까?”
“예, 예?”
사내가 한껏 당황한 얼굴로 눈을 깜빡인다.
“간단한 요기거리라도 괜찮습니다.”
“오, 오빠….”
김한별이 미안해 죽겠다는 듯한 가련한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사내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잠시 내 어깨 너머로 시선을 보내는가 싶더니 빗겨 메고 있던 가방을 열었다.
하승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푹 한숨을 흘렸다.
“어휴. 나도 이제 몰라. 무슨 일 일어나면 다 오빠 책임이야! …쯧.”
그리고 한 번 거하게 혀를 차고는 휙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내는 잠깐 하승윤을 쳐다봤다가 황급히 가방에서 꺼낸 빵을 내밀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서.”
“감사합니다.”
한순간 사내의 낯에 일용할 양식을 빼앗겼다는 안타까운 빛이 스쳤지만, 나는 보따리를 내려놓고 얼른 받았다. 우선은 살고 봐야 하니까.
“그, 그럼!”
이윽고 사내는 꾸벅 머리를 숙이고서 하승윤이 걸어간 방향으로 달려갔다.
점차 멀어지는 사내의 뒷모습을 보다가 나는 빵을 어깨 쪽으로 들어올렸다.
“한별아. 이거 먹어.”
“…….”
“맛은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먹어놔. 안 그러면 더 힘들다.”
“…….”
김한별은 그제야 천천히 빵을 받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등에서 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으나 왠지 모르게 김한별이 입을 꽉 깨물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꼭 씹어 먹어라. 배고프다고 급하게 먹지 말고.”
나는 아까 내려놓은 보따리를 도로 주웠다. 그리고 사내가 알려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그 사내 이름도 못 물어봤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까 두 남녀와 헤어진 후 김한별은 한 마디 입도 열지 않고 있었다. 왜 그러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사내가 알려준 터널이라는 곳을 발견하고, 통과 후 새로운 도시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음에도 김한별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마 예전이었다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진작에 물어봤을 텐데, 아마 심경에 변화가 생긴 모양이다.
물론 한때 아틀란타를 주로 활동했던 만큼 나는 사내의 말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내가 말한 터널이 어떤 뜻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한별을 의식해 ‘터널이 뭔가요?’ 라고 질문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더욱 강한 의심을 받았을 것이다.
아무튼.
우물우물.
“꿀꺽…. 아무래도 여기 같은데?”
입에 들어간 빵 조각을 정확히 50번 씹은 후, 나는 조심스레 삼키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 한별아?”
재차 물었으나 김한별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 말도 않고 작게 찢은 빵 조각을 또 하나 불쑥 내밀었을 뿐.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서 얌전히 빵 조각을 받아먹었다.
눈앞에는 여관 비슷해 보이는 건축물이 하나 있었다. 안쪽에서는 기척은커녕 정적만이 맴돌고 있었다. 시간대가 시간대라 그런지 다들 자고 있는 모양이다.
조용한 여관을 보며 나는 아까 사내의 말에 관한 생각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왜냐면 정말 그 사내의 말대로였으니까.
터널을 통과하고 이어진 길을 따라 걸어 도착한 광장에는, 정말로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물이 딱 하나 있었다. 그게 바로 이 여관이었다.
‘조금 손을 본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여기라는 말이지?’
혹시 몰라 주변을 한 번 더 꼼꼼히 둘러보았다.
‘음. 확실해.’
역시나 거의 다 쓰러져 가는 건축물밖에 없는 걸 확인하고서 나는 여관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흡족한 마음으로 문으로 보이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도시 내 중앙 부분에, 그것도 나름 괜찮은 건물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은, 최소한 내가 없는 동안 겉으로 밀려나지는 않았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한별아. 우리 이제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마치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
역시나 김한별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빵이 아닌,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이는 것으로 반응을 대신했다. 이러니까 김한별이 정말 아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쨌든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초반 대응이 좋았다. 그래서 공복감이 기하급수로 커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1회 차서 처음 뭔지 모르고 계속 서 있었던 기억을 회상하면 진정 장족의 발전이리라.
그렇게 스스로 자화자찬한 후, 드디어 다 왔다는 생각에 조심조심 문을 밀어젖혔다. 문은 예상외로 헐렁거려 아무 저항 없이 스르르 열렸다.
잠시 후.
열린 문 안쪽으로 나는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살그머니 안을 들여다본 순간.
“…응?”
“…어?”
나는, 그대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