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87
00686 왕의 귀환. =========================================================================
도대체 이 광경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주변을 둘러본 순간 나는 웃음이 터질 뻔한걸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장내의 시선이 모조리 내게 쏠렸다. 클랜원들은 도저히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갑자기 정지됐다는 표현이 옳지 않을까.
탁, 손에 잡고 있던 단검을 떨어트리는 고연주.
무언가 말을 하려다 서서히 입이 벌어지는 정하연.
피로한 얼굴로 미간을 주무르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신재룡.
숨이 멎은 듯, 망망해 보이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차소림.
눈에 보이는 모든 클랜원이 하나같이 멍하니 나를 응시한다. 흡사 이 공간에 흐르는 시간이 갑자기 멈추기라도 했는지 전원이 꽁꽁 얼어붙은 듯하다. 오직 허준영만이 한쪽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미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하하.”
그러한 시선 속에서, 나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냥 괜스레 나온 웃음이었다.
“아…. 아….”
이윽고 누군가 앓는 소리를 흘리는 동시, 서넛의 클랜원이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망연히 몸을 일으켰다. 그들의 낯에는 불신의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클랜 로드가 갑자기 아침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돌아온 건 오늘 새벽. 나와 문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조용한 음성이 적막한 식당에 흘렀다. 몇 명의 클랜원이 느릿하게 옆을 돌아본다. 허준영은 여전히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몸이 안 좋으니 우선 밥 먹고 한숨 잔 다음, 오늘 아침에 모두 모여서 만나자고 하더군. …참고로, 저 사내가 김수현이라는 건 내가 보증하지.”
허준영이 보증이라는 말을 꺼낸 순간 무언가 짚이는 바가 생겼다.
가장 가까운 탁자로 한 걸음 한 걸음 이동하자, 아까부터 앓는 소리를 내던 누군가가 흠칫 의자 끄는 소음을 냈다. 정하연은 얼음에 갇힌 듯 하면서도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만큼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정하연을 보며 빙긋 웃어준 후 나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소리는 났으나 칼날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칼자루만 내 손에 잡힌 채 보이지 않는 검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자 허공을 바라보는 일부 클랜원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새벽에 대강은 들었습니다. 아마 제가 없는 동안 저를 사칭한 사기꾼들이 몇 놈 있는 것 같은데….”
몇몇 클랜원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무검을 높이 들어올린 후, 천천한 속도로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인근에 앉아 있던 클랜원이 무검을 한 번 쳐다봤다가 도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 야릇하고도 미묘한 시선을 받아넘기며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직도 제가 여기 서 있는 게 믿기지 않으신다면…. 그 누구라도 좋습니다. 어느 질문을 하든 아니면 실력을 확인해보든. 어떤 방식으로든 확인 절차를 하셔도 좋으니, 저는 이 자리에서, 제가 여러분의 클랜 로드라는걸 확인시켜드리겠습니다.”
그러고서 주변을 쓱 둘러보았으나 확인하겠다 나서는 클랜원은 없었다.
“흠. 아무래도 없는가 보군요. 그럼 이의 또한 없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러나 모종의 변화는 생겼다.
얼어붙은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무언가 끓는 듯한 소리를 내거나, 비척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등등. 이제 충격에서 깨어나는지 해빙된 클랜원이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음. 어떻게 하다 보니 이제 돌아왔네요. 여하튼….”
허나 그러한 반응에 개의치 않고 나는 다시 한 번 태연히 웃어 보였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예. 모두, 정말로 보고 싶었습니다.”
“아, 아…. 아아아아아악!”
그렇게 보고 싶었다는 말로 매듭지으려는 찰나, 갑자기 누군가 큰 소리로 비명을 외쳤다. 이 특유의 뾰족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는 이유정이 분명하다.
그 순간이었다.
“오빠…!”
“수현…!”
“클랜 로드…!”
“형…!”
나는 채 시선을 돌릴 새도 없이 반사적으로 주춤 물러나고 말았다. 돌연 무언가 알아듣지 못할 소리가 연이어 귓가를 세차게 때렸기 때문이다.
어찌나 소리가 컸는지 흡사 여러 개의 음성이 부딪쳐 폭발한 착각마저 일 정도였다. 귓속이 멍멍해졌다.
그뿐일까. 클랜원은 목이 나갈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사방에서 돌진해오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반응에 계속해서 걸음을 물렸으나 거리는 삽시간에 가까워졌다.
그때였다.
우웅!
돌연 짧은 마력 소리가 들려오더니 품에서 전개된 붉은빛이 흐르는 장막이 나를 둥글게 감싸 안았다. 이내 장막에 부딪쳐 떨어지거나 주저앉는 클랜원을 보며 나는 아차 한 기분을 느꼈다. 게헨나의 구슬이 멋대로 발동했다. 말인즉 달려오는 클랜원을 적으로 인식해 나를 보호하려 한 것이다.
클랜원이 하나같이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한다. 그리고 허공에 흐르는 붉은빛을 더듬거리며 만지기까지. 나는 얼른 해제하려다가 문득 스치고 지나간 생각에 행동을 정지했다. 지금 나는 클랜원에 둘러싸여 붉은 장막에 보호받고 있는 상황. 즉 내가 차원을 넘어갈 때와 엇비슷한 상황이다. 불현듯 재미난 생각이 떠올랐다.
잠시 후.
나는 품에 손을 넣은 채로 짐짓 서글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런…. 아무래도 여기까진가 보군요. 제게 허락된 시간이…. 하하.”
그 순간 장내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연이은 고함이 사그라지고 한껏 고조돼있던 클랜원의 얼굴도 시들해졌다.
“가,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방금 돌아오셨다면서….”
들려오는 음성에 나는 시선을 45도 정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억지로 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려 애쓰며 말을 이었다.
“미안합니다.”
“오, 오빠?”
“사실은…. 이렇게나마, 여러분과 마지막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다들 정말로 보고 싶었으니까요.”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쾅!
누군가 주먹으로 세게 쳤으나 붉은 장막은 꿈쩍도 않았다. 하기야 보호 요새라고까지 불리는 방어막인데 뚫리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나는 속으로 키득거리며 시선을 들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본 순간, 나는 어딘가 굉장히 잘못됐음을 느꼈다.
“혀, 형….”
“말도…. 안 돼….”
아까 가장 선두로 달려왔던 안현과 이유정이 털썩 주저앉았다. 둘의 눈이 꺼멓게 죽어가고 있다. 안솔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은 듯 얼굴이 새하얗다 못해 창백해졌다.
특히나 정하연이 가장 심했다. 양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은 채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찢어질 듯 커진 두 눈에서 투명한 이슬과도 같은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억지로 참는 듯한 흐느끼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크, 큰일이다. 구슬아. 얼른 방어막 좀 해제해봐.’
우웅?
‘괘, 괜찮으니까. 어서!’
우웅….
이윽고 붉은 장막이 서서히 사라진 순간, 클랜원은 나를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으며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나를 확인하자 반응은 또다시 변했다. 나는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는 클랜원을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시, 실은 뻥이었어요.”
“…네?”
흐느끼는 소리가 갑자가 가라앉았음은 내 착각일까.
“반응이 너무 예상외라서…. 잠시 진정들 좀 하시라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살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럼….”
“예. 정말로 돌아왔습니다.”
“…사라진다는 건, 거짓말?”
“흐흠. 그렇죠. 많이 놀라셨다면 미….”
그 순간.
“이…! 나쁜 사람…!”
짝!
말을 끝마치기도 전 눈앞에 불꽃이 튀기며 시야가 세차게 돌아갔다. 이어서 잠깐 진정한 듯 보였던 클랜원이 다시금 폭발적으로 달려들었다. 정하연이 가슴 정면으로 파고들어오는 것을 시작으로, 안현과 이유정이 양팔에 매달렸다. 나는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덤비듯이 있는 힘껏 껴안아오는 클랜원에 의해 결국에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파묻혔음에도, 정하연은 바로 앞에서 여전히 내 멱살을 잡고 있었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자, 장난….”
“장난? 그게 장난이라고요? 지금 장난해요? 제가, 아니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속앓이를 했는지…!”
“그러니까 장난 맞는…. 미, 미안해요.”
정하연이 울컥한 음성으로 말끝을 흐려 나는 곧바로 사과했다. 그냥 진정하자는 뜻에서 장난 한 번 쳐봤는데 생각해보니 심한 것 같기도 하다.
“이…. 이….”
정하연은 잠시 분노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돌연 슬픈 표정을 짓더니 선명한 푸른색 눈동자에 서서히 눈물이 괴이기 시작했다. 방금 뺨을 때린 게 그렇게나 마음에 걸리는지 천천히 내 볼을 만졌다가, 결국 내 가슴에 얼굴을 박고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아니. 비단 정하연뿐이 아니었다.
“아아아아아앙….”
“부뎨에에에에에에….”
여전히 주변에는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알아듣지 못할 괴성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우는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꽉 묻힌 손을 간신히 움직여 빼낸 후, 정하연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수, 숨 막혀….’
============================ 작품 후기 ============================
에…. 많이 늦었습니다…. ^_ㅠ 아니 아니. _(__)_
어제 집에 돌아오니까 19시 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어서 누웠는데, 잠깐 잔다는 게 일어나니까 24시가 훌쩍 넘어있더군요. 끄아아앙 비명을 질렀다가 후다닥 일어나 늦는다고 코멘트 올리고 집필에 들어갔는데…. 구상 적어둔 노트를 펼치는데 글이 두 개로 보이더군요. -_-a(이건 머리를 긁적이는 표정입니다.) 띵한 머리를 정상으로 되돌리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현재 시간은 오전 07시 23분. 이제 30분 안으로 샤워하고 밥 먹고 또 나가봐야 합니다. 사실 더 적을 내용은 있는데, 결국 구상 내 아랫부분은 넘김 표시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용이 조금 적습니다. 오늘은 그냥 쉬어가는 회 정도로 생각해주시기를 바라며, 부디 불민한 저를 매우 쳐주세요. ㅜ.ㅠ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아버지의 눈빛과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이 두려우므로 얼른 씻으러 가보겠습니다. 독자 분들 모두 활기찬 아침 보내세요! |ㅇ3ㅇ/(이건 만세하며 노래를 부르는 표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