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740
00739 안개의 숲. =========================================================================
– 후, 겨우 벗어났군.
– 젠장! 빌어먹을!
– 시끄럽소. 귀 아프구려. 야만의 왕이여.
– 정말 개 같은 장난을 쳐놨군! 어느 개 같은 자식이 숲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거지?
– 말했잖소. 마녀는 원래 장난이 심하다고. 그리고 스스로 보호해야 하니까.
– 보호?
– 마녀의 입장도 그대의 부족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아니, 오히려 더 심하면 심했지. 방금 벗어난 숲은 아마 일종의 경고였을 거요. 이 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 …쯧.
– 흠. 그나저나 정말 기이한 숲이었소. 특히 그대의 근육 가슴이 여인의 젖가슴처럼 둥글게 부풀어 오른 현상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 크아아악! 닥쳐, 닥쳐, 닥쳐, 닥쳐! 마녀? 이 미친 호로 새끼, 아주 그냥 나오기만 해봐! 감히…!
– 거기 신사 두 분~.
– 이딴 굴욕을…?
– 안녕하세요~? 우선은, 미친 호로 새끼의 숲에 오신 걸 환영해요!
– 누, 누구요?
– 그건 제가 해야 할 말이죠. 두 분은 도대체 누구 시길래 이 미친 호로 새끼의 숲까지 오신 건가요?
– …어?
신 대륙 아틀란타(북 도시 비밀 도서관), ‘빅토리아 왕조 실록 – 18대 황제(147 ~ 147)’ 中 ‘안개의 숲을 벗어난 이후, 마녀와의 첫 만남.’
*
“…….”
“…….”
맑고 조용한 하늘 아래, 우리는 야영지에 옹기종기 모여 조용히 아래를 응시했다. 땅에는 오늘 눈을 뜨자마자 끌어온 짐승 가족 세 마리가 축 늘어져 있다. 죽은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잠든 상태 같다. 그러나 문제는,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외양으로 드러누워 있다는 것이다. 동료들도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선 가장 큰 변화를 겪은 놈은 아비(?) 짐승이었다. 크기는 약 20 센티미터로 어제보다 절반 정도 작아지고, 온몸의 털은 숭숭 빠졌다. 눈도 뜨지 못하며 꼬물거리기만 하는 게, 흡사 이제 갓 태어난 새끼 짐승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새끼 짐승의 경우, 크기는 그대로였으나 반대로 전신의 털이 풍성해졌다. 둥글고 복슬복슬하게 오른 모양새가, 발로 뻥뻥 차주고 싶을 정도였다. 어미 짐승은 겉보기에는 변화가 없으나 아무도 모른다. 혹시 내부적으로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게 한동안 짐승 가족을 구경한 후,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볼 것도 다 봤고, 이제는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때였다. 물론 그전에 이놈들 처리는 해두고. 마침 식전이니….
“오늘은 뜨거운 국물이 당기는데. 아침 식사는 이 세 마리로 탕을 끓이는 게 어떨까?”
허준영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음, 맛있겠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좋다고 말하려는 찰나, 안솔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심지어 임한나도 가늘어진 눈으로 흘기고 있었다. 허준영은 심드렁한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시선을 회피했다.
“그래. 괜히 먹었다가 탈이 날수도 있잖아? 그냥 풀어주는 게 낫겠다.”
“오라버니…. 얘네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얼른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자 안솔이 짐승 가족을 조심조심 품에 안으며 묻는다.
“걱정하지 마. 말을 들어보니까 숲을 벗어나는 즉시 변화가 서서히 풀린다고 하더라고. 지속되는 게 아니라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소리야.”
“아, 정말요?”
안솔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아니. 비단 안솔만이 아니라 동료들의 낯에도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기쁘다기보다는 안도하는 기색이 강했다. 하기야 상태 이상에 걸리고 그 효과가 지속된다면 누구라도 싫을 것이다. 그건 거의 저주에 가깝다고 봐야 하니까.
여하튼 상태 이상 효과에 걸렸을 시, 해주(解呪)에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숲에 체류한 기간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상세한 사항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왜냐면 소년에게 말을 듣지 못했으니까.
“정리해보죠. 저 숲에 흐르는 연기는 사용자의 마력을 제한하고, 신체에 상태 이상을 초래합니다. 또한 그 효과는 굉장히 다양한 현상으로 발생하지요. 이건 모두 확인하셨을 겁니다.”
모두가 끄덕끄덕.
“물론 벗어난 이후 서서히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고는 하나, 이상 효과에 걸린 상태에서의 습격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효과에 걸리느냐에 따라, 굉장히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
“참고로 숲을 통과하기까지 약 나흘 정도 걸렸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우리는 빠르면 이틀 정도로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말을 마친 후, 나는 지그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는 멍한 빛을 띠고 있었고, 또 누구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조용히 이어지는 침묵. 이윽고 누군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김한별이었다.
“제한을 받지 않는 외부에서 마력을 행사하는 건 어떨까요? 강철 산맥 공략 초기처럼, 숲을 불태우면서 전진하는 거예요.”
“불가능합니다. 제가 아침에 워터 애로우로 시도해봤는데, 연기에 닿자마자 곧바로 흩어졌습니다.”
하승우가 바로 반박하자, 정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리고 설령 숲을 불태운다고 해도, 연기가 사라진다고는 장담할 수 없죠.”
“저…. 그럼 미리 보호막을 두르고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요? 예전에 섬망의 산에 들어갔을 때처럼요. 아시다시피 제 보호막에는 반사 능력이….”
“한결아. 그건 안되지. 아무리 반사 능력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마력을 기반으로 하잖아?”
“아. 맞다.”
“그냥 이번에도 제갈 해솔의 능력에 기대면 안 되나? 이 숲을 통과하는 게 목적이라면, 아예 연기가 흐르는 장소를 패스하면 그만이잖아?”
“안 돼요. 마력이 묶인 장소에 사용하라니, 제 수송 능력이 만능인 줄 알아요? 그리고 이 정도의 인원으로 사흘이나 걸리는 거리를 한 번에 패스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요.”
“안솔의 기적을 사용하는 건 어떨까?”
“그건 안 돼. 기적은 정말 최후의 수단이야. 여기서 사용하기는 아까워.”
한동안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다. 개중에는 혹할 법한 말도 간간이 오고 갔으나, 실행 당사자의 반대로 모조리 무산되고 말았다. 기적은 내가 반대하기도 했고.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하다가, 결국에는 침묵이 도로 찾아왔다. 고요히 흐르는 정적 속에서 몰래 한소영을 훔쳐봤지만, 아까부터 간간이 언짢은 듯한 기색을 비칠 뿐이었다. 한소영도 딱히 이거다 싶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인재는 많은데….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물밀 듯 차오르는 실망감을 지우려고 애썼다. 하기야 과거에 내로라하는 사용자들이 며칠 몇 주 동안 숙고해도 해결책을 내지 못했는데, 여기서 하루 만에 내라는 건 분명히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다. 애초 나 또한 똑같지 않은가.
물론 나는 상대적으로 걱정이 덜한 입장이기는 하다. 심장에 품은 화정의 힘은, 설령 마력이 묶이더라도 체내에서 자가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연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소리는 아니고, 화정이 활동함으로써 받는 부담은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무튼, 이제는 들어가야 한다. 모든 의문은 진입 이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사합시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방법이 나오지 않으면, 우선은 이대로 들어가는 것으로 하죠. 여기서 계속 가만히 있을 수도 없으니까요.”
*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예고했던 대로 행동했다. 바로 야영지를 정리하고 안개의 숲으로 진입했다. 동료들은 상당히 꺼리는 빛을 보였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인지했는지 군소리 않고 따라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돌입한 숲에는, 오직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허연 연기만이 자욱하게 흐를 뿐, 어느 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연기를 제외하면 흡사 시간이 멈췄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으스스하고 괴괴한 숲길을 따라 우리는 그대로 직진했다. 사흘이 걸렸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사방을 둘러봐도 숲의 풍경만이 가득했다. 사박사박 수풀을 밟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오고, 고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잔뜩 긴장한 기색이 느껴졌다. 돌연히 머리를 젖혀봤으나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우거진 나무들로 인해 완전하게 가려져 있었다.
평소라면 마력을 사용해 안력을 끌어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불가능하다. 예상한 일이기는 했지만, 숲에 들어와 연기와 마주한 순간 곧바로 마력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제갈 해솔의 말처럼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에 마력이 꽉 묶인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숲을 걷다 보니 문득 의구심이 일었다.
‘이봐, 화정.’
행군하는 가운데 나는 조용히, 그리고 오랜만에 말을 걸었다.
– 왜.
깨어있었는지, 다행히 화정은 바로 화답했다.
‘너는 어떤 것도 불태울 수 있는 힘을 지녔잖아?’
– 그렇지. 그런데?
‘그러면 현재 내 마력을 제한하는 연기의 효과도 불태울 수 있는 거 아니야?’
– 당연하지.
화정의 태연한 음성이 머릿속을 울렸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 나는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 화정의 음성이 이어졌다.
–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관둬. 그냥 이대로 계속 가는 게 좋을 거야.
‘왜?’
– 이 멍청이,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 아까 이 숲을 벗어나는데 나흘 정도 걸린다고 했지?
‘평균으로는. 그런데 최대한 줄일 거야.’
– 그건 네 재량이고. 아무튼, 현재 네가 연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
‘맞아. 네가 계속 움직이는 걸 느꼈으니까.’
– 그래. 말인즉, 내가 계속 활동하고 있다는 소리지. 그럼 만일 내가 나흘 내내 활동한다고 생각해봐. 어떻게 될 것 같아?
‘…….’
나는 그제야 화정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그동안 체력을 많이 올리기는 했지. 하지만 정도가 있다고, 정도가. 예전처럼 필요할 때만 잠깐 쓰는 식이라면 무리는 없겠지만, 1초도 쉬지 않고 며칠 내내 쓸 정도는 아니라고.
‘으음.’
– 그러나 이미 그러고 있다는 게 함정. 물론 상황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여기만 통과한다고 끝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무조건 최소한으로 움직여야 해. 무슨 말인지 알아 들어?
‘아아. 이해했어.’
화정의 말은 간단했고, 지극히 옳았다. 설명을 듣고 나자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소한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말이 있던가? 새삼 화정과 다른 성과들과의 차이가 느껴졌다. 따로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써주고 있었던 것이다.
– 마력 제한을 푸는 건 금방이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하나 더 충고하겠는데, 저 보호 능력을 갖춘 예쁘장한 꼬마 애를 네 옆으로 데려와.
‘예쁘장한…. 백한결? 왜?’
– 돌겠네, 미치겠네, 갑갑해 죽겠네. 야. 만약에 아주 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너 혼자 싸울 거니? 마력이 풀리면, 내가 네 마력을 통해 다른 인간 놈에게도 흘러 들어갈 수 있겠지? 그럼 마력 제한도 풀어주고, 상태 이상 효과도 제거해주고. 뭘 걱정하고 있는 거야 지금?
‘아, 그렇군. 그럼 그때는 부담을 감수하라는 소리지?’
나는 약하게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고요한 숲이라 소리가 들렸는지 의아한 눈초리가 느껴졌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곧바로 백한결을 불러 내 옆에 서게 했다. 그러니까 위급한 상황이 오면, 내 마력이 풀리는 동시에 나는 곧바로 백한결의 마력을 풀어준다. 신체를 접촉한 상태서, 화정의 힘이 이어지는 한 백한결은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기습 상황 시 아주 유용한 방어 수단이 생기는 것이다.
– 쯧쯧…. 멀었어, 아직도 멀었어. 이런 놈이 14년 차 사용자라고? 헛바람만 잔뜩 들었지.
화정은 어휴 한숨을 흘리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미안해. 그리고 고맙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 고마우면 앞으로 자주 신경 좀 쓰라고. 요즘…. 말도 잘 안 걸어주고….
들려오는 음성이 약간 쓸쓸하게 들린 탓일까.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말았다.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는 언제나 너를 내 첫 번째 부인으로….’
펑!
그 순간, 눈앞에 불꽃이 번쩍 튀겼다.
– 이놈! 말 한 번 잘했다! 뭐, 첫 번째 부인?
– 그렇게 생각하는 놈이! 내가 보는 앞에서 그년이랑 그, 그, 그, 그걸 했다 이거지?
– 물고, 빨고, 싸지르고, 임신까지 시키고! 겨우 잊고 있었는데!
– 죽인다!
성난 음성이 폭풍처럼 이어지는 가운데, 크게 놀란 동료들이 고함을 지르며 나를 둘러쌌다. 나는 창피함에 머리를 숙였다.
입이 방정이지, 입이 방정이야.
============================ 작품 후기 ============================
아직 많이 늦기는 하지만, 업데이트 시간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는 것 같네요. 아마 2시 안으로 업데이트를 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 업데이트 예고 시간 시스템을 부활시킬 생각입니다. 하하.
그나저나 안개의 숲에 들어왔으니, 이 파트도 팔부능선은 넘었네요. 과연 안개의 숲에서 김수현의 동료들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요? 돌아갈 때를 포함해 약간 힘든(?) 변화도, 예쁜 변화도, 귀여운 변화도, 야릇한 변화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 드려요. 😀
독자 분들 모두 우울하지 않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화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