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722
00721 마력(魔力) 숙녀 Vs 행운(幸運) 소녀. =========================================================================
하승우, 하승윤.
사라 제인, 엘리자베스 예시카.
이번에 새로 들어온 네 명의 사용자. 아니. 머셔너리 클랜으로 가입했다고 말하기에는 약간 이른 감이 있다. 들어온 지 며칠이라는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아직 공식적인 자리에서 받아들인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상황이 묘해졌다. 원래는 사라와 엘리자베스까지 받아들이고 클랜 정비를 마치려 했으나 하승우가 발목을 잡았다. 물론 애초 받지 않으면 될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하승윤의 천재성은 차치하고서라도, 하승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겉으로는 여동생을 끔찍이도 아끼는 능력 좋은 마법사 사용자. 하지만 실체는 부랑자를 이끄는 거물 중의 거물급 사용자. 결국에는 아깝다고나 할까.
안 그래도 부랑자 문제로 마음이 심란했는데, 마침 어마어마한 먹잇감이 굴러들어왔다. 아마 제 3의 눈으로 사용자 정보를 확인했다고는 꿈에도 모르겠지.
말인즉 이건 기회였다. 여태껏 사용자를 부단히 괴롭혀온 부랑자를 일망타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안 그래도 도망 하나에는 도가 튼 놈들이라 골치가 아팠는데, 나로서는 이번 기회를 놓치기가 너무나 아까웠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겼다면 다름 아닌 하승우에 관한 클랜원들의 평가였다. 클랜에 새로운 인원이 들어오면 당연히 기성 인원이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특히 머셔너리처럼 폐쇄성이 짙은 클랜은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하다. 그래서 우선은 한 번 서서히 적응해보라는 명분으로 며칠 동안 조용히 지켜봤는데, 네 명 중 하승우의 평판이 가장 좋았다.
가령 예를 들어 누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닌 먼저 다가가 살갑게 굴고, 근면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성격도 둥글둥글하고, 사용자로서 능력도 괜찮고 등등. 이 정도면 충분히 머셔너리 클랜원으로 인정할 만하다는 말이 주를 이루었다. 행동도 딱히 모나지 않아, 오죽하면 말버릇 고친 신상용이 온 게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 그 정도로 하승우는 머셔너리 클랜에 빠르게 녹아 들고 있었다.
드러난 부분만 본다면 클랜 로드 입장에서는 기뻐할 만한 일이다. 텃세가 강한 머셔너리 특성상, 여태껏 성공적으로 정착한 클랜원보다는 그러지 못한 클랜원이 많았으니까.
그러나 정체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기쁘다기보다는 오히려 초조감이 들었다. 하승우가 머셔너리 클랜원으로 인정받을수록 차후 쳐내기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승우도 이 점을 노리고 일부러 신상용을 연구해 연기하는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필요하다는 생각에 들이기는 했으나 이대로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결국 해답은 하나. 하승우가 더 녹아 들기 전에 얼른 이용하고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럼 두 명 모두 준비는 됐고….”
고요하면서 엄숙한 기운이 흐르는 1층 회의장.
30명 이상의 전투 사용자가 소집된 공간에는 안현과 우정민이 중앙에 서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늘 이렇게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클랜원 등급제가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임무 수행 절차 보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아닌 클랜원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첫 임무인 만큼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기도 했다.
“사용자 안현은 의뢰인과 맞춰서 가면 되겠고, 사용자 우정민은? 언제쯤 출발할 생각이시죠?”
“방금 보고한 대로, 준비는 모두 끝마쳤습니다. 저를 포함한 14명의 클랜원은 내일 새벽 중으로 북 대륙으로 이동할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사용자 우정민도 아시다시피, 우리 머셔너리 척살 조는 굉장히 명성이 높습니다. 부랑자 놈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자자하다고 하죠. 사용자들은 반대로 많은 기대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부디 기대에 부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 클랜 로드께서 쌓아놓은 명성에 흠이 가지 않도록 반드시 성과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우정민은 낮은 음성으로 깍듯하게 말했다. 사석에서는 서로 허물없이 말을 놓고 지내는 사이나, 공석에서는 철저히 존대를 지킨다. …흠. 이러니까 갑자기 왕이 된 것 같은데. 꼭 전쟁을 나가는 장군을 격려하는 기분이다.
여하튼 성격만큼 일 처리도 확실하리라 기대하면서 나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정민의 오른쪽에는 안현이 차려 자세로 서 있다. 일견 담담해 보이기는 하나, 살짝 굳은 기색은 숨길 수 없는 모양이다.
사실 우정민은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이번에 꾸려진 척살 조에는 남다은, 비비앙, 선유운, 신재룡 등등 어지간한 주력이 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현은 예상외로 정예 클랜원을 끌어들이지 못했다. 듣기로는 안솔에게 같이 가자고 부탁했는데 거절당한 모양이다. 물론 우정민에 비하면 안현의 임무는 그렇게 어려운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두어 번 사고를 친 전례가 있으니까.
“사용자 안현.”
“예!”
안현은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임무의 성공만이 무조건 능사는 아닙니다.”
“예?”
“캐러밴이 전멸하고 간신히 성공한 임무보다는, 작전상 후퇴가 더욱 값진 결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아…. 예.”
“밀고 나아갈지, 지원을 요청할지, 아니면 그냥 물러날지. 사용자 안현은 언제나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어느 상황에서든 심사숙고해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제야 알아들었는지 안현은 긴장한 낯빛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게 경고의 의미로 말을 한 후, 이제 슬슬 회의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흘끗 후방을 응시했다.
회의장 입구 부근에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네 명의 사용자가 앉아 있다. 아까 말했듯 천천히 적응하라는 의미로 참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사라는 무언가 설명이라도 하는 듯 속닥거리는 중이었고, 엘리자베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승윤은 회의장을 둘러보면서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하승우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회의를 경청하고 있는 듯했다.
사실 나름대로 노림수는 있었다. 이번 회의를 봤다면 머셔너리의 부랑자 척살 조가 부활했다는 사실도 인지했을 터. 어쨌든 시간이 흐르면 알려질 사실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드러낸 이유는 하나였다.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과연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승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회의를 열심히 참관하는 사용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이 정도에 넘어올 정도로 어수룩한 놈도 아니고,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으면서도.
“그럼 이만 회의를….”
“저, 잠시만요.”
그때였다. 속으로 한숨을 흘리며 회의를 끝내려는 찰나, 누군가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말하며 손을 들었다. 이내 장내 모두가 후방을 돌아보는 동시, 하승우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행동한 탓에 약간 놀라기는 했으나 나는 간신히 머리를 끄덕일 수 있었다.
“사용자 하승우?”
“아. 회의를 들어보니 부랑자 척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요.”
걸렸다. 아니. 걸렸나?
“맞습니다. 한데,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예. 외람되지만, 주제 넘는다고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사용자 우정민 님께 조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조언이요?”
“에. 그러니까….”
나는 허락한다는 의미로 눈짓했다. 하승우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더니 머리를 긁으면서 입을 열었다.
“북 대륙으로 넘어가실 거라면, 우선 푸른 산맥으로 가보시는 걸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 순간, 절로 시야가 가늘어졌다.
우정민이 머리를 갸웃했다.
“푸른 산맥? 거기는…. 물론 조심하면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 버거운데.”
“그렇죠. 그런데 최근에 소문 하나를 들어서요.”
“소문?”
“예. 최근 부랑자의 짓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푸른 산맥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선 북쪽 도시로 가서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신 후, 거기서부터 추적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요.”
우정민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턱을 쓰다듬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나쁘지는 않겠지. 사실 어디서부터 조사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기도 했고. 아무튼,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감사하지.”
“하하.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오히려 다행입니다.”
하승우는 빙긋 웃고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방금 하승우가 말한 소문은 엄연한 사실이고 우정민이 출발하기 전 몰래 건넬 생각이었던 정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의외였다. 차라리 아예 관계없는 장소를 말했다면 모를까. 하승우는 당최 무슨 의도로 확실한 정보를 흘린 걸까? 과연 어떤 의도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흐아아암.”
“어머. 해솔 씨?”
입이 늘어지도록 하품하며 계단을 내려오던 제갈 해솔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떴다. 계단 아래 1층에서 임한나가 상냥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큰 가슴?”
“실례에요.”
“그럼 왕 가슴.”
“실례랍니다?”
“출렁출렁?”
“화낼 거예요?”
임한나가 살그머니 고개를 꺾으며 뜻 모를 미소를 날렸다.
“와. 한나 씨.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걸까. 제갈 해솔은 경쾌한 어조로 말하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임한나는 쓰게 웃었다. 좋은 아침이라고 말하기에는 해가 중천에 떠올라 밝은 햇살이 성내를 비췄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그동안 어디서 지내셨어요?”
“아함…. 한 엿새 정도? 연구할 마법이 있어서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제갈 해솔이 입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하자 임한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 못써요. 건강도 상하고 보기에도 안 좋아요. 그리고 요즘 클랜 돌아가는 상황도 잘 모르시죠?”
“왜요? 근래 큰 변화라도 있었나요?”
제갈 해솔이 묻자 임한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교롭게도 이제 회의가 끝난 터라 클랜원들이 입구로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었다. 임한나가 누군가를 가리켰다. 가리킨 방향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하승우가 하승윤과 같이 걸어 나오는 중이었다.
“그럼요. 서 대륙 사용자도 새로 두 명 들어왔고, 북 대륙 사용자도 두 명 들어왔는걸요. 설마 정말로 모르고 있었어요?”
“…….”
“…해솔 씨?”
“흐~응?”
돌연 묘한 비음이 흘러나왔다. 옆을 돌아본 임한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제갈 해솔을 응시했다. 옆에 있는 사람은 확실히 제갈 해솔이었으나 갑자기 180도 다른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한쪽 눈을 살짝 치뜬 채 중앙 광장을 가로지르는 누군가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다. 눈동자에 언뜻 스친 황금빛이 마치 ‘이것 봐라?’ 라고 말하는 듯하다.
잠시 후.
“…재미있네?”
나직이 뇌까린 제갈 해솔이 은근한 미소를 띄웠다. 그리고 좀 더 지켜보더니 하승우가 가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임한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걸어가는 제갈 해솔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음. 원래는 조금 더 적을 내용이 있는데, 이번 회는 여기서 커트하겠습니다. 현재 비몽사몽 한 상태라서요. 하하. 또 오늘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위해서 잠을 약간이라도 자야 할 것 같아서요. 이 점 양해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럼 독자 분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