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701
00700 고맙네. 그리고 미안하네. =========================================================================
머셔너리 클랜의 약진!
남쪽 외 도시에 생겨난 변화는 입 소문을 타고 널리 퍼졌다. 시시콜콜한 사정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사용자들의 입을 거쳤다. 애초 모든 도시가 통로로 이어져 있는 터라 아틀란타 구석구석까지 미치는데 며칠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특히 광장을 마력석으로 재건한다는 소문은 아틀란타 내 모든 마법사의 이목을 끌었다. 거듭 말하지만 마력석은 매우, 대단히 가치가 높은 물건이다.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건 둘째치고서 라도 흔하게 널린 게 아니었다. 매물도 없는 편이라 가격도 비싸다. 아마 1g당 최소 금화 두 개와 거래된다지?
특히 광장에 공지한 사용자 모집 사항은 머셔너리 클랜의 격을 한층 올려주었다. 첫 모집부터 상당한 금화와 성과 분배라는 어마어마한 공약을 걸었으나 너무 조건이 좋으면 되레 의구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사람, 아니 사용자라면 한 번쯤은 가질 법한 의심이었다.
그러나 복구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아, 그러한 의심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 조건은 정말로 좋은데, 정말 공약대로 이행될까?
정말로 이행됐다. 작업에 참여한 사용자는 약속한 임금은 물론, 각종 시간 외 수당까지 당일 기준으로 철저하게 지급받았다.
– 이런저런 이유로 임금을 깎는 게 아닐까?
그런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개인 참여도에 따른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법사의 주문 한 소절까지도 상세하게 계산해 모조리 보수로 지급했다.
– 돈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필요 이상의 노동을 시키는 건 아닐까?
그런 것도 없었다. 애초 합의한 근무 시간이 끝나면 계약은 확실하게 종료된다. 이후 근무를 끝낼지 연장을 할지는 전적으로 사용자의 선택에 달렸다.
이 모든 것들이 며칠도 지나지 않아 아틀란타 구석까지 퍼졌고, 사용자들의 호응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가장 고임금을 받는 마법사의 경우, 시간당 평균 금화 두 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라. 오전에 탐험을 떠났다가 오후에 되돌아와서, 한 5시간만 일해도 번쩍거리는 금화 열 개가 손에 떨어진다. 그러면 한 달을 일 하면 300 금화. 권리 보장 기간이 끝날 때까지 일하면 900개의 금화가 굴러들어오는 것이다.
그 정도면 캐러밴 기준으로 소박, 개인을 기준으로 중박으로 볼 수 있는 금액이다. 세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면 중박의 성과를 올린 것과 진배없게 되는 셈인데, 과연 누가 마다할 수 있으랴. 이 정도면 어디서 구할래야 구할 수 없는 꿀 아르바이트인데.
사용자들의 호응이 폭발적으로 높아지자 머셔너리 클랜도 갑자기 분주해졌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하루하루 바쁘게 뛰어다녔다. 가끔 몇 명이 너무 피곤하다며 불만을 내비쳤으나 어디까지나 말뿐이었다. 힘들다 말하면서도 정작 얼굴은 웃고 있었다.
김수현의 생환 이후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해결됐고, 어렵던 일은 돛을 단 배처럼 순항에 순항을 거듭했다. 거기다 오며 가며 듣는 소속 클랜의 호평은 절로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최근 클랜원들 사이로 ‘이걸 클랜 로드가?’ 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처럼 번질 정도였다.
남쪽 외 도시는 갑자기 불어온 새로운 바람에 흥분하며 연일 들끓었다. 그러나 막상 김수현은 차분했다. 필요 이상으로 들뜨지 않았다. 클랜원들처럼 바쁘게 뛰어다니는 건 아니었지만, 모든 일을 두루 살피며 도시 복구 작업에 오롯이 집중했다.
그렇게 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
“오빠! 빨리요! 우리 빨리 가요!”
화창한 아침.
주변서 분주한 외침과 시끄러운 공사 소음이 한창 들려오는 가운데, 거리로 달려나간 김한별이 빙글 몸을 돌려 외쳤다.
그러나 계속 느긋하게 걸어가자 자못 갑갑한지 양손을 모아 한 번 더 빨리 오라고 소리쳤다. 거참. 그냥 천천히 좀 가지. 가면서 복구 현황도 구경하고 말이야. 늦게 간다고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워프 게이트로 가면 금방이잖아.
허나 김한별은 마음이 급한지 발을 동동 구르며 빨리 오기를 종용했다. 평소의 성격에 비추어보면 보기 드문 행동이다. 하지만 나는 이해하기로 했다. 왜냐면 오늘은 북 대륙으로 가는 날이니까.
지옥에서 돌아온 이후, 임한나는 내게 북 대륙으로 가볼 것을 권했다. 물론 살아 돌아온 이상 한 번쯤 가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때 뉘앙스는 내가 없는 동안 모종의 사정이 있음을 암시했다. 그러니까 그냥 얼굴만 비추러 가는 게 아닌, 무언가 가봐야 할 일이 생겼다는 기분이랄까.
큰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화급을 다투는 일이라면 진작 보고를 받았을 테니까. 어쨌든 정하연의 말대로 나는 우선 도시 복구에 집중하는 걸 선택했다. 그리고 작업에 어느 정도 탄력이 붙은 지금, 잠깐의 짬을 내 북 대륙으로 가보는 것이다. 겸사겸사 마르도 보고 말이지.
혼자 가는 건 아니었다. 내가 북 대륙으로 간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 김한별이 자기도 가고 싶다고 요청했다. 하기야 나와 같이 돌아온 처지인 만큼 거부할 이유는 없어 가볍게 허락해주기는 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성 앞에서 만났을 때는 조금 놀랐는데, 왜냐면 외모나 옷차림에 상당한 힘을 주고 나왔기 때문이다.
반짝거리는 예쁜 귀걸이는 애교라고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상체는 부드럽고 얇은 천을 걸치고 붉은 허리끈을 꽉 묶어 늘씬한 허리를 강조했다. 하체는 검은빛 얇은 망사 스타킹을 신어 훤칠한 다리를 관능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아주 살짝 노출된, 우윳빛 살결이 흐르는 허벅지 윗부분이 매력 포인트였다.
그뿐일까. 알게 모르게 은은한 사향도 풍기는데, 아무래도 꽤 신이 난 모양이다. 예전 허름한 로브 하나만 걸쳤을 적과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옷차림이다.
“오빠! 빨리 가자니까요! 지금 일부러 늦게 오시는 거죠?”
“알았어. 알았다고. 왜 이렇게 급해.”
“정말. 자꾸 그러시면 저 먼저 갈 거예요?”
“…….”
…그래. 그렇게나 빨리 가고 싶다는 말이지?
우뚝 걸음을 멈췄다. 빨리 오라고 손짓하던 김한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호흡을 추슬렀다. 이어서 급격히 마력을 일으키는 동시에 궁신탄영을 발동했다. 퉁, 몸이 뜨는 느낌에 이어 삽시간에 김한별을 지나칠 수 있었다.
“가자. 빨리.”
옆을 지나치면서 한 마디 던진 후, 나는 전력으로 거리를 달렸다. 김한별은 멍한 빛으로 나를 돌아보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나는 민첩 능력치가 98 포인트인 근접 계열이고, 김한별은 마법사다. 하하하.
이윽고 탁탁탁탁! 죽자사자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 오빠! 같이 가요!”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 애절한 등 뒤로 외침이 터졌다.
왜? 빨리 가고 싶다며?
나는 들은 체 만 체 계속 달려 통로 안으로 쏙 들어갔다.
“오빠, 오빠…! 야! 이 바보 멍청이 오빠야!”
응…?
*
한바탕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무사히 통로를 지나 내 도시 워프 게이트로 도달할 수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워프 게이트 앞에서 시침 뚝 떼고 기다리고 있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늦게 온 김한별을 보고 빙긋 웃으며 ‘왔어? 많이 늦었네.’ 까지 말했다면 완벽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렁그렁한 눈으로 비척비척 걸어오는 김한별을 발견한 순간, 계획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사용자와 거주민을 막론하고 엄청난 시선을 받아야 했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천하의 나쁜 놈이 돼버린 기분을 느꼈다. 결국에는 달려가 김한별의 손을 잡아준 후 황급히 워프 게이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북 대륙으로 이동을 완료한 이후.
워프 게이트 인근 북적거리는 인파를 헤치고 나오고 나서, 나는 비로소 모니카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도시의 거리는 여전했다. 조금 한산한 것만 제외하면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어차피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감회가 새롭다는 기분이 들었다.
“…가자.”
잠시 도시를 구경하다가 클랜 하우스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조금 낯설기는 했지만 이미 수천 번은 들락거린 거리다. 머리는 여전히 길을 기억하고 있어 우리는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클랜 로드!”
클랜 하우스 정문에는 이미 여러 클랜원이 마중 나와 있었다. 어제 통신용 구슬로 연락할 때 환영 인사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말 한 번 지지리도 안 듣는다. 물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고, 사실 고맙기는 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하는 조승우와 손을 맞잡았다.
“정문까지 나오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이러면 정말로 부담스럽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어제 연락하지 않았나요?”
“하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죠? 아무튼, 들어오시죠. 하하하.”
물음에 물음으로 받아친 조승우는 손수 정문을 열어 안내했다. 나는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머리를 갸웃했다. 무언가 허전하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마르는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유미나 도도는요?”
“아.”
조승우가 몸을 멈칫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안타깝지만, 지금 클랜 하우스에는 없습니다.”
“흠. 없다? 어디 밖에 나가기라도 했나요?”
“예. 아마 이르면 오늘 밤, 늦으면 내일 오전 중에는 돌아올 겁니다.”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연락을 조금 일찍 주셨으면 좋았을 겁니다. 사실 연락도 어제 처음 주신 거 아닙니까?”
조승우가 설명해주겠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나는 멍하니 머리를 끄덕였다.
“사실 어디로 가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물어보니 마르는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디선가 기도를 하는 것 같더군요. 클랜 로드가 살아 돌아오기를 말이죠.”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제가 생환한 사실은 이미….”
“예. 들었죠. 바로 말해주기도 했고요. 그런데 믿지를 않습니다.”
“아니. 왜요?”
“클랜 로드께서 직접 연락한 것도 아니거니와…. 보고 싶다고, 자신이 직접 가서 보겠다고 해도 우리가 가지 못하게 막았으니까요. 사실 현재 아틀란타로의 이동은 금지돼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건데, 그걸 어른들이 자신을 위해서 거짓말하는 거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아니. 그런 사정이 있었다면 저한테 연락을….”
조심스레 말끝을 흐리자 조승우가 지그시 나를 응시했다.
“그러려고 했는데 많이 바쁘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머셔너리를 둘러싼 아틀란타의 상황도 상당히 좋지 않다는 말도 들었고요. 괜한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고, 또 상황이 정리되는 즉시 오시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나 조승우의 음성에는 ‘정말 너무하십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어조가 깔려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 없다는 기분에 나는 입맛을 쩝 다셨다. 조승우는 가볍게 숨을 흘렸다.
“어쨌든,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도 처음에는 무척 걱정했는데, 항상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오니까요. 그러고 보니 마르도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아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그렇군요….”
나는 천천히 대꾸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클랜 하우스 또한 예전 그대로였다. 네모 반듯한 건물과 오른쪽에 지어진 별관, 그리고 입구부터 건물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정원…. 작은 돌 연못….
‘…어?’
그러나 왼쪽 끝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나는 눈동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걸 느꼈다.
“자~. 그럼 클랜 로드. 우선은….”
조승우는 무언가 모르게 어색한 몸놀림으로 내가 보는 방향을 가렸지만, 곧 멈칫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유심히 나를 바라보던 조승우는 돌연 쓰게 웃었다.
“…이런. 벌써 보셨군요.”
조승우가 몸을 비켰다. 그러자 다시 보이는 정원의 풍경에 덩그러니 놓인 두 개의 무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마르나 영수들은 그렇다고 치고.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또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
“할아버지는요…?”
김한별도 무덤을 본 걸까. 살짝 떨리는 음성이 조승우를 향한다.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졌다.
“음….”
조승우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까만 해도 활기차던 눈동자가 아래로 가라앉고 입에서는 끓는 듯한 신음만이 흘러나온다. 무언가 심히 갈등하는 것 같은 기색이 역력했다.
“실은….”
하지만 곧 결정을 내린 듯, 결연히 머리를 들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선 클랜 로드께서는 집무실로 가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조승우는 곧바로 내 어깨 너머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한별 씨도요. 숙소로 가보세요. 어서.”
*
조승우는 4층 집무실로 가보라고 말했다.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 4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잠깐의 심호흡을 거친 후 망설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방 내부는 깨끗했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청소를 잘해놨는지 벽면에 먼지 하나 보이지 않는다. 서재고 소파고 모두 그대로였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자 문득 눈에 밟히는 게 있었다. 텅 빈 책상에는 창문을 투과해 들어온 빛이 한 가득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
빛의 중앙에는 빛 바랜 기록 하나가 쓸쓸하게 놓여 있었다. 나는 멍하니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기분으로 기록을 들고 조심스레 열었다.
잠시 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쓴 게 분명한 글자가 빼곡하게 눈에 들어왔다.
…우선은 읽어볼까.
『김수현…. 클랜 로드….
으음.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모르겠군.
자네. 자네에게.
그래. 이게 낫겠어.
자네에게.
자네가 지금 이걸 읽고 있다는 건, 내가 치밀어 오르는 창피함을 참고 이 기록을 찢지 않아서겠지. 한편으로는 자네가 무탈하게 돌아왔다는 소리기도 할 테고.
비록 직접 보면서 말 못하는 점은 아쉬우나, 그래도 여기 몇 자 남길 수는 있겠군.
우선은 축하하네. 자네가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사실은 이 기록을 남겨야하나 말아야하나, 깃펜을 들기 전 며칠 동안 심사숙고를 했어. 그냥 조용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으나, 아무래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말일세. 결국에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깃펜을 들게 됐으이.
아마 눈치 빠른 자네라면 오면서 봤을 거라 생각하네. 정원에 있는 두 개의 무덤을 말이야. 아니면 조승우가 벌써 말했을 수도 있고.
뭐, 우선 잘못 본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군.
음…. 아. 여기서 어떻게 말을 할까 고민하다 보니, 갑자기 3년 전 자네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르는군. 그러고 보니 참 신기했어. 복장은 이게 갓 아카데미를 수료한 복장인데, 왜 그렇게 관록이 느껴졌는지.
그때 조금 틱틱거렸던 건 미안하네. 사실 자네가 오기 전 찾아온 사용자와 대판 싸운 후였거든. 그래서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대했던 것 같아. 음? 왜 갑자기 고해성사를 하는 기분이 드는 겐가? 하하하.
아무튼, 사실 그때의 나는 원래 생에 큰 미련이 없는 상태였네. 그냥 도시 한구석에서 조용하게 여생을 마무리할 생각이었지.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자네라는 사용자에게 관심이 가더군.
아니나 다를까. 몇 달 후, 자네는 번듯한 한 클랜의 로드가 되어 돌아오더라고. 고작 몇 달 만에 말일세. 그리고 볼 것 없는 늙은이에게 클랜 가입 권유까지.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때 처음에 거절하고 후회 좀 했네. 흠흠.
그래서 그랬던 걸까? 자네가 내가 흘리듯이 한 말을 잊지 않고 정말 한별이를 데리고 와주었을 때, 나는 무척 기뻤어. 공교롭게도 덕분에 부랑자의 습격에서 살아남을 수도 있었지. 아마 그때부터 나한테도 새로운 인연이 찾아오고, 시작되었던 것 같아.
사실, 자네가 어떤 생각으로 나를 데려왔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네. 아마 자네는 서운하게 여겼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군. 기껏 데려왔는데, 하는 건 없고 밥이나 축내고 있으니 말이야. 허허.
물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는 있었겠지. 허나 이해해주게. 나는 나날이 발전하는 머셔너리 클랜을 보면서, 그냥 한 걸음 물러난 채 지켜보는 늙은이로 남고 싶었네. 가진 거라고는 나이와 늙어버린 몸뚱이밖에 없는데, 그걸 이용해서 굳이 설자리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거든.
여하튼 자네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자네는 내게 아주 잘해주었네. 일선에 나서기를 바라지도 않고, 그냥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게 해주었지. 어떤 이는 뒷방 늙은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해. 원하는 대로 조용하게 보냈으니까.
으음…. 그리고 이건 아까 말하려던 건데.
뭐, 내 몸에 관한 사정은 따로 말하지 않겠네. 늙은이 가슴에 담은 이야기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어차피 추억은 진작 가슴에 새겼고, 이제는 천천히 갈무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그러니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어.
언젠가 세월은 가고, 백발은 오네.(자네도 50년, 아니 40년만 더 살아보게. 그럼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야.) 이미 가버린 청춘을 우수로 막지 못했는데, 오는 백발을 어찌 좌수로 막을 수 있겠나.
아무튼, 다른 이들한테는 내가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어. 안 그대로 바쁠 텐데, 괜히 이것저것 신경 써서 뭐하겠나.
아. 그리고 한별이한테 잘 좀 대해주게. 그런 눈치라고는 밥 말아 먹은 자네에게 무얼 기대하는 건 요원하겠지만…. 쩝. 아쉽지만 늙은이의 참견은 여기까지만 하겠네. 왜냐면 조금 전부터 자꾸만 눈이 감겨오거든.
후. 막상 적기 시작할 때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막상 적고 보니 횡설수설한 기분이 드는군.
여하튼 그냥 늙은이 하나 갔다고 여기고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이미 먼저 가버린 친구가 있으니 적어도 쓸쓸하지는 않을 것 같으이.
개인적인 부탁이 하나 있다면, 그냥 적당한 무덤 하나만 남겨주었으면 좋겠네. 그 친구 옆에 말이야. 그래도 눈비는 막아주고 몸 편히 누울 집 하나는 있어야지 않겠는가. 물론 조금 춥기야 하겠지만, 그 친구와 서로 등 비비며 견뎌볼 생각이네. 겨울 지나면 봄 오네.
그럼 그저 가끔 생각나면 둘러줄 정도의 관심만 남아 있기를 바라며, 이만 줄이겠네.
그동안…. 정말 고마웠네. 그리고 이렇게 말없이 가버려서 미안하네.
부디 자네가 홀 플레인에서 뜻한 바를 이루기를 바라며.
이만성.』
============================ 작품 후기 ============================
어느새 700회네요.
사실 700회는 00시 00분에 올리고 싶었는데, 보시다시피 내용이 조금 많습니다. 조금 특별한 의미를 두고 싶기도 했고, 또 어제 부족한 분량을 벌충하고도 싶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부득이하게 늦게 되었네요. 부디 이 점 독자 분들께 깊은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하하하.
코멘트 살짝 보고 왔습니다. 벌써 축하해주시는 코멘트가 많이 달렸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 또한 완결까지 더욱 힘내서 달리겠습니다. 🙂
아. 그러고 보니 조아라에 웹툰이 생겼네요. 사실 저는 웹툰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네이버, 다음 모두 꼭꼭 챙겨보는 편이에요. 그래서 조아라에 웹툰이 생긴걸 격하게 환영하고 있습니다. 후후.
개인적으로 조아라 웹툰 중에서는 가장 재밌게 읽은 건 ‘제피가루’ 작가 님의 ‘나는 몹(I Am Mob).’ 이라는 작품이에요. 소재도 신선하고 이야기를 재미나게 잘 풀어나가 주시더라고요. 1편을 클릭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10편까지 읽었다는 비화가…. ㅋㅋㅋㅋ.
혹시 웹툰 좋아하시는 독자 분이라면 자신 있게 추천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