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746
00745 역사(歷史). =========================================================================
찌지지직!
펄럭!
갑자기 로브가 찢어지며 무언가 거대한 것이 시야를 가렸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처음에는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 무언가는 곧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고, 스스로 목을 뺀 마녀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깜짝 놀라 시야를 집중하자 활짝 펼친 날개가 눈에 들어왔다. 흡사 박쥐를 연상케 하는 날개는 굉장히 컸고, 짙은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모양이라고 생각할 무렵, 마녀는 바람을 타듯이 활승(滑昇)해 삽시간에 멀어졌다.
– 추격해!
화정의 음성이 머릿속을 울렸다. 그러나 발에 힘껏 힘을 준 찰나, 돌연히 몸이 크게 비틀거렸다.
“큭?”
쿠르르릉! 쿠르르릉!
시선을 내리자 와르르 무너지는 제단이 보였다. 아니, 제단만이 아니라 우리가 들어온 방 전체가 무너지는 중이었다. 마치 세상이 멸망하는 것처럼, 온 공간이 퍼즐이라도 된 듯이 조각나 떨어진다. 그리고 그 후면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수현아!”
번쩍!
한순간 가열찬 섬광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뜨자, 허공에서 높은 톤의 비명이 울렸다. 드물게도 화난 표정을 한 임한나가 ‘찬란한 섬광’을 든 자세로 누군가를 노려보고 있다. 공중에 떠오른 마녀의 등에는 빛나는 화살이 꽂혀 있었다. 비틀거리는 모습을 확인한 순간, 나는 망설임 없이 외쳤다.
“용족화!”
『용족화를 발동합니다.』
그리고 바로 균형을 잡은 후, 돋아난 날개를 움직이며 있는 힘껏 솟구쳤다.
– 방금 일격은 좋았어! 귀찮아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끝내버려!
화르르륵!
화정의 음성이 이어지는 동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무검에 맑은 불꽃이 휘감아 올랐다. 필요한 보조는 자신이 할 테니 나는 무조건 마녀를 베는 데만 집중하라는 소리였다.
그 응원에 힘입어, 나는 점프, 궁신탄영, 이형환위로 이루어지는 3단 이동을 통해 단숨에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그렇게 지척까지 다가가자, 나를 확인한 마녀의 표정이 흡사 괴물이라도 본 듯 일그러졌다.
“요, 용의 날개? 미친! 어떻게 인간이…!”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나는 전력으로 무검을 내리쳤다. 내리치는 방향에 맞서 마녀는 황급히 팔을 들었다. 어느새 소환한 건지, 오른손에는 빗자루 같은 기다란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찰나의 순간, 빗자루가 푸른빛으로 물들며 둥그런 마법 진을 토해냈고, 그대로 무검과 부딪친다.
카앙! 카앙!
교착 지점에서 시퍼런 불꽃이 튀겼다. 나는 살짝 숨을 들이켰다. 놀랍게도, 마법 진은 내 전력이 담긴 공격을 두 번이나 방어했다. 비록 반으로 갈라지며 불타 녹아 내리기는 했으나, 날카로운 예기가 그 안쪽까지는 닿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여파는 남아 있는지 마녀가 긴 비명을 남기며 아래로 추락….
“……!”
아니. 추락하는가 싶었으나, 땅에 닿기 직전 간신히 날개를 펼쳐 재 활승했다. 그러나 마녀는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았다. 도망쳐봤자 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두둥실 공중으로 떠올라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나는 무검을 고쳐 잡으며 마녀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등에 돋은 날개, 검게 변색한 손…. 그리고 정수리에 돋은 뿔을 발견한 순간, 나는 비로소 마녀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랬군. 악마였어.”
악마.
‘그런데 네가 말하는 놈들이 나를 깨운 건 아니야. 깨어난 건 훨씬 전, 그러니까 몇 달 전부터일걸?’
‘그건 나도 몰라. 설마 이런 아스트랄 차원까지 간섭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줄은 나도 몰랐으니까.’
그래. 악마라면 아까 마녀의 말을 설명할 수 있다. 말인즉 봉인된 마녀를 깨운 건 캐러밴이 아니라 악마라는 소리였다. 그것도 최근이 아닌 훨씬 전부터.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용이 잠든 산맥을 들어갔을 때도 악마들은 마그나카르타를 부활시키지 않았는가.
‘그럼 왜?’ 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으나, 짚이는 바는 있었다. 아마 계획을 세우는 족족 내가 모조리 분쇄하니, 아예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을 꾸미려 한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문득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만에 하나 과거처럼 신경 쓰지 않고 놔두었다면…. 1회 차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재앙이 몰아쳤을 것이다.
전투는 잠시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마녀는 더 이상 태연한 낯빛을 보이지 않았다. 아까 격돌 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남았는지, 오만상을 찌푸리며 오른손을 주무른다. 우선은 정체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가만히 팔짱을 꼈다. 제 3의 눈이 제한된 상황이라는 게 아쉽군.
“어떻게 막은 건가 싶더니…. 설마, 악마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하하.”
“…….”
“어디 보자. 고작 마족이 내 공격을 방어할 수 있을 리는 없고…. 그럼 최소한 악마 14 군주 이상은 된다는 말인데.”
“…….”
스리슬쩍 찔러보았으나 마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악마의 정체를 숨기려는 것 같은데, 행동이 상당히 조심스럽다. 이렇다는 건, 마녀의 몸에 심어진 악마는 내 정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소리였다.
물론 그렇다고 알아낼 수단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대 악마 본인이 아닌 이상, 악마 14 군주나 마족을 도발하는 방법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니까. 나는 아까 빗자루 주변에 생성된 푸른 마법 진을 떠올렸다.
“마녀와의 궁합. 그리고 아까의 방어를 생각해보면…. 설마 발소르인가? 그 별볼일 없는 사탄의 휘하인?”
그 순간 마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나는 씩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연기하지 마. 플루톤. 그 샌님 같은 루시퍼가 연기 하나는 지지리도 못 가르쳤나 보군.”
– 닥쳐라, 놈!
역시나. 곧바로 반응이 튀어나왔다. 마녀의 육성이 아닌, 내부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듯한 음성이었다. 아마 발소르인 척하고 넘어가려던 심산이었던 것 같은데, 악마들의 성향을 워낙 잘 알아서 말이지.
“유언장은 써두고 왔나? 프로세르피나가 슬퍼하지 않을까?”
나는 낄낄 웃으며 무검을 고쳐 잡았다. 그러고 보니 플루톤 앞에서 프로세르피나를 단체로 유린하는 것도 참 재미있었지.
아무튼, 어쩌다 악마와 조우하게 됐는지는 모르나 오히려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야말로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플루톤을 쓰러트린다면 악마 진영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렇게 정체도 알았으니,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 풍경은 어느새 또다시 변화한 상태였다. 둥글고 넓은 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흡사 세기말을 보는 듯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은 붉고, 땅은 거칠게 우거진 불그스름한 수풀로 덮인 풍경.
‘여기는….’
– 이 세상의 진짜 모습.
대답은, 화정에게서 들려왔다.
‘이 세상의 진짜 모습?’
– 그래. 아까 들어오면서 누가 그랬지? 이 세상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라고.
확실히 비슷한 말을 들은 것 같기는 하다.
– 현재는 그 마력이 모조리 걷힌 상태야.
‘모조리 걷혔다고?’
– 그래.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마녀가 스스로 걷어냈어. 아마 그만큼 상황이 급했다는 소리겠지.
‘그런가….’
그럼 이곳이 바로 진정한 ‘야만 왕의 무덤’이라는 소린가.
– 아무튼, 우선은 물러나는 게 좋을 거야. 진정한 아스트랄 차원이 드러난 이상, 이제 어떤 현상이 발생할지 나조차도 감을 잡을 수 없어.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혼자 날뛸 생각은 넣어둬.
‘으음.’
화정의 조언에 나는 곧바로 동의했다. 이제부터는 마녀만을 상대하는 게 아니다. 마녀의 마법과 플루톤의 능력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마녀 혼자 있다면 내 사용자 정보 특성상 쉽게 풀어갈 수 있으나, 플루톤이 가세한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플루톤(Pluton). 악마 14 군주 중 한 놈으로, 프로세르피나(Proserpina)와 부부의 연을 맺은 루시퍼 휘하의 명성 높은 악마 군주. 아주 예전에 처리한 마몬보다는 조금 떨어지기는 하지만, 근접 전투 능력도 상당하거니와 수준급의 악마 마법을 구사하는 실력자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씨앗이 개화한 지 몇 달의 시간이 흘렀으니 힘도 어느 정도 회복했을 터.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절대로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잠시 후.
땅으로 착지하고 날개를 접자 쫓아온 동료들이 삽시간에 나를 에워쌌다.
“머셔너리 로드. 어떻게 된 거죠?”
“방심한 틈을 노려 처치하려고 했는데, 예상외의 상황이 발생했네요.”
한소영의 물음에 하늘을 가리키며 말하자, 모두 동시에 고개를 치켜든다. 마녀는 여전히 하늘에 떠 있는 상태였다.
“악마가 출현했습니다. 저번에 상대한 마몬과 비슷한, 악마 14 군주 중 한 놈으로 추정됩니다. 절대로 방심할 상대가 아닙니다.”
말을 마치자 선율이나 한소영 등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 클랜원은 잔뜩 긴장한 낯빛으로 각자 무기를 치켜들었다. 마몬과의 힘겨운 전투를 기억하는 것이다.
“아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아무튼, 쓰러트려야 하는 상대라는 소리죠?”
선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품속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때였다.
“닥쳐어어어어!”
돌연 한층 높아진 음성이 붉은 하늘을 떠르르 울렸다. 이번에는 마녀의 목소리였다.
“도망치라고? 나보고 이 공간을 버리고 도망치라고?”
“그렇게는 못해! 내가 얼마나 공들여 준비했는데! 조금만 더 있으면 복수를 할 수 있는데!”
보아하니 플루톤은 계속해서 도망을 종용하는 듯했다. 좋은 선택이기는 했다. 물론 순순히 놓아줄 생각은 없지만.
“닥쳐닥쳐닥쳐닥쳐! 내가 죽는다고? 저딴 인간 놈들한테 질 거라고? 일인 군단이라고 불리는, 이 내가?”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찢어지는 웃음이 귓가를 웅웅 울린다. 그러나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려는,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느낌이 느껴졌다면 내 착각일까?
이윽고 미친 듯이 웃어 젖히던 마녀가 한순간 웃음을 그쳤다.
“도와주지 않을 거면, 입 닥치고 있어.”
씹어먹듯이 내뱉고는, 한층 살벌해진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빗자루를 가로로 눕혀 궁둥이를 붙이더니, 활짝 핀 오른손을 아래로 내밀었다. 잠시 후, 무시무시한 마력이 소용돌이치듯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길게 늘어트린 보라색 머리카락이 사방팔방 펄럭이고, 엄청난 마력의 흐름이 지상을 아우른다.
“애니메이트 플로라(Animate Flora)!”
그 순간이었다. 주문을 외우기가 무섭게 땅이 우지직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짙은 핏빛을 머금은 넝쿨이 사방에서 쑥쑥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발을 디디고 서 있는 공간까지도. 우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하승우가 재빠르게 주문을 외우며 양손을 모아 땅으로 갖다 붙였다.
“────. ────. 체인지 샌드, 체인지 록(Change Sand, Change Rock)!”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서서히 갈라지던 지면이 딱딱히 굳기 시작하더니, 스멀스멀 잿빛으로 변색하며 바위처럼 딱딱해진 것이다. 이내 기운차게 올라오던 넝쿨이 갑자기 수그러들며 말라 비틀어졌고, 그대로 힘없이 쓰러졌다.
물론 모든 지면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니었다. 직경 20 미터 밖에는, 약 2 미터 이상 되는 커다랗고 징그러운 촉수 식물들이 빽빽이 돋아나 꿈틀거리는 중이었다.
“흐흐, 흐흐흐흐. 기뻐해도 좋아. 이건….”
흡사 실성한 듯한 마녀의 음성에 나는 싱겁게 웃었다.
“무…. 웃어?”
내 웃음을 확인한 걸까. 마녀의 목소리가 곧바로 뾰족해졌다. 마볼로도 그렇지만, 이 마녀도 만만치 않게 미친 것 같다. 하기야 이러니까 악마가 타깃으로 삼았겠지.
아무튼, 악마의 등장은 확실히 예상을 벗어났다. 그러나 현재 사방에서 우글거리는 촉수 식물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과거에 도시가 습격 당했을 때 지겹게도 보지 않았는가. 그런 만큼 식물 군단의 등장은 예상 안에 있었고, 대비책도 마련해왔다. 괜히 이번 원정대를 조합을 우선으로 선발한 게 아니었다.
“백한결, 김한별!”
지체 않고 외치자, 두 명은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 하승우!”
바로 이어 외치니 그 두 명도 곧장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 ────.”
“────. ────.”
“────. ────.”
“────. ────.”
이어서, 네 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2차전의 시작이었다.
============================ 작품 후기 ============================
아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파트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쓰러질 리가 있나요? 마녀와 플루톤은 제법 괜찮은 반항(?)을 할 예정입니다. …아. 그런데 반항이라고 하니까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드네요. 마치 김수현이 악의 축 같고, 열심히 분전하는 마녀와 악마가 오히려…. 흠흠.
그러므로 다음 회는 ‘특집! 힘내라! 마(법) (소)녀!’가 연재될 예정입….(퍽퍽!)
자, 그럼 저는 이만 쌓인 쪽지에 답변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독자 분들 모두 편안한 밤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