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96
00695 새로운 보금자리. =========================================================================
“한 번은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임한나는 한참을 주저하다가 조심스레 운을 뗐다.
“왜.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으응. 마르가 네 실종 소식을 듣고 자기가 찾겠다고 난리를 쳤나 봐. 그래도 다행히 잘 어르고 달랜 것 같아.”
“마르가? 그건 다행이군.”
“그렇지? 아무튼, 안쪽 도시에 워프 게이트도 발견했다고 하니까. 한 번은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모두 걱정 많이 했거든.”
임한나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결국 한 번 가보라는 소리를 반복하며 말을 매듭지었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여하튼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면 진작 말이 나왔을 것이다. 또 하등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머리를 끄덕거리는 찰나, 정하연이 돌연히 끼어들었다.
“가시는 건 좋지만, 우선은 급한 일부터 해결하시는 게 옳지 않을까요?”
임한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급한 일이요? 잠깐 다녀오면 되는 일이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아직 워프 게이트를 막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잖아. 비비앙 때처럼 명분이 명확하다면 모를까. 혹시 누가 들어올까 봐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이번에도 절차다 허가다 해서 며칠은 필요할 걸?”
“아…. 그런가?”
“응. 그리고 사용자들은 지금 대단히 안달 난 상황일 거야. 이제 회담도 끝났겠다. 대표로 선정된 클랜들이 얼른 무언가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어. 그러니까 당분간은 통신용 구슬로 연락하면서 지내는 게 나아. 차라리 얼른 워프 게이트를 사용할 상황을 만드는 게 낫지.”
뉘 집 딸이길래 이렇게 똑소리를 내는 걸까.
정하연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지금은 황폐해진 도시를 복구하는 데 주력할 때라는 소리였다. 그러면 복구를 도와줄 거주민들의 이동이나 자재를 북 대륙에서 공수받아야 할 일이 생기니, 자연스레 워프 게이트도 활성화될 테고.
“그런데 참 웃기다.”
문득 이유정이 콧방귀를 뀌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우리가 나눈 대화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안달 났으면 자기들이 먼저 움직이면 되잖아. 꼭 우리가 앞장서서 이끌어주기를 바라나? 애새끼 심보도 아니고.”
…심경은 알겠지만 저건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현 상황이 독점이라면 모를까. 우리는 이제부터 다른 세 도시와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것도 가장 불리한 입장에서.
만일 이유정의 말대로 가만히만 있으면? 그때부터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다. 사용자가 활동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안전한 도시를 원하는 것처럼 도시도 사용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지극히 냉정하다. 별 볼일 없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등을 돌린다. 기껏 대표 클랜이 됐는데 유령 도시를 만들 수는 없잖은가.
어쨌든 어느 사용자나 시설 좋고 활동에 용이한 도시에 자리를 잡고 싶을 것이고, 우리는 그 기대에 부응할 필요가 있었다.
“나중에 돌아올 이익이 얼마나 어마어마한데,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 우리가 투자하는 건 당연한 거야. 초기 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에? 그러면 언니 말은 우리가 이 도시 전체를 복구해야 한다는 소리야?”
정하연이 핀잔 조로 말했으나 이유정은 숟가락을 꼭 물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정하연은 무어라 더 말하려는 듯 보였으나 그냥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어.”
어이없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이유정이 저런 식으로 말한다는 건 사실 내 탓이 크다. 아카데미 수료 후 이제껏 내내 자유 용병이라는 신분으로 달콤한 특권만을 누려온 입장이다. 그 반대의 어두운 일면은 조금도 맛보지 못했다. 일반 사용자의 처지를 알 리가 없으니, 저렇게 말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에는 철없는 생각이랄까.
“아무튼, 앞으로 엄청나게 바빠지겠네요. 청소만 해도 산더미인데 도시 복구도 신경 써야 하고. 차후 들어갈 돈은 또 어디서 조달할지….”
정하연이 걱정하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곳곳에서 떠들던 소음이 살그머니 가라앉았다. 아마 다들 앞으로의 일이 막막한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속으로 웃었다.
애초 자신이 없었다면 대표 클랜이 되겠다고 설치지도 않았고, 아니면 하다못해 다른 도시를 가져갔을 것이다. 가장 낙후됐다는 평을 받는 남쪽 도시를 가져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미 나름의 계획은 세워둔 상태였다.
‘유적이 꼭 밖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성 내부를 둘러보며 차분히 상념에 잠겼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스리슬쩍 드러내느냐는 건데….’
*
현재 사용자들이 최대 관심사는 무엇일까.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해서 사용자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행동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에 있다. 물론 권리 보장을 넘어서 구체적으로 바라는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요지는 보상 심리. 즉 죽을 고생을 다 해 아틀란타로 왔으니 이제 그 보상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이건 매우 당연한 기대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다. 여태껏 지지부진했던 회담으로 인해 논의되지 못했으니 이제는 확실하게 수면에 떠오를 때였다.
타 도시 대표 클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 관리 기구의 호출을 받게 되었다.
중앙 관리 기구의 실질적인 수장인 이효을은 통신용 구슬로 참석하기로 했다. 마음만 먹으면 워프 게이트를 사용해 직접 참석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무조건 조심해야할 때라며 스스로 거절했다.
그렇게 나와 형, 한소영, 공찬호가 참석한 회의는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현 쟁점을 잘 파악한 이효을이 이미 방안을 마련해왔거니와, 우리도 이효을의 의견에 큰 불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 사용자들의 권리 보장이 우리의 이득과 연결 되니만큼 불만이 있을 리가 없다.
(아으으으. 그럼 회의는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고. 여기서 대충 정리해보면….)
탁탁, 구슬 안에 비치는 이효을이 기록을 가지런하게 정리하며 목을 좌우로 꺾었다. 피곤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 얼굴 곳곳에 상당한 피로가 그늘지어 있다.
(우선 권리 보장 기간은 3개월. 그 기간에는 오직 공략에 참가한 사용자만이 아틀란타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워프 게이트가 아닌 직접 강철 산맥을 통과한 사용자에 한해서, 설령 공략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도 앞서 아틀란타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이건 다들 동의하시죠?)
이효을은 사용자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다는 가정 하, 강철 산맥을 횡단하는데 약 2개월 정도가 걸릴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 보장 기간이 끝날 때를 기다리는 사용자보다 최소에서 2주 최대 한 달까지 먼저 이용할 수 있다.
여기서 요지는 강철 산맥 내 중간중간 지어진 요새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강철 산맥은 이제 길 하나가 트였을 뿐, 아직 완전히 공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보다 길을 더욱 넓히고 요새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말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결국 이효을의 말인즉, 사용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안정화 작업을 실행하겠다는 소리였다.
(에…. 그리고…. 이제 워프 게이트 활용에 관해서 정리해야 하는데에에에….)
다음 화제로 넘어간 이효을은 고개를 한껏 젖히며 말을 끌었다. 시원스레 드러난 목울대가 꼴깍꼴깍 움직인다.
(후유. 사실 이 문제는 딱히 이렇다 할 방법이 없거든요. 거주민 지원이나 자재를 조달하려면 어쨌든 워프 게이트를 양방향으로 뚫어놔야 하는데, 그 틈을 몰래 이용하려는 사용자가 없다고 장담할 수가 없어요. 이건 그쪽도 마찬가지고요. 아는 사이라는 이유로 몰래 들어오도록 도와주는 경우도 있잖아요?)
다들 끄덕끄덕.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상호 철저한 통제하에 서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어요.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무조건 엄하게 벌하도록 하세요.)
이효을의 말대로 이건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북 대륙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는 이상, 사용자라면 누구든지 젖과 꿀이 흐르는 아틀란타를 탐내고 있을 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워프 게이트를 통해 살그머니 들어올 수도 있는 노릇이다. 당연히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거듭 말하지만, 현재는 아틀란타와 관련한 모든 게 보상이라 봐도 무방하다. 목숨 걸고 싸워 보상을 획득했는데 누가 슬쩍 숟가락을 얹으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다들 바쁘시죠? 그럼 회의는 이제 진짜 끝내도록 해요. 저분은 아주 입이 찢어지시겠네.)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던 공찬호는 눈을 크게 뜨며 떨떠름해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의가 파하고 성으로 돌아가니 클랜원들은 여전히 청소 삼매경이었다. 나는 그 중 몇 명만 따로 호출해 회의를 소집했다. 며칠간 청소에 매진한 결과 회의를 할 만한 공간은 그럭저럭 확보한 상태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1층에 한해서였고, 2층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내일부터 우리 머셔너리는 크게 3가지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중앙 관리 기구와의 논의 결과를 알려준 이후, 나는 클랜원들을 보며 손가락 3개를 펼쳤다.
“첫 번째. 성 청소. 두 번째. 차후 도시 복구 진행 및 감독. 세 번째. 북 대륙 정리 및 거주민 지원과 자재 조달.”
“네? 북 대륙을 정리하신다고요?”
정하연은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반문했다.
“예. 북 대륙으로 연락해서 타 도시로 진출한 지부는 물론, 모니카까지 포함해서 모조리 정리하라고 하세요. 앞으로 도시를 복구하는 데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갈 겁니다. 최대한 여러 군데에서 돈을 조달해야 해요. 북 대륙에 있는 것들을 정리하면 어느 정도 예산을 확보할 수는 있을 겁니다.”
“클랜 하우스 창고에 금화가 쌓여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그것 가지고는 부족할 테고. 그래도 쟁여놓은 장비나 보석을 정리하면….”
“그 정도로는 절대로 부족합니다.”
“그래도 너무 아까워요. 우리가 따로 세금을 내는 것도 아니고, 계속 두면 꼬박꼬박 이익이 나올 텐데….”
이 말도 일리는 있는 게 우리의 신분 특성상 들어오는 수입은 그대로 이득과 직결된다. 그러나 정하연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이 홀 플레인이라는 세상에 머무를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 북 대륙에는 머셔너리 아카데미를 제외하면 더 이상 미련이 없다. 길어야 2년. 그 안으로 제로 코드를 쥐고 지구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아틀란타의 안정화가 최우선 과제였다.
“어차피 지금도 많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아틀란타에 무게감이 실리는 만큼 들어오는 이득도 계속 줄어들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리하기도 어려워질 거고요. 그러느니 차라리 지금 깔끔하게 정리하고, 더욱 이득을 볼 수 있는 곳에 집중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자 정하연도 딱히 할 말은 없는지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였다. 여전히 아쉬운 감은 남아 있지만, 내 의지가 확고함을 깨달은 듯하다.
“다음으로…. 첫 번째는 계속 하던 대로하면 되겠고. 아. 청소는 애들 위주로 시키세요. 애들한테 감독 역할을 맡기는 건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말에는 이견이 없는지 모두가 수긍하는 빛을 드러냈다. 특히 정하연이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며 깊은 공감을 표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두 번째. 차후 도시 복구 진행 및 감독.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하죠. 이건….”
쾅!
“형! 형! 혀어어엉!”
“오빠빠빠빠빠빠빠!”
그때였다. 이제 가장 중요한 안건을 말하려는 찰나, 갑자기 문이 열림과 동시 두 사용자가 호들갑을 떨며 뛰어 들어왔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득달같이 달려오는 두 명은 안현과 이유정이었다.
“방금 누가 문 세게 찼어. 그리고 너희 청소하는 중 아니야?”
“얘들아. 지금 회의 중인 거 안보이니?”
입을 벌린 채로 가만히 있자 고연주와 정하연이 호되게 야단쳤다. 이쯤이면 찔끔할 법도 한데, 안현과 이유정은 여전히 잔뜩 흥분한 채 꽥꽥 소리를 질렀다.
“아니 형 누나들. 한 번만 들어보세요. 이거 진~짜! 정~말 대박 사건이라니까요?”
“입 다물어. 조용히 해. 진짜든 정말이든, 지금 굉장히 중요한 얘기 중이야. 자꾸 시끄럽게 하면 화낼 거야.”
“아 언니! 한 번만 들어보라니까? 방금 우리가 성 탐험을 하다가….”
“뭐? 성을 탐험해? 이것들이 정말! 하라는 청소는 안 하고!”
결국에는 정하연이 크게 화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무언가 심상찮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유정이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도와달라는 듯 눈을 빛냈다. 나는 숨을 길게 흘렸다.
“뭔데. 말해봐.”
“수현!”
“한 번 들어봅시다. 들어보고 대박 사건이 아니면 그때 가서 혼내도록 하죠.”
“…….”
정하연은 애들을 한 번 강하게 흘겨봤으나 결국에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어디 한 번 말해보라는 듯 척 팔짱을 끼기까지. 어느새 조용해진 둘은 서로 눈치만 보더니 이유정이 팔꿈치로 안현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깜짝 놀란 안현이 더듬거리며 말을 잇는다.
“에…? 그러니까…. 저희가요. 바, 발견을 했거든요?”
“발견?”
“예. 그…. 정확히는 솔이가 발견한 건데요.”
“……?”
안솔이?
‘아.’
그 순간 한 생각이 번뜩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시선을 느낀 걸까.
안현은 곧 활짝 웃어 보이더니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예! 우리 복덩이가 한 건 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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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araKiri : 독자 손은 약손. 우락부락 건장한 로유미 님이 되시기를 기원할게요.
Sol ) 정말로 감사합니다. 얼른 나아서 본연의 야성적인…. 아니 잠깐만요. 저 배아플 때 누가 약손 해주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코멘트 보고 정말 감사하다고, 꼭 야성적인 모습을 되찾겠다고 적으려 했는데 뒤에 제 호칭을 보고 멈칫했네요. -_-+
2. 골든보이84 : 생리통? 작가 진짜 여자였음?
Sol ) 아니요. 어제의 배 아픔은 순수한 복통이었습니다. 제 염색체가 XY인데 달거리를 할 리가 있나요. 그건 여성분들이 하는 거랍니다. 저는 대단히 거칠고 야성적인 사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