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754
00753 To Kill, Or Not To Kill? =========================================================================
각성 시크릿 클래스 ‘광휘의 사제(Brilliance Priest)’를 계승한 이후, 안솔은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죽은 게 아니라면 누구든 살려낼 자신이 있다고. 그리고 안솔은 이번에도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유정은 상당한 중상을 입은 상태였으나, 덕분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안솔의 치료 주문을 필두로, 신재룡의 보조 주문과 가지고 온 물약을 완전히 쏟아 붓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유정이 물약 좀 그만 들이부으라고 양손을 휘젓는 동안, 나는 아까 마녀에게서 뺏어둔 성과를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했다. 꽃의 마녀 정도가 사용하던 장비라면 상당히 좋은 효과가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혼돈의 솜니움(Somnium Of Chaos)』
1. 일반 설명.
Ⅰ. ‘일인 군단’으로 불린 꽃의 마녀 ‘필리아 트리토리스’를 상징하는 마력 빗자루입니다. 마녀의 독자적이고 신비한 주술이 영구히 간직된, 오직 마(魔)를 추구하는 자들을 위한 최고의 장비입니다.
Ⅱ. 마법사, 마도사(Secret), 마녀 클래스 전용 장비입니다.
Ⅲ. 주인을 가리는 장비입니다. 주인 의식에 성공할 경우, 혼돈의 솜니움은 해당 사용자가 사망할 때까지 귀속됩니다.
* (주의) 남성은 손대는 것조차 싫어할 정도로 극도로 혐오하는 경향이 있으며, 오직 여성만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빗자루입니다. 남성이 주인 의식을 치를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거니와, 아예 호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2. 상세 효능.
Ⅰ. 파괴의 기원이 각인돼있습니다. 사용자가 영창 하는 모든 주문의 출력이 200%로 향상됩니다.
Ⅱ. 가속의 기원이 각인돼있습니다. 사용자의 마력 흐름이 3배로 상승합니다.
Ⅲ. (봉인) 상승의 기원이 각인돼있습니다.(마녀의 모자와 연동 시 봉인이 해제됩니다.)
Ⅳ. 저장의 기원이 각인돼있습니다. 빗자루에 10개의 주문을 각인할 수 있으며, 하루를 기점으로 초기화됩니다.
Ⅴ. 비행의 기원이 각인돼있습니다. 빗자루를 이용해 하늘을 비행하는 게 가능합니다.
Ⅵ. (봉인) 보호의 기원이 각인돼있습니다.(마녀의 로브와 연동 시 봉인이 해제됩니다.)
“와.”
우선 제 3의 눈으로 빗자루를 확인한 결과, 나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건 비비앙이 가지고 있는 질서의 오르도와 비견될 정도로 좋지 않은가. 일반 설명은 그렇다 치고, 상세 효능은 정말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것들이다. 거기다 모자와 로브는 이미 획득했으니 남은 효능의 봉인 해제도 시간 문제였다.
안 그래도 돌아가면 마법사와 정령 소환사 육성에 힘을 쏟을 생각이었는데, 마침 아주 좋은 성과가 나와줬다. 아마 경매에 올리면, 북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사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거라 장담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과였다.
원래 원정의 끝은 보상으로 매듭짓는 법. 좋은 성과를 얻자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이야, 마력 흐름이 세 배로 상승한다고….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효능인데. 아무튼, 빗자루는 챙겼고. 모자랑, 로브랑…?”
그때였다. 콧노래를 부르며 지면에 널브러진 것들을 주섬주섬 줍는 찰나, 어디선가 빤한 시선이 느껴졌다. 누군가 싶어 흘끗 시선을 돌리니 보랏빛 머리카락의 여인이 보인다. 길게 흘러내린 머리카락과 똑같은 색의 눈동자가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다. 어딘가 낯설지 않은 눈이라고 생각한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 마녀?”
– 호?
화정도 봤는지 가벼운 탄성이 머릿속을 울린다.
그랬다. 수풀에 주저앉은 채 나를 바라보는 성숙한 여인은 바로 마녀였다. 차원이 부서짐과 동시에 소멸했다고 생각했는데….
“젠장, 살아 있었나?”
나는 신속히 무검을 뽑아 마녀를 겨눴다. 그리고 힘껏 노려보았으나, 마녀는 별다른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까처럼 무심하디 무심한 눈으로 나를 응시할 뿐.
혹시나 싶어 곧바로 제 3의 눈도 사용해봤으나, 아예 읽히지 가 않는다. 다른 차원도 아닌 현세에서 읽어 들이지 못하는 경우는 정말로 많지 않다. 끽해야 통과의례에서 한 번, 그리고 지옥 대공과 조우했을 때 한 번 정도?
한참을 노려보자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경계를 풀지 않고 차근차근 거리를 줄였다.
– 헤…. 제 3의 눈으로도 읽히지 않는다니. 신기하네.
‘화정? 어떻게 된 거지?’
– 흐응. 글쎄. 짚이는 게 없는 건 아닌데…. 우선 쟤한테 말 좀 걸어볼래?
‘말을 걸어보라고?’
그 순간.
“이상합니다.”
여인 특유의 높은 톤의, 그러나 흡사 로봇이 내는 듯한 차가운 기계음이 귓전으로 흘러들었다. 말을 걸기도 전에 마녀가 먼저 입을 연 것이다.
“분석 결과, 그 빗자루는 사내의 손길을 허용하지 않는 일종의 마도.”
“…….”
“허나 당신이라는 사내는, 어떤 부작용 없이 빗자루를 만지고 있습니다.”
“어? 그러고 보니….”
확실히 비슷한 정보를 읽은 것 같은데. 나는 얼른 빗자루를 살펴보려다가 아차 시선을 올렸다.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잖아.
“너는 누구지?”
“질문의 범위가 매우 광범위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이라면 회답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마녀는 여전히 주저앉은 채 딱딱하기 짝이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사실 저런 육성은 듣는 입장에서 상당히 거슬릴만한 목소리였으나, 마녀가 저렇게 말하니까 묘하게 어울린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재차 질문을 던졌다.
“너는 현재 어떤 존재지? 그리고 무슨 목적을 갖고 있지?”
마녀는 무뚝뚝이 눈을 깜빡깜빡 감았다가 뜨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미처 돌아가지 못한 조각이며, 근원의 극소한 부분. 말인즉 불완전한 존재. 그리고 현재 목적은 죽음의 기다림입니다.”
돌아가지 못한 조각? 근원의 극소한 부분? 아니 아니,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 아하. 역시 그랬군.
무슨 말인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화정은 무언가 알겠다는 듯이 또 한 번 감탄을 터뜨렸다. 나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화정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된 거야?’
– 응? 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꽤 복잡하게 얽힌 것 같은데.
‘괜찮으니까.’
– 음…. 그럼 처음부터 짚어보자고. 아까 부서진 공간의 정체는 알고 있지?
‘마법의 근원, 초 정보 집합체 등등. 총칭해서 아스트랄 차원.’
– 그래. 그리고 마녀와 악마는 너희의 소멸을 조건으로 스스로를 제물로 바쳤고, 결과적으로 차원의 의식을 몸으로 끌어당겼지.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존재의 정체는 마녀도, 악마도 아니야.
…확실히 그렇다. 아까 격전을 치르면서 두 존재의 소멸을 확인했다는 근원의 음성을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한 생각이 번뜩 뇌리를 스쳤다.
‘그럼, 설마….’
– 맞아. 비록 육체는 마녀의 것일지라도, 육신 안에 담긴 것은 잔존한 근원의 의식 흐름이겠지. 물론 극히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잔존한 근원의 의식 흐름?’
– 응. 이건 내 추측인데, 근원은 아마 ‘멸망의 거울’을 실행했을 때부터 돌아갈 준비를 했던 것 같아. 그대로 계속 있으면 자신마저 위험할 수 있으니까. 아니면 더 방법이 없다고 여겼을 수도 있고. 어쨌든 원래 자신이 있어야 할 근원(根源)으로 돌아가려고 했겠지. 그런데 바로 그 돌아가려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거야.
‘…….’
– 조금 더 정확하게 설명해줄까? 아까 말하기는 했지만, 근원은 결국 제물이 내건 조건을 이루지 못했어. 너희는 근원이 최후의 계획인 ‘멸망의 거울’ 꺼내 들게 만들 정도로 몰아붙였고. 그리고 결국 그 애송이와 네가 합작해서 모래시계를 부수기까지 했어. 즉 근원에게는 그 결과 자체가 상정 외의 계산이었던 거지.
설명은 어느 순간부터 난해해지고 있었다. 문득 이러나저러나 그냥 콱 죽이면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러나 열심히 설명하는 화정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으니, 우선은 경청하는 게 나으리라.
– 사실, 나도 아직 추측일 뿐이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어. 이런 경우는 굉장히 드물거든. 아무튼, 이건 나도 생각 좀 해볼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봐. 그러고 보니 쟤 연구할만한 가치는 있을 것 같은데?
‘그런가?’
화정의 말에 나는 의문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신격에 달한 화정조차도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데, 감히 인간인 내가 끼어들 수 있으랴.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거치고 나서, 나는 남은 질문 하나를 추가로 던졌다.
‘그럼 죽음을 기다린다는 말은 무슨 뜻이지?’
– 응? 아아. 현재 저 몸에 잔존한 근원이 갇혀 있다고 가정해보면, 어떻게든 돌아가려고 몸부림을 치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저 몸이 완전하게 죽어야 하거든.
나는 살그머니 낯을 찌푸리며 마녀, 아니 잔존한 근원을 응시했다.
“근원으로 돌아가려고 죽는다고? 그럼 자살하면 되잖아?”
“Negative. 불가합니다. 자살은 근원으로 가는 길이 차단되는 최악의 방법입니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꺼낸 찰나, 고요한 음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돌아온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살은 할 수 없다는 소리 같다.
이왕 밖으로 뱉은 김에 나는 계속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럼 너는 현재 그 몸에 갇힌 상태인가?”
“그렇습니다. 근원으로 회귀하던 와중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미 근원으로 돌아간 84.72% 흐름은 어쩔 수 없지만, 조건을 달성하지 못한 이상 남은 15.28%는 강제적인 원칙에 묶였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기다린다?”
“그렇습니다. 이미 육신의 원래 영혼은 무로 돌아간 상태. 제가 머무름으로써 육체가 어느 정도 기능하고 있지만, 오랜 시간을 버티지는 못합니다. 앞으로 정확히 37분 24초 후 이 육신은 완전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너는 원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거고.”
“정확합니다.”
근원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만히 응시하다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이대로 그냥 버리고 갔다가, 네가 스스로 몸을 회복하고 덤벼올 수도 있을 텐데?”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그 목적은 완전히 상실된 상황이며, 또한 제가 당신을 살해하는 건, 현재 전력으로는 100% 불가능합니다. 왜 그런지는 당신이 더 잘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음….”
“정 불안하면, 지금 바로 저를 살해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근원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담담히 말을 이었다.
나는 한동안 정면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무검을 내리고 팔짱을 꼈다.
“그럼 반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딱히 꼭 살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저 근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존재는 이 세상 최고의 마법사일지도 모른다. 말인즉 이제 끝이 다가온 귀환 계획에 한층 탄력을 붙여줄 정도가 된다는 소리다. 저 근원이 보여준 능력은 그 정도로 상당히 인상 깊었다. 그리고 화정도 은근히 기대하는 것 같은 투로 말하기도 했고 말이지.
근원은 고개를 갸웃하기는 했으나, 곧 입을 열었다.
“살고 싶다는 생각도,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죽으려는 이유는, 그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회귀하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첨언하자면, 현재 제 상태는 죽음이 확정돼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소생은 불가합니다.”
“응? 불가하다고? 엘릭서로도?”
“그렇습니다. 설령 어떤 천고의 영약을 가지고 온다고 하더라도, 영혼 없는 육체는 삶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이 흘러가는 이치.”
“…….”
“혹여 이 이치조차도 비틀어버릴 수 있는, 좀처럼 있을 수 없는(Blue Dahlia) 기적이 존재한다면 몰라도….”
“오라버니! 치료 끝났어요오오오!”
그때 안솔의 호들갑스러운 음성과 동시에 방정맞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 기적이 남아 있던가?
============================ 작품 후기 ============================
아니 잠시만요. 제가 다른 코멘트는 그냥 어깨만 축 늘어트리고 말겠는데, ‘압박 붕대?’ 는 보고 뿜었네요. 이건 정말 기상천외해요. 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죠? 아니 제가 사내인데 왜 압박 붕대가 필요합니까! 저 가릴 가슴도 없어요. 아이고 정말.
아무튼, 인터뷰는 저번에 조아라에 방문했을 때 잠깐 이야기를 들었고요. 아쉽지만 제 사진은 올라가지 않습니다. 대신 캐리커쳐가 올라가지요. 하하. 그것도 수염도 붙여서 남성성을 잔뜩 강조할 생각입니다. 🙂
그리고 조아라에서 보내주신 추가 질문을, 제가 워드로 답변을 작성하고 있는데요. 거기서 재미있는 질문이 있더라고요.
Q.5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할 작가님의 성별은?
제가 아주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관한 답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억울함을 토로하고 남성이라는 사실을 어필하겠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 드립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