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764
00763 선택의 시간. =========================================================================
그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낡디낡은 장검이 갑자기 번쩍 빛을 뿜으며 두둥실 허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마치 의지를 가진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 된 것처럼.
허나 그 현상도 잠시. 상태를 채 자세히 살피기도 전, 검은 맑은 빛을 뿌리며 가루로 흩날리더니 사르르 내 안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근력, 내구, 민첩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특수, 잠재 능력 중 1, 4번 슬롯이 새롭게 진화합니다!』
『숨겨진 권능, ‘Apud Migra Eego Gladium’이 개화합니다!』
『숨겨진 권능, ‘해류마(海驑馬), 가리온(加里溫) 소환’이 개화합니다!』
『숨겨진 권능, ‘군주여, 호령하여라.’ 가 개화합니다!』
『숨겨진 권능은 이벤트성 개화 능력으로, 원래 권능 슬롯에 포함합니다.』
6개의 메시지가 주르륵 출력된다.
『사용자 정보를 확인해주십시오.』
이어서 떠오르는 최후의 메시지. 나는 곧바로 사용자 정보를 로드 했다.
1. 이름(Name) : 김수현(4년 차)
2. 클래스(Class) : 검의 군주(Arousal Secret, Sovereign Of Sword, Master)
3. 소속국가(Nation) : 자유 용병(Free)
4. 소속단체(Clan) : Mercenary(Clan Rank : S Zero)
5. 진명 • 국적 : 1. 검의 군주(君主) 2. 마성(魔性) • 대한민국
6. 성별(Sex) : 남성(28)
7. 신장 • 체중 : 181.5cm • 75.5kg
8. 성향 : 중용 • 혼돈(Moderation • Chaos)
1. 화정을 심장에 품었습니다.(현재 3차 각성이 진행된 상태입니다.)
2. 고대 무녀의 각인을 심장에 새겼습니다.(마력 회로가 크게 안정되며 효율이 상승합니다.)
3. 체내에 한 치의 노폐물을 찾을 수 없습니다.(마력이 흐르는 속도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4. ‘군주여, 호령하여라.’ 의 영향으로 상시 S Zero 급의 ‘카리스마(Charisma)’ 효과가 발생합니다.
1. 제 3의 눈(Rank : S Zero)
1. 심검(心劍)(Rank : A Plus)
(설명 : 검과 한 몸이 된 걸 넘어서,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검과 혼연일체(渾然一體)를 이룬 경지. 신검합일(身劍合一)보다 위 단계의 능력으로, 오직 전설상으로만 전해지는 지고(至高)의 상승 검술이다. 검을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실천(實踐)에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한다. 이기어검술(以氣御劍術) ‘Apud Migra Eego Gladium’의 발동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능력.)
1. 백병지왕(百兵之王)(Rank : A Plus)
(설명 : 이 세상 실존하는 모든 병장기의 왕은 검이다. 맹목적인 굴종을 맹세한 검은 더할 수 없이 높은 충성심을 갖추는 동시, 모시는 군주의 패배를 일절 용납지 않는다. 그러한 의지는 군주가 검(劍)을 드는 순간부터 적을 쓰러트릴 때까지 압도하게 만든다. 어지간한 신병이기(神兵利器)가 아닐 경우, 군주의 검이 내뿜는 강렬한 적의에 질려 위축 효과가 발생한다.
2. 쓰러질 수 없는(Rank : EX)
(설명 : 전투를 포기할 줄 모른다. 패배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의지는 설령 죽음 직전에 이르는 부상을 입었더라도 전투를 가능케 한다. 허나 치명상을 입은 만큼 전투력은 크게 반감한다.)
3. 심안(정)(Rank : EX)
(설명 : 있는 그대로의 외형을 보는 게 아닌, 대상의 내면을 직시할 수 있는 마음의 눈. 자신을 관조하고 만물을 살피거나 감지하는 능력, 혹은 이와 비슷한 작용을 하는 현상을 말한다. 극한으로 다스려진 심신은 S랭크 이하의 정신 오염 마법 아래서도 명경지수(明鏡止水)를 유지할 수 있다.)
4. 검신(劍神)의 가호(Rank : EX)
(설명 : 검과 전쟁을 노래하는 신 티르(Tyr)의 축복. 신성 가호를 받은 사용자는 외부에서 전해지는 모든 마력 행사에 관해 드높은 내성을 갖게 된다. 또한 ‘심검’, ‘Apud Migra Eego Gladium’를 익힌 경우, 각 능력과 연동해 검으로 이루어진 자동 요격 시스템(Automatic Intercept System)을 구현할 수 있다. 단, 요격에 운용할 수 있는 검의 숫자와 전체적인 요격 수준은, 사용자 김수현의 마력, 행운 능력치에 기반한다.)
5. 염화(炎化)(Rank : ?)
(설명 : 사용자 설정 상정 외의 능력입니다.)
(잔여 능력 포인트는 0 포인트입니다.)
1. 결.
2. Apud Migra Eego Gladium.
3. 해류마(海驑馬), 가리온(加里溫) 소환.
4. 군주여, 호령하여라.
1. 폴리모프(제한)
2. 용족화(제한)
3. –
4. –
5. –
“…….”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불현듯 정신을 차리니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었다. 사용자 정보만 정신 없이 읽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두어 번 눈을 깜빡이고 눈앞을 응시하니 시야가 빽빽할 정도로 출력된 메시지가 보인다. 허나 아직도 믿기 지가 않는다. 이게 정말로 내 사용자 정보인가?
그때,
– 아직 끝난 게 아닐 텐데?
돌연히 화정의 음성이 들려온다. 멍한 정신이 약간은 깨어나는 기분이다.
– 멍하니 있는 것도 적당히 하라고. 칠칠치 못하게. 그리고 저건 안 먹을 거야?
‘저거?’
반문한 찰나, 문득 화정이 무엇을 가리켜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 맞다.”
여러 물건으로 가득 찬 책상 한쪽에는 5개의 영약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왼쪽부터 근력, 내구, 민첩, 마력, 행운 상승의 영약. 이 중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하나. 무엇을 먹을지는 이미 정해놨다.
아니. 정확히는 클래스 계승으로 올라가는 능력치를 본 후에 결정하려고 했다. 그리고 계승이 끝난 결과, 근력은 3, 내구는 1, 민첩은 1 포인트만큼 상승했다. 이 정도면 엄청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지덕지라고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열 받은 가브리엘이 아예 확 줄여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제나저제나 사적인 감정은 배제한 모양이다.
물론 능력치 상승에 체력이 포함되지 않은 건 매우 아쉽지만…. 어차피 이건 예상하던 바였고.
사실 처음에는 마력 영약을 노리고 있었다. 평소 가장 중요한 능력치를 체력과 마력으로 생각하는 것도 있고,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으리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생각이 변했다. 그동안 체력에 집중하느라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했던 능력치 101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어찌 놓칠 수 있으랴.
그리고 나는 마법사가 아니라 검사다. 물론 현 사용자 정보를 보면 마력도 대단히 중요하나, 어쨌든 근본은 몸을 움직이고 전투하는 검사가 아닌가. 그러니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약을 택하는 게 효율이 높으리라.
…뭐,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5개 전부 먹어버리고 싶지마는.
생각을 정리한 후, 나는 정 중앙 푸른 빛깔을 띠는 영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한 입에 털어 넣고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예전에 먹었을 때는 별다른 맛이 나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민첩 상승의 영약을 복용합니다.』
『2 능력치 포인트가 새롭게 생성됩니다.』
이윽고 두 개의 메시지가 출력됐다. 이미 사용자 정보 창은 켜둔 상태라, 나는 바로 능력치를 상승시켰다.
1. 전 : [근력 96(+2)] [내구 94(+2)] [민첩 98] [체력 101(+2)] [마력 96] [행운 90(+2)](Total 575 Point)
2. 후 : [근력 99(+2)] [내구 95(+2)] [민첩 101] [체력 101(+2)] [마력 96] [행운 90(+2)](Total 582 Point)
“…하.”
절로 탄성이 나왔다. 드디어 민첩 능력치를 101 포인트까지 올린 것이다. 아까도 그랬지만, 여전히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지그시 눈을 감아보니 몸 안에서 가공할만한 힘이 느껴졌다.
도대체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모르겠다.
그냥 무언가가 빙그르르 도는, 아니 폭발적으로 소용돌이치는 것 같다. 상쾌하면서 개운한 기운이 회로 구석까지 흐르고, 그로 인해 온몸이 훨훨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괜스레 숨이 가빠온다. 진정 이대로 테라스에서 뛰어내려 아무나 붙잡아 싸워보자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이상하게도 이 기분을 기운을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확인해보고 싶다. 지금 느껴지는 이 강대한 힘을 마음껏 해방해보고 싶다.
‘화정.’
– 응?
‘나…. 강해진 거 맞지?’
– 흐응. 글쎄.
차오르는 쑥스러움을 참고 물었으나 화정의 어조는 시큰둥했다.
– 강해지기는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여기서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말이 옳겠지.
‘발전할 수 있는 여지.’
– 그래. 앞으로는 사용자 정보도 연구하고, 새로운 능력에도 익숙해져야 할 테니까. 즉 정체돼 있던 상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생겼다는 소리지. 아무튼, 그렇다고 너무 자만하지는 말라고. 세상은 넓고 괴물은 많아.
‘그런가.’
세상은 넓고 괴물은 많다. 화정의 일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 그런가는 무슨. 아. 그리고 너, 그 천사의 말은 새겨두는 게 좋아.
‘천사? 세라프?’
– 응. 사실 그때…. 그 세라프라는 천사가 너랑 즐겁게 쇼핑하는 거 보면서 이만 바득바득 갈았는데,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걔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는 거야. 골라준 장비도 보면 그렇고. 아마 평소에 너를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
‘그…. 응? 이를 갈았다고?’
– 응? 아아. 왠지 부인이 남편 옷 골라주는 것 같아서. 질투라고 해야 하나? 실은 그거 나도 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
그때, 또렷하게 말하던 화정이 돌연 서서히 말을 흐리고, 갑자기 침묵이 찾아왔다.
…자, 당황하지 말고. 이미 무수히 겪은 상황이잖아. 차분히 이후의 전개를 예상해보자.
내가 여기서 반문하거나 놀리면, 화정은 분명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가열찬 불꽃을 터뜨릴 터. 즉 본전도 못 찾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무조건, 절대로 조용히 해야 한다. 헛기침도 위험하다.
반대로,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는 것처럼 넘어가면 만사 Ok다.
‘맞아. 세라프가 그랬지. 주변을 챙기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도 챙기라고. 그래. 네 말이 옳은 것 같다.’
그리하여 담담히 읊조린 후, 나는 조용히 책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 것은 이미 챙겨 먹었으니(?), 이제는 가져온 것들을 나눠줄 시간. 서랍을 열자 빼곡히 차 있는 호출석이 보인다.
보자, 우선은 선유운…. 신재룡…. 임한나…. 안솔….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때였다.
번쩍!
난데없이 눈앞으로 세찬 불꽃이 튀기고,
“큭!”
‘무, 무시하는 거야? 나 무시 당했어?’
“야 이. 아, 아니 화정. 우선 진정….”
‘자, 자존심 상해!’
화정이 빽 소리를 질렀다.
번쩍!
이어서 또 한 번 불꽃이 튀겼다.
“그럼 도대체 어쩌라는 건데!”
결국에는 나도 맞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하늘이 붉은 빛으로 물들었을 즈음.
“어휴, 짜증 나!”
웬 늘씬한 여인이 동쪽으로 난 긴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발을 내디딜 때마다 복도가 쿵쿵 울리며 자꾸만 신경질을 부리는 게, 상당히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 여인의 정체는 바로 제갈 해솔이었다.
“마침 딱 좋았는데! 겨우 감 좀 잡나 싶었는데! 왜 이렇게 부르고 난리람? 귀찮게!”
기실 제갈 해솔이 이렇게 분노한 이유는 하나였다. 왜냐면 살면서 가장 질색하는 일을 당했으니까(?).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보면, 제갈 해솔은 성격상 한 번 연구에 몰두할 시 방안에 그대로 틀어박혀 버린다. 아닌 게 아니라, 며칠이든 두문불출하고 아예 나오지를 않는 정도.
말인즉 연구 도중에는 성격이 굉장히 예민해지고 섬약해지는 터라 방해 받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데, 갑자기 하녀가 들이닥치더니 클랜 로드가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전령을 전한 것이다.
제갈 해솔도 원체 배짱 좋은 성격이라 처음에는 ‘현재 굉장히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으니 다음에 갈게요. 그리고 저 그렇게 쉬운 여인은 아니에요.’ 라고 거절했다.
그러나 되돌아온 말은 ‘까불지 말고. 네가 오지 않겠다면 직접 끌고 가겠다.’ 는 매우 강압적인 전령이었다. 결국에는 연구를 중단하고 몸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었다.
“에이 씨, 두고 봐. 진짜 별것도 아닌 일로 불렀으면, 아주 그냥….”
물론 그런다고 제까짓 게 뭘 어쩌겠느냐마는, 여하튼 제갈 해솔은 씩씩거리며 집무실 문을 응시했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이내 거세게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 제갈 해솔은, 노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벌컥 문을 열었다.
“이봐요! 클랜….”
그리고 기세 좋게 문을 열고 안을 바라본 순간,
“로….”
우뚝, 갑작스럽게 걸음이 정지했다.
그리고 잠시 후.
“…드.”
문득 낯을 살짝 붉힌 제갈 해솔이, 눈을 살그머니 내리깔며 자세를 바로 했다.
============================ 작품 후기 ============================
아, 파치겠네요. 요새는 담배를 거의 한 갑, 두 갑 정도 밖에 안 파네요. 이거 참 은근히 불편합니다. 조금만 참으면 될 것 같기는 한데, 집에서는 이 기회에 끊으라고 은근한 눈치를 줍니다. ㅜ.ㅠ