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706
00705 천사의 의뢰. =========================================================================
소환의 방으로 들어간 순간.
“오랜만입니다. 사용자 김수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예상한 그대로의 고요한 음성이 나를 반가이 맞이했다.
어두운 공간을 밝게 비추는, 은은한 빛이 흘러내리는 은색의 머리카락. 잔잔한 호수를 연상케 하는 연녹색 눈동자.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반투명한 날개. 중앙 제단에는 세라프가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잠시 그 시선과 마주하다가, 나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로, 정말로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찾아와주시니 제 마음이 다 놓이는 것 같습니다.”
세라프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고요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애틋한 기색이 깔려 있다. 마치 자주 찾아와주기를 바랐던 것처럼.
“그래. 오랜만이기는 하지.”
스스로 들어도 무뚝뚝한 음성이었다. 일부러 그런다기보다는 천사 앞에만 서면 자연스레 말이 곱게 나오지 않는다.
세라프의 표정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길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차분히 매만지면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왼쪽으로, 또 오른쪽으로. 마치 무언가 찾기라도 하듯이.
“왜?”
“아…. 혹시 그 아이는?”
그 아이? 마르를 말하는 건가?
“마르? 마르는 왜?”
“그냥….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잘 지내고 있어. 그런데 네가 관심 가질 일은 아니지 않나?”
“…네?”
“앞으로 여기 데려올 생각도 없으니까 신경 꺼도 돼.”
“…그렇습니까.”
세라프의 눈동자에 언뜻 서운한 빛이 스쳤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이 살짝 굳은 것 같기도 했다. 딱히 별다른 기분은 들지 않는다.
품에서 연초를 꺼내 불을 붙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동안 여러 일을 겪으면서 궁금한 게 이래저래 쌓였거든. 여하튼 내가 왜 찾아왔는지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네. 물어보십시오. 저 또한 도우미로서 최대한 성심껏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공개가 가능한 정보라면 말입니다.”
세라프의 음성은 무심했다. 태도가 조금 변한 것 같다면 내 착각일까.
“우선은 칭호.”
허공에 사용자 정보를 띄웠다.
1. 이름(Name) : 신살자(神殺者) – 김수현(3년 차)
2. 클래스(Class) : 검술 전문가(Secret, Sword Specialist, Master)
3. 소속 국가(Nation) : 자유 용병(Free)
4. 소속 단체(Clan) : Mercenary(Clan Rank : S Zero)
세라프는 고개를 갸웃했다.
“칭호 말입니까?”
“응. 갑자기 칭호가 생겼다는 메시지가 뜨던데? 처음 보는 메시지야.”
“맞습니다. 칭호는 이번에 새로 만들어낸 설정입니다.”
“새로 만들었다고?”
되묻자, 세라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Yes. 아시다시피, 사용자 김수현은 여태껏 무수한….”
“업적을 이뤘습니다. 우리 모두는 크게 감탄하고 있습니다.”
말을 따라 하면서 끊어버리자 세라프가 황당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괜히 이상하게 말 돌릴 생각 말고 얼른 본론이나 말하라는 뜻이었다.
“…그로 인해 얻어낸 이득으로, 사용자들에게 일종의 동기를 부여하려는 목적으로 새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칭호는 사용자의 업적과 연관돼 구현되는 시스템입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상용화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세라프는 간단하게 말하고 나서 입을 꾹 다물었다.
“상용화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한테는 생겼잖아. 신살자.”
“아직,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용자 김수현의 경우는 시범 사례입니다. 가지고 있어서 나쁠 건 없습니다.”
나는 사용자 정보를 흘끗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무슨 효과가 있는데?”
“칭호에 따라 다릅니다.”
“그걸 누가 몰라. 신살자 물어보는 거잖아.”
“…신살자는.”
세라프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반신의 경지에 오른 쿠샨 토르를 살해함으로써 생긴 칭호입니다. 말인즉 신격을 지닌 존재를 죽였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칭호를 가지고 있으면 어느 신역에든 마음껏 출입할 수 있고, 또 상황만 맞으면 신과 독대하는 이벤트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신역 출입. 신과 독대. 별로 장점은 느껴지지 않는데.”
“신과 거인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딱히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아득한 신화 시절, 거신 전쟁에서 가장 크게 활약한 쿠샨 토르의 죽음은 신들의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혹여 만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무언가 보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흠…. 보상이라.”
보상 얘기가 나오자 조금은 구미가 당겼다. 허나 신과의 만남은 흔한 일이 아니거니와, 지금 바로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다. 세라프의 말대로 가지고 있으면 나쁘지 않은 정도였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좋아. 그건 그렇고. 북 대륙 수호자가 실종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보아하니 사용자 이효을의 말을 듣고 오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세라프가 내 말을 끊었다. 여전히 반응 없는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북 대륙 사용자가 실종된 건 맞습니다. 허나 우리도 알고 있는 건 그것뿐입니다. 사용자 이효을이 개인적으로 도움을 청했을 뿐이지, 사용자가 김수현이 크게 관심을 가질 일이 아닙니다.”
왠지 아까 했던 말이 그대로 되돌아오는 것 같은데. 그것도 가시가 잔뜩 돋쳐서.
여하튼 세라프의 말은 이해했다. 하기야 어지간하면 간섭하지 않는 천사의 특성상, 현재의 관심사는 ‘맹아라의 생사’가 아닌, ‘새로운 수호자를 선출할 것인가.’일 것이다.
그런데.
“그럼 마지막으로….”
그래서 더욱 이상하다. 그러니까 일관성이 없다. 사용자를 실험실의 생쥐처럼 생각하고, 하물며 수호자의 안위에는 관심도 없는데. 갑자기 타 대륙 사용자의 안위에 관심을 가진다?
“서 대륙 사용자를 구출하라. 이건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현재 서 대륙 사용자는 무법자에 쫓기는 중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도망쳐오는 서 대륙 사용자를 구출하고 안전하게 데리고 와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무법자?”
“서 대륙의 부랑자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나는 머리를 세게 헝클었다. 세라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 세라프. 왜 게네들이 쫓고, 쫓기는 건데?”
“그건 우리도 잘 모릅니다. 허나 아마 무법자는 탈출한 사용자가 다른 대륙에 도움을 요청하는걸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즉 현재 서 대륙의 상황을 숨기려는 목적으로 쫓는 게 아닐까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황을 숨긴다? 입막음 때문에 쫓는다는 소리야?”
“Yes. 현재 서 대륙의 상황은 굉장히 좋지 못합니다. 북 대륙처럼 사용자가 정상적으로 활동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 순간 한 생각이 번뜩 뇌리를 스쳤다.
“잠깐만. 그럼 설마….”
“무슨 말씀을 하려는지 알 것 같으나, 구출은 합병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저 서 대륙은 자체 정화 작업이 힘들다고 판단, 무법자를 제외한 정상적인 사용자를 구원하려는 겁니다. 인간의 개념으로는 피난 또는 이민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여담입니다만. 현재 서 대륙 사용자는 대다수가 남 대륙 쪽으로 이주하고 있고, 그쪽 역시 훨씬 많은 무법자가 쫓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라프의 말이 폭풍처럼 이어졌다. 나는 지끈거리기 시작한 이마를 누르며 하나씩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서 대륙의 상황이 안 좋다.
완전한 무법 지대로 변했고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하다.
결국 소수의 정상적인 사용자가 다른 대륙으로 이주하기로 했는데, 무법자가 입막음을 목적으로 쫓아오고 있다.
천사는 우리가 무법자에게서 서 대륙 사용자를 구출하고 안전하게 데려오기를 원하고 있다.
좋아. 여기까지는 이해했다.
그런데 아직 하나가 남았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하나. 누군가가 최대한 신속히 서 대륙 사용자를 구원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용자 김수현 정도면 충분히 우리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
“왜?”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수호자의 안위는 생각도 않으면서, 왜 서 대륙 사용자의 구출은 이렇게 나서주는 거지?”
그때였다. 찰나의 순간이기는 했지만, 세라프의 두 눈에 동요하는 빛이 스쳤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무언가 사정이 있다. 그것도 매우 커다란 사정이.
“그건….”
세라프가 조용히 운을 떼었다.
“사용자 김수현에게는 밝힐 수 없는 정보입니다.”
“뭐?”
“이 의뢰를 받기 싫으신 겁니까? 보상은 섭섭지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야. 너 지금….”
“그러면 거부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북 대륙으로 쫓아오는 무법자의 수는 그리 많은 편도 아닙니다. 굳이 사용자 김수현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용자에게 충분히 의뢰할 수 있을 수준입니다.”
“세라프!”
그 순간 눈동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금…. 장난해?”
으르렁거리며 묻자, 세라프가 가는 한숨을 흘렸다.
“얼마 전 하나의 안건이 있었고, 그 안건은 조건부로 통과됐습니다.”
“그런데.”
“이 의뢰는 그 안건의 통과에 걸린 조건 중 하나입니다.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것뿐입니다.”
“그 안건….”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왠지 썩 좋은 안건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
“너는 그 안건에 찬성했나?”
“…그렇습니다.”
세라프가 눈을 질끈 감으며 간신히 말했다. 마치 말을 토해내기라도 하듯이.
나는 입을 싱겁게 터뜨렸다.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내가 천사한테서 무엇을 기대한 걸까. 원래 이런 존재들인데.
“하려면 닥치고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하기야. 너희가 항상 그렇지. 잠깐 잊고 있었나 봐.”
세라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는 선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사용자 김수현.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글쎄. 사정은 모르겠지만 오해는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의뢰? 받아들일게. 너희가 고생해서 무대를 만들었으니까, 이번에도 열심히 춤추면 되는 거 아냐?”
“그게 아닙니다. 이건 사용자 김수현의 염…!”
“시끄러워! 너는 예전에도…!”
나와 세라프의 목소리가 겹쳤다.
벌컥 말을 이으려는 찰나, 순간적으로 아차 하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 1회 차 일을 들먹일 뻔한 것이다. 바로 입을 다물고 쳐다보자, 공교롭게도 세라프도 아차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염…?
이윽고 불편하고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
“…….”
우리는 한참을 서로 노려보았다. 세라프는 입을 꽉 다물었다. 여전히 고요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으나, 살짝 벌어진 입술이나 날개가 묘하게 떨고 있다. 나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래서 신전, 아니 소환의 방에 오는 게 싫다. 올 때마다 싸우는 것도 싫고, 자신이 피해자라도 된 것 마냥 저렇게 애처로운 모습을 보는 것도 꼴 보기 싫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이미 끝까지 타버린 연초를 버리고 세게 밟아 비볐다.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사, 사용자 김수현….”
그러자 아련한 음성이 귓가로 흐르듯이 들어온다. 마치 이대로 가지 말라고 붙잡는 것처럼.
우뚝 걸음을 멈췄다.
“고맙다. 세라프.”
이를 악물며 머리를 돌렸다.
“네…?”
제단에서 몸을 반쯤 일으키던 세라프가 눈을 살짝 치떴다.
그렇게 포탈에 몸을 묻기 직전.
“고맙다고.”
나는.
“항상 역겨운 존재로 남아 있어줘서, 정말로 고맙다.”
나직한 목소리로 진심을 담아 말했다.
============================ 작품 후기 ============================
1. Stacato / 로유진 님 할 말이 있어요…. 그건 바로….
2. nonononame / 로유미 님. 메모라이즈에 대해 할 말이 있는데요…. 사실 이 소설 말이죠….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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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ㅣ뭉궁금하다아아아니ㅏ로구ㅡㅜㅇㄱ음나궁금해어ㅏㅁ구궁금ㅈ야밎앙너ㄴ이ㅑㅇㅏ#*@(#ㅃ&@(#*$#)(*!
아니. 세상에. 독자 님들. 이러시는 게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내용이 절단 마공이라고 느끼셔도 그렇지. 어떻게 코멘트를 절단할 수가 있나요? 네?
아니 정말로, 어떻게. 아니 지금 말이 잘 안 나와요. 아무튼 저도 어떻게 보면 독자인데, 코멘트로 절단하시는 독자 님은 처음 봅니다.
오늘 회 올렸으니까 얼른 코멘트 이어서 써주세요! 궁금해 죽겠어요. 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