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733
00732 핏물 속에서 피는 꽃. =========================================================================
나는 지그시 어둠을 응시했다. 방안을 비추는 은은한 달빛과, 월광을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짙은 보랏빛 머리카락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아아. 미안. 엿듣고 있었다.”
차갑고 고요한 음성의 주인공은 허준영이었다.
저벅저벅 걸어 들어온 허준영은 천천히 팔을 들었다. 손끝에는 길쭉한 병 하나가 들려 있다. 그걸 보자 절로 싱거운 웃음이 터졌다. 나랑 술 한 잔 하고 싶은 클랜원이 이렇게나 많았나?
“그냥 들어와도 상관없는데. 왜 밖에 서 있어. 궁상맞게끔.”
“혹시 좋은 시간을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아이고, 의미 없다. 그러면 진작에 자리를 뜨던가.”
“그러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말이야.”
구변 좋게 말한 허준영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흘끗 김한별을 흘겨본다. 무언가 허락을 구하는 듯한 눈초리. 김한별은 두어 번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뚱하니 어깨를 으쓱였다. 무언의 허락 같다.
허준영은 픽 웃더니 똑같이 소파 하나를 끌고 와 풀썩 앉았다. 음. 가기 전에 꼭 제자리에 돌려놓고 가라고 해야겠다.
허준영은 가볍게 병마개를 돌리고 빈 잔을 찾아 적정량을 부어주었다.
“어이.”
잔을 절반쯤 채운 보랏빛 액체를 감상하려는 찰나, 건방진 음성이 들려온다.
“원래 중간에 끼어드는 성격은 아닌데…. 이왕 들은 거, 나도 하나 물어봐도 될까?”
허준영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건방지게 말하면서도 머리를 돌려 문밖을 응시하고 있다. 쑥스러워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문은, 여전히 반쯤 열려 있는 상태였다.
“그래. 엿들었다면서. 끼어들지 않은 셈 치지. 아무튼, 뭔데?”
“…그래서, 어쩔 생각이지?”
허준영은 도로 나를 응시하고는 살짝 낯빛을 굳혔다. 나는 머리를 갸웃했다.
“…뭘 어째?”
“네 의도는 충분히 알겠는데….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유정은 그저 그런 사용자를 벗어나지 못했잖아.”
“…….”
“0, 1년 차도 아니고, 이제 4년 차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사실, 이제 와서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말은 서서히 흐려졌다. 조금은 책망하는 어조처럼 들리기도 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것 같다.
나는 아주 약간 남은 연초를 끝까지 흡입한 후, 천천히 길게 흘렸다.
“물론 이유정은 앞으로 더 강해질 거야. 아니, 더 강해져야겠지.”
“그 말은, 늦게라도 정신 보호를 해제하겠다는 소린가?”
그러려면 더 일찍 했겠지.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자 허준영이 의문을 표시했다.
“그러면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강해져야 한다고? 무언가 모순됐다고 생각하지 않나? 아까 네 말대로라면….”
“방법이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
“…방법?”
“그래.”
반문하면서 허준영은 또 한 번 방 쪽을 돌아보았다. 말하면서 왜 자꾸 돌아보는 걸까. 문이 열려 있는 게 걸리는 건가? 그러면 닫고 오면 될 텐데.
“무슨 방법?”
“클래스 계승.”
나는 명료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클래스를 계승해서 사용자 정보의 변화를 꾀하는 거지.”
아주 간단한 일이라는 듯 덧붙이면서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언니는 이미…. 레어 클래스잖아요.”
문득 김한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레어 클래스가 다는 아니잖아. 시크릿 클래스도 있는데.”
나는 방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닫기 위해서였다.
“너희도 시크릿 클래스이니만큼 알 거 아니냐. 클래스 계승 보상을 생각해봐.”
“계승 보상이라면…. 특화 능력치 상승이랑, 클래스에 걸맞은 능력 변화…. 아.”
그제야 깨달았는지 김한별이 작은 탄성을 질렀다. 그래. 내가 클래스 계승을 통해 궁극적으로 노리는 건, 이유정의 특수 능력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면 듀얼 클래스로 만들겠다는 소린가? 그렇게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역시나 허준영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나는 쓰게 웃으면서 문고리를 잡았다.
“레어 클래스에서 시크릿 클래스로 가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두 개나 있으니까.”
우선은 각성 시크릿 클래스. 물론 이건 굉장히 드문 경우이기는 하다.
그러니 각성 시크릿 클래스보다는, 레어 클래스의 조합으로 시크릿 클래스로의 진화를 생각하는 게 더 가능성 높은 일이었다.
“…결국에는 클래스를 하나 더 구하겠다는 소리로밖에 안 들리는데.”
“아니. 새로 구할 필요는 없지.”
“응?”
“수단은 이미 줬거든. 하지만 그걸 어떻게 발현하는가는 이유정이 직접 깨달아야 해.”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문을 닫기 전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나.
“…….”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어둠만이 고요하게 앉아 있을 뿐.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
안개가 자욱한 날씨였다. 살을 엘 듯한 새벽 공기가 바람에 밀려 머셔너리 캐슬을 휘감듯 스쳤다.
사방이 흐릿하다. 스치고 지나간 새벽 바람은 아직 아침이 오려면 멀었다고 알려주는 듯 차디찬 내음을 품고 있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에 돌아다닐 사람이 있을까마는, 캐슬 안에서는 한 여인이 홀로 조용하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나름 그럴듯하게 차려 입은 폼이 꼭 어디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 같다. 여인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오연히 고개를 들어 웅장하게 솟은 새하얀 성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리고 흡사 회상이라도 하는 양, 연한 붉은색의 눈동자가 아련하게도 젖어 든다.
잠시 후.
자박자박 걸어가는, 무언가 망설이는 발소리가 긴 회랑을 울렸다. 흐릿한 안개가 사방에 깔린 탓인지, 방금 여인이 서 있던 자리에는 금세 뿌연 연기가 몰려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히 메워버렸다.
그렇게 입구를 나와 정문까지 이어지는 정원의 수로를 걸어갈 즈음.
“……?”
걸음에 따라 힘없이 흔들리던 긴 머리카락이 돌연 서서히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갈 곳을 모르던 여인의 망연한 눈동자가 앞쪽 어느 지점에서 멎었다. 정면 방향 약 30미터 거리에는, 어두운 체스터 코트를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선명하지 못한 날씨 덕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인보다 더욱 길게 흘러내린 보랏빛 머리카락을 보면 누군지도 알 것 같다.
둘이 쳐다보는 것도 잠시.
사내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예상에서 빗나가지를 않는군.”
그러자 여인은 낯을 찌푸리는 것과 동시, 아까보다 확연히 빨라진 속도로 걸음을 놀리기 시작했다. 사내는 가만히 응시하는가 싶더니 마주 보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온다. 그리하여 두 남녀가 마주쳤을 때, 허준영은 걸음을 멈추고 옆을 돌아봤으나 여인은 그러지 않았다.
“말도 안 하고 가는 건가? 김수현이 슬퍼하겠는데.”
“기록에 써놓고 나왔어. 언젠가는 보겠지.”
여인은 퉁명스레 대꾸했다.
여전히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친다. 사내는 점점 멀어져 가는 이유정의 등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때.
“퀭한 눈을 보니 밤새 고민하고 생각한 것 같은데…. 그래서, 네가 선택한 길이 그거냐?”
빈정거리는 듯한 음성이 들려온 순간, 이유정은 또 한 번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젯밤 들킬뻔한 걸 기껏 도와줬더니만…. 아무튼, 자신은 있어?”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린다. 그리고 분노 가득한 눈동자가 상대를 노려보려고 했으나, 이유정은 흠칫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허준영이 매우 가까이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무심한 보라색 눈동자가 자신을 바로 앞에서 내려다볼 정도로.
“이대로 말도 안 하고 나가면, 네가 무언가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야? 자신 있느냐고.”
무언가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눈초리에 이유정은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허준영은 무언가 알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스리슬쩍 어깨를 들먹였다.
“아. 물론 무조건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겠지. 무사 수행. 확실히 괜찮아. 아니. 오늘이 최소 2년, 3년 전이었다면 나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거야. 너처럼 이 세상이 어떤지 모르고 날뛰는 천둥벌거숭이한테는 딱 좋은 수행이니까.”
“무….”
“그런데 이제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4년 차잖아. 외부에서는 그때부터 정예 사용자로 판단하거든. 그래서 궁금한 거야. 이렇게 나간다는 건 단순히 세상을 돌아보는 것 이상으로 노리는 게 있다는 뜻인데….”
“…더 이상 오빠한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유정은 힘없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꺼냈다. 허준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짐이 되고 싶지 않다라. 이건 조금 의외인데.”
“그래. 이제 만족해?”
“흠~. 뭐, 그냥저냥 이유는 되는군. 딱 너다운 이유야. 납득은 된다.”
“…마음대로 생각해. 그리고 웬만하면 이만 꺼져주면 정말 고맙겠어. 오지랖은 적당히 하라고.”
“아아, 잠깐만. 이대로 꺼지기 전에 하나만 물어보자. …그러면 너는, 결국 부담이 되기 싫어서 도망치는 건가?”
“…….”
막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허준영의 음성이 이유정을 붙잡았다. 도망이라는 말이 가슴을 쿡 찌르고 들어온다. 입이 찢길 정도로 짓씹던 이유정은 으르렁거리듯이 입을 열었다.
“도망이 아니라, 강해지려고 나가는 거야.”
“…하? 강해지려고 나간다고?”
그 순간, 허준영은 격한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 성격을 생각해보면 과장된 감도 없잖아 있었다.
“강해지려고 나간다고? 이건 또 무슨 개소리지? 하하하.”
결국 참지 못한 이유정은, 뭐가 웃기냐는 듯 무섭게 허준영을 노려본다.
“개소리? 말 다했어? 지금 이 상황에서 농담을 하고 싶어?”
“아니. 농담은 네가 하고 있지. 무사 수행을 나가는 이유가 꼴랑 그거? 차라리 도망친다고 그래. 그러면 이해라도 되니까. 괜히 어설프게 변명 혹은 자기 합리화하지 말고.”
“너 말….”
“그러면 말을 해봐. 누가 지금 네가 나가는 이유가 궁금하대? 그래서 아까 물었잖아. 자신 있느냐고. 그러니까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강해질 거냐고.”
“그…. 건….”
“아니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궁금해서 그래. 무사 수행? 음. 말은 좋지. 그런데 나는 너의 구체적인 계획이 궁금한 거야. 골이 비지 않은 이상 설마 혼자 돌아다니지는 않을 테고. 그럼 수행이라고 해봤자 캐러밴을 짜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뿐인데. …그런데, 그러면 굳이 나갈 필요는 없잖아? 현재 네가 몸을 담은 클랜이 이미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으니까. 그 어느 곳보다, 훌륭하게.”
“…….”
“말을 못하는군. 거봐. 계획이 없네. 그러니까 도망친다는 말이 맞는 거지.”
어느새 이유정은 바스러지도록 손을 움키고 있었다. 그러나 심정과는 반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왜냐면 반박할 말이 없으니까. 허준영의 말이 구구절절 옳다. 어쩌면 누군가 잡아주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럼…. 나보고 도대체 어쩌라는 건데!”
결국에는 울먹울먹한 음성으로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유정은 눈을 질끈 감았다. 조금씩 차오르는, 서러움에서 발로한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였다.
“뭐가 그렇게 잘났듯이 말하는데! 네가 내 심정을 조금이라도 알아? 그래, 너는 강해서 좋겠네? S 등급 받아서 좋겠어!”
“…나 참, 아직도 등급 타령이냐.”
허준영은 한숨을 푹 흘리면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두 눈을 치뜨더니.
“…그래. 좋다.”
한층 진중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네가 약한 게 싫다면, 진 게 분하다면. 그러면 네가 스스로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니냐.”
“나도 나름…!”
“나름? 네가 나름 노력했다고? 웃기지 마. 부딪치고 깨지더라도. 하다못해 안현처럼 사고를 치고 온갖 욕을 처먹으면서, 설령 클랜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절박하게 애라도 써야 최소한 노력이라도 했다고 말할 수 있고, 또 변명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기는 거지. 그냥 기록 한 장만 남겨놓고 띡 나가면 끝이야? 이게 무슨 솔로 플레이로 몇 달 노가다 몰이 사냥하면 강해지는 세상이야? 그렇게 쉽게 강해질 수 있으면 온 세상 모든 사용자가 10강이 되겠네. 나는 뭐 좌절 한 번 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라온 걸 줄 알아?”
“…….”
“…아무도, 그 누구도 너보고 바로 당장 결과를 내라고 하지 않아. 어제 김수현의 말을 듣고도 이해가 안 되는 거냐. 네가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고 있잖아. 그럼 너도 무언가를 보여주기에 앞서, 보여주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
어느새 허준영의 목소리는 한층 누그러져 있었다. 마치 이유정이 어서 깨닫기를 바라는 듯이.
그러나 이유정은 여전히 묵묵부답. 이제는 숫제 고개를 숙인 채 땅을 응시하고 있었다. 허준영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래. 너는 내 말이 개소리로 들리겠지. 하기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괜한 오지랖이지. 네가 나가든지 말든지. 이대로 패배한 채 도망친 개로 기억되든지 말든지.”
그리고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미련 없이 몸을 돌린다.
“마음대로 해. 그런데 만일 몇 달 몇 년 후, 네가 무사히 돌아온다고 해도…. 그때 네 자리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니, 혼자서 나대다가 죽지라도 않으면 다행이겠네.”
그렇게 냉소적으로 말을 끝마치고는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허준영은 안갯속으로 녹아 들기라도 한 듯 사라졌다.
이유정은 원망하는 눈동자로 허준영이 사라진 방향을 한참을 응시했다. 마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이 개…!”
그 순간이었다.
끼이이익….
분명 이른 새벽 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입구 정문이 서서히 열리는 소리가 고요한 정원을 울렸다. 반사적으로 고개 돌린 이유정은, 반쯤 열린 입구에 힘겹게 몸을 비집고 들어오는 두 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뚝뚝, 핏물이 쉴 새 없이 떨어진다. 흡사 피의 바다에서 목욕이라도 하고 나왔는지, 아직 어린 소년의 몸에서 핏물이 철철 흘러 넘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년을 낑낑거리면서 부축해 들어오는 거주민 경비병 한 명. 그렇게 겨우겨우 들어오더니 이유정을 보자마자 다급하던 얼굴에 일말의 안도감이 돌았다.
“누구…?”
“다, 다행이다! 마침 사용자 분께서 계셨군요! 머셔너리 클랜원이신가요?”
그 말에 이유정은 숨을 삼켰다. 급박한 일이 벌어진 건 확실한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것이다. 왜냐면, 왜냐면….
“젠장, 정말로 가버린 건가?”
그때였다. 갑자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허준영이 자욱한 안개를 뚫고 달려 나왔다.
…뭐야, 간 거 아니었어?
이유정이 의아해 하며 돌아보는 사이, 허준영 역시 눈앞의 광경을 목격했다. 물씬 풍겨오는 피 내음에, 곧바로 걸음이 멎고 분위기가 찌를 듯이 날카로워졌다.
“경비병. 어떻게 된 거지?”
“방금 도시로 돌아오신 분입니다. 습격을 받은 듯한데, 전후 사정은 잘은 모르겠습니다. 대표 클랜으로 가달라는 말씀만 간신히 하시고, 바로 기절하셨습니다.”
거주민 경비병은 빠르게 말하면서도 상당히 정확하게 상황을 전달했다.
허준영은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고는 검지로 이유정을 가리켰다.
“이유정. 나는 바로 클랜 로드한테 알리도록 하지. 너는 사제를 깨워서 저 소년을 치료해라.”
“어, 어?”
“어서!”
“자, 잠깐만! 나는….”
이유정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허준영은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캐슬 쪽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남은 건 정신을 잃은 소년과 살았다는 얼굴의 경비병뿐.
“에이 씨…!”
이윽고 “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소년을 부축한 채 비척비척 다가오는 경비병을 보면서 이유정은 작게 씨근거렸다.
“허억…. 허억….”
척 봐도 심상치 않은 상처. 소년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껌뻑껌뻑 호흡하고 있다.
망설임은, 거기까지였다.
우선은 살려야 한다.
“이리 줘요! 빨리!”
그렇게 생각한 이유정은 곧바로 소년을 받아 들고는 몸을 돌렸다. 그에 따라 정문으로 나가려던 발걸음도 방향을 바꿔, 도로 캐슬이 있는 쪽을 바라본다.
이윽고 소년을 단단히 안아 든 이유정이 바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야아아아! 안소오오오오오올!”
마침내, 시작되었다.
훗날 ‘용병 (여)왕’을 계승함으로써 홀 플레인에 이름을 떨치게 될, 그 거대한 행보의 첫걸음이 이제 막 내디뎌진 것이다.
============================ 작품 후기 ============================
음…. 후기를 길게 적었다가 그냥 지웠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새벽 2시쯤에 까무룩 자버렸습니다. 근래 계속 새벽 집필을 한 탓에 머리가 많이 아팠거든요. 이때 제가 자주 쓰는 방법이 15분 알람을 맞추고 잠깐 잡니다. 15분 가량 자고 일어나서 샤워를 해요. 그러면 상당히 개운해지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제가 푹 잠들어버렸네요. 알람을 들은 기억은 있는데, 잠에 상당히 취했던 것 같습니다.
일어나서 아차 한 기분은 들었는데…. 코멘트로 상황을 말씀 드리고 양해를 구하자는 생각도 했지만, 우선 워드를 먼저 키는 방향으로 선택을 잡았습니다. 아마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관한 부끄러움이 커서였던 것 같아요. 어찌어찌 집필을 마치고 퇴고도 마치고, 업데이트에 성공하기는 했네요. 하하.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코멘트 예고 시스템은 이제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오늘 같은 일의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제가 장담을 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한 번 천천히 생각해보겠습니다. 혹시 고견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다려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_(__)_
PS. 유정아.
이제 한 번 날아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